SSC MUSIC : 28TH TRACKLIST

SECTION : MUSIC   2018.02.04 15:34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 입니다. 어느새 2018년의 1월도 지나가버리고 2월이 찾아왔네요. 1월의 마지막 날인 1월 31일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희 슬로우스테디클럽의 두번째 공간 Slow Steady Club Discovery가 서울숲에서 여러분께 처음으로 소개해드린 날입니다. 원덕현 실장님께서 처음 이 공간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을때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인 2001 :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언급 하셨는데, 전 우주의 텅 빈 공간과 진공의 상태, 그리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 분위기를 이 트랙리스트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트랙리스트 에서는 앰비언트와 덥 테크노, 딥하우스와 하우스의 장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처음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조금씩 빨라지는 템포에 따라 장르를 변환하는 방식으로 구성해보았습니다. 우선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제자에게 클래식 피아노 교육을 받은 독일의 프로듀서 닐스 프람과 아이슬란드의 프로듀서 올라프 아르날즈의 잔잔한 네오 클래식 트랙으로 시작을 알립니다. 이후에 그리스의 프로듀서 멜로르만의 다운템포와 앰비언트 트랙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금 고조시킨 후에 러시아의 테크노 프로듀서 Deni Diezer의 덥 테크노 트랙들과 세르비아의 <Tehnofonika Records>, 이탈리아의의 <Biorecordings>, 헝가리의 <Moira Audio> 레이블에서 찾은 덥 테크노 트랙들로 몽환적인 분위기에 리듬을 가미하여 집중을 유도해보았습니다. 


덥 테크노에서 딥 하우스로 전환되는 시점에는 런던의 <Rhythm Section Intl> 소속 아티스트들이 들려주는 딥 하우스 트랙들은 조금 더 빨라진 템포로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켜줍니다. 이후 캐나다 몬트리올을 기반으로 한 매거진 <Bolting Bits>에서 소개하는 딥 하우스 트랙과 영국 런던의 레이블 <Just Music Label>에서 소개하는 앰비언트 하우스의 트랙을 거쳐 노르웨이의 피아니스트이자 프로듀서로 활동중이며 재즈 레이블 <Jazzland>의 수장으로 활동중인 Bugge Wesseltoft(부게 베셀토프트) 와 독일의 테크노, 하우스, 누재즈 등을 기반으로 하여 디제이와 프로듀서로 활동중인 Henrik Schwarz(헨릭 슈바르츠) 로 결성된 듀오 Bugge Wesseltoft & Henrik Schwarz의 재즈 앰비언트 트랙을 각각 독일 베를린의 Yves & Malik (이브스 앤 말릭) 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Daniel Zuur (다니엘 주르)가 아주 멋지게 하우스로 리믹스한 트랙을 소개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 활동중인 현대 음악의 거장 Ludovico Einaudi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뉴에이지 트랙을 호주 시드니의 하우스 프로듀서 Alex Daniell가 리믹스한 트랙으로 마무리 됩니다. 즐겁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Ludovico Einaudi>




이 사진은 합성 사진이 아닙니다. 피아니스트의 발 아래에 있는 것은 북극 바다위에서 떠도는 빙하 조각이 아닌, 인공적으로 설치된 빙하 모양의 무대입니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현대 음악가이자 피아니스트, 작곡가인 Ludovico Einaudi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와 그린피스가 협업하여 진행한 지구 환경 보존 캠페인의 일환으로 펼쳐진 퍼포먼스 입니다. 이 퍼포먼스에서 그는 'Elegy For The Arctic' 이라는 곡을 연주하는데, 연주 중간에 실제로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며 인간들로 인하여 파괴된 자연의 고통을 극대화시켜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실 이 아티스트를 소개하면서 제일 첫번째 사진으로 무엇을 올릴지 꽤나 고민되었습니다.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되 다양한 일렉트로니카적인 요소를 결합해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음악과 뉴에이지 등의 여러 장르를 섭렵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가진 음악적 다양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라이브 공연 중 여러 세션맨들과 찍힌 사진을 처음에 골랐었지만, 그런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인간의 삶에서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제일 아름답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잠시 생각해보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진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진을 보시게 되면 이 남자가 어떤 음악가인지 궁금하지 않을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에 관하여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Ludwig van Beethoven>




