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SUNGFEEL YUN

SECTION : INTERVIEW   2017.01.13 23:17



 

2016년이 끝에 다다를 때쯤 휴즈부스의 다섯 번째 프로젝트을 함께 하게된 윤성필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수원 화성의 외진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외딴 언덕 위에 그의 작업실이 우두커니 위치해 있습니다. 작업실 안의 온도계는 영하를 가리키고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지만 그의 이마에서는 땀이 흘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뿌연 먼지에 뒤덮인 채 수십 킬로의 쇳덩이를 조이고 교차시키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 세상의 에너지가 어떻게 그의 작품을 통해 정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존재의 본질'이란 거대한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동양철학과 도교, 음과 양 이론 그리고 불교를 아울러 현대 과학 안의 이론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습니다. 우주(전인류)에 대한 그의 기록은 정성껏 증류되어 작품들은 최소화되고 간결하지만 선명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그는 그의 작품을 닮은 단단하고 명확한 눈빛으로 답변을 이어나갔습니다.






Q1. 자기소개 부탁한다.

A1. 조각을 하고있는 윤성필이라고 한다.





Q2. 왜 조각을 하는가? 


A2. 어렸을 때부터 인테리어 쪽을 좋아했는데 인테리어 쪽을 하려고 생각하다 보니까 조각가가 가장 가까운 거 같아서 조각을 하게 됐고 뭐 특별히 조각을 해야겠다 하고 시작한 건 아니다.





Q3.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었는데 왜 조각을 하게 됐나?


A3. 학교가 조각과 였는데 작업을 하다 보니까 인테리어보다는 조각이 더 재밌었다.





Q4. 조각을 시작한 시점부터 한가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A4. 글쎄, 처음부터 관심분야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주제였고 그때도 이런 주제 하나로 여러가지 표현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거를 계속 이어오고 있는 것뿐이다.





CHAOS, COSMOS AND CIRCULATION 02-03 (2012)



Q5. 그 주제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 좀 부탁한다.


A5. 큰 주제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결국은 우리가 바라보는 이 세상이 어떠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큰 규칙과 작은 규칙들이 모여서 더 포괄적인 규칙들을 만들거나, 또는 큰 규칙 안에 작은 규칙들이 있을 텐데, 그런 가장 작은 규칙까지도 내포할 수 있는 어떤 큰 규칙을 알면 세상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어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작업을 해오고 있다.





Q6. 학생시절에 다른 주제는 안다뤄봤나?


A6. 특별히 다른 주제를 다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Q7. 그럼 항상 이 주제에만 관심이 있었나?


A7. 지금 하는 작업이 세상을 바라보는 아주 큰 주제인데, 그 주제 안에 모든 것이 내포되는 것 같다. 사회, 정치, 경제 등을 아울러 자기의 개인적인 경험까지도 내가 말한 그런 큰 규칙 안에 다 엮여있는 것 같다.






CHAOS, COSMOS AND CIRCULATION 01-14 (2016)





Q8. 이 주제 전에 다른 관심사는 없었나?


A8. 개인적으로 취미로든 뭐든 다른 것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Q9. 그렇다면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9.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안 좋아서 뭐 삶과 죽음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무거운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 같다. 몸이 아팠었으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 좀 더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게 삶과 죽음인데, 그거를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 본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지 않을까?




Q10. 지금 다루는 주제가 다분히 관념적이고 포괄적이다. 작업을 해오면서 변화는 없었나?


A10. 글쎄, 처음부터 주제를 크게 잡고 갔기 때문에 그 내부에서 변해봤자 그렇게 크게 변할 게 없다. 상당히 우주적인 개념들로 주제를 잡아갔기 때문에 그렇게 변동이 크지 않다. 다만 이런 관점을 어떤 세세한 것에 접목시킬 때는 보는 이에 따라서 자기만의 관점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주가 하나고 계속 순환하고 있고 뭐 이런 건 가장 큰 개념인 거고.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 적용해본다면 그렇게 큰 하나가 순환한다면은 나와 타인이 둘이 아니다 뭐 이런 개념까지도 가는 거다. 결국은 우리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하는 타자까지도 같은 하나라는 개념이 우리 실생활에 응용될 수 있겠다.






Q11. 전시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자. 이번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열리는 전시는 어떤 전시인가?


A11. 이번 전시는 슬로우스테디클럽과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보통 미술가들이 화이트큐브의 벽 속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까 이런 특이한 공간으로 가게 되면 약간의 패닉 상태가 있을 수도 있다. 환경이 변하다 보니까 작품의 방향도 약간씩 변하고, 나에게는 어떤 새로운 시도이다.







ENERGY 20-4






Q12. 보통 미술관과 갤러리에서만 전시했던 작가가 슬로우스테디클럽 같은 공간과 작업하는게 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처음 우리의 제안을 받고 어땠는가?


A12. 공간을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Q13. 공간을 보고 어땠는가?


A13. 쉬운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령 아주 큰 벽이 있다거나 하면 메인 작품을 잡고 서브 작품을 구상했을 텐데 이 공간은 크지 않고 다른 영역과 섞여 있어서 어떻게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하지만 내 작품이 슬로우스테디클럽의 이념하고 잘 부합되어 작업 자체는 하던 대로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Q14. 이번 전시에 가장 신경쓴 부분이 뭔지 궁금하다.


A14. 아무래도 조각 작업이다 보니까 사람들의 동선을 신경 썼다. 여기가 전형적인 갤러리는 아니잖나. 여기는 옷을 파는 매장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동선이나 사람들의 시각이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작업을 배치했다.








ENERGY 19-2 (2014)







Q15. 소위 말하는 ‘미술기관’이 아닌 곳에서 진행하는 첫 번째 전시이다.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전달하고픈 혹은 바라는 바가 있는가?


A15.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특정 사람들이 오는 경우가 많다. 여기는 가게와 카페가 함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SLOW'와 'STEADY' 라는 가치를 이야기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이곳을 방문하는 향유층에게 더 와 닿을 수 있을 작품들을 준비했다.





Q16. 이 곳을 방문하는 향유층에게 더 와 닿을 수 있는 작품이란 무엇인가? 


A16. 여기서 말하는 이곳을 방문하는 향유층이란 슬로우스테디클럽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미술에 관심이 있을 수도 혹은 없을 수도 있는 일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특정 장소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닌 곳에서 작품을 접했을 때 좀 더 자유스럽고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전시를 통해 미술 관람자가 좀 더 미술에 친근하게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Q17. 이번 1부 전시에서는 설치, 조각 그리고 회화, 총 세가지 형태로 작업관을 표현한다. 각각의 형태마다 사람들에게 작품의 의도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다른 역할을 하는 것인가?


A17. 뭐 다른 역할은 아니고 하나의 주제가 이렇게도 나올 수 있고 저렇게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음악으로 예를 들면 한 작곡가가 같은 주제로 힙합도 할 수 있고, 발라드도 할 수 있고, 락도 할 수 있지 않나. 이 세 가지 다른 장르가 하나의 주제와 엮여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Q18. Steel 재료를 사용하는 이유는? 


A18. 가장 견고하기 때문이다.





Q19. 왜 견고함인가?


A19. 모든 것에는 어떠한 단단한 규칙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규칙의 단단함을 표현할 수 있는 게 가장 견고한 철이나 스테인리스와 같은 금속이다.








ENERGY28 (2016)







ENERGY23-1 (2016)






Q20. 비비드한 색감 또한 사용하는데 그 이유가 있나? 


A20. 예전에는 흰색, 무색 계열, 혹은 금속이 가지고 있는 색채를 사용했다. 우주에도 다양한 색상이 있다 보니 굳이 무채색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 근래 들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거다.





Q21. 어떠한 목표 의식이 있는지 궁금하다.


A21. 그렇게 큰 목표의식 같은 건 없고, 내가 바라보는 관점, 내가 느끼는  것들을 그냥 표현하려고 하는 거다. 다른 것을 먼저 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현상이나 사회적인 것들을 인식할 때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이 필터링해서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가지게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작품으로 표현한 거다. 음악가 같은 경우에는 음악으로 표현하는 거고.





Q22. 현대미술에 있어서 '예술의 동시대성'이라는 개념은 진지한 화두이다. 작가가 보고 느끼는 것이 작품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라면, 요즘 어떤 것들이 와 닿았으며 그것이 어떻게 작품에 투영되는지 궁금하다.


A22. 넘쳐나는 정보와 다양한 사람들로 복잡다단한 사회에 산다고 생각한다. 나를 잃어버리고 사는 사회가 되고 있지 않나 종종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 나 자신을 면밀히 관찰하고 깊게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것이 궁극적 행복으로 가는 가장 기본적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Q23. 작가에게 있어서 예술의 동시대성은 어떤 의미인가?


A23. 현대를 사는 나로서는 시대와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생각으로 작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것은 자연스럽게 체득 되어 작품으로 환원된다. 





Q24. 작품을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이 광대한, 더 나아가 이 우주를 순환시키는 원리가 있을 것이다 라는 얘기인데, 작가가 생각하는 규칙 중에서 우리 생활에 극명하게 형상화 되는 것이 있나?


A24. 우리가 사는 세계가 상당히 복잡해 보이기도 한다. 나조차 하루하루 다르다. 그렇지만 거시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 복잡함도 큰 규칙 안에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이 모두 다르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크게 보면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는 거고. 오늘 쌀밥을 먹고 내일 라면을 먹는 것이 다르게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먹어야지 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규칙이라는 거다. 세세하게 보면 다 달라 보이지만 큰 패턴으로 보면 결국은 하나의 규칙은 다 존재하는 거 아니겠나? 내 작품은 그런 큰 어떠한 원리가 있다는 전제 하에서 만들어진다. 규칙이라는 게 되게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딱 떨어져서 보면 큰 하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다.





Q25. 작가는 무인도에 한가지를 가져가야 한다면 무엇을 가져가겠는가? 


A25. 한 가지라면 낚시대를 가져가겠는데?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Q26. 무형의 것이라면?


A26. 그런 개념적인 걸로 가면, 편안함, 나른함 그리고 성취욕.






CHAOS, COSMOS AND CIRCULATION 03-09 (2016)






Q27. 그럼 사람들이 그런 개념들을 바탕으로 이 사회와 조직을 구성하면 가장 이상적으로 이 세상이 순환 되겠는가?


A27. 아무래도 개인마다 특성이 다르기에 불가능 할 것 같다. 모두가 만족감을 느끼는 지점이 다르니깐. 개인의 그릇이라고 해야 하려나. 개인의 특성이 담긴 본인 만의 그릇은 다 있다고 생각한다. 욕심 때문에 본인 그릇 안의 내용물이 넘치는 순간 남의 그릇을 빼앗게 되고 문제가 일어나는 것 같다. 자기 그릇의 내용물에 만족하여 살면 좋은 순환이 이뤄지지 않겠는가?





Q28. 각각의 작품에서 거시적인 관점을 제시하는데, 왜 더 멀리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원리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건가?


A28. 행복하다 이런 거 말고, 좀 더 마음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다. 한자로 치면 여여하다 라는 표현일 텐데, 그냥 걱정과 근심이 없는 상태, 어떠한 나쁨의 극과 좋음의 극의 중간. 개인적으로 좋은 게 있는 상태가 아니라, 나쁜 게 없는 상태를 더 추구하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걱정이 없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냥 아무 할 일도 없고 걱정 없이 가만히 있을 때. 나에게 행복이란 것은 상당히 극에 달해 있는 좋음이다.





Q29. 니힐리즘에 빠질 수도 있는거 아닌가?


A29. 뭐 원래 인생이 허무한 거기도 하고 자기 맛으로 사는 건데. 결국 욕심이란 건 남이 채워줄 수가 없고 자기 자신이 채워야 하는 거다.





Q30. 이거를 어떻게 긍정하고 극복할 수 있을까?


A30. 뭐 그거는 자기 자신만이 아는 게 아닐까? 행복이 기준이 나름대로 다 다르지 않나.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냥 나쁜 게 없는 삶.  어려운 게 없는 삶이라고 해야 되나. 고난, 역경 같은 게 없는 삶. 행복에 천착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나쁜 것이라는 게 없는 삶, 그게 나한테는 가장 좋은 삶이라는 생각이다.





Q31. 고난과 역경, 행복과 나른함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하지만 언어라는 틀에 갇혀있다 보니까 대립되어 보이지만 사실 어떤 감정이라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서사가 있지 않나. 당연히 과정에서 힘듦이 있을 수 있는거고. 만약에 그 힘듦이 없으면 행복이란 단어는 없지 않을까? 


A31. 고난을 극복해서 행복해진다가 보통 우리의 서사이다. 고난도 결국 행복을 위해서 하는 고난이라면, 나는 그냥 차라리 행복과 고난이 없는 그 중간을 선택하겠다. 여여함의 상태. 물론 이건 나한테 적용되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은 또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게 규칙화되어 있는 이 세상에서, 내가 뭘 계속 어떻게 한다고 해도 그 규칙 밖을 벗어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운명론과는 다른 얘기다. 운명론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아예 딱 정해져서 가는 거고, 이 주제는 수 많은 규칙들이 교차하는 거다. 물론 변형도 일어날 수 있고, 근데 그 변형 또한 결국 어떠한 공식 안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직선 형태가 운명론이라면 이건 계속 변하고 있는 것이다.





Q32. 무질서하게 보이는 듯 하지만 그 무질서함이 서로 교차하여 질서를 이룬다라...


A32. 우리는 이 지구에 살다 보니까 나무도 볼 수 있고 차도 볼 수 있고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 근데 결국 저 멀리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그 점 안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건데, 세세하게 이런 나무의 입자를 보고 나무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보면 원자, 분자부터 시작해서 미립자, 소립자 다 있을 거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책상으로 규정을 하느냐, 아니면 그거를 더 미시 세계로 보느냐, 아니면 더 거시 세계로 보느냐의 차이이다. 결국은 관점의 차이라는 것이다. 양자역학하시는 분들은 더 상세하게 들어가서 그 세계를 바라보는 거고, 나 같은 경우는 좀 더 멀리서 바라보고자 하는 거다.







LOOKING AT THE REAL WORLD FROM WITHIN THE REAL WORLD 26 (2014)






Q33. 작가가 바라보는 전체의 하나를 원이라는 형상으로 드러난다. 구가 가지는 의미가 있나?


A33. 결국 모든 것들이 에너지라는 것들로 이뤄졌다는 가정이다. 그 에너지가 계속 순환의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내 모든 작품들이 그런 메타포적인 것을 함의하여 원이라는 상징물로 표현하는 거다. 





Q34. 작가에게 시간은 정적인 개념인가, 동적인 개념인가?


A34. 시공간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나한테 있어서 시간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공간의 이동을 우리는 곧 시간의 이동으로 받아들인다. 뭐가 움직여서 저쪽으로 갔다 그러면 이거를 시간의 이동으로 보고 있는데, 나는 이것을 공간의 이동으로 본다. 마치 이런 거다. 가령 사과를 보면 어떤 종류의 사과라고 인식을 하는데, 사과의 큰 개념이 있어야 어떤 종류가 나뉠 수가 있지 않겠는가. 시간도 마찬가지다. 공간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우리는 시간이라는 하위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공간으로부터 파생된 이거를 시간으로 볼 건가 다른 것으로 볼 건가 따지고 보는 거다. 어떻게 보면 큰 하나의 공간이라는 것 밖에는 없는데 그 공간을 인간이 계속 세세하게 나누는 거다. 시간은 우리가 편의상 나누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뭐 또 하나의 관점이니까.





Q35. 전체를 순환케하는 에너지(원리)에게 시간이 지니고 있는 의미적인 요소는 없는건가?


A35. 공간의 이동 만이 있을 뿐, 시간은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Q36. 마지막으로 이 전시를 관람하는 분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A36. 이 전시는 지금까지 갤러리에서 보던 딱딱한 전시가 아니다. 또한 슬로우스테디클럽 공간 구획에 맞게 제작된 작품이 대다수이다. 좀 더 이 공간과 어울릴 수 있도록 작업을 진행했다. 지금까지 미술관에서의 작업과 다른 것이, 보통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먼저 만들어놓고 제공된 공간에 설치를 하는 쪽인데, 지금 작품의 경우는 공간을 분석하고 거기에 맞게 작업하여 전시가 된다.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다른 분들도 기존의 미술공간에서 접하던 것들과는 다르게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음부터 슬로우스테디클럽의 이념과 부합되는 면이 많다. 또한, 작품들이 급박하게 변화를 일으킨다거나 하지 않고 상당히 전체적인 관점에서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듯한 이런 이미지라서 더더욱 공간의 성격과 잘 맞는다. 편하게 즐겨주셨으면 한다.








 DETAILED INFORMATION 

이름 : 윤성필 (SUNGFEEL YUN)
국적 : 한국 (KOREA)

사이트 : WWW.FEELYUN.COM


* 휴즈부스의 5번째 전시 "움직이는 정적 : MOVING STILLNESS"는 
  2017년 6월 30일까지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진행됩니다.


