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C MUSIC : 35TH TRACKLIST

SECTION : MUSIC   2018.09.09 10:59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 입니다. 8월은 5월이나 6월, 7월에 비해 조금은 여유롭게 지나갈 줄 알았는데, 지난달과 비슷한 속도로 지나갔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결국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는 얼마나 많은 일이 지나갔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사소한 일이던지 열심히, 치열하게 몰입하는 자세에서 비롯되는게 아닌가 싶네요. 9월도 지난달에 이어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더욱 열심히 보내고 싶습니다.


지난 달에는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정해진 질서와 위계를 두지 않고 여름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 해보았다면, 이번 트랙리스트 에서는 같은 형식을 유지하되 거기서 장르의 수를 더 늘려서 포크록, 클래식, 프렌치 하우스, 노이즈 앰비언트 등 더욱 다양한 장르들로 구성 해보았습니다. 요즘 저녁 밤에는 굉장히 시원하죠. 산책 하시거나 간단한 운동 하시면서 듣기 좋으실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들어주세요!




https://soundcloud.com/slowsteadyclub/sets/ssc-35th


*사운드 클라우드 링크가 삽입되지 않아 URL로 대체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Hosono Haruomi>




예전에 작성했던 포스팅에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YMO,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라는 신스팝 / 테크노팝 밴드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실은 사카모토 옹의 영향력이 다른 멤버들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크게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 저에게 당연하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호소노 하루오미와 타카하시 유키히로 두 멤버 모두 일본 내에서도 음악사에 기리기리 남을 굉장한 역사를 쓴 위인들 이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포스팅에선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의 멤버이자, 현재까지도 왕성한 솔로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뮤지션 '호소노 하루오미'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Happy End - Kaze wo Atsumete>





타이타닉 호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일본인인 '호소노 마사부미'의 손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그는 1947년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대중음악을 즐겨 들었으며, 중학생이 되었을 땐 록에 심취해 있었다고 합니다. 15살에 처음 기타를 잡게되고, 잠시 만화가의 꿈도 꾸었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음악의 길로 가기로 마음 먹습니다. 


릿쿄 대학 재학중에, 베이스 기타를 시작으로 여러 밴드를 거쳐서 1969년 '만우절' 이라는 밴드로 정식 데뷔를 하게 되고, 그 이후에 오오타키 에이치 , 마츠모토 타카시 , 스즈키 시게루를 만나 전설적이 밴드 핫피엔도 (Happy End)를 결성하게 됩니다. 영어 표기로 하였을때 발음은 '해피 엔드'가 맞지만, 핫피엔도 로 표기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이 밴드를 결성한 당시는 영국에서 시작된 로큰롤의 열풍이 미국을 지나서 일본에도 그 영향력을 막강하게 행사할 무렵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모든 록 음악은 영어로 된 가사로 불려졌지만, 이들은 모든 곡의 가사를 일본어로 부르게 됩니다. 이 사태가 당시에 굉장히 큰 이슈로 떠오르게 됐다고 합니다. 이들은 록에 일본 고유의 정서를 담지 못하게 된 모습에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어로 록 음악을 하는데에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한몸에 받으며 데뷔를 하게 됐는데, 이런 모든 논란을 불식시키고 큰 성공을 하며 훗날 J-POP에 시초 라는 수식어 까지 붙게됩니다.


전 예술의 참된 가치가 바로 이런데에 있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위계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죠. 록이 왜 일본어, 한국어 등과 같이 영어가 아닌 모국어로 불러지면 안될까요? 미국이나 영국에서 온 음악이라도 자국의 정신을 자국만의 언어를 통해서도 충분히 증명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8월에 전 유재하의 앨범을 계속해서 들었는데, 영어로 된 노래들의 감동의 크기에 비해 한국어로 된 가사의 노래를 들었을때 감동이 훨씬 더 와닿았고, 이 기분은 영어로 된 노래를 들었을 때와 비교가 불가능하다 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감동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 포인트가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난 땅과, 우리의 언어를 잊으면 안된다는 점이죠. '핫피 엔도'는 이러한 중요한 정신을 로큰롤로 잘 표현해냈다고 생각합니다. 