<Franz Joseph Haydn>




<Wolfgang Amadeus Mozart>




우선 이 아티스트의 관해 설명을 드리기 전에 '클래식' 이라는 단어에 기원을 추적하여 역사에 따른 개념의 변화를 알아봄으로써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Classic (클래식) 이라 하면 보통 우아하고, 고상하며 어렵고, 지루한 이미지를 가지는 단어 입니다. 클래식은 넓은 의미로는 전통적인 서양 음악을 표현하며, 특정 연대에 있어서는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등이 활동했던 유럽의 고전시대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음악뿐만 아니라 예술에서 장르를 불문하고 특정의 다수 작품을 가리켜 클래식 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고전' 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단어가 중세시대 유럽에서 어떻게 다시 표현되기까지 이르렀을까요?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클래식의 어원은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로, 기원전 6세기 경 고대 로마 시민의 6계급 중 최상위의 계급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고로, 그당시의 클래식 음악은 최상급 계급, 즉, 부자들이 우아하고 고상하게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의미로 군인의 최고 지위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중세시대 말을 지나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 들면서 클래식 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조금 달라지게 되는데요, 그때 당시 유럽인들에게 고대 로마인들의 예술성은 본받아야 할 정신의 모범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고대 로마 시대의 예술을 통틀어 클래식이라고 총칭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클래식 음악의 목적은 단순한 오락 보다는 삶과 정신적 풍요로움을 위한 교양 목적의 음악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우리의 삶과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음악.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하는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의무는 아니지만, 이 음악이 기저에 놓여져 있는 고대 로마 시대의 정신,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한 선조들의 켜켜히 쌓여온 사유의 흔적들을 탐구하며 아름다운 삶과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려고 하는 자세는 저에게 있어서 의무를 넘어 삶의 가장 큰 목적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클래식 음악의 정신을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어떤 방식으로 계승해나가고 있을까요? 앞에서 보았던 그린피스와의 프로젝트를 통해 펼쳐진 퍼포먼스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유년기 시절부터의 행보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Ludovico Einaudi>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이탈리아의 북부 피에몬테주의 토리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인 루이지 에이나우디는 이탈리아의 2대 대통령이었으며, 아버지인 줄리오 에이나우디는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출판업자 였습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집안은 꽤나 풍요로웠을 것으로 예상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풍요로웠던 가정 환경보다 그의 유년기에 직접적으로 영향 끼쳤던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그의 어머니인 레나타 알드로반디는 어린 아이인 루도비코에게 자주 피아노를 연주해 들려주었는데, 그녀의 아버지 (즉 루도비코의 외할아버지)인 왈도 알드로반디는 제 2차 세계 대전 후에 호주로 이주한 피아니스트, 오페라 지휘자 및 작곡가였습니다.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고 외할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탓일까요? 그는 10대라는 이른 나이부터 본격적으로 민속 기타를 이용하여 작곡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 들어가 음악 공부를 하기 시작하는데, 1982년에 학위를 수여한 기록이 있는것으로 보아 1970년대 중후반에 공부를 시작하였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그는 루치아노 베리오에게 오케스트라 수업을 받았고 탱글우드 음악제에서 장학금을 수여하기도 합니다. 그에 따르면, 루치아노 베리오는 아프리카 음악과,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음악에 매우 관심이 많았었다고 하네요. 이런 음악에 대한 열린 사고 방식을 가진 스승의 가르침은 미래에 그가 클래식에 일렉트로니카와 재즈 팝 민속 음악 등을 크로스오버하여 작업물들을 선보이는 그의 음악 형태에도 꽤나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예상 됩니다. 