전시 : 움직이는 정적 (MOVING STILLNESS)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5길 17 (팔판동 130-1) 슬로우스테디클럽

전시기간 및 시간 : 2017년 1월 14일 - 6월 30일 (오후 12시 ~ 오후 8시)

오프닝 : 2017년 1월 14일 (토) 오후 3시 - 오후 8시

온라인스토어 : WWW.SLOWSTEADYCLUB.COM 
인스타그램 : @SLOWSTEADYCLUB


*주차는 근처 국립현대미술관, 정독도서관 공용 주차장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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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동희

INTERVIEW : MAILLOT

SECTION : INTERVIEW   2016.11.09 19:06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배우려 하고 자기 자신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으며 그들의 지혜를 곧이곧대로 소화하려 하지만 그다지 수월하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그 원인에는 '자기다움'을 뒤로한 체 남의 생각과 삶 만을 들춰보려고 했기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몇 달 전 Maillot (마이요)의 디렉터 Fukuda Makoto (후쿠다 마코토) 씨와 함께 슬로우스테디클럽 옥상에 앉아 즐거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한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푸근했던 후쿠다 씨의 인상과 차분한 어조 속에서 느껴졌던 강단만큼은 아직도 선명하네요. 한 명의 크리에이터로써, 그의 '자기다움'이 Maillot (마이요)라는 산물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천천히 음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1. Fukuda Makoto (후쿠다 마코토) 씨와 Maillot (마이요)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A.1 저는 올해로 마흔셋이고요. 15년 전에 Strato(스트라토)를 창립했고, Maillot(마이요)라는 브랜드를 만든 지는 10년 됐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세 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Q2. Maillot(마이요)라는 브랜드 이름을 뤼크 베송 감독의 영화 <그랑 블루 (Le Grand Bleu)>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 25년 전쯤 <그랑 블루 (Le Grand Bleu)>라는 영화가 유행이었어요. 프랑스에서는 하도 인기가 많아서 '그랑블루 제너레이션'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죠. 일본에서는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 꽤 유명해져서 저도 자연스럽게 보게 됐고, 아름다운 지중해를 담은 영상과 푸른 색감에 매료됐습니다.


브랜드명은 실제 다이버이기도 한 주인공 자크 마욜 (Jacques Mayol)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비슷하지만 좀 더 발음이 쉬운 단어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Maillot (마이요)라는 단어를 선택했어요. Maillot (마이요)는 프랑스에서 자전거 경주를 할 때 선수들이 입는 유니폼을 뜻하기도 하는데, 이 유니폼에서도 영감을 받았거든요. 커다랗게 로고가 박힌 색색의 유니폼, <그랑 블루 (Le Grand Bleu)>의 주인공 이름과 색감 등에 영향을 받아 Maillot (마이요)가 탄생한 거죠.









Q3. 포털 사이트에서 Maillot (마이요)를 검색하면 수영복 사진이 많이 나오던데.


A3. 맞아요, 하하하. 신경은 쓰이지만 어쩔 수 없죠. 수영복을 뜻하는 고유명사이기도 해서 상표등록도 어렵고, 이제 와서 바꿀 수도 없으니까요.





Q4. 그럼 혹시 영화 촬영 현장에도 가보셨나요?


A4. 가보진 못했습니다. 당시엔 대학생이기도 했고, 촬영지가 꽤 여러 곳이더라고요.





Q5. 어쨌든 영화가 브랜드 네이밍뿐만 아니라 색감에도 영향을 준 셈이네요.


A5. 색감은 확실히 영향을 받았습니다. 물놀이할 때 입는 옷은 아니지만 바다 내음이 나는 듯한, 주변에 바다가 있을 것만 같은 옷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Q6. 패션 업계에서 일하겠다고 생각한 건 언제인가요?


A6. 스물두 살 때요.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었는데 저는 패션과 낚시를 좋아했어요. 둘 중에 뭘 할까 생각하다가 별 고민 없이 패션을 택했습니다.





Q7. 브랜드 런칭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A7. 청바지 회사 영업사원이었어요.





Q8. 그럼 낚시 관련 일은 안 하셨어요?


A8. 취직하려고 몇 군데 가 보긴 했는데 촌스럽고 지루해 보여서 패션으로 발길을 돌렸어요. 그래서 청바지 회사에 들어간 거고요.





Q9. Maillot (마이요)를 만들 때 영감을 준 게 또 뭐가 있을까요?


A9. 아까 말했던 자전거 유니폼, 그리고 밀리터리나 스포츠웨어에도 관심이 있어요. 분야를 막론하고 컬러풀한 것들을 보면서 색감 쪽으로 영감을 받고요.





Q10. 처음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건 없나요? 영감의 원천이라든지.


A10. 영감을 주는 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부분은 있어요.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에게서 답을 찾으려고 하죠. 스스로에게 솔직한지, 너무 유행을 따르지는 않는지, 자만하고 있진 않은지 늘 생각합니다.





Q11. Maillot (마이요)는 좋은 소재로 베이직한 아이템을 많이 생산하시더라고요. 일본 소비자들 반응은 어떤가요?


A11. 취급 매장이 많지 않아서 누구나 좋아해 주신다고 하긴 어렵지만, 저희 매장 반응은 괜찮은 것 같아요. 옷에 관심이 있고 많이 입어 보신 분들은 저희가 뭘 중시하는지 알아주시거든요. 마니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죠.





<SUNSET GINNGHAM WORK SHIRT>





Q12. 한국은 유명 브랜드 로고가 박혀 있거나 디테일이 담긴 옷에 돈을 소비하는 경향이 있고, 비교적 베이직한 아이템은 저가 SPA 브랜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입어 봐야 진가가 발휘되는 좋은 품질의 옷을 소비자에게 어필할 때 어려운 점은 없나요? 요즘은 온라인 구매도 늘어나는 추세잖아요.


A12. 지금까지도 어려운 부분이 사실 그거예요. 하지만 구매 동기는 다양하거든요. 거래처 네임밸류를 믿고 구매해 주시는 분들이 있고, 남들과는 다른 옷을 입고 싶어서 저희 제품을 찾는 분들도 있어요. 취급 매장을 많이 늘리지 않다 보니 희소성 면에서는 어필이 되는 것 같습니다.


보기엔 베이직한 제품이지만 원단 제작 과정에서 많이 공들인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소비자분들께 어떻게 다가가야 좋을지는 저희도 늘 고민하고 있으니, 한 걸음 먼저 다가와 주시면 더 감사하죠.




<MELTON V NECK VEST>







Q13. 그럼 온라인/오프라인 중 어느 쪽 반응이 더 좋은가요?


A13. 온라인이요. 아무래도 오프라인 매장이 많이 없다 보니 구매 경로가 한정적이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재구매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Q14. 개인적으로도 Maillot (마이요) 셔츠를 입어 보니 자주 세탁해도 해지지 않고 원단히 굉장히 쫀쫀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부분일 수도 있는데, 실제로 원단에 신경을 많이 쓰시나요?


A14. 네. 디자인을 화려하게 하지 않는 대신 원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전체를 100이라 본다면 원단에 쏟는 노력이 80% 정도예요.





Q15. 소재 개발을 많이 하시는 거로 아는데, Maillot (마이요) 의 모든 컬렉션에 오리지널 패브릭을 쓰시나요?


A15. 제품의 95%는 오리지널 패브릭으로 제작합니다.





Q16. 오리지널 패브릭을 쓰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A16. 제작 수량이 많지 않다 보니 원단을 주문할 때 최소 단위를 맞추는 게 어려워요. 필요한 양보다 많이 주문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새로운 원단은 얼마나 줄어들고 뒤틀릴지 일단 만들어 봐야 알 수 있으니까 까다롭죠.





<MAILLOT에서 제작하는 오리지널 울 패브릭>



<MAILLOT에서 제작하는 오리지널 코튼 패브릭>





Q17. MADE IN JAPAN이 세계적이 브랜드처럼 여겨질 정도로 일본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한데요. 이런 이미지가 해외 시장 진출에도 도움이 될까요?


A17. 최근까지는 일본 국내에서만 판매하다가 지금은 슬로우스테디클럽이나 아이엠샵을 통해 한국에 소개하고 있고, 영국, 캐나다 등에도 선보이고 있는데요.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Q18. 품질 외에 어떤 면에서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하시나요?


A18. 아까 말한 오리지널 패브릭이요. 직접 개발한 원단을 쓴다는 면에서 개인적으로 자부심을 느낍니다. 개발한 원단은 Maillot(마이요)에서만 사용된다는 걸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판매처가 많지 않다는 게 비슷한 브랜드들과는 다른 점이죠. 오리지널 패브릭을 쓰면서도 소량생산을 고집하고, 취급 매장이 20여 곳뿐이라는 점이요.





Q19. 6월 말에 파리 쇼룸에서 브랜드를 선보이실 계획이라던데, 새로운 걸 보여주실 예정인가요?


A19. 기존의 셔츠나 보더티 위주로 선보이려고 합니다. 새로운 디자인을 뽑아서 괜찮은 반응을 얻었다고 해도 그때뿐일 테니까요. 지금까지 해오던 모습 그대로를 좋게 봐 주시는 분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싶고, 특정 디자인보다는 브랜드 자체를 봐 주셨으면 합니다.





Q20. 그럼 쇼룸에서의 성과는 크게 기대하지 않으시나요? 저희도 이번에 참가하는데 어떤 결과든 겸허히 수용하려고요.


A20. 무리해서 저희 스타일을 바꾸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우선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어떤 반응을 끌어낼지 보려고 합니다. 좋아해 주신다면야 감사하죠.





Q21. 다른 제품도 많은데 왜 셔츠와 보더티를 주로 소개하시는지.


A21. 저희 브랜드의 중심이자 저희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이에요. 다양하게 선보이는 것도 좋지만 산만해질 수도 있으니 가장 보여 드리고 싶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BORDER LONG SLEEVE T-SHIRT>



<SUNSET GINNGHAM WORK SHIRT>




Q22. 오랫동안 의류 디자인을 하시면서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A22. 예전에는 멋있는 옷, 소비자 반응이 좋은 옷을 만들고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트렌드에 구애받기보다는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 입는 사람의 감정선이 크게 변하지 않는 옷을 만들고 싶어요. 원래 그 사람의 옷인 양 자연스럽게 삶에 녹아드는 옷이요.


그리고 많은 분께 사랑받기보다는, 소수일지언정 진가를 알아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23. 일본 패션과 한국 패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23. 시장 규모가 다를 뿐 감각이나 트렌드는 비슷해 보이고, 오히려 세계적인 트렌드에서는 한국이 앞서 있는 것 같습니다.


차이점을 굳이 꼽자면 일본에서 좀 더 다양한 스타일이 보인다는 거예요. 원덕현 실장님을 예로 들자면, 왠지 도서관에서 볼 법한 지적인 스타일이잖아요 (일동 웃음). 일본에서는 이런 스타일 외에도 서핑 애호가들의 패션이라든지 생활 방식과 직결된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하는데, 한국은 비교적 큰 트렌드를 따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Q24. 원덕현 디렉터(BLANKOF, SLOW STEADY CLUB 대표)를 도서관 스타일에 비유하셨는데, 실제로 책상을 떠나지 않으니 정확히 보신 것 같아요. 하하하


A24. 네, 양 있어 보여요. 지식인 이미지? 하하하! 





Q25. 그럼 옷을 잘 입는다는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옷을 통해 자신을 잘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A25. 맞아요. 그때그때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옷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게 좋겠죠. 좋은 음악이나 책은 시간이 흘러도 질리지 않듯이, 오랫동안 즐길 수 있고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옷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자기다움이에요. 저 역시 나이가 들면서 자기다움을 구축해 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Q26. 평소에 좋아하시는 크리에이터가 있나요?


A26.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라든지,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을 꼽기는 힘들 것 같아요.


오사카에서 활동하는 '요이시 토시하루'라는 건축가가 있는데, 여러모로 존경하는 분이고 같이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테이블이나 의자, 문고본 책장 같은 걸 같이 만들었죠.





Q27. 그럼 혹시 Strato (스트라토)에 있는 행거 등도 만드신 건가요?


A27. 맞아요. 매장에 있는 집기류를 만들었죠. 처음부터 계획해서 만든다기보다 저 자신이나 Strato를 분석하다가 만드는 편이에요. 아까 말한 책장은 Maillot(마이요)라는 브랜드를 다른 사물로 표현하면 뭐가 될까 생각하다가 만들게 됐고요.





Q28. 구체적으로 '요시이 토시하루' 씨의 어떤 점이 존경스러웠나요?


A28. 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기도 하거든요. 우선 교육적인 면에서 배울 점이 많았어요. 당연하게만 여겼던 디자인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이유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표현 방식도 배웠고요. 그러면서 옷을 보는 시각도 조금씩 바뀌었죠. 오래 알고 지내는 동안 변함없는 가치관과 프로페셔널한 모습도 좋았습니다.





Q29. 지금까지 Maillot (마이요)를 이끌어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조언도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29. 생산 공장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됐을 때가 힘들었어요. 제가 원하는 걸 설명하고 주문을 넣었는데, 마감일도 지켜지지 않았고 퀄리티도 기대한 것에 미치지 못했거든요. 나중에 찬찬히 대화를 나눠 보니 제가 좀 일방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후로는 최대한 상대를 배려하면서 커뮤니케이션에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제품을 혼자 만들 수는 없으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충분히 대화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Q30. Fukuda Makoto (후쿠다 마코토) 씨께 Maillot (마이요) 란?


A30. 진부한 대답일 수도 있지만, 저 자신입니다.





Q31.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은 무엇인가요?


A31. 판매에 연연하기보다는 제 마음속 추상적 이미지를 최대한 옷에 담아내고 싶습니다. 지금도 노력하고 있지만 좀 더 제가 꿈꾸는 이상에 가까워지고 싶고, 이 과정을 통해 저도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Q32.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32. 인지도나 영향력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직접 만지고 입어 보시면서 저희 브랜드를 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10년 된 Maillot(마이요) 셔츠를 아직 가지고 있거든요. 재미있는 답변이 떠오르지 않네요. 하하하.





Q33. 괜찮습니다. 인터뷰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33. 감사합니다.







 DETAILED INFORMATION 
브랜드 : 마이요 (MAILLOT)
국가 : 일본 (JAPAN)

디자이너 : 후쿠다 마코토 (Fukuda Makoto)

*여러분의 내점을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편히 오셔서 시착부탁드립니다. 


판매처 : 슬로우 스테디 클럽 (SLOW STEADY CLUB)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5길 17 (팔판동 130-1) * 매장 앞 주차가능

운영시간 : 오후 12시 ~ 오후 8시

온라인스토어 : WWW.SLOWSTEADYCLUB.COM 

인스타그램 : @SLOWSTEADY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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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동희

INTERVIEW : HEX WHITE (#FFFFFF)

SECTION : INTERVIEW   2016.09.19 18:10





안녕하세요.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MAISON KITSUNE 에서 이끄는 스트리밍 채널 'KITSUNE HOT STREAM'의 100번째로 소개된 트랙의 아티스트인 XXX의 FRNK, VISLA MAGAZINE이 선정한 2015년 주목해야 할 신진 비트메이커로 소개된 NO IDENTITY 등의 아홉명의 젊은 프로듀서들이 결성한 단체인 HEX WHITE ( #FFFFFF ) 입니다.  


패션 또는 디자인 분야와 관계 없이 블랭코브, 슬로우스테디클럽이 지향하는 정신과 일치하는 문화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이 젊은 음악가들의 곧은 정신이 더 멋진 문화를 만들어 나갈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 합니다.







Q1.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A1. No Identity (이하, N): 노 아이덴티티(No Identity)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헥스 화이트(Hex White)의 수장이다. 나의 감정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을 하려고 한다.

 

A1. Jan' Qui(이하, J): 잔퀴(Jan' Qui)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헥스 화이트의 영상을 담당하고 있다.

 

A1. Kwangjae Jeon(이하, K): 광재 전(Kwangjae Jeo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고, 영국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주로 자아에 대한 음악을 만들며 헥스 화이트의 아트워크도 같이 담당하고 있다.

 

A1. No Identity: 헥스 화이트의 모든 멤버가 힙합을 베이스로 된 전자음악을 하고 있다.



 

Q2. 팀명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A2. K: 현재 두 가지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FFFFFF, Hex White. #FFFFFF는 헥스 코드에서 흰색을 의미한다. 흰색을 선택한 이유는 무 정체성에서 비롯된 정갈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컴퓨터 세대이고, 컴퓨터로 음악을 하기 때문에 코드를 이용한 이름을 짓게 되었다.

 

A2. N: 고급스러움, 정갈함, 순수함 등의 이미지를 지향하고 싶었다.




 

Q3. 어떻게 서로 알게 되었고, 무슨 목적으로 뭉치게 된 건지 궁금하다.

 

A3. N: 자유롭지 못한 한국 문화에서 비롯된 갈증이 심했었다. 3~4년 전까진 혼자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험이 쌓이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야 힘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평소에 나와 음악적 생각이 서로 비슷한 친구들을 모으게 되었다. 이미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몰래 지켜봐 왔던 친구들이었기도 하다.

 

A3. J: 모두 인터넷과 연관되어있다.








 

Q4.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A4. K: 시작은 9년 전이었다. 어릴 때 힙합에 빠져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힙합을 베이스로 음악을 만들었고, 대중적인 전자음악을 접하면서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A4. N: 멤버 나이 때가 92년에서 95년생 사이다. 우리가 중학교 때 언더그라운드 힙합 문화가 뜨거웠었다. 나는 이때 우리가 느꼈던 분위기를 '학원차 바이브'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한국 사람이라면 아마 학원을 다니지 않나. 학원 끝나고 집 가는 길에 학원차 창밖에서 노을이나 하늘을 보며 느꼈던 감정들? 그런 감정에서 비롯된 음악이 많았던 것 같다. 예술이라는 게 워낙 추상적이다 보니 이런 식으로 나만의 말을 만들게 되었다.