<Happy End>




당시 일본의 비틀즈 라고도 불리우던 이 포크록 슈퍼밴드 핫피엔도는, 3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고 3년이라는 짧은 활동을 마치고 해체하게 됩니다. 하지만 각각의 멤버들은 해체 후에도 서로의 작업물들을 위해 계속해서 세션 연주를 해주고 자주 교류했다고 하네요. 제가 생각했을때 호소노 하루오미의 진정한 역량은 핫피엔도의 해체 후에 발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Haruomi Hosono - Hosono House, 1973 >




< Haruomi Hosono - Tropical Dandy, 1975 >




< Haruomi Hosono And The Yellow Magic Band - Paraiso, 1978 >




핫피 엔도가 해체된 후에 호소노 하루오미는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솔로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그의 첫번째 정규 앨범 [Hosono House] 는 핫피엔도 시절의 포크록의 성격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이 시그니처 이기도 한 트로피컬 사운드를 처음 선보이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이 앨범에 세션맨으로 핫피엔도의 기타리스트인 스즈키 시게루도 참여합니다. 호소노 하우스의 앨범 커버의 폰트를 맥 드 마르코가 2012년 발표한 앨범 [2] 에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인디 록과 팝을 아우루는 아티스트가 이 호소노 하루오미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여기서 알 수 있는데요, 여기서 호소노 하루오미의 업적에 대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앨범 뿐만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싱 작업도 많이 했는데요. 일본 원조 테크노팝 아이돌로 알려진 여성 가수 Chiemi Manabi (치에미 마나비) 의 곡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 Chiemi Manabi - Targeted Girl / ねらわれた少女, 1982 >




이 곡은 지금 들어보면 사용된 악기들의 질감은 복고풍의 느낌이기에 단순히 옛날 노래라고 대충 듣고 넘어갈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멜로디나 곡의 전개 등이 굉장히 세련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곡은 꽤나 괜찮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때가 1982년이니, 류이치 사카모토, 타카하시 유키히로와 YMO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활동을 시작하고 몇년이 지난 뒤에 나온 곡이라고 치면, 이들이 내놓은 테크노팝 이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대중 가요 시장에도 흡수되기 시작했음을 의미 합니다. 


이렇듯, 호소노 하루오미를 포함한 YMO 멤버 모두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꾸준히 구축해 나감과 동시에 더욱 발전 시키는 행보를 오랫동안 보여줘왔는데, 일본 자국에서나 세계적으로 대중 가요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발휘 했다는 사실이 무척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사실, 제가 보았을때 현대의 음악가들은 대게 주류 시장과 비주류 시장이라는 활동 영역 및 음악적 구축 세계가 철저히 이분화 되어 있는데 이들만큼 자신의 세계를 예술적으로, 그리고 실험적으로 잘 구축해나가며 대중 문화에도 영향을 행사하는 뮤지션은 몇 없다고 봅니다. 이들은 이미 40년 전부터 이런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으니, 맥 드 마르코가 충분히 앨범커버에 쓰일 폰트를 오마주 하여 존경심을 표했을 법 합니다.




Hosono Haruomi - Cochin Moon, 1978 >




Hosono Haruomi - Watering a flower, 1984>




호소노 하루오미는 YMO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멤버들과 함께 작업한 그의 네번째 스튜디오 앨범 [Paraisp] 이후의 작업물들에서는 더 실험적이고 몽환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5집 에서는 조금 난해한 스타일의 일렉트로니카를 들려주고 있다면, 그 다음 6집에서는 완벽한 앰비언트 사운드를 구현해내 지금까지 점진적으로 발전한 그의 스타일을 매우 추상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그의 앨범들을 들어 보았을때, 대부분의 앨범의 러닝 타임이 50분을 넘지 않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엔 대체적으로 앨범 안의 트랙수가 적은데, 그것은 각각의 트랙마다는 러닝타임이 평균적으로는 길다는 뜻입니다. 앨범 전체의 러닝타임 보다는 하나의 곡 안에서 최대한 감정을 실어 이야기를 풀어내겠다는 그의 뜻이 보이는 듯 하네요. (꽤 비약적인 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Hosono Haruomi  - Paradise View, 1985 >