밀라노에서 음악 공부를 마친후에 그는 몇년간을 전통 음악을 작곡하는데에 시간을 보냅니다.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는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색다른 결과물을 선보이기로 하는데, 다름 아닌 발레와 무대극이었습니다. 1984년 극작가인 안드레아 드 카를로와 함께 발레 연극 'Sul filo d'Orfeo'의 작곡 작업을 함께 하여 주목을 받았으며 1988년에 같은 팀들로 구성된 발레 연극 'Time Out'을, 1991년엔 'The Emporer'를 작곡하여 이탈리아 최고의 고전무대인 베로나 오페라 축제에서 오페라 발레극을 발표합니다. 1997년에는 'E.A Poe' 라는 무성 영화에 자신이 작곡한 사운드 트랙을 얹는 등의 작업물도 발표하여 그의 작업물들은 이때 당시 대체로 연극과 영화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자신을 평가하는 수식어로 자주 따라붙는 '미니멀리스트' 라는 단어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정의하는것을 싫어하지만, '미니멀리즘'이 우아하고(Elegance), 개방적인(Openness) 음악을 지칭하는 단어라면, 나는 다른 어떤것들보다 미니멀리스트로 불리고 싶다.'


이전 포스팅에서 소개해드렸던 류이치 사카모토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자신 또는 자신의 음악이 특정 장르로 구분되는 행위에 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들은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과 여러 요소들은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색해질 정도의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전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음악을 혼자 명상하거나 독서를 할때 자주 듣고는 합니다. 그의 라이브 공연 영상과 함께 여러분도 깊은 생각에 잠기시거나 집중하실때 들어보시면 더욱 아름답게 들려올 것 같습니다.




<Ludovico Einaudi Elements Live, 2015>




2018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이 개최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역대 올림픽 주제곡들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부터, 2016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 올림픽까지 정리해보았습니다. 정보가 많이 없는 곡들은 꽤 부족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지만, 제가 소개해 드리고 싶은 곡이나 아티스트 위주로 최대한 알차게 구성해보고자 하였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Rene Simard - Bienvenue a Montreal>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올림픽 역사상 첫 테마곡이 탄생하게 됩니다. 청중들 앞에서 흥겹게 노래하고 있는 바가지 머리의 소년을 한번 보세요. 짧은 자켓과 통큰 나팔바지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패션 트렌드 였었나 봅니다. 이 최초의 올림픽 테마곡을 부르게 된 영광을 안게된 소년은 퀘백 출신의 15살의 르네 시마르 입니다. 현재까지도 가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곡 및 프로듀싱은 샹송으로 유명한 프로듀서 르네 안젤릴으로 대표곡으로는 'Non pleure pas', 'L'oiseau'이 있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Tõnis Mägi - Olympiad>


러시아의 서쪽에 위치하여 발트해에 맞 닿아 있는 작은 국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에스토니아 인데요, 이름만으로도 생소한 이 에스토니아에서 두번째 올림픽 주제곡을 부르게 된 영광을 누린 가수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토나스 마기 인데요, 그는 에스토니아의 록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음악가 중 한명으로  가수이자 기타리스트, 배우로도 활동중인 아티스트 입니다. 특히 1970 - 1980년대엔 에스토니아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 했었습니다. 아, 그 당시라면 러시아가 아니라 소비에트 연방국 (소련) 이었겠네요. 1987년 반소비에트 혁명인 '노래하는 혁명'을 통해 그는 'Koit'이라는 곡을 발표하였는데 이 곡을 에스토니아에서 자유의 상징으로 불리는 송가로 불러지게 되며 그의 노래와 함께 그 역시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John Williams - Bugler's Dream Olympic Fanfare And Theme>