 

A4. J: 다들 비슷하다. 한국 힙합을 좋아했고, 접하고 싶었던 장르도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깊게 들어가게 되었다.

 

A4. N: 멤버들 모두 힙합으로 음악을 시작했고, 나는 시작할 때부터 실험적인 힙합을 좋아했었다.



 

Q5. 음악을 만들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나?

 

A5. J: 다양하다. 주로 여태까지 들어온 음악이나 아티스트에게 받는 편이다. 넓은 음악적 바운더리에서 비롯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A5. K: 많은 게 있지만, 주로 사람들에게 치이는 경험에서 영감을 받는 것 같다.

 

A5. J: 이 친구뿐 아니라 모두가 상처가 많다.

 

A5. N: 뭐랄까, 영감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고, 아니면 영감이 삶 그 자체라고도 말할 수도 있다. 사람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영감이란 게 달라지는 거 같다. 예를 들면 15살 때는 허세 같은 감정이 영감이 될 거고, 19살 때는 입시 때문에 스트레스와 두려움이 영감이 될 것이다. 뻔하기도 한데 가장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삶 그 자체.



 

Q6. 가장 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를 한 명 꼽으라면?

 

A6. K: 국내? 국외?

 

A6. N: 국내로만 해보자.

 

A6. K: 국내는 이름을 대기가 어려운 것 같다. 우선 혼자 작업하는걸 제일 선호한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곡 세계에 다른 사람의 세상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있다. 개인적인 작품을 했을 땐 혼자 해보고 싶지만, 더 실험적인걸 해보고 싶을 땐 협업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A6. J: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혼자서만 하고 싶은 동시에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많기도 하다. 떠오르진 않지만, 새로 알게 된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었을 때 느끼는 걸 바탕으로 더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 확실히 혼자 보다는 같이 할 때가 느끼는 게 다르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한계를 느끼기도 할 때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을 때에도 협업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든다.

 

A6. N: 나는 자기감정을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오픈 마인드를 갖췄다면 누구든 상관없다. 나이든 인종이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누구나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A6. J: 맞다. 프로듀서가 아니더라도 지금 시대엔 누구든 함께 할 수 있다.



 

Q7. 일 년의 반이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렸다. 올해 계획했던 목표가 있었나? 있었다면 얼마나 이뤘나?

 

A7. N: 있었나..

 

A7. K: 개개인의 음악적 이상점은 아직 이루지 못한 것 같다.

 

A7. N: 나는 EP를 발매했다.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는 했지만, 헥스 화이트를 만든 것에 가장 의미를 두고 있다.



 

Q8. 한국에 개인적으로 눈여겨보고 있는 뮤지션이 있다면 누구인가?

 

A8. N: 나는 음악을 한다면 누구든지 눈여겨본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고정관념과 편견에 갇혀 있다. 개인적으로 시스템 문제라고 생각한다.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 씬이 너무 양극화되어있지 않나. 우리는 숨어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기본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함께 했으면 좋겠다.

 

A8. J: 찾기가 힘든 것 같다. 또 다른 어린 세대의 아티스트들은 더더욱 힘들다. 우리도 사실은 오랫동안 숨어있다가 방금 나온 것이다.




 





Q9. 씬의 양극화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A9. N: 세상에는 여러 음악들이 존재하는데, 한국에는 여전히 리스너든 뮤지션이든 거의 대부분 메인스트림 음악만을 하려는 거 같다. 그래서 언더그라운드에 있으면서도 음악의 지향성은 오버그라운드가 돼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는 거 같다. 그로 인해 언더그라운드의 장점인 실험성이라든가 개성들이 많이 없는 느낌이 있다. 중간이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 씬은 얼굴은 없고 몸통만 있는 그런 느낌이다. 네임밸류가 있는 사람들이 이끌어 가야 하는데, 시스템 혹은 개인적인 문제로 아직까지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해는 간다. 씬 자체가 기형적이고, 사람도 너무 적지 않나.

 

A9. J: 굉장히 공감한다.

 

A9. K: 한국 전자음악 씬에선 수요자가 곧 공급자고, 공급자가 곧 수요자인 것 같다. 순수 리스너들이 얼마 없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다.

 

A9. N: 계속하여 시스템 탓을 하는 것 같지만, 계속되는 이 상황이 너무나 답답하기는 하다. 양날의 검이다.



 

Q10. 헥스 화이트의 다른 멤버들 소개도 부탁한다.

 

 

A10. N: 블루트리위드노바디(BLUETREEWITHNOBODY)라는 친구는 포텐셜이 굉장히 크다. 기본기가 탄탄하다. 피아노를 기반으로 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프랭크(FRNK)도 힙합이기는 하지만 클래식과 재즈를 공부했던 친구라 교과서적인 기본기가 출중하다. 보통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들은 대중음악, 예를 들면 가요나 발라드 쪽으로 많이 빠지지만 이 친구들은 더 실험적인 걸 하고 싶어 하고, 여기서 재미를 느끼는 거 같다.

 

A10. K: 에덴 하이웨이(EDEN HIGHWAY)는 트랙마다 리즈너블함의 포인트를 잘 캐치하는 것 같다.

 

A10. N: 정제된 깔끔한 스타일을 제일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테크노?

 

A10. K: 케인 자이켄(KANE JAIKEN)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다. 이미지적인 것에 민감한 친구이다. 패션에도 관심이 많다.

 

A10. N: 이 친구는 솔직히 음악을 안 해도 된다. 학벌이 굉장히 좋다. 하하.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일본에 있는 좋은 공대에 재학 중이다

 

A10. K: (HAN) 또한 나와 중학교 때부터 친구이다. 우리 중 유일하게 포크와 락 기반으로 음악을 시작한 친구다. 내가 슬픔을 표현한다면 그 친구는 우울함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근데 스킷스케이프(SKTSCP)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A10. N: 우리 중 디깅을 제일 많이 한다. 아티스트를 제일 많이 안다.

 

A10. K: 음악을 느끼는 것에 대한 센서라고 해야 할까? 그게 제일 출중한 것 같다.

 

A10. N: 한마디로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우리 모두가 돌 연변이긴 하지만.

 

A10. K: 마지막으로 GDB라는 친구는 힙합엘이(HiphopLE)와 비즐라 매거진(VISLA Magazine), 플라워베드(Flowerbed)에 글을 쓰는 친구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이 친구는 잘할 수 있기 때문에 매니저를 담당하고 있다.



 

Q11. 각자 어떤 롤이 있는가?

 

A11. N: 아홉 명의 프로듀서와 한 명의 매니저 형태로 가고 있다. 대부분 프로듀서이지만 케인 자이켄과 전광재는 아트웍 또한 담당하고 있다. , 잔퀴가 비디오 메이킹과 디렉팅을 담당하고 있다.



 

Q12. 노 아이덴티티가 사람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점에서 이들에게 이끌렸나?

 

A12. N: 나와 같은 돌연변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 은둔하고 있었고 본래의 시스템에 답답함이 있었다. 자신들만의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 끌렸던 거 같다.



 

Q13. 음악적 공통분모 말고 다른 공통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A13. N: 음악뿐 아니라 더 넓은 의미의 예술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A13. J: 다들 상처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밝은 것보다 마이너스, 음지의 감성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A13. N: 사실 이걸 굳이 하고 싶은 건 아닌데 다들 이걸 제일 잘한다. 슬프다 조금.

 

A13. J: 좋은 거지 뭐 하하

 








Q14. 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서로의 의견 충돌이 아직까진 많을 것 같다

 

A14. N: 없다. 다들 의견을 안 낸다.

 

A14. K: 다들 말을 할 때 충돌을 일으키기 싫어해서 조심스러운 거 같다, 나도 그렇고.

 

A14. N: 안 좋은 것 일수도 있다.

 

A14. J: 우리가 사실 정해놓은 룰이 있다.

 

A14. N: 모두 크고 작은 크루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는지 아는 거 같고, 그래서 최대한 서로 상처를 주려하지 않는 거 같다. 그리고 각자의 성격과 특징에 맞게 역할을 정해 최종 결정권자를 만들어서 판단하기 어려운 결정이 필요할 때 그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결정하는 걸로 가는 걸로 하였다.



 

Q15. 프로듀서 기반 크루여서 콘셉트를 가진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시작을 알리는 게 무척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각자의 경험이 담긴 내용인가?

 

Q15. N: 그렇다. 예술은 자신의 감정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Q15. J: 두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에서는 우리 크루 안에서 멤버별 콜라보레이션으로 진행하고 있다.

 

Q15. K: 어떠한 장르를 정해놓고 어떤 스타일로 음악을 풀어내자 같은 이야기보다는 먼저 팀원들과 요즘엔 어떤 생활을 하고 있고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대화를 시작했다.




Q16. 헥스 화이트의 음악을 들어본 다른 이들의 피드백은 어떠하였나?

 

A16. N: 전혀 없다. 우리는 이제 막 시작했다. 하하. 한국 시스템 자체가 우리를 그 다지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런류를 좋아하는 리스너들도 많지도 않고 커뮤니티도 활성화돼있지 않다.

 

A16. J: 묵직한 콘텐츠를 아직은 보여주지 않았다. 예를 들면 뮤직비디오.

 

A16. K: 그리고 우리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도 개인적으로 얘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공개적인 피드백을 아직까지는 기대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Q17.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들려준 트랙들이 댄서블한 음악들이 아니어서 헥스 화이트의 파티에선 어떤 음악이 흘러나올지 감을 잡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뭔가 더욱 기대가 된다.

 

A17. K: 형식적이지 않고 가장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주로 클럽들에선 그 클럽에 맞는 테마의 음악을 튼다. 하우스라던가 트랩이라던가. 하지만 나는 내가 즐겁기 위한 음악을 플레잉하려고 한다. 일반적 리스너들은 싫어할 수도 있는.

 

A17. N: 최대한 재미있고 자유롭고 이상한 음악을 트는 게 목표고, 보통 파티라면 획일화되게 어떤 장르의 흐름이 이어진다면 이 파티는 각 디제이마다의 고유의 바이브를 만들어 내는 게 목표인 거 같다.



 

Q18. 매체의 발달로 문화의 전파력 또한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서울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굉장히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A18. N: 그냥 둘 다 적은 것 같아서 흐름이 돌아가기가 너무 힘들다.

 

A18. K: 전자음악의 메인스트림 씬은 근래에 많은 소비자가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A18. N: 전자음악에서의 메인스트림도 사실 씬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거 한다. 다만 그중 몇 명만 잘 벌고 있는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몇 년 전 정도에도 사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버티지 못해서 다른 일을 한다거나 이쪽 일을 계속 하지만 여전히 별 피드백을 받지 못하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돼있다거나. 일단 먼저 빨리 유명 해지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근데 서울에서는 어떤 큰 회사 없이 유명해지려면 기본도 지키는 것보다는 타협을 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타협하다가 몇 년 뒤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꾸준하지만 쌓아가려고 한다.

 

A18. K: 자신과의 싸움이다 결국.

 


Q19. 씬이 확실히 정립되지 않은 감이 있다. 이는 좋은 흐름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A19. N: 사실 나는 일부러 이런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계속 가졌던 생각이지만 벌써 거의 8~9년이 넘게 되어서 지친 것도 있고, 지금 당장은 차분하고 여유롭게 마음을 유지하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버텨야 한다고 생각한다. 질문에서도 그렇듯 한국에서는 씬이 정립돼있지 않아서 내 경험상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다가는 이 흐름 혹은 유행에 끌려 가는 거 같다. 아직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거 같다.

 

A19. J: 우리끼리 현재를 잘 풀어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A19. K: 하지만 동시에 이상도 가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서 살아남으려면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이상을 잊어버리면 매 말라 버리는 것 같고, 이상에만 빠지면 결국 안주해버릴 테니까.



 

Q20.헥스 화이트의 앞으로의 다짐이 있다면?

 

A20. N, J, K: FUN , FREE , FREAK. (재밌게, 자유롭게, 이상하게.)

 

A20. K: 사실 여기서 #FFFFFF (HEX WHITE)가 유래되기도 했다, 이걸 지키고 싶다.

 

A20. N: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Q21. 좋은 활동 기대하겠다. 시간 내준 팀원들께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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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세영

INTERVIEW : SOOMIN YIM

SECTION : INTERVIEW   2016.09.09 20:13





Q1.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A1. 흑백필름으로 잊혀져가는 일상과 사람들을 찍고 있는 스트릿 포토그래퍼 임수민입니다.  





Q2. 사진을 왜 찍으시죠?


A2. 암실수업을 듣게 되면서 필름이라는 것에 대해서 되게 매력을 느꼈어요. 현상을 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었었고 처음엔 사물을 찍었어요. 근데 너무 지루하더라고요.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밖에 나와보니까 사진을 찍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는게 너무 재밌고 그걸 계기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 같아요.





Q3. 암실수업이라면 사진을 전공하셨다는 얘긴가요?


A3. 교환학생을 갔을 때 전공수업을 4개 듣고 일반수업을 1개 들었었거든요. 그것 중에 하나였어요. 





Q4. 지금은 국제학 전공을 살리지 않고 사진을 하는데 그 계기가 뭐죠?


A4. 저는 전공을 안살리고 사진만을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전공을 할 때 배웠던 세계관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쓰이거든요. 그리고 사진만을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게, 저한테는 사진이 제 직업이 아니고 제가 안하면은 못살 것 같아서 하고 있는, 저한테는 아주 큰 일부지만, 그것만이 저를 정의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Q5. 예전에 교환학생을 가면서 쓸데없는 것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암실수업을 들은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쓸데없는 거라고 생각한거죠?


A5. 음 일단 국제학을 전공하면서 저에게 문화생활 같은게...그러니까 그런 것을 배운다는 게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렸었어요. 스펙을 쌓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했고 모든 활동들도 스펙에 도움이 되는 것만 골라서 해야 했기 때문에. 교환학생으로 떠날 때 즈음 그런 것들이 너무 실증이 났었고 다른 것들을 찾아보는데 다양한 것들이 많더라고요. 컴퓨터 디자인도 있고 다른 것도 있고, 근데 그런 것들은 어떻게든 살릴 수는 있겠더라고요. 적어도 스펙에 있어서는. 근데 암실수업은 아무리 어떻게 생각해봐도 스펙에 넣을 수가 없더라고요. 요즘은 사진을 찍더라도 디지털이고 포토샵을 이용하잖아요. 요즘 이력서 지원사항을 봐도 포토샵 우대자는 있지만 암실기능자 이런 건 없잖아요. 그래서 오기로 했던 것 같아요





Q6. 당시에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의 수민씨를 있게 한 셈이네요. 


A6. 그 3년 전에 교환학생의 경험으로 인해서 제가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Q7. 왜 필름이죠?


A7. 저는 필름을 처음 현상했을 때 너무 신기했어요. 그러니까 나오기 전에 안믿겨지는 거에요. '용액 몇개 섞고 흔들었다고 해서 과연 현상이 될까?' 뭔가 거짓말 같기도 한데 거짓말 일리는 없고...이 수업이 몇십년 동안 해온 수업일텐데. 그러한 의구심을 가진 채 처음 현상을 해봤는데 하얗게 나오더라고요. 근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지금 우리는 기계에 너무 익숙해져서 버튼 하나에 시원해지고 깨끗해지고... 그런데 이거는 제가 있어야 하는 거에요. 제가 정신을 딱 차려야 하고 모든 과정을 제가 직접 손으로 해야한다는게 너무 신선하고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아요. 되게 멍하 마취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가 탁 뭔가 트이는 느낌이였어요. '내가 뭔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이 안되는구나, 적어도 이 암실 속에서는 내가 필요한 존재구나'. 그래서 필름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8. 사진 찍는 행위 자체가 수민 씨 삶의 일부분처럼 들리네요.  


A8. 저는 이제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사진을 찍으면서 터득하게 된 시각, 아니면 행동양식 그런게 다 몸에 베어져 있더라고요. 사진을 찍는 것을 통해서 어떤 부류의 사람을 만나려면 어디를 가야겠구나 그런게 탁 트이고 일상의 일들이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오히려 사진을 찍고 나서 국제학을 공부했을 때 보다 더 넓은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살 줄 아는 것 같고.





Q9. "다른 사람을 위해 살 줄 알게됐다"라는 것이 어떤 의미죠?


A9. 제가 국제학을 공부하며 학생 생활을 했을 때, 적어도 그때의 저의 모습은 제 자신이 뭔지도 모르겠는 사람, 미래의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른채로 살았었어요. 나를 위한 거긴 한데, 지금의 저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였기 때문에... 근데 사진을 하고 길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공감이 되는 상황들이 되게 많아요.  


사진을 찍으려고 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처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을 모면시킬 수 있는 사람은 저 밖에 없는거에요. 심지어 그 사람조차 그 상황을 잊고 있을 때 마저도. 예를 들어 버스에서 어떤 할머니가 내리는 순간을 찍으려고 할 때, 막상 할머니가 버스에 내릴 때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할머니를 도와드리러 가거든요. 그런게 버릇이 되다 보니까 제가 버스를 기다릴 때 마다 버스가 오고 할머니가 보이면 그 쪽으로 몸이 먼저 향하게 돼요. 카메라가 없을 때도 그런 관찰력이 더 생기는 거죠. 저는 그런게 정말 좋아요. 되게 하루가 꽉 차요. 나로 인해서 차는게 아니라, 다양한 다른 사람들로 인해서. 자기 전에 정말 수만가지 일들과 얼굴들을 떠올리게 돼요. 