< Hosono Haruomi - S.F.X, 1984 >




< Hosono Haruomi - Formation of the Venus, 1985 >




Hosono Haruomi  - The Endless Talking, 1985 >




호소노 하루오미는 종교 음악, 민속 음악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이런 관심은 Paradise View, Mercuric Dance 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는데요. 저는 이 두가지 앨범이 그의 80년대 솔로 앨범들 중 가장 좋았습니다. 대부분 그의 솔로 앨범 작업물들은 실험적인 성격을 띄고 있긴 하지만 이 두가지 앨범들은 뭐랄까요. 저에게 있어서 전위적 일렉트로니카의 아버지, 아 아버지보다 위에라고 할 수 있죠. 할아버지 격인 Karlheinz Stockhausen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 Karlheinz Stockhausen - Oktophonie >




저의 주관적인 연상이긴 하였으나, 그래도 슈톡하우젠의 음악은 전자음악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한번쯤은 듣고 넘어가보셔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링크를 공유해드렸습니다. 어떠신가요? 호소노 하루오미의 작업물과 비교하면서 들어 보시라고 추천해드리고 싶지만, 좀 더 경쾌하고 맑은 그의 음악과 비교하기엔 꽤나 음산하죠. 네. 그럴수 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음악이 지닌 위계를 상당 부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화성과 조성들이 전부 뭉개진 상태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전위적인 전자음악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초에 바그너와 브람스 등이 있습니다. 굉장히 신기하지 않나요? 클래식 음악이 전자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요. 기회가 된다면 이 관계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하는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Hosono Haruomi - Omni Sight Seeing, 1989 >




< Haruomi Hosono - Medicine Compilation, 1993 >




호소노 하루오미는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YMO의 활동을 유지하면서도 솔로 앨범 작업에도 게으르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는데요, 이것을 보고 저는 바쁘다는 이유로 여러가지 일을 더 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YMO 멤버들과의 주고 받은 엄청난 시너지 덕분에 솔로 작업에도  욕심이 생겨 더욱 집중할 수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한번 내는것도 아니고, 1년에 한번 내기도 버거웠을텐데 1984년엔 두차례, 1985년엔 세차례 솔로 앨범을 릴리즈 했습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일을 할 시간도 자신이 컨트롤 하는 것이고, 그 에너지도 자신이 컨트롤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역시나 모든건 결국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 되는 것 같습니다.




< Hosono Haruomi >




< Hosono Haruomi >




지금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일본의 진정한 1세대 슈퍼스타 밴드 YMO의 리더였던 호소노 하루오미. 오늘은 그의 음악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솔로앨범들 위주로 소개해보았습니다. 제가 오늘 소개해드린 앨범들은 사실 그의 솔로 앨범들 중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 프로듀싱을 맡은 다른 아티스트들의 트랙이나, 영화음악 등을 더하면 그 양은 굉장히 방대해집니다. 이 많은 작업물들을 어떻게 진행하게 되었을까요? 때로는 고갈된 아이디어의 늪속에서 허우적대지는 않았을까요?


물론 그럤을 것입니다. 제가 두차례 갔었던 남산 소월길에 위치한 피크닉에서 진행중인 류이치 사카모토의 전시 중 알바 노토와 함께 가졌던 인터뷰 내용중에 창조적인 작업물들을 위해 일상 생활에서도 굉장히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모든것을 세심하게 느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저도 이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감정과 경험이라도 그것을 토대로 다른 감정이나 아이디어가 도출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단계에 오른다면, 분명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소노 하루오미도 아마 이런 자세를 가졌기 때문에 더 많은 느낌과 감정을 가지고 많은 작업물을 낼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9월달은 저도 더욱 더 많이 느끼고 깨닫는 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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