우리가 통상적으로 TV에서 방영해주는 올림픽 방송들을 볼때, 중간중간에 흘러 나오는 음악들은 대부분 음악감독인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곡들입니다.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의 테마곡으로 사용된 이곡은, 리용과 파리 음악원에서 라벨, 당디 등의 음악가와 작곡을 공부했고, 미국으로 이민가서는 헐리우드에서 영화음악등의 작곡가, 기획가등으로 활동한 Leo Arnaud의 'Bugler's Dream' 이라는 곡을 편곡하여 제작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노래의 제목은 두개의 제목이 합쳐진 타이틀로 불리우곤 하는데, 이곡은 미국에서 ㅎ학교 졸업식에 재생되는 음악으로 자주 쓰인다네요. 사실 저는 잘 모르겠으나 미국인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음악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존 윌리엄스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절친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음악감독 입니다. 그는 엔니오 모리코네, 한스 짐머와 더불어 생존하고 있는 영화음악계의 거장 중 하나로 <죠스> 와 <스타워즈>시리즈의 장엄한 배경 음악들을 작곡하며 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앞서 소개해드렸던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테마 주제곡을 맡은 이후부터는 미국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영화음악 작곡가가 되었다고 하네요. 그는 특히 리하르트 바그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죠스>, <스타워즈>, <슈퍼맨>, <E.T.>, <인디아나 존스>, <JFK>, <라이언 일병 구하기>, <쥬라기공원>, <해리포터> 에서 웅장하고 장엄한 스케일의 음악을 들려주고, <쉰들러 리스트>, <뮌헨> 등에선 우울하고 잔잔한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였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쥬라기공원의 테마곡을 참 좋아합니다. 어렸을 적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공룡 이라는 생물은 아직까지 저에게 가장 멋진 판타지로도 남아있기 때문인데요. 퇴근길에 오랜만에 쥬라기 공원 테마곡을 들어야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추억으로 남아있는 영화 음악을 오늘 한번 들어보는게 어떠신가요? 그 곡 역시 아마 존 윌리엄스의 곡일지도 모릅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Giorgio Moroder - Reach Out>


2014년에 발표되어 큰 이슈가 되었던 전설적인 프랑스의 일렉트로닉 듀오 Daft Punk의 정규 앨범 [Random Access Memories]의 3번 트랙 'Giorgio By Moroder' 라는 곡을 들어보셨나요?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남성의 내레이션이 계속 되는데, 이 내레이션의 주인공이 바로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릭핌 테마곡의 작곡가이자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조르지오 모로더 입니다. 




<젊은 시절의 조르지오 모로더>




<Giorgio Moroder Live At 'I Feel Love' 40 Years Celebration Brooklyn>




조르지오 모로더는 1970~80년대에 신시사이저를 통한 혁신적인 연주를 통하여 일렉트로니카, 뉴 웨이브, 하우스, 테크노 음악 등에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 입니다. 특히 디스코의 시대에 도나 서머와의 작품으로 알려 졌는데, 그가 만든 트랙이 바로 'I Feel Love' 인데, 이곡은 댄스 뮤직의 혁명이라는 호평을 받은 곡으로도 유명하죠. 모로더는 또한 뮌헨의 뮤직랜드 스튜디오(Musicland Studios)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 레드 제플린, 퀸 그리고 엘튼 존 등 1980~90년대의 많은 가수들이 거쳐 녹음하였던 음악계의 성지 중 하나로 불리웁니다. 그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영화 음악 작곡으로 1978년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고, 이후에도 1984년 영화 《플래시댄스》의 삽입곡 'Flashdance...What a Feeling' 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1987년 영화 <탑 건> 의 삽입곡 'Take My Breath Away' 로도 아카데미 주제가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모로더는 총 3번의 오스카 트로피를 안는 영광을 누린 영화 음악과 일렉트로니카를 아우르는 엄청난 뮤지션 입니다. 