Q10. 사진을 하기 전에는 수민씨의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가 어떤거였다고 생각하세요?


A10. 저는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게 가장 좋았었어요. 제가 지금 실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과 영화를 통해서 보고 느끼고 있었더라고요. 그게 되게 행복했어요. 바쁜 와중에도 소설을 막 읽고 피곤해도 영화를 보고. 그런데 어느 순간 또 갑자기 실증이 나더라고요. 왜냐하면 내가 보는게, 내가 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간접체험이고, 실제로 보여지지 않은 것을 통해서 그걸 먼저 느끼는게 어떻게 보면 현실을 도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때는 너무 심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Q11. 사진을 시작하기 전과 후가 그래도 극단적이지는 않네요. 흔히들 자신의 적성을 찾기 전에는 시체와 다름 없었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흔한데.


A11. 시체였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어렸을 때 되게 행복했어요. 엄마가 조각가여서 그런진 몰라도 되게 감성적으로 자란거 같아요. 모로코에서 가족과 다 함께 살 때, 아빠가 일을 나간 뒤에는 엄마도 밖에 나가기 무서워했어요. 보통 엄마가 이면지를 주면 하루 종일 크레용으로 그림 그리고 동화책 읽고... 그게 제 하루 일과였어요. 엄마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감정을 표현하는게 되게 익숙했어요. 그래서 제가 국제학을 전공한 것이 되게 웃기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감성적으로 살아왔던 사람이 갑자기 이성적으로 모든 이슈들에 대해서 의견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마치 그런 정치적인 견해가 없으면 무식한 사람 같이 되고. 워낙 그런거에 대해 무관심했던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하려니 남의 옷을 입은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Q12. 어쨌든 더 행복해졌다는 이야기니 기분이 좋네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진을 찍어요?


A12. 별로 마음가짐이 없어요. 아,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보고싶어 하는 건. 근데 그거를 딱 파악을 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사진으로 도출해내는거죠.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제가 국제학을 했다보니 자꾸 분류를 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노숙자분을 마주치게 되면 그 사람으로써 보는게 아니라 노숙자로 먼저 인식해요. 할머니를 보게되면 독거노인, 트렌스젠더를 보면 트렌스젠더로. 저는 그렇게 보게 되는게 싫어요. 사실 그건 저에게 억지스러운 것이거든요. 이제는 그냥 형태를 보고, 빛이 어떻게 비추는지 보고, 뒤에 어떤 것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그 뒤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풀어내요. 그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표현하는 것이.









Q13. 많은 작품하시는 분들이 적어도 대중에게 보여지는 채널 안에서 만큼은 최대한 완성도 있는 작품을 노출시키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것 일수도 있긴 한데... 아무튼 수민 씨의 사진들은 뭔가 날 것의 느낌을 받아요. 그게 수민씨의 정체성으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A13. 저는 맞는 것 같아요. 과정적인 걸 좋아해서... 이런 말 하는게 웃길수도 있지만 저는 제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최근에 슬럼프가 있었어요. 제가 유일하게 사진을 시작한 이후 처음 느껴본 불행이였거든요. 그게 작가 매너리즘이였어요. 작가병에 빠져서 전시를 되게 많이 했었거든요. 7번 정도 하다보니까 사진을 찍는 시간보다 전시를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더라고요. 그리고 '작가님' 소리를 자꾸 듣다 보니까, 그거에 빠져들어서 자꾸 제 작품이 옛날만큼 저한테 기쁨을 주지 않는거에요, 이 작업이. 저는 그게 너무 충격이었어요. 애초에 돈이나 유명세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 자체가 너무 기뻤었고 보는 이들 중 한명이라도 같이 공감해준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며 찍었었던건데. 어느 순간부터 '아 사람들이 이런거 안좋아 할 것 같아'. '아 이 사진 좋아하겠다' 이런 식으로 제 사진을 판단하게 되는거에요. 점점 더 인스타에 올리는 사진들도 자꾸 의미부여를 하게 되는 것 같고. 이번에 여행을 다녀와서 이런 것들을 버리고 오게 돼서 마음이 너무 편했어요. 





Q14. 전시를 여러번 진행하고 말씀하셨던 작가 병이 생기고 (하하) 반응들을 접하게 되면서 상업성에 대한 감이란게 생기잖아요. 그런 감이 무의식적으로라도 수민씨 사진에 영향을 준 적이 있나요?


A14. 하하하. 그 작가병 걸렸을 땐 사진을 안찍어서 잘 모르겠어요.      





Q15. 아예 안찍었다고요?


A15. 네. 진짜 문제였어요. 사진기를 안들고 다녔었으니까. 그냥 별로...음 인스타그램이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네요. 인스타 하느라 놓치는 순간이 너무 많았어요. 이걸 통해 연락이 너무 막 들어오기도 하고...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알람을 꺼놓았어요. 그러고 나니까 사진 찍기가 너무 좋아요. 일단 사진을 찍으려면 말 그대로 몸도 정신도 모두 집중을 해야 하거든요. 카메라를 들고 다니려면 손을 놓지를 못하잖아요. 근데 예전에는 그게 안되더라고요.





Q16. 예전과 비교했을 때 더 많은 사람이 공감을 못해주더라도, 소수가 더 깊게 공감해주고 느껴준다면 사진 찍는 이로써 만족감이 더 클까요?


A16. 네, 근데 신기한게 그걸 버리고 나서 찍으니까 제가 봐도 사진들이 더 특별해진 것 같은거에요. 근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 반응도 더 좋더라고요.





Q17. 그게 예술가가 주체성을 형성하는 과정 아닐까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화랑이나 아트페어 같은 곳에 너무 많이 개입되고 노출되면 무의식적으로 트렌드가 좀 반영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잣대를 느끼게 하는 것들.


A17. 맞아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슬럼프를 더 느꼈었던게 뭐냐면, 그런 트렌드에 대한 소리가 들려서 신경이 쓰이면 반영을 하던가 하면 되는데, 저는 반영을 안하면서 신경은 또 무지 쓰는거에요. 그러니까 사진찍기가 싫은 거에요. 그냥 뭔가 지금 이 순간 찍으면 아까 들은 소리들을 반영할 것 같은데, 그건 제 자존심상, 제가 사진을 하는 이유상 너무 안맞기 때문에 너무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 딜레마에 빠졌던 거에요. 그래도 창피한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는 거에 대해서는 다행인 것 같기도 해요.


좀 우스운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마케팅 인턴 면접을 하나 봤었어요. 왜 지원했었냐면, 그 작가병에 걸리고 난 이후에, 사진이 제 인생에 메인으로 오면 다시 또 그 위기에 처할 것 같은거에요. 그래서 나는 '사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 있게끔 다른 카테고리를 하나 더 만들고 싶은 거에요. 내 사진을 보호하고 싶어서. 면접도 보게되고 결과도 좋았는데 결국 가진 않게 됐어요 하하. 그래도 그 곳과 좋은 인연이 되어서 전시도 같이 하게 됐네요.


아 그 당시 면접볼 때 받은 질문 중에 하나가 기억이 나는데, 가장 크게 실패한 적이 언제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그 질문이 싫었어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한테 힘든 얘기를 하면 대게 본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거에요. 저는 그 말에 동의를 하지 않아요. 저는 실패나 상처 같은 것들이 상대적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감성적으로 커서 그런지, 남들에겐 자그마한 상처라는 것들도 저한테는 되게 크게 다가올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제가 취업을 하지 못하는게, 다른 분들처럼 실수하는 것들에 대해선 사과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저는 마음이 너무 힘든거에요. 일단 실수를 한 날이면 집에 가서 술을 마시게 돼요. 그런 책임이 너무... 그래서 저는 그런거 잘 못하겠어요. 저는 제 주위에 어딘가에 소속이 되서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대단하게 보여요. 정말 강심장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아까 질문이 뭐였지? 아무튼 비록 소위 말하는 '큰 실패'를 해보진 않았지만 작은 것들에게도 많은 걸 느꼈고 큰 실패를 해야만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하여튼.









Q18. 사진 찍는 사람이라고 말하는게 두려웠었나 보네요.


A18. 두려웠었다라기 보다는 싫어요. 왜냐면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자꾸 막...





Q19. 특정 바운더리에 가둬지는 것 같아서?


A19. 네. 저를 카테고리화 시키는게 너무 싫어요 하하하. 더더욱 그런게 뭐냐면 저도 진짜 제가 좋아하는 사진들을 찍은 사람들은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거나 사진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거든요. 저는 그 점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모제스 할머니 (Grandma Moses)는 80년을 농부로 살다 그림을 그리셨고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도 40년간 보모와 가정부로 살아가며 사진을 찍었지만 현상할 형편이 못 되어 필름채로 보관했었고... 결국 돌아가시고 나서야 조명을 받았죠. 이런 분들의 그림이나 사진 작업이 더 와닿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서 인 것 같아요. 저는 사진가가 찍은 사진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찍은 사진들이 더 와닿고 저를 더 울리는 것 같아요. 저도 학생신분으로 전시했을 때 사람들이 더 오픈마인드로 다가와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스트릿 포토그래퍼가 찍은 사진'이라는 타이틀 때문에서인진 몰라도, 몇몇 분들은 너무 비판적이거나 온갖 전문용어를 언급하며 사진을 대하더라고요. 정작 저는 그 용어들을 잘 모르는데... 또 다른 분들은 제 사진에 대해 언급하는걸 너무 두려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학생일 때는 막 "어 이거 제가 예전에 찍었던 사진이랑 비슷한데 보여드려도 돼요?" 혹은 "이 사진 저희 할머니랑 비슷해요! 저희 할머니도 이러셨는데", "이런 마음으로 찍으신 것 같아요" 이러한 반응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아 좋네요" 혹은 "전 사진을 잘 몰라서 그런지 이해하기 어렵네요" 이런 반응 밖에 없는거에요. 그래서 더더욱 그 타이틀을 버려버리고 싶은거에요. 지금은 국제학교 선생님이 하고 싶어요.





Q20. 선생님 되게 잘 어울리네요. 


A20. 애들을 너무 좋아해요. 성질만 좀 버려야 하는데... 어쨌든 너무 하고 싶어요. 그래서 내년부터 준비를 조금 해보려고요. 저는 그게 더 리얼한 거 같아요. 지금 한 사진을 3년 찍었고 작가생활은 학교 졸업 이후로 치면 1년 반 정도가 넘었는데 내가 너무 가벼운거 같아서 싫어요. 제가 잘 못 하나봐요... 다른 작가분들은 깊이있게 계속 하시는 것 같지만 저는 그게 음...그 속에서, 현란함 속에서 제 영역을 잘 못 지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다른 방식으로 지키려고 마음을 먹었어요.





Q21. 인지도가 조금 쌓였을 때는 그냥 맹목적으로 좋다는 피드백으로 느껴질 때도 있을 것 같아요.


A21. 맞아요





Q22. 초반에는 어땠어요?


A22. 초반에는...아 그것도 신기해요. 지금 오는 피드백들은 정말 감사한 말들이 많은데 처음에는 사진하시는 분들의 반응이 더 있었어요. "어 이거 찍기 어려웠을텐데", "오버숄더가 인상적이네요"등등. 저는 댓글을 통해서 사진용어를 배운 것 같아요 하하. 







Q23. 전시 얘기를 조금 해볼게요.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진행되는 전시에 대해 간략히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A23. 간략히는 안되죠. 6개월 동안 준비한건데 하하. 이 전시는 3부작으로 기획된 전시인데, 음 저는 기획을 재밌게 하는걸 좋아해요. 제 사진이 흑백, 필름, 스트릿포토그래피이고 되게 정통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갔지만 저는 젊잖아요. 그래서 보여지는 방식이나 기획하는 방식에 있어서 과하게 점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스트릿 포토그라피 필름으로 한다 하면 다 할아버지인 줄 알아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Henri Cartier Bresson)이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검정색 프레임에 하얀색 여백을 남겨놓는, 이런 전형적인 방식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처음에는 학생이고 너무 아마추어여서 그렇게 하긴 했지만.


SLOW STEADY CLUB의 SLOW & STEADY가 제 모토이기도 하고 또 거기에 추가로 SMALL을 넣었어요. 6개월 전시인데 3개월씩은 너무 길까봐. 그래서 2개월씩 3부작으로 기획을 했고 1부는 SLOW, 2부는 SMALL, 그리고 3부는 STEADY. 이렇게 나눠져 있어요. 1부는 다양한 속도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다양한 나라들에서 찍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저만의 속도 공식으로 풀었어요.


2부는 SMALL의 타이틀은 "작은 것들의 신 (God of small things)"인데, 벼룩시장 상인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벼룩시장에 가면 정말 쓸모없는 물건들이 너무 많거든요. 저는 저걸 왜 가져왔는지 모르겠는 이상한 것들인데, 그것의 가치를 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물건들이 존재하는 거잖아요. 사실 그것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아무도 모르는거죠. 그래서 그런 물건들의 빛, 가치를 봐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2부 전시는 재미있게 진행돼요. 사진을 정말 조그맣게 뽑아서 컨택트 시트라고 사진을 뽑다보면 네거티브 형식으로 필름을 뽑는게 있어요. 제 사진을 이런식으로 조그맣게 뽑아서 큰 액자에 담을거에요. 이게 스토리가 있어요. 제가 찍은 순서거든요. 예를 들어 아이가 걸어서 앉기까지의 순서, 상인이 뭔가 집는 과정,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거고 사진은 돋보기로 봐야해요.  


3부 타이틀은 "Mr.c & Mr.?"인데, 아직 미정이에요. 3부에 책도 쓰려고 했었는데 쓰고 싶었던 것이 좀 더 깊어졌어요. 좀 더 어른이 되고 난 후 쓰고 싶어서 조금 삭혀두고 싶은 마음이에요. 책은 재밌을거에요! 책을 보통 페이지 순서대로 읽잖아요? 근데 이 책은 한 챕터가 끝나면 책 하단에 특정 다른 페이지로 가라고 써있을거에요. 제가 여행을 할 때 정말 여러군데 뒤집어놓고 다녔거든요. 독자분들도 저 같이 모험을 하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해서요. 아무튼 전시 3부도 이런 식으로 기획할 것 같아요.





Q24. 사진 뿐만 아니라 수민씨 글도 색깔이 뚜렷한 것 같아요.


A24. 잘 모르겠지만...책 읽는 거를 되게 좋아하는데 쓰는 것도 정말 즐겁더라고요. 사실 아직 안올린 글도 너무 많고 쓰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 많아요.         





Q25. 이번 전시 통해서 전달됐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A25. 이 전시를 왜 이렇게 기획을 했냐면, 사실 전시를 처음 할 때 가장 어려웠던 게 네거티브로 제가 뭘 찍었는지 확인하는 거였어요. 분명 제가 너무 안보이더라고요. 심지어 만약 제가 동희씨를 찍고 동희씨한테 그 사진을 네거티브로 보여줘도, 누군지 못알아볼거에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게 익숙해지다보면 보여요. 네거티브로 전시하면 정말 이해를 못할 것 같아서 포지티브로 바꾸기는 했지만. 그래서 작은 것들도 오래 관심을 기울여서 보면 새롭게 보이고 잘 보인다라는 걸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1부 전시도, 속도 속에서 이야기가 있다라는걸 보여주고 싶었었던 거든요. 이번에는 그런 것 같아요. '작은 것들에게도 가치가 있다'. 제 올해 하반기 키워드가 소박함이거든요. 소박한 행복





Q26. 소박함이라...


A26. 유혹에 굉장히 약해요. 남들이 봤을 때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들에도. 근데 저는 그런 것들이 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두려워요. 분명 제가 한번 맛보기 시작하면 더 원할 것 같아서. 그냥 이런 것들이 저랑 맞지 않다는 걸 알고 지금 내 손안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열심히 즐기면 충분히 행복할텐데...





Q27. 의외네요. 대게 주체성이 뚜렷해보이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별로 휩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A27. 저는 정말 제가 주체성이 확고한 지 정말 모르겠거든요 하하. 장점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한번도 제 자신을 카테고리화 시킨 적이 없어요. 저는 숨 막혀요. 누가 그걸 하면.





Q28. 주체성 뚜렷해보인다는 말 들어보지 않았어요?


A28. 네. 더불어 자유롭다는 이야기도요. 사실 그냥 두렵고 귀찮아요. 너무 분에 넘치는 얘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태원에 오면 항상 저에게 연락을 해요. 제가 자고 있을 늦은 시각에도. 가끔은 한번 뵀던 분들도 전화가 와서 이태원에 놀러왔는데 작업실 놀러가도 되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되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페이스북으로도 놀러가게 주소 좀 알려달라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한번도 뵌 적도 없는 분들이. 근데 저는 그게, 상처를 안받으면 되는데, 그런 거에도 상처를 되게 많이 받아요. '내가 그렇게 쉬워보이나?', 저는 저렇게 무례하게 행동하지 못할 것 같은데 왜 정작 저는 그런 것들을 수용해야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그러다 보니까 제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저는 사람, 인간이라는 것이 너무 좋았는데, 지치게 되더라고요.





Q29. 관심이 많으면 많은대로 컨트롤 하기 힘들고 없으면 또 외로워서 힘들고...


A29. 그냥 이대로였으면 좋겠어요. 지금 전 딱 좋아요. 전시를 하면 감사하게도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방명록도 꽉 차고, 딱 제가 생각한만큼 와주신다는 거 잖아요.