백발의 노인이 되었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디제이로도 무대에도 오르곤 합니다. 믹스맥 매거진, 카사블랑카 레코즈 그리고 스미노프가 합작하여 주최한 도나 서머의 'I Fell Love'의 40주년 파티에서 그는 아주 멋지게 디제잉을 하며 청중을 압도합니다. 청춘은 정말 외모가 아닌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영상이기에 여러분께 꼭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이 말이 떠오릅니다. 청바지! (청춘은 바로 지금) 




<1988년 서울 올림픽 코리아나 - 손에 손잡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 곡을 모를수가 없죠. 코리아나의 전설적인 올림픽 테마곡인 '손에 손잡고' 입니다. 이곡은 전세계에 1,700만 장의 싱글 판매액을 올렸다고 추정되고 있으며 독일, 일본, 홍콩, 스위스, 스페인을 비롯한 17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올림픽 기간 중 라디오 방송 리퀘스트 1위를 달리는 등 대단한 기록록을 남깁니다. 


제가 한국인이어서도 있지만, 노래의 가사나 무대의 연출 등 모든것이 저에겐 사실 이 곡을 따라올 올림픽 주제곡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곡이 나올 당시 제가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노래 입니다. 저는 이 공연의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을 많이 받았고 저에게 큰 영향을 준 곡 입니다. 가사와 무대 연출은 전세계 사람들 모두가 공감하고 염원하고 있는 전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너무나도 잘 표현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곡 역시 앞서 소개해드렸던 작고가 조르지오 모로더에 의해 탄생한 곡입니다. 당시 조르지오 모로더의 능력은 이미 앞서 작곡을 맡았던 영화 음악이나 수상 경력에 의해 충분히 검증되었기에 그는 역사적인 올림픽 테마곡의 작곡가로 의뢰 받기에 충분한 자격을 지닌 뮤지션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전세계에 최초로 알려지는 기회인데, 해외의 작곡가에게 주제곡을 맡기는 것이 타당하냐는 반발이 빗발쳤으나 이 곡에 대한 믿음이 컸는지 서울 올림픽 조직 위원회에서는 국내의 음악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국내에서 만들어진 올림픽 관련 곡들과 '손에 손잡고'를 직접 비교하며 들어보는 품평회를 실시하는 파격적인 이벤트를 열게 됩니다. 이 이벤트에는 조르지오 모로더도 직접 참가할 정도로 그는 엄청난 열정을 보여줬는데, 그의 열정은 이게 끝이 아니라 이미 이 곡을 작곡하기 전에 한국에 대해 잘 알기 위하여 한국의 곡을 3000개 넘게 들어보았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후 품평회에서 그의 곡을 월등히 뛰어난 퀄리티로 국내 음악 관계자들도 이를 인정하고 결국 마침내 최종적으로 1988년 올림픽 테마곡으로 선정 되었다고 하네요.


이미 최고의 자리에 위치한 조르지오 모로더 였으나, 한국의 노래를 3000곡을 들어보는 태도는 정말 의욕이 넘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가 왜 성공한 작곡가가 되었는지 이 단편적인 이야기만 봐도 잘 알수 있는것 같네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Sarah Brightman & José Carreras - Amigos Para Siempre>


우리나라 말로 영원한 친구들 이라는 뜻을 가진 'Amigos Para Siempre' 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주제곡 입니다. 전설적인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과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추앙받고 있는 호세 까레라스가 함께 불렀습니다. 노래의 가사는 지구촌 사람들 모두 친구가 되자는 뜻을 담고 있는데, 올림픽 정신에 걸맞게 평화와 사랑을 염원하고 있는 아름다운 노래 입니다. 


이 노래를 작곡한 작곡가는 영국의 앤드류 로이드 웨버 라는 뮤지컬 작곡가 인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오페라의 유령, 캣츠, 에비타를 작곡한 슈퍼스타 작곡가 이기도 합니다. 그의 음악이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눈에 띄는 점이 있는데, 그 이전의 작곡가들이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였지만 ,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클래시컬한 음악을 들려주었다면 그는 팝, 록, 재즈 등 다양한 장르에 클래식을 곁들이는 음악적 절충주의를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그의 대표작인 오페라의 유령은 전체적으로 보았을땐 오페라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같은 제목의 주제곡은 굉장히 거친 하드록에 가까운 음악으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에비타는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탱고, 룸바등의 다양한 라틴계 음악들이 록, 팝, 클래식 등과 함께 섞여 있습니다. 