Q31. '자신의 색깔을 찾아야겠다' 류의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A31. 아니요, 없어요. 이번에 책 제목 생각을 하다가 "집이네? 집시가 울었다"가 갑자기 떠올랐었어요. 그냥 계속 떠올랐어요. 그 말을 어디서 읽은 것도 아닌데 계속 머릿에 맴돌았어요. 집시는 엄청 떠돌아다니잖아요. 집이란 개념이 없고 계속 새로운 곳을 휘젓고 다니는데 저는 그게 만족이 안되니까 자꾸 돌아다닌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집이네'라는 말이 그냥 눈물을 나오게 하고 그 순간만큼은 모든게 내려놔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부다페스트에 집시가 굉장히 많은데 거기 있을 때 그들에게 침도 맞을 뻔 했어요. 거기서 제가 동양인인줄 몰랐나봐요 하하. 집시들이 그 나라 언어로 계속 말을 걸었어요. 저는 못알아들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걸 무시한다고 생각했나봐요. 아무튼 계속 그 말이 맴돌았어요. 제 색깔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누구는 시크한 힙스터, 누구는 힙합 힙스터, 그런 식으로 딱 보이잖아요. 그 사람들이 입는 옷만 봐도. 근데 저는 옷 입는 스타일도 정말 매일 바뀌고... 저도 제 자신을 너무 잘 몰라요. 다른 사람들도 절 보고 "생각보다 진지하네", '"생각보다 감성적이네", "생각보다 학구적이네" 같이 '생각보다'라는 말들을 하도 하니까 저도 더 헷갈려지더라고요. 


사춘기가 심했을 때는 가족과 함께 밥을 먹어도 혼자 동 떨어진 느낌도 들었었고. 아무 이유없이 그랬어요. 지금은 정말 저의 안식처라는 개념을 생각했을 때 가장 근접하게 떠올르는 것은 가족이에요. 근데... 뭔가 다른 것이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트윈스터즈 (Twinsters)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어요. 서로의 존재조차 모른채 각자 다른 곳에 입양되어 살아가던 쌍둥이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그 쌍둥이 중 한명이 하는 말이, 집에 항상 가족도 있고 친구들도 다 있는데 너무 외로움이 느껴졌다는 거에요. 자기도 모르게. 나중에 자기 트윈을 만나게 됐을 때 이야기 하더라고요. 자기가 왜 외로웠는지 알 것 같다고, 항상 곁에 뭔가 없었던 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고.


자기가 쌍둥이인지도 몰랐는데도 그게 느껴졌었다라는 거에요.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근데 저도 그런 기분이 들어요. 뭔가 제가 느끼고 있는 이런 류의 느낌이 나아질 거라는 확신은 있어요. 뭐 제 색깔은 충분히 있는거 같기도 해요, 제 집 한번 봐보세요. 온통 핑크잖아요.





Q39. 사진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A39. 음 그냥 소설을 읽을 때, '아 이게 누가 쓴거네?'. '이게 진짜 있었던 일인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되게 궁금해하면서 읽잖아요. 저는 그 호기심이 호의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제 사진을 그런 호의를 가지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호기심에 찬 호의.


'스트릿포터그래퍼가 찍었네', '필름으로 찍은거래', '외국물 빨이네' 이런 생각 안하고 그냥 순수하게 그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주려고 노력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걸로 조금이라도 옛날에 있었던 좋은 일이나 잊고 있었던 일 등을 떠올려줬으면 좋겠어요.







Q40. 수민씨에게 예술이란?


A40. 저는 어렸을 때 부터 엄마의 영향을 받아 예술과 되게 가까이 지냄과 동시에 예술과 까탈스럽게 지낼 수 밖에 없었어요. 어렸을 때 그림을 그려오면 비례가 안맞다는 등 칭찬보다는 비평을 먼저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에게는 완벽해야되는 뭔가 공식이 있는게 예술이였었어요. 근데 사춘기 때 처음으로 그림을 보면서 울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아 이게 뭐지?' 싶었고... 그런 거 아닐까 싶어요. 내가 어떻게해야 할 지 모르겠는 감정들을 내 눈 앞에 보여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그게 해결이 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때 그림을 보고 울었었을 때는 그 당시 제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과 외로움들을 이 사람들이 그걸 느끼고 그거를 너무 고민을 많이해서 그림으로 나타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울었었고 아직도 그 그림이 가장 좋아요. 





Q41. 작품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A41. 워낙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들을 많이 찍어서 그런진 몰라도 사람들이 저에게 항상 물어봐요. 너는 사진을 통해 도출해내고자 하는 것이 뭐냐고. 근데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분들을 찍는 이유가 그 사람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여서 찍는게 아니에요. 그 사람들의 행동이 저에게 뭔가를 알려줬을 때 찍는거에요. 


그래서 저는 제 사진을 통해 도출해내고 싶은 결과는 그냥 한번이라도 '이런 사람들이 있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네' 이런 것들을 1초라고 상기시켰으면 좋겠어요. 그게 끝이에요. 제 입장에서 예술은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기회를 주는 것. 그게 예술이 할 수 있는 일 이잖아요.





Q42.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죠?


A42. 한국에서 사진을 더 많이 찍는거에요. 정리를 하다보니까 외국에서 찍은 사진들이 더 많더라고요. 





Q43. 왜 한국에서 더 찍고 싶은거죠?


A43. 사진을 통해서 한국을 재발견하게 됐거든요. 한국을 되게 싫어했었는데 사진을 찍으면서 좋아하게 됐어요. 휴학을 하고 낮에 사진을 찍으면서 돌아다니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저를 외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특히 한국 처음 왔을 때 말도 좀 어눌하고 까맣고 그래서인지 젋은 분들은 저를 완전한 한국인으로 생각해주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근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저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더라고요. 스스럼없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런 거를 통해서 한국 사람들의 정이란 걸 느껴봤거든요. 





Q44.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부탁드려요. 


A44. 이 인터뷰는 제가 뭐 특별해서 하게 된 것도 아니고 제 전시 또한 제가 엄청 특별해서 전시하는게 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사람들과 공감을 하고 싶어하는 부분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게도 진행하게 된 거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공감해줬으면 좋겠어요.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공감을 많이 해주면서 그 기쁨이 뭔지 제 사진을 통해서 느껴실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리고 본인들도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DETAILED INFORMATION 

이름 : 임수민 (SOOMIN YIM)
국적 : 한국 (KOREA)

사이트 : WWW.SOOMINYIM.COM


* 임수민씨의 전시는 2016년 12월 31일까지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진행됩니다.


전시 : EXPERIMENT::HUMAN SERIES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5길 17 (팔판동 130-1) * 매장 앞 주차가능
전시기간 및 시간 : 2016년 7월 16일 - 12월 31일 (오후 12시 ~ 오후 8시)
온라인스토어 : WWW.SLOWSTEADYCLUB.COM 
인스타그램 : @SLOWSTEADY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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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동희

INTERVIEW : RDV O GLOBE

SECTION : INTERVIEW   2016.08.23 16:52




이 글은 PLOT WORLD(플롯월드)의 진경모 대표가 작성한 인터뷰로,  

SLOW STEADY CLUB(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허가하에 각색하였습니다.




이미 밖에서 술을 한잔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담배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편안하게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나는 도쿄에 오면 항상 슌스케 마이부치(Shunsuke Maebuchi) 씨의 아파트에서 묵는데, 나이 차이는 좀 나지만 편안한 친구이자 형으로 항상 편안하게 대해주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다. 인터뷰는 영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존댓말은 생략하고 편하게 서술하겠습니다.





Q1.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1. 내 이름은 슌스케 마이부치(Shunsuke Maebuchi) 이고 랑데뷰 오 글로브(RDV O GLOBE)의 디자이너이고, 오너이며 바이어이자 요리사이다.





Q2. 나랑 비슷하네. 그렇지만 난 아직 요리사는 아니니까.. 왜 브랜드 이름이 랑데뷰 오 글로브(RDV O GLOBE)인가? 그리고 무슨 뜻인지도 간단히 설명해 달라.


A2. 나는 SHIPS(일본의 대형 의류 유통회사)에서 오랜동안 일했다. 쉽스(SHIPS)는 르 글로브(Le Globe)라는 편집샵을 운영했었는데 내가 그 파트의 디렉팅을 했었고 그 이름이 너무 좋았지만 그대로 쓰기보단 조금 바꾸고 싶었다. 르 글로브(Le Globe) 프로젝트의 크레이티브 디렉터였던 마르셀 라상스(Marcel Lassance)와 의논하여 '만난다'는 의미의 rendezvous를 써서 Rendezvous o Globe 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 프랑스어로 Globe는 '지구'라는 뜻이다. 나의 샵은 내 컬렉션인 랑데뷰 오 글로브(RDV O GLOBE) 이외에도 세계 여러나라의 브랜드를 바잉하는 편집 매장이기 때문에 세계를 모두 담고 싶은 의미도 있고 이 일을 통해 '세계에서 만나자'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Q3. 내가 느끼기엔 랑데뷰 오 글로브(RDV O GLOBE)는 스토어도 브랜드도 일본스타일이라기 보단 프랑스스타일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바이어이자 디자이너인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나?


A3. 19세기 빅토리안 스타일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컬렉션에 커브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그렇지만 아메리칸 스타일도 좋아하기 때문에 많은 요소들이 섞여 있다. 나는 아카이브에서 디테일이나 디자인을 그대로 카피하여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만의 디자인과 스토어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일본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본사람인데 당연히 그렇지 않겠나.





Q4. 정확한 나이가 어떻게 되지?


A4. 53살이다.





Q5. 본인이 늙었다고 생각하나?


A5. 그렇다.





Q6. 오.. 정말?


A6.  그렇다. 하지만 패션에 대해서는 올드하지 않다. 나는 항상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그러려고 노력한다. 나는 배우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패션이 좋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나이가 꽤 들었다.



RDV O GLOBE 매장에 전시된 RDV O GLOBE



Q7. 왜 브랜드와 샵에 다른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같은 이름을 사용했는가? 브랜드로서의 성장을 위해서는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A7. 그럴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이름이 좋아서 굳이 다른 이름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Q8. 같은 디자인으로 3시즌 이상 나오는 옷이 거의 없다. 아예 없는 것같기도 한데 보통의 브랜드들은 스테디 셀러들을 가지고 있다. 매시즌 진행되는 상품들이 있는데, 랑데뷰 오 글로브(RDV O GLOBE)는 반응이 아주 좋았던 상품조차도 거의 두시즌 이상 나오지 않는다. 이유가 있나?


A8.  어떤 것이 좋다고 느껴지면 다시한번 찬찬히 생각해본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좋다고 느끼게 되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본다. 그러다보면 조금씩 변형을 하고 발전시키게 된다. 항상 진행형이고 항상 바뀌고 나아지려고 노력한다. 많은 변화를 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실 매시즌 진행하는 기본 아이템도 있다.





Q9. 원단은 바꾸잖아..


A9.  그래.. 그렇지만 Fabio Denim만은 항상 그대로다.





Q10. 디자인할때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A10.  코디네이트를 신경쓰며 디자인한다. 그러기에 전체적인 조화를 많이 신경써서 디자인하려고 노력하고 색의 조화에도 많이 신경쓰는 편이다. 어떤 색상이 다른 한 색상을 덮어버리는 것은 좋아하지 않고 두 색상이 다 살아있을 수 있는 컬러 매치를 고려하여 디자인한다. 항상 50 대 50의 밸런스로 두가지 색상이 어우러지기는 쉽지 않다.





Q11. 가장 좋아하는 색을 하나 고르라면?

A11.  그레이





Q12. 이유는?


A12.  그레이는 프렌치 트레디셔널이다.




도쿄 시부야와 에비수 사이의 조용한 동네에 위치한 RDV O GLOBE 매장




Q13. 랑데뷰 오 글로브(RDV O GLOBE)는 거의 Basic 컬러를 사용하는데 브라운은 보기 쉽지 않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A13.  밸런스를 고려하다보면 덜 사용하게 되지만 가끔 사용한다.





Q14. 소재부터 생산까지 Made in Japan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A14.  일본산은 내가 100% 컨트롤이 가능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생산을 진행할 수 있고 적은 수량도 생산이 가능하다. 이탈리아 원단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산 원단 또한 해외 많은 디자이너들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좋다. 많은 리서치를 통해 원단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젠 이탈리아 원단 만큼 혹은 그 이상 좋은 원단을 일본에서도 찾을 수 있고 컬렉션을 좋은 가격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일본 원단이 가격이 높은 편인건 알고 있지만 소량 주문이 가능하며 수입하는 비용이 들지 않으며 잘만 찾으면 퀄리티에 비해서 가격이 좋은 원단을 찾을 수 있다.





Q15. 나에게 랑데뷰 오 글로브(RDV O GLOBE)는 품질과 디자인에 비해서 가격이 좋은 브랜드이다.


A15. 일반적으로 대형 브랜드들은 판매가를 정하고 그에 맞춰서 옷을 만들어내지만 나는 그것이 싫다. 가격을 정하고 나서 그 가격에 품질을 맞추게 되면 그것은 더이상 패션이 아니다. 비지니스지 패션디자인이 아니다. 원하는 품질과 디자인으로 옷을 만들고도 접근성 있는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Q16. 데님과 팬츠는 릴랙스 핏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A16.  오래전엔 리바이스를 좋아했고 그 오리지널 핏은 스페셜한 리바이스만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그대로 따라 만드는 브랜드들이 너무 많아 그냥 흔한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새로운 핏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나만의 데님을 만들고 있다.





Q17. 보기엔 조금 과장되어 보일 수 있는데 막상 입어보면 또 대단히 과하지만도 않다.


A17.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랑데뷰 오 글로브(RDV O GLOBE) 만의 핏이다.





Q18. 그나저나 왜 쉽스(SHIPS)였나?


A18.  나는 대학교때 쉽스(SHIPS)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었다. 내가 17~18살때쯤 1980년경엔 지금과 같은 샵이 전무했었고 빔즈(BEAMS), 쉽스(SHIPS), 레드우드(REDWOOD) 가 거의 전부였다. 그중 왜 쉽스(SHIPS)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Q19. 대학때 전공은?


A19.  경제학





Q20. 패션 전공이 아니네?


A20.  나는 패션을 전공할 생각을 가진적이 없었다.




정돈 되지 않은 듯 정돈된 매장내부






Q21. 일본에선 의류쪽 세일즈 직원에 대한 인식이 어떤가? 한국은 여전히 좋은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도 20년 이상 먼저 시작한 일본은 조금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국엔 많다.


A21.  오래전보단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은 평균이하이다. 이제 빔즈(BEAMS), 유나이티드 애로우즈(UNITED ARROWS) 같은 큰 회사의 스토어에서 일하는 것은 그나마 괜찮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작은 매장에서 일하는 것은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Q22. 마이부치씨도 마찬가지 였을까.. 부모님은 그때 어떻게 생각하셨나?


A22.  처음에 쉽스에서 일하는 것을 아시고는 크게 화를 내셨다. 패션비지니스를 비지니스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때만 해도 SHIPS는 긴자와 시부야 두군데만 매장이 있는 작은 회사였다. 원래 우에노라는 한국의 동대문같은 도매시장에서 조그만 매장을 가지고 수입업을 시작했던 작은 회사였다. 그 당시 모두가 내수시장만을 고집하고 있을때 쉽스(SHIPS)는 개척자였다.





Q23. 언제가 쉽스(SHIPS)의 전성기였나?


A23.  1990년대가 최고의 번성기였다. 그 이후 마르셀 라상스(Marcel Lassance)와의 새로운 프로젝트들도 시작되었고 유럽을 베이스로 한 셀렉트샵으로 호황기를 누렸었다.





Q24. 그래도 부모님의 반대에도 일을 계속했나보다.


A24.  졸업후 쉽스(SHIPS)에서 정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대학때 파트타임을 포함하면 파트타임으로 5년, 직원으로 25년. 30년 일했다.




Q25. 길다..


A25.  그렇다 오래 일했다.








Q26. 그렇다면 언제 본인의 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A26.  나는 쉽스에서 세일즈로 일을 시작했다. 디스플레이 머천다이징등 샵을 위한 모든 일들을 배우며 10년을 보냈고 디렉터로서 남성과 여성을 바잉하며 10년을 일했다. 그 뒤 리 글로브(Le Globe) 프로젝트를 5년동안 디렉팅하며 마르셀 라상스(Marcel Lassance)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수입 브랜드들과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그 일을 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나만의 느낌을 가진 샵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손님과 대화하는 것이 너무 좋고 세일즈하는게 너무 재미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Q27. 그렇다면 본인의 브랜드는?


A27.  원래도 그랬지만 점점 더 편안한 패션이 좋아졌다. 편안하지만 멋있고 자연스러운 옷이 점점 찾기 힘들어져서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Q28. 브랜드와 스토어 중 어느 쪽을 먼저 시작했나?


A28.  시작은 같다. 그러나 스토어가 먼저 계획되었다. 매장에 필요한 구성을 하다보니 모자라는 부분이 있고 바잉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모자라는 부분을 직접 만들어서 채워보려 하면서 시작되었다.





Q29. 그렇다면 본인의 매장말고 다른 샵에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지?


A29.  2012년 FW 시즌을 시작으로 파리에서 쇼룸 공간을 빌려 전시회를 시작하였다.

어차피 파리로 바잉하러 가니 그때를 이용해서 전시회를 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Q30. 마르셀 라상스(Marcel Lassance) 에 대해 조금만 설명해달라.