전 어렸을 적 저희 집에서 제일 자주 흘러 나오던 음악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과 캣츠, 이렇게 두가지 였었는데요, 그당시에는 이해가 안되는 음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니 제가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며 듣지도 않았어도 저의 귀를 열어주게 한 큰 영향 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Gloria Estefan - Reach>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테마곡에서는 쿠바 출신의 미국 가수 글로리아 에스테판을 기용한 것은, 다문화/ 다민족 국가를 표방하는 미국을 표현하기 위해서 라네요. 


라틴 팝의 대모로 불리는 글로리아 에스테판은 쿠바 아바나에서 태어나 피델 카스트로의 통치를 피하기 위해 3세 때 온 가족이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로 이주하게 됩니다. 난민의 처지로 미국에 정착하게된 그녀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습니다. 일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며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고 때문에 야간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힘든 상황에서 글로리아를 지탱해 줬던 것은 기타와 음악이었습니다. 1975년 마이애미 대학에 진학한 글로리아는 밴드 ‘마이애미 라틴 보이스’를 이끌던 에밀리오 에스테판을 만나 함께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였고 꿈꾸던 음악적 욕구를 실현할 토대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 그룹이 유명한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이었습니다.


1977년에 <Audiofon Records>에서 첫 음반 'Live Again'과 'Renacer' 발매를 시작으로 밴드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첫 디스코그라피가 됩니다. 1978년에 밴드와 동명의 앨범 [Miami Sound Machine]을 발매하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1984년의 [Eyes of Innocence], 1985년 [Primitive Love] 앨범을 발매, 4곡을 빌보드 상위권에 올리는 기염을 토한다. 같은 해에 영화 <Top Gun>에 싱글 'Hot Summer Nights'를 실으며 이들의 인기는 정점을 찍게 됩니다. 87년의 <Let It Loose>는 미국 본토에서만 3백만장이 팔리며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6곡이 빌보드 상위권에 올라가며 밴드명을 'Gloria Estefan and Miami Sound Machine' 으로 바꾸지만 1989년에 밴드명에서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을 빼버리게 되고,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글로리아 에스테판이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업적은 바로 라틴 팝의 시장을 미국에 개척하여 큰 성공을 거둔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로리아 에스테반의 기운을 이어 받아 그녀 이후 샤키라,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등 기라성같은 라틴 팝 가수들이 미국 시장을 공략해서 성공적으로 빌보드 차트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1990년 눈보라에서 일어난 버스 사고로 척추가 파열되는 큰 사고를 겪기도 하는데, 목숨을 잃을수도 있는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척추에 티타늄 보형을 이식하고 1년간의 긴 재활 끝에 활동에 시동을 걸었는데, 그때 발표한 곡 'Coming Out Of Dark'는 그녀 커리어 사상 최초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달성하는 감동적인 순간을 그녀에게 안겨줍니다. 현재까지도 라틴팝의 대모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녀의 딸 역시 에밀리 역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중인데 무려 퀸시 존스의 대녀로, 어머니와 함께 종종 무대에 오른다고 합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Tina Arena - The Flame>


호주의 팝 가수 티나 아레나가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노래하는 모습으로 연출된 이 곡은 호주의 대표적인 팝송 작곡가이며 ‘호주의 우상(Australian Idol)’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한 존 푸어맨이 작곡한 'The Flame' 입니다. 새천년에 접어들어 처음 열리게 된 올림픽인만큼 당시 호주 국민들은 굉장히 새로운 감회였을 것 같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Bjork - Oceania>