A30.  파리 생제르망에 위치한 스토어의 이름이자 그 스토어의 디자이너의 이름이다. 70%정도 자신의 컬렉션과 30% 셀렉트한 브랜드들로 이루어져 있고 상당히 프렌치한 샵이다. 현재 60대 중반이고 여전히 바이어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으며 많이들 알고 있는 메르시(Merci)의 남성복 바이어로도 오래전부터 일하고 있다. 메르시(Merci)의 오너와 마르셀(Marcel)은 오랜 친구사이로 메르시(Merci)의 오너가 봉쁘앙(Bonpoint)이라는 아동복 브랜드를 하고 있을때 마르셀(Marcel)이 디자인을 했었다. 봉쁘앙(Bonpoint)을 팔고 메르시(Merci)를 열고도 함께 일하는 오랜 친구이다.




Q31. 샵에 여성의류가 적지 않은데 여자 직원은 왜 채용한 적이 없지?


A31.  매장일은 힘든 일이다. 더구나 우리 매장은 요리도 해야하고 생산도 배송도 세일즈도 모두 우리끼리 해야하기에 육체적 노동 강도가 높다. 함께 일하고 있는 마츠오가 특히 여성 고객들에게 친절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Q32. 일본 샵인데 일본 브랜드가 별로 없다.


A32.  그렇다, 적은 편이다. 물론 좋은 브랜드는 바잉할 의향이 있다. 샵의 모든 부분을 고려했을때 타겟 고객층이 4~50대라 체형상 아무래도 젊은 친구들보단 큰 사이즈를 선호하는 편이고 주요 고객들이 체격이 있는 편이다. 대부분의 일본 브랜드들은 사이즈가 작아서 나의 고객들에겐 판매하기 쉽지 않다.





Q33. 일본은 거의 대부분의 샵에서 볼 수 있는 브랜드들이 있다. 그것이 나에겐 일본이 점점 지루해지는 이유이긴 한데 확실히 매출이 있으니 모두가 가지고 있을거란 생각을 한다. 랑데뷰 오 글로브(RDV O GLOBE)는 왜 그런 브랜드를 바잉하지 않는가?


A33.  CDG, MMM 등 몇몇의 브랜드는 대형스토어에 가면 다 걸려있고 심지어 바잉마저도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너의 말과 같이 아마도 판매가 되니까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걸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바잉하던 브랜드가 대형 스토어에 들어가고 나면 바잉을 그만하는 경우도 있다. 높이 올라가면 떨어질 때도 높은 곳에서 떨어진다.

그리고 나의 손님들은 그런 브랜드들을 보기위해 랑데뷰 오 글로브 (RDV O GLOBE)에 오는 것이 아니다.





Q34. 고향은 어디지?


A34.  도쿄에서 나고 자랐다.





Q35. 왜 이곳 세타가야에 사나? 많이 멀진 않지만 매장에서도 거리가 조금 있기도 하고 편리한 동네는 아니다.


A35.  부모님의 집과 같은 지하철 라인에 있고 나무도 많고 조용한 주거지역이라서 이곳을 선택했었다.





Q36.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아오면서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할 생각을 한적은 없었나?


A36.  전혀 없었다. 도심에 사는 친구들의 집에 가면 가끔 편리하고 좋다고 느낄때도 있다. 그러나 내가 거기에 산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Q37. 그래도 친구의 입장에서 가끔은 걱정을 한다.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많이 걷는 것이 힘들지는 않나?


A37.  일본에서 특히 도쿄에선 당연한 일이다. 차가 있으면 술도 마실 수 없다.(음주운전으로 면허취소당한 후 다시 취득하지 않았다.) 지하철로 주로 출퇴근을 하지만 피곤하거나 많이 늦거나 술을 마셨을때 택시타는 정도는 아무리 일본이 택시가 비싸도 차량유지비용보다는 훨씬 적게 든다. 그리고 아직 전혀 힘들지 않다.





Q38.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A38.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나이가 많으셔서 병원에 계신다. 7살 많은 형이 있는데 패션을 좋아하지만 우리들 같은 이런 사람은 아니다. 형의 아들 그러니까 조카는 이쪽에 관심이 아주 많아 벌써 RDV O GLOBE 의 고객이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싱글이고.





Q39. 일본에서의 결혼 적령기는 어떻게 되나?


A39.  보통의 사람들에 대해 묻는거지?





Q40. 그렇다.


A40.  2~30년 전에는 25살 정도였었지만 지금은 30~35살이 평균으로 보인다. 세계 어디나 다 그렇겠지만 일본도 도심지역을 벗어난 지방은 결혼을 조금 일찍하는 분위기다. 아무래도 즐길거리가 많지 않다보니 일찍 결혼하게 된다. 도심지역엔 여러가지 즐길 거리도 많고 삶도 복잡하지만 지방은 섹스,빠칭코,술 말고는 특별히 할게 없다. 그러다보니 결혼을 일찍하고 자식도 빨리 낳는 것 같다.




RDV O GLOBE에서 판매하고 있는 생맥주





Q41. 모두가 꼭 그렇다고만 볼순 없지만 한국도 비슷하다. 참, 일본엔 빠칭코가 엄청나게 많다. 동네마다 한두개씩은 있는것 같은데 이곳 세타가야에도 있고, 일본은 도박이 합법인가?


A41.  아니다. 빠칭코가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빠칭코만이 합법이고 이외의 도박은 허용되지 않는다. 빠칭코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엔 카지노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도박은 엄연히 불법이다.





Q42. 겜블을 좋아하나?


A42.  아니, 별로. 마카오 라스베가스 베트남등 여행이나 출장을 갔을때 조금씩 하긴 하나 취미없다. 대단히 재밌게 느껴지지 않는다.





Q43. 일을 하다보면 여러 곳을 많이 다니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를 고르라면?


A43.  은퇴를 한다면 치앙마이에 가서 살고 싶다. 현재로서 가장 좋은 곳은 뉴멕시코이다.





Q44. 뉴멕시코.. 나와 같다. 은퇴를 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A44.  샵은 유지하여 함께 일하는 친구에게 모든 것을 맞기고 그 친구가 매장을 운영하여 나에게 어느 정도의 수입만 유지해주면 된다. 그러나 디자이너로는 계속 일하고 싶다.





Q45. 보통 몇살에 은퇴를 하나? 일본의 평균 말이다.


A45.  샐러리맨들은 보통 65세이다. 그러나 요즘은 보통 60세라고 볼 수 있다.





Q46. 그럼 은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나?


A46.  나는 아직 은퇴할 생각이 없고 그런 생각을 해본적도 없다. 그냥 나중에 치앙마이에 가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 아직 너무 즐기고 있고 많이 배우고 있어 행복하다.




Q47. 한국은 몇번 와봤나?


A47.  5번 가봤다. 4번은 출장, 1번은 여행이었다. 그렇지만 서울이외의 다른 도시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Q48. 한국 브랜드들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솔직히 말해도 된다.


A48,  파리 패션 전시회장에서 종종 본다. 나쁘지는 않다. 좋은디자인에 좋은 품질이라면 바잉할 생각도 있다. 생산국에 많이 연연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제품이 좋다면 상관하지 않는다. 아직 내 마음에 쏙 드는 브랜드를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Q49. 내가 소개시켜준 TOOLS는 어떤가?


A49.  좋은 가격에 적절한 퀄리티여서 바잉했다. 그때 한국방문이 휴가였고 나는 휴가지에서도 바잉한다. 그것이 진정한 랑데뷰 오 글로브(RDV O GLOBE) 아닌가.





Q50. 한국엔 처음에 왜 오게 되었나?


A50.  유럽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하는 디자이너 한국인 친구가 있는데 파리에서 자주 만난다. 한국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고 좋은 테이스트를 가진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얘기해주었다. 한국 시장이 조금씩 포용력이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 알고 있었던 상황이라 한번 가보자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럽 전시회장에서 한국 바이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궁금했었다.





Q51. 전시회(Japanese in Paris)는 파리에서 하나? 뉴욕, 밀란도 있는데.


A51.  샘플을 한개씩만 만든다. 두개씩 만드는 것은 힘들고 금액도 너무 커진다. 그렇게 되면 그 모든 비용이 의류 가격에 포함되어야 하며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다음시즌엔 요청이 있어 시기를 맞춰서 뉴욕에서도 전시를 하려고 계획중이다. 그리고 너와 함께하는 Japanese in Seoul 도 있고 조금씩 조금씩 키워나갈 생각이다.





Q52. 트레이드쇼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기 때문에 더 많은 기회가 될 수도 있는데.


A52.  그렇지만 그 비용은 옷값을 올린다. 그리고 전시회는 나의 디자인을 잘 보여주지 못한다. 나의 브랜드를 잘 설명하고 고객들과 대화를 나누기 힘든 곳이다. 그것을 포기한 대신 조금 더 발로 뛴다.




매장과 카페테리아가 공존하는 RDV O GLOBE 스토어



Q53. 요리하는 매장이다. 집에서도 요리를 하나?


A53.  한다. 요리를 좋아한다. 요리는 패션과 비슷해서 밸런스와 코디네이션이 중요하다. 나는 클래식 프렌치스타일의 요리를 좋아해서 매장에서도 홈메이드 스타일의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Q54. 파리를 정말 자주 갔나보다.


A54.  그렇다. 그리고 파리로 출장을 가면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을때 최대한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을 둘러보았다.





Q55. 일본 요리중에는 어떤 요리를 가장 좋아하나?


A55.  스시. 생선요리는 다 좋아한다. 소고기가 그 다음이다.





Q56. 오징어는 거의 한국과 일본에서만 먹는 편이다. 일본에서도 오징어를 회로 먹나?


A56.  삿포로, 후카이도의 오징어가 상당히 유명하다. 이까사시(오징어회)는 신선한 오징어로만 먹으며 일본에서도 대중적인 요리이다. 도쿄에서 그렇게 많이 만날 수는 없지만 오징어의 주요산지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이다. 그리고 한국과 비슷하게 낙지도 많이 먹는데 튀김과 스프등의 여러가지 요리에 활용하며 건강에 좋기로 알려져 있어 고급재료이기도 하다.





Q57. 일본에서 도쿄,오사카,후쿠오카등의 많이 알려진 여행지 말고 다른 곳을 추천해준다면?


A57.  카와고에 라는 지역이 있다. 도쿄에서 서쪽으로 1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있는 곳인데 오래된 집들이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작은 교토같은 곳으로 오래된 식당들도 많고 현대의 일본이 아닌 진짜 일본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Q58. 일하러 갈땐 주로 어떤 옷을 입나? 내가 본 바로는 거의 자신의 컬렉션을 입었지만 내가 와 있어서 그런건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A58.  거의 대부분의 날에 나의 컬렉션을 입는다. 아주 가끔은 VINTAGE OLD STOCK들을 입을때도 있지만 거의 내가 만든 옷과 매치하여 입는다.




설정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연기가 포함되어 있는 사진으로 RDV O GLOBE의 마감시간





Q59. 그건 나도 그렇다. 내가 판매하는 옷을 위주로 입고 내가 입기 때문에 바잉한다. 이것은 나의 매장에 대한 고객의 신뢰도에 대한 부분이고 나의 자부심이다.


A59.  매장의 주인이 좋아하는 옷을 판매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큰 회사에서 운영하는 매장들은 전반적인 트랜드와 매출을 고려해서 매장을 꾸미지만 적어도 셀렉트샵이라고 하려면 방향성이 중요하고 그 방향성을 정확히 하려면 지속 가능한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Q60. 마지막으로 랑데뷰 오 글로브(RDV O GLOBE)에 대해서 설명해봐라. 하고 싶은 말 아무거나.


A60. 내 마음대로 만든 스토어이고 컬렉션이다. 입기 쉽고 언제든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바잉하려고 한다. 창고에, 박스안에, 구석에 쳐박힌 옷이 아닌 옷걸이에 걸려있는 자주 입는 옷을 판매하는 매장이고 싶다. 복잡한 디테일 보다 전반적인 코디네이션에 더 신경을 쓰는 부분을 알아주면 그만큼 행복한 것은 없을 것 같다. 모던과 클래식의 정확히 가운데 있는 브랜드이자 매장이 되고 싶고 그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편하게 이야기 하면서 기록하다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고집하고 있던 것들에 대한 걱정을 가끔은 하고있었습니다. 주변에서도 부정적인 의견과 충고가 없던 것도 아니기에 가끔은 조금 흔들릴 때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이 인터뷰를 계기로 내가 지키려고 하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행복하게 자신있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리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너무 즐거웠고 개운했습니다.



긴 내용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DETAILED INFORMATION 
브랜드 : 랑데뷰 오 글로브 (RDV O GLOBE)

국가 : 일본 (JAPAN)

디자이너 : 슌스케 마이부치(Shunsuke Maebuchi)


*여러분의 내점을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편히 오셔서 시착부탁드립니다. 


판매처 : 슬로우 스테디 클럽 (SLOW STEADY CLUB)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5길 17 (팔판동 130-1) * 매장 앞 주차가능

운영시간 : 오후 12시 ~ 오후 8시

온라인스토어 : WWW.SLOWSTEADYCLUB.COM 

인스타그램 : @SLOWSTEADY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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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진경모

INTERVIEW : BEKEI KIM

SECTION : INTERVIEW   2016.05.24 20:17




안녕하세요.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저희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진행하고 있는 갤러리 서비스인 HUGE BOOTH (휴즈부스)의 3번째 주인공 BEKEI KIM씨와의 인터뷰입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그의 생각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1. 안녕하세요. BEKEI KIM(이하 BEKEI)씨 간략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A1. 저는 BEKEI(비케이) 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요, 아이폰이나 디지털 매체로 그림을 그리고 있고 거기에 한정되지 않고 아크릴이나 콜라주로도 작업하고 있습니다.




Q2. 저희가 알기론 그림을 전공하시지 않으셨다고 알고있는데 사실인가요?


A2. 네, 그림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평생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열정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떤 전공을 하든지 간에 그림을 평생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공으로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그림에 대해서는 배우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배운다는 것 자체가 제약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아 힘들다’ 이런 배우는 스트레스 없이 최대한 자유롭게 하고 싶었어요.




Q3. 그림은 왜 평생 그려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A3. 그림 그리는 게 어렸을 때부터 재밌었어요. 학창시절에도 수업시간에 모퉁이 같은 곳에 낙서를 즐겨 했고... 근데 사람들이 낙서하는 걸 좋게 보지는 않잖아요? 근데 저는 그 순간이 제일 재밌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계속 키워가고 싶었어요.




Q4. 평소 작업하실 때 어떤 생각으로 하시는지?


A4. 그림을 처음 그려야겠다고 마음 먹은 거는... 군대 있을 때 스케치를 매일매일 했었거든요. 제대하면 이걸로 조금씩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매일매일 드는 생각이나 뭐 잡념들을 일기 쓰는 마음으로 그려왔고 제대하고 난 후에 블로그나 SNS에 그동안 모아뒀던 스케치들을 채색해서 조금씩 조금씩 올렸는데 그걸 좋게 봐주신 분들이 계셨고 다르게 써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고요.

잡지 같은 곳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좋게 봐주시는 분들 덕분에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Q5. 웹사이트 보니깐 그림의 느낌이 연도별로 조금씩 다른 것들이 있더라구요. 한가지 스타일을 고수하시지는 않으신가봐요.


A5. 매년 굵은 맥락이 조금씩 다른데 만약에 제가 어떤 한가지 스타일을 고수해서 그려왔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고 유명해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아직 제 그림체나 생각들을 픽스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아직 더 공부해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미대 다니시는 분들은 학기 동안 수업을 이수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도 제 나름대로 커리큘럼을 정해서 그림을 그려오고 있어요.



Q6. 그럼 본격적으로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할 시기로 언제를 생각하시나요?


A6. “어느 시점에서 한 가지 그림체를 고수해야겠다” 뭐 이런 생각들은 아직 없는데, 제가 무의식적으로 그냥 그려도 한가지 스타일이 될 수 있는 단계가 온다면 그때가 될 것 같아요. 굳이 제가 이 스타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좀 약간 외부적인 요인에 타협하는 거잖아요. 근데 제가 무의식적으로 어떤 걸 그려도 그게 어떤 저의 철학에서 나온 거고 그게 저의 그림체가 된다면 그때가 저의 아이덴티티가 온전하게 구축되는 단계일 것 같아요.







Q7. 최근 작업들 보면은 약간 우울하기도 하지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위로가 되고 따뜻한 느낌의 그림들이 있더라구요. 어떤 계기로 이러한 작업들을 하게 되신거죠?


A7. 제가 고민이 많을 때 그림이 더 잘 그려지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요. 그냥 개인적인 제 생각에서 나오는 그림들이기 때문에 아마도 제가 우울했던 순간들이 많았던 게 아닐까 생각이 되네요. 항상 밝고 예쁜 그림들보다는 우울할 땐 우울한 그림을 그리고 즐거울 땐 즐거운 그림을 그리는 게 가장 솔직한 순간인 것 같고... 그 우울한 순간이 계속 있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이 우울할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는데, 그 우울한 순간까지 긍정적이고 웃어라 하는 것보다는 우울한 거를 오히려 표출하고 표현하는 게 제 자신한테도 위로가 되고 보는 사람들한테도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Q8. 그렇다면은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운다라는 말에는 전혀 공감을 못하시겠네요?


A8. 하하하..뭐 슬프다고 매번 울지는 않습니다.