아이슬란드 출신의 가수 비요크가 부른 오세아니아는, 역대 올림픽 주제곡 중 가장 아방가르드한 곡으로 평가받는 노래 입니다. 이 노래는 올림픽 주제곡 모두를 모아서 보아도 비요크 아니면 부를만한 가수가 없는 것이라고 느껴지네요. 그만큼 그녀의 전위성이 무척 짙게 느껴지며 그리스를 둘러싸고 있는 지중해와 신비로운 역사의 아우라까지 느껴지는 곡 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Sun Nan and Coco Lee - Forever Friends>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주제곡, 영원한 친구들 이라는 제목의 노래 입니다. 이 곡의 작곡에도 역시 조르지오 모로더가 참여 했습니다. 중국의 남성 가수 ‘쑨난’과 홍콩 여가수 ‘코코리’가 함께 불렀습니다. 




<2012 런던 올림픽 Muse - Survivor>


말할 것도 없는 영국 최고의 밴드 중 하나인 뮤즈가 부른 Survivor은 2012년 런던 올림픽 테마곡으로 지정 되었는데,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록 이라는 장르로 만들어진 곡 입니다. 피아노 연주 뒤에 이어지는 매튜의 비장한 느낌의 보컬과 코러스의 조화, 매튜 벨라미의 보컬 위에 얹혀지는 묵직한 기타소리 등 전투를 준비하는 군인의 날카로운 총칼에 올림픽 성화의 불빛이 반사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요새 말로 빠이팅 넘친다고 해야할까요. 기존의 테마곡들의 평화로운 느낌에 비해 좀 더 투지가 불타오르는 느낌이 굉장히 색다릅니다. 




<2016년 리우 데 자네이로 올림픽 Alma e Coração - Olympic Games>


2016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열린 올림픽의 테마곡 입니다. 경쾌한 리듬 위에 브라질의 래퍼들이 랩을 하는 형식의 힙합 곡입니다. 남미의 열정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라틴의 분위기까지 잘 느껴지는 곡이네요.




<Frankie Knuckles - Your Love, 1987>




얼마 전 음악 평론가이자 [BACK TO THE HOUSE : 테크노와 하우스가 주류를 뒤흔들기까지]의 저자인 이대화 씨가 SNS에 남긴 글을 하나 보았습니다. 어떤 튜토리얼 영상에서 올드스쿨 하우스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는데, 오픈 하이햇의 샘플의 피치를 고의적으로 낮추고, 최종 믹스 단계에서 고음역 전체를 조금 깎아내버리고 미세한 디스토션을 삽입하여 일부러 노이즈를 만드는 등의 행위를 보고는 한가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튜토리얼 영상에서 일부러 퀄리티를 조금 낮춰서 트랙을 만든 이유는 바로 올드스쿨 하우스의 로우한 특성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 인데요, 퀄리티를 낮추어서 더 나은 퀄리티를 만든다. 조금 아이러니컬 하지 않나요? 아니, 아이러니컬 하기 보다는 로우 파이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이러한 행위가 사실은 너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는 걸까요?


이대화 씨의 경험이 담긴 짧은 글을 통해 그가 느꼈던 것처럼 저도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겼습니다. 그건 바로 완벽에 다다르는 것만이 꼭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점인데요, 음악가를 포함한 아티스트들에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결과물을 접할때 거기서 풍기는 분위기가 특별하거나 튀거나 인상적인 무언가가 있었다면, 그것은 꼭 '완벽'하지는 않은 결과물일 것입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이상하거나 기괴해보일수도 있겠죠. 이러한 특정 결과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이러한 태도에 대입시켜 본다면 더욱 넓어진 시야에서 모든 현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저 역시도 완벽한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저는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면도 많고, 보편적인 잣대에서 평가받는다면 전 그저 하나의 돌연변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돌연변이의 모습을 가진 제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환경이 갇혀있던, 어떤 상황에 부딫히던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가 느끼진 못하지만 매일 매일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지각하게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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