Q9.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희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전시중인 REDMAN IN THE ROOM(이하 레드맨)에 대해 얘기해볼게요. 이 작품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A9. 레드맨 시리즈는 제가 꿈을 모티브로 그린 것들을 시리즈로 묶은 건데요, 꿈 내용은 모든 게 붉은 색인 어떤 방을 걷는 꿈이었어요. 꿈속에서 걷다가 미끌미끌한 벽을 마주하였는데 그 벽을 봐도 온통 붉은 색이어서 구분이 안 가더라구요. 나중에 보니 그 벽이 거울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옷도 피부도, 그리고 저 자신도 빨갛고 해서 그 방에서 전혀 제가 구분이 안됐던 거예요. 그 꿈에서 깨서 뭔가 그 꿈의 의미나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다가 좀 더 공유할만한 가치가 있는 그림으로 표현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붉은 방에 있는 빨간 사람이라는 시리즈로 그림을 그리게 됐습니다.




BEKEI의 REDMAN IN THE ROOM





Q10. 작품 설명을 보면 “불특정 타인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 익숙해져버린 이들은 너무 쉽게 자신의 가치관을 그것에 맞춰버렸다”라는 내용이 있는데요, 여기서 이들은 현대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현대인들이 자신의 색깔을 쉽게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10. 네. 먼저 저 개인적으로 제가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이고, 제 주변에서도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한 표현을 해보자 해서 한 시리즈입니다. 그 현대인이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큰 게 , 항상 큰 게 중요한 시대이잖아요. 큰 자본, 매스미디어 또 큰 흐름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작은 것에 소속돼 있는 것들을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잖아요. 근데 어떻게 보면 현대인들은 그 작은 작은 구성원들인데 큰 회사의 큰 흐름이나 뭔가 큰 트랜드에 맞추다 보면 그 작은 구성돼 있는 그런 것들이 무시당하기 엄청 쉬운 구조기 때문에 자기 색깔을 잃기 쉽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Q11. 문화도 마찬가지 인 것 같아요.


A11. 네. 문화의 다양성이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잖아요. 근데 그런 것보다 큰 트랜드에 휘말려가는 그런 것들. 그리고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뭔가 어떤 것들을 결정하고 선택할 시간이 충분히 없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어떤 것이 예쁘다 이런 것들이 이미 정해져서 사람들에게 주입되는 느낌이기 때문에, 특히 한국 사회에서 더 자기 자신을 잃는 경향이 크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Q12. 특히 한국사회라.. 유학 생활하면서 느낀건데...    


A12. 아! 다른 나라도 그런가요?



Q13. 아, 아니요, 확실히 그런 큰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받는 것 같진 않았어요. 압박 안 받고 천천히 고민해보고 충분히 경험하려고 하더라구요. 한국 사회였다면 남들보다 뒤처지고 생각이 없다고 비칠 수도 있었을텐데… 뭐 일반화할 수 없지만 저 학부시절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A13. 그냥 쉽게 예를 들어도,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 이런 것들이 있으면, 어렸을 때부터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 구하고… 그렇게 살아야지만 인정받고 한국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너무 당연하게 자리 잡혀 있었어요. 뭔가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면, 뭔가 바르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 그런 것들이 저희가 고민해볼 시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에 치이면서 본인 선택에 대한 후회가 생기기 시작할 때, 그제야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그걸 선택할 수 있는 단계에서부터 어떤 삶이 본인에게 맞을지에 대한 고민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Q14. 그런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하시는 것 보면 그래도 BEKEI씨는 학창시절에 공부는 잘 하셨겠네요. 하하!


A14. 하하하! 아니에요. 저도 남들이 짜 놓은 가치관에 맞추기 위해서 되게 열심히 노력하고 살았고요. 오히려 그림을 그리면서 그런 것들에 벗어나서 이런 것들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15. 자신의 색깔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이 든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A15. 이 사회의 시스템이 딱 이렇게 행동하라는 그 지침대로 행동하고 있었는데 그거는 제가 원하는 게 아니라도 그 시스템 안에 있는 구성원이니까 그렇게 행동하게 돼 있잖아요. 근데 그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남들이 봤을 때는 너도 똑같은 사람이야 이렇게 얘기를 듣는 순간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나는 그 시스템 안에 구성원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건데 타인이 봤을 때는 저도 그냥 똑같은 사람일 뿐인 거예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





Q16. 왜 이런 획일화된 색깔이 계속 나타난다고 생각하세요?


A16.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일단은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교육에 관한 얘기인데 , 뭔가 내용을 주입하기 전에 선택하고 판단할 생각을 줘야 하는데 이미 정해놓고 그 주입되는 것들이 너무 많고 그리고 그런 것들의 관성에 젖어서 딱 변화를 시도하기 두려운 거죠. 뭔가 계속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거를 깨고 다른 행동을 하기엔 그 사람들이 두려운 마음이 있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Q17. 거창해 보이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그냥 모두의 생각이 궁금해서 여쭤보는거니 편하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네요. BEKEI씨에게 예술이란?


A17. 제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아직은 제 자체 커리큘럼 과정을 밝고 있는 학생이라서 지금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10년 뒤에는 또 다른 답변을 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Q18. 저는 그게 되게 당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A18. 제가 지금 생각하는 예술이란 거에 대한 정의라기보다는 역할은 생각이 응고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든 아저씨도 어린 아이처럼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드는 그런 매개체가 되는 게 예술이 되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Q19. 축약하자면 꼰대방부제 정도 되는 건가요?

A19. 하하하! 단순히 뭔가 예쁜 걸 만들기 전에 그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하는 것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Q20. 그러면 예술 작품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A20. 네, 왜냐하면은 보는 이가 있는 이상 어떤 타인의 영향을 배제하고 자기감정이나 생각만의 표출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편협한 생각이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이상 그 영향력에 대해서는 무조건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이 쉽게 공유 될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누구나 쉽게 글을 써서 책을 낼 수도 있고 SNS에 공유할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잖아요. 이런 시스템 안에 있을 때 그런 것들이 타인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 그리고 자기 글들이나 그림들이 공유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BEKEI의 REDMAN IN THE ROOM




Q21. 이번에 레드맨 시리즈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 좀 궁금한데요.

A21. 한번 인터넷에서 반응을 살펴봤는데,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열리는 이런 작고 소소한 전시가 좋다는 반응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역시나 어려웠다 이런 글들이 있더라고요. 근데 제가 생각하는 내용은 엄청 심플한 주제였어요. 환경이랑 자신이랑 동일시되는 거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갖자 이런 내용이었는데… 설명서에 어떤 꿈 이야기나 그런 미사여구가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너무 힘들었나? 아니면 좀 더 그 주제를 어필할 수 있는 그림이 조금 모호했나? 이런 것들이 생각은 들더라고요.





Q22. BEKEI씨가 개인적으로 생각하시기에는 대중들이 레드맨 시리즈를 보았을 때 쉽게 주제를 이해하고 공감하실거라고 예상하셨나요?

A22. 전 텍스트가 필요한 그림이라고 생각하고요. 적어도 그림을 보면 왜 공간이 빨갛지? 사람 손도 빨갛네? 이런 호기심을 가지는 것부터가 어떤 감상이나 생각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뭐 사람 옷만 빼고 사람이 빨갛네 그렇게 호기심을 가졌는데 작품 설명을 보면 그런 의문이 들었던 것이 해결될 수 있는... 그렇게만 돼도 만족할 것 같아요. 그림으로만 모든 걸 어필하기에는 그림이 조잡해질 수도 있고 뭔가 그림으로만 제 생각을 전달하기 어려울 때는 글을 같이 써서라도 공감시키는 것이 굳이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서요.





Q23. 작품 자체로써 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예술작품은 어떤 고민이나 생각의 흔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금 말씀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A23. 그림으로 작은 호기심을 던져주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Q24. 앞으로 예정이 어떻게 되나요?

A24. 예정된 전시는 6월부터 이태원의 APT라는 곳에서 2주간 전시가 계획되어 있고요, 그냥 지금처럼 슬로우하고 스테디하게 그림을 그려나갔으면 합니다.





Q25.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A25.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DETAILED INFORMATION 

이름 : 비케이 킴 (BEKEI KIM)
국적 : 한국 (KOREA)


* BEKEI씨의 전시는 2016년 6월 30일까지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진행됩니다.


전시 : 슬로우 스테디 클럽 (SLOW STEADY CLUB)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5길 17 (팔판동 130-1) * 매장 앞 주차가능
전시기간 및 시간 : 2016년 1월 1일 - 6월 30일 (오후 12시 ~ 오후 8시)
온라인스토어 : WWW.SLOWSTEADYCLUB.COM 
인스타그램 : @SLOWSTEADY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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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동희

INTERVIEW : PULETTE

SECTION : INTERVIEW   2016.05.09 01:03


안녕하세요.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저희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소개하고 있는 일본 브랜드의 PULETTE(풀레트)의 디자이너와의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저희와 지속적인 관계를 가져가며 교류할 브랜드인 만큼 여러분께 디자이너의 생각이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언어의 장벽으로 조금 아쉬운 인터뷰일 수 있지만, 앞으로 더 나아지는 인터뷰되도록 하겠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1. An씨와 PULETTE(풀레트)에 대해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1. 제 이름은 GUNJI AN라고 합니다. 1983년 11월 9일생이며 스기노 후쿠 쇼쿠 대학에서 패션을 공부했고 2011년 봄에 PULETTE(풀레트)를 론칭하였습니다. PULETTE(풀레트)는 "PLUS"와 "PALETTE"를 조합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팔레트에 물감을 더해가는 즐거움처럼 옷장을 채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브랜드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PULETTE의 디지아너 GUNJI AN 



Q2. 언제 그리고 왜 처음으로 패션 분야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A2. 어렸을 때부터 매일매일 그때의 기분에 맞춰서 옷을 입는 것을 즐겨 했습니다. 그때 언젠가는 패션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3. 브랜드 론칭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A3. 키즈 캐주얼 의류브랜드에서 의상 디자인을 했습니다.




Q4. PULETTE(풀레트)를 만들고자 했을 때 처음 생각했던 아이디어나 영감을 무엇이었나요?

A4. 남성 데님, 버튼다운 셔츠, 치노팬츠 등의 느낌을 가미한 중성적인 느낌의 여성상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PULETTE 2016년 봄/여름 컬렉션




Q5. 브랜드 설명에 ”엄마의 옷장”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포근하게 들립니다. 실제 PULETTE의 옷들도 포근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실제 어머니의 패션에 어떠한 영향을 받았나요?

A5. 어머니가 소중히 보관해오셨던 옷을 물려받았을 때 그 옷에 담긴 어머니의 추억이 느껴졌습니다. 그 옷들, 예를 들어 실크 스카프, 니트, 클래식한 색감의 트위드 재킷 등으로부터 새것에서 느낄 수 없는 친절함과 같은 따뜻한 온기를 느꼈고 이러한 감성이 실제 PULETTE을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Q6. 그런 온기가 느껴지는 옷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PULETTE의 옷이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원하나요?


A6.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되 존재감이 드러나는 옷이 되길 바라요. 옷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감성과 현대적인 느낌, 이 두 가지를 잘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Q7. TIMELESS DESIGN 디자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나요?

A7. 단순히 옷을 입는다는 것 이상으로 세월이 지나면서 더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었어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그런 디자인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Q8. 혹시 일본에서 살고 일하는 것이 옷 만듦에 있어서 어떠한 영향을 끼치나요?

A8. 일본은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아주 추운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 다양한 패션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스타일이 발전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한, 옷 생산에 있어서 일본의 공장에는 여러 전문가가 있기 때문에 품질이 높은 제품을 만들기에 적합한 환경입니다.    




의류 디자인 및 원단 선택을 모두 책임을 지고 결정하는 AN 디자이너 



Q9. 일본의 옷 품질이 유명한 이유 중에 하나가 미국이나 한국에서 대형 생산을 도입할 때도 일본에서는 고 품질을 고수하며 장인정신을 발전시키고 고급화 시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9. 일본인의 근면함이 그 근본이라고 생각하지만 좋은 물건을 만들고자 하는 열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10. 부러운 부분이네요. 직장에서의 하루 일과에 대해서 간략히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A10. 디자인과 생산이 주요 업무이고 현재는 카탈로그 제작을 준비중입니다.




Q11. 디자인은 혼자서 하시나요?


A11. 예, 그렇습니다.




Q12. 예전에 기업에서 일하셨으면 팀으로 디자인하셨을 텐데, 개인이 혼자 디자인하는 것과 팀과 함께 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A12. 코디를 포함한 전체적인 밸런스를 혼자서 생각해내야 합니다. 만듦에 있어서 자유롭지만 동시에 압박 또한 존재해요.




Q13.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시나요?


A13. '대장금' 드라마는 전편 모두 2번이나 봤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허준'도 전편 모두 보았습니다. 드라마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이 있고 일본에서도 꽤 자주 먹습니다.


Q14. 두 드라마 모두 오래된 드라마 작품인데 굉장히 놀랍습니다. 그럼, 만약 PULETTE가 한국에서 론칭했다면 대장금, 허준과 같은 사극에 영향을 받았을까요?


A14. 음..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앞치마... 좋은 아이디어네요! 하하


이번 만남에서 가장 신선한 충격이었던 그녀의 한국 전통 드라마의 사랑 그리고 관심. 평상시에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기에 놀랐습니다. 그녀는 한국 음식과 한국 문화에 높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Q15.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옷을 잘 입는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A15. 도회적이되 캐주얼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개인적으로 단순히 예뻐 보이는 것이 아닌 매니쉬한 느낌이 섞여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이즈를 적절하게 잘 고르는 것과 색의 조화라고 생각해요.




Q16. 어떤 크리에이터를 좋아하시죠? 


A16. 마크 로스코(Mark Rothko) 화가의 배색과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 감독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색면 추상’이라 불리는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 마크 로스코(Mark Rothko)


배우 출신 영화감독이자 패션 디자이너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



Q17. 그럼 그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함께 하고 싶으신가요?

A17.그림, 영상 쪽과 협업하여 컬렉션을 진행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마크 로스코(Mark Rothko) 화가가 저희 풀레트(PULETTE)를 위한 색을 만들어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감독의 영화를 위한 의류 제작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은 그날이 한참 남은 것 같네요...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작품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 감독의 썸웨어(SOMEWHERE, 2010)





Q18. 저희 SLOW STEADY CLUB에서 캡슐 컬렉션을 하게 된다면, PULETTE도 그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PULETTE를 이끌어오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가요?


A18. 네, 물론이죠! 저희도 정말 참여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디자인을 혼자 하다 보니 자문자답을 할 때가 많은데, 특히 제가 떠올렸던 디자인이 잘 구현이 되지 않을 때 많이 힘든 것 같습니다. 




Q19. 디자인을 하면서 느끼는 점이 무엇인가요?

A19. 디자인할 때 있어서 절제함의 중요성을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또한, 한 개의 디자인을 완성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구현 하고자 하는 태도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20. 옷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디테일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매우 깨끗하고 깔끔한 모습이 연출되는데요. 이러한 룩을 연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20. 그때그때의 시즌에 따라서 배색, 실루엣 그리고 스타일링이 정해져요. 그리고 이 요소들이 이루는 하나의 룩이 어떤 사람의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디테일 관련해서는 입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길 수 있을만한 것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여성복이지만 남성적인 디테일이 가미되어 있는 PULETTE의 디자인



Q21. 좋은 옷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21. 품질도 중요하지만 입는 사람의 감정을 고양시킬 수 있는 것이 그 중요한 요소 아닐까 싶네요.




프랑스 여성상이 떠오르는 PULETTE의 디자인





Q22. PULETTE라는 브랜드는 AN씨에게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요?

A22. 언제 어디서든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로 느끼고 싶어요. PULETTE는 친구이자 제 이상적인 여성상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DETAILED INFORMATION 

브랜드 : 풀레트 (PULETTE)
국가 : 일본 (JAPAN)
디자이너 : 군지 안 (GUNJI AN)


*여러분의 내점을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편히 오셔서 시착부탁드립니다. 

판매처 : 슬로우 스테디 클럽 (SLOW STEADY CLUB)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5길 17 (팔판동 130-1) * 매장 앞 주차가능
운영시간 : 오후 12시 ~ 오후 8시
온라인스토어 : WWW.SLOWSTEADYCLUB.COM 
인스타그램 : @SLOWSTEADY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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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동희

INTERVIEW : DOCUMENT

SECTION : INTERVIEW   2015.11.14 15:17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입니다. 오늘은 저희 슬로우스테디클럽과 첫 시즌부터 아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도큐먼트'라는 브랜드에 대한 심도있는 인터뷰를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미 도큐먼트에 대한 간략한 정보나 컬렉션에 대한 내용들은 다양한 매장이나 각종 매체에서 보셨을텐데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이 인터뷰는 그보다 조금 더 깊은 내용으로 도큐먼트의 정서와 배경, 그리고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다 뚜렷하게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번 달 23일, 24일(벌써 10월이 저번달이네요.)에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도큐먼트의 프레젠테이션이 열렸었는데요. 그 중 한 부분을 차지했던 1:1 인터뷰 시간에 쓰였던 질문지에 대한 답변을 추후에 서면으로 받아 소개해드립니다. 미처 참석하지 못하셨지만, 궁금해하셨던 분들 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Q1. 간단한 자기 소개브랜드 소개 부탁 드릴게요.

A1. 안녕하세요! 저는 도큐먼트를 만들고, 그 것을 지속시키고 있는 이종수Jongsoo lee라고 합니다브랜드 '도큐먼트Document' 2015년도 봄, 여름 시즌에 '캡슐 쇼Capsule Show' 해외 트레이드쇼에서 처음 런칭하며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도큐먼트의 모든 제품은 한국 사람이 디자인하고, 국내에서 생산을 하고 있는 한국 브랜드입니다. '반복과 차이Repetition and difference'라는 주제아래 My Document, Untitled Document, Documentary, Documentation이라는 4가지 아젠다Agenda 가지고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개인의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제한된 컬러를 사용하는 컬렉션인 My Document와, 시즌과 성별 관계없이Seasonless, Genderless 보여지는 것을 어내는 '절제된 접근'을 이야기하는 Untitled Document 진행되고 있습니다.


Q2. 도큐먼트를 시작하게 결정적 계기가 있으셨나요혹은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건가요브랜드를 시작하기 이전엔 어떤 일을 하셨나요?

A2. 디자이너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품고 있었던 오래된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언젠가는 하게 되겠지'라 생각하며, 차근차근 준비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저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 결심했죠. 보통, 남자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생각이 바뀌고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는데, 그렇게 변하지 않는 모습 보고 시작하게 됩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오래 전부터 품고 있던 생각이 변치 않으면 자연스럽게 일은 시작되는 것 같아요
 개인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부터 시작하여 소위 말하는  캐주얼 브랜드까지 다양한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했었습니다. 제 첫 직장이며, 가장 오래 있었던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기본기를 다졌고, 여러 카테고리와 환경을 경험했습니다그다지 두각을 나타내며 성과를 올리거나 그랬던 경험도 없었던거 같아요. 캐주얼 브랜드를 런칭하며 남성복 팀장으로 적이 있는데, 그 안에서 몇년 안에 접는 실패도 경험 보았죠. 이와 같이  성공 케이스가 없는 경험은 오히려 제가 도큐먼트를 시작할 , '0'에서 시작할 있었던 것 같아요. 1부터 100까지 갔다가 다시 '1'로 시작하는 상황을 경험했었으니까요.

Q3. 도큐먼트는 ‘REPETITION AND DIFFERENCE’라는 메인 테마를 갖고 시즌 전개되어 왔는데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상당히 철학적인 문구라는 것을 있었어요이를 도큐먼트에 대입시키게 계기가 있었나요?

A3. 'Repetition and Difference' '반복과 차이'라는 프랑스 철학자 '쥘 들뢰즈Gilles Deleuze'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데요. 도큐먼트를 만들기 위해 제가 동안에 모아 두었던 자료를 꺼내 보는데, 저의 스타일은 수없이 변해 왔습니다. 트렌드라고 포장하며 변해왔던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저의 옷장을 열어보는데, 네이비Navy 옷들만 같은 아이템으로 개씩 있는 거에요. 그래서 '이거구나.' 생각했죠. 내가 동안 수 없이 변해 왔어 이어져 왔던 것들은 내가 앞으로 다시 10년이 지나도 주위의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 거에요.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 '반복과 차이' 였어요. 허공에 맴돌 오래된 기억이 이제 자리를 잡게 된 것이죠.

Q4. 이번 시즌 또한 메인 테마 안에서 풀어내셨을 텐데전체적인 무드나 컨셉트가 저번 시즌과 유사한가요차이가 있다면 어떤 부분이 다른가요?

A4.봄, 여름 시즌과 가을, 겨울 시즌은 많이 달라지죠. 일단 봄, 여름 소재는 주로 면을 많이 사용했다면 이번 시즌은 가을, 겨울 소재인 울을 많이 사용했죠. 시즌 구분을 '첫 번째 반복과 차이', '두번째 반복과 차이'로 구분하니까, '같으면서도 다르게, 변하지 않지만 변화하는' 뉘앙스를 가져가려고 합니다. 하나의 방법으로 시즌마다 새로운 컬러가 보여집니다. 이번 시즌엔 카멜Camel 그레이Grey 그렇죠.
 도큐먼트의 옷은 제한된 컬러를 사용하다 보니, 피스만 따로 구분할 수가 없어요. 컬러 그룹으로, 덩어리로 보이죠. 멀리서는 확연한 컬러 덩어리가 보이고, 조금 가까이 왔을 때는 질감이 드러나고, 가까이 보고,  옷을 입어 봤을 때는 디테일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 같으면서도 다르게 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겉으로 확연하게 구분되지는 않지만, 가까이 보면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Q5. 멀리서 보면 매우 베이직한 스타일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 디자인적디테일적 요소를 찾아볼 있는데디자인 영감은 어디서 받으시나요?

A5. 저는 생각하는 좋아하는 편이어서, 어려서부터 ' 때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아무 생각도 안 하죠. 너무 많은 생각이 들어가면 한동안 그렇게 돼저는 그 것을 즐깁니다. 최대한 많이 보려고 하고, 머리속에 많이 넣어두죠. 생각하는 즐기다보니 너무 많은 요소로 꽉찬 것들에서는 호감을 느껴요. 가만히 들여다 봐야 되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도큐먼트에서 나타내는 이미지나 디자인, 그리고 디테일들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게 되는 같습니다. 보는 사람이 개입할 있는 여지가 있는 사진이나 조형물 그리고 특히 텍스트에서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Q6.  거시적으로디자인 철학이 있으신가요? (디자인은 이래야 한다또는 자신만의 기준)

A6.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최대한 욕심을 적게 가지려고 합니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계속 욕심이 생기는데, 그러다 보면 자꾸 바깥으로 꺼내게 됩니다노력한 만큼 뽐내려 하죠. 그러다 보면 보여지는 쪽에만 신경을 쓰게 됩니다. 연인들 사이에서 한쪽이 최대한 꾸몄을때, ' 봐달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과 같.
 마치 얘기를 들어 달라고 강요하는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식의 디자인은 지양하려고 합니다. 속삭이듯이 얘기하고 싶죠. 서로 오래 앉아서 대화하듯이 풀고싶습니다그러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곳이 보이거든요. 발견 되는 거죠. 친숙한 것이 다르게 보이죠.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어떻게 보여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바라보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편입니다. 어려운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일방적인 시선으로 요구하는 디자인보다는 보는 사람이 경험에 의해 그 의미를 느낄 수 있게 비워두고 싶습니다. 모티브가 되었던 '바세린Vaseline'도 그렇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죠. 친숙한 것을 유별나게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파자마 팬츠Pyjama Pants'와 '로브 코트Robe Coat'도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Q7. 그렇다면 '좋은 옷'을 결정짓는 요소에는 지금 말씀하신 디자인적 부분 외에 무엇이 있을까요?

A7. 좋은 옷은 재료(소재,컬러)의 선택과 그 합Balance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후엔 입는 사람들에 의해 좋은 옷의 기준이 결정 되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재료의 이해가 충분히 수반되어 디자인으로 연결되고그 디자인이 정확한 패턴으로 설계되어 디테일이 되고, 소재에 맞는 적절한 봉제로 완성이 된다면 '좋은 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합을 잘 이루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특히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그 외의 밸런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8. 원단에 있어서최근에 좋은 원단들을 사용하는 국내 브랜드들이 많아졌는데, 도큐먼트만이 갖고 있는 장점 또는 타 브랜드와의 차이점이 있나요?

A8. 저는 시즌을 준비할 때 소재를 결정하는 부분에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그 만큼 중요하죠. 아직 원단을 개발할 수 있는 상황은 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소재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도큐먼트만이 갖고 있는 장점이라기 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디자인을 할때 한 피스의 옷감이 있는 상태에서 디자인을 합니다. 원단을 만져보고, 느껴보고 전체적인 뉘앙스도 봐야 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스와치 상태로는 디자인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Q9. 당연히 모든 피스들이 자식 같은 마음이실 텐데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모델이 있으시다면?

A9. 브랜드의 바탕이 되었고, 정신에 해당하는 Untitled Document의 파자마 팬츠와 셔츠, 로브 코트 입니다

Q10. 브랜드를 시작한 후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언제인가요?

A10. 생각해 보니 너무 많습니다. 그 중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처음으로 브랜드를 준비하고 페어에 나갔을 때, 현장에서 바로 주문을 받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를 보고 주문을 한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Q11. 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도큐먼트의 옷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도큐먼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세요?

A11. 도큐먼트의 처음 네이밍이 되었던 My Document처럼, 크던 작던 개인의 Document의 소중한 부분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Q12. 끝으로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A12. 도큐먼트는 이제 시작입니다.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계속 가도록 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DETAILED INFORMATION 

브랜드 : 도큐먼트 (DOCUMENT)
국가 : 대한민국 (KOREA)
디자이너 : 이종수 (JONG SOO LEE)


*여러분의 내점을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편히 오셔서 시착부탁드립니다. 

판매처 : 슬로우 스테디 클럽 (SLOW STEADY CLUB)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5길 17 (팔판동 130-1) * 매장 앞 주차가능
운영시간 : 오후 12시 ~ 오후 8시
온라인스토어 : WWW.SLOWSTEADYCLUB.COM 
인스타그램 : @SLOWSTEADY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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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조남선

INTERVIEW : TEN-C

SECTION : INTERVIEW   2015.10.11 16:47

 「Ten-C」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두 디자이너의 자세한 소개, 탄생 배경 등을 소개하기 위해, 캐나다 밴쿠버를 기반으로 전 세계의 패션, 라이프스타일, 문화 등을 소개하는 「Inventory Magazine」의 2013년 가을/겨울호 중, Philip Watts의 인터뷰를 번역하였습니다. 오역, 의역이 다소 있을 수 있는 점 먼저 알려드립니다.                                             <번역 : 조남선>


1. 「Ten-C」를 런칭하기 이전에 어떤 곳에 속해있었나요?

Alessandro(이하 A) : 저는 30여년 전 이 필드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쯤 뒤에 Paul을 만났고 우리는 「Stone Island」의 아우터, 니트 디자인 부서에서 함께 일했죠. 또한 「C.P. Company」에서 14년 정도를 일했고, 「Moschino」, 「Missoni」와 같은 다양한 브랜드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Paul(이하 P) : Stone Island에 있었을 당시, Alessandro는 저의 니트 컨설턴트였습니다. 그는 그 밖의 다른 모든 일 또한 해왔지만, 니트에 특화되어 있었죠. 저와 Alessandro는 제가 「Stone Island」에서 일을 시작하기 약 1년 전 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되게 옛날 이야기네요. 그 전엔 3년 정도를 「Sabotage」라는 회사에서 보냈습니다. 독일 회사였고, 작은 규모였어요. 두 형제가 운영하던 회사였는데, 그 당시에는 테크노를 비롯한 다양한 음악 장르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 둘은 대부분의 시간을 이비자에서 보냈습니다. 어쨌든, 이태리에서 컬렉션을 전개했고, 기본적으로 그들은 우리가 하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완전한 자유를 주었습니다. 엄청 '힙(hip)'했지만 매우 작은 회사였죠. 재밌게도, 일 년 정도 후, 런던에 있는 「V&A Museum」에 Sabotage」의 옷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2. 「Stone Island」에서의 시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둘은 무엇을 했나요?

P : 제가 「Stone Island」를 떠났을 때, Alessandro는 여전히 「C.P. Company」에 소속되어 두 시즌정도 더 일하고 있었습니다. 전 몇 년동안 한걸음 뒤로 빠져있었지만 그동안에도 우린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만나고, 얘기해왔습니다. 아무튼, 「Stone Island」에서 일했던 마지막 해에 저는 365일 중 362일을 일했고, 그 자체로 터무니없었고, 말도 안되는 것이었죠. 가끔, 자기가 좋아하고 빠져있는 것에 너무 가까워져버린 나머지 초점까지 잃게 되고, 더이상 그 일을 좋아하지 않게 되어버리잖아요. 그래서, 다 떨쳐버렸습니다. 스튜디오와 제 아카이브까지 말 그대로 전부 다요. 하지만 얼마 후, ‘내 나이에 모든 것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걸 시작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당신도 30년 넘게 같은 일을 해왔다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Alessandro는 「Ten-C」를 런칭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 것은 항상 내가 해왔던 일들을 다시 시작하고 꾸리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이었죠. 당시엔 「Ten-C」를 만든다는 것이 제 자신이 지금껏 해왔던 모든 것을 완전히 버리고 정원사 같은 것이 되고자 했던 것에 대한, 스스로를 향한 연민이나 유감스러움같이 보였었어요. 어쨌든 우리는 같이 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새로운, 하지만 작은 비즈니스를 말이죠.


3. 「Ten-C」를 만들고자 했을 때 처음 생각했던 아이디어나 영감은 무엇이었나요?

A : 너무 과하게 심사숙고하거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둘의 입장에서는,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죠.

P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중한 결정이긴 했어요.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시달릴 수 있을 법한 제약들을 버리고 매우 직접적으로 일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할 때 있어서 제약들은 보통 ‘Creativity(독창성, 창조성)’과 직결되니까요. 엄청난 교훈이죠. 사실, 제약이 없으면 어려워지거든요. 제약이 있을 땐 그 주변에서 그 것들을 피하며 일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몇가지 규칙들에 맞춰 일하다 보면 할 수 있는 것들로 일을 처리해야만 하고, 그런 일련의 활동들이 일을 재밌게 만들잖아요. 하지만, 이러한 외부에서 오는 일적인 제약들은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뜻이고, 그 것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실망감과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하고싶어 했던, 우리를 위한 무언가가 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제약들을 떨쳐내야만 했습니다. 가령, 6개월에 한번 씩은 완전히 다른 피스들로 채워진 컬렉션을 만들어야 하는, 이 전의 것들은 모두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들 말이죠. 이러한 것들에 대해, 우리는 ‘아니, 그럴 필요 없지.’ 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매우 솔직하게, 「Men's sportwear」이 정말 무엇인지 껍질을 까고 싶었습니다.


4. 매번 클래식한 의류들을 기반으로 컬렉션을 전개하는 것이 계획되어 있었나요? 아니면, 새로운 디자인을 하는 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나요?

P : 남성복 시장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위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의류들이 개선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밀리터리와 같은 클래식 의류들은 매 해 발전되어 왔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파카들을 보면 그것들은 매 해 전혀 새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지죠. 개선되고 수정됨과 동시에 저와 Alessandro같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래, 이걸 쓰겠다.’ 라고 선택하는 겁니다. 저희를 위해 R&D(연구개발, Research and Development)를 하고있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네요. 생산자들에 의해 역사적인 디자인들이 솜씨 좋게 재탄생되고, 우리같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선택하고 가져가는 것이죠. 「Ten-C」에서 우리가 하는 것은 빈티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만, 우리가 사용하는 기준점은 지극히 실용적이고, 오래 지속될 것들입니다. 이러한 옷들은 3년, 4년, 혹은 10년동안 편하게 착용되도록 디자인된 것이지 결국 버려질 것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만의 디자인적인 부분을 추가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몇몇의 디테일들은 현대인의 생활에 있어서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죠. 너무 크고, 딱 맞지 않으며, 어떤 점에서 보면 실용적이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Ten-C」를 통해 이러한 클래식 의류에 새 숨을 불어넣기 위해 열심히 일해왔습니다.




5. 컬렉션을 통틀어 같은 원단을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해요.

P : 굉장한 원단을 발견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Ten-C」에서 약간 마조히즘 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Alessandro는 「C.P. Comapny」에서 이 원단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너무 위험해서 제외되었습니다.

A : 일본에서 제작된 무척 까다로운 원단이에요. 실(Yarn)이 정말 재밌는데, 다른 원단과 비교했을 때 완전히 다른, 그러니까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원단이었죠. 정말 사용하고 싶었던 원단인데, 굉장한 원단임에도 불구하고 큰 회사에서는 불가능했어요.

P : 이 원단은 원래 티셔츠의 원단과 비슷한 져지(Jersey) 종류인데, 그 것보다는 훨씬, 훨씬 더 두꺼워요. 원단을 이렇게 두껍게 제직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폴리에스터 극세사를 사용하는데, 원단을 짤 수가 없을 정도로 섬유가 굉장히 얇아 열 개에서 열 두개 가량의 극세사를 서로 붙여 원사 한 가닥을 만들어요. 그 후 그 원사 뭉치를 염색하면 실 가닥들이 분리되고요. 편직(Knitted) 방식으로, 매우 복잡한 과정입니다. 짜 만든(Woven) 원단 만큼 안정되거나 균일하지 않고, 염색할 때 2%에서 15%까지의 수축률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모든 원단은 처음, 중간, 끝 모든 과정에서 테스트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C.P. Comapny」나 「Stone Island」와 같이 대량 생산을 요하는 회사에서 일한다면, 당연히 이러한 문제들에 맞닥들이는 것을 꺼려하게 되죠. 덧붙이자면, 매우 비싸다는 점도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원단은 한 번 시도하여 굉장한 결과를 냈다고 하더라도, 너무 위험부담이 크기에 더이상 다루지 않게 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원단을 내버려 둘 수 없었고, 「Ten-C」를 위해 사용할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6. 앞서 언급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요?

P「Ten-C」가 갖고있는 가장 큰 문제는 가격대입니다. 만약 현재의 반 값에 컬렉션을 판매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행복할 것입니다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염색 전의 상태일 때에는 비교적 봉제가 용이하지만, 한 번 염색되고 나서는 재단 후의 원단의 변화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들어져요. 그래서 가먼트 다잉을 합니다. 이런 종류의 폴리에스터에 있어서는, 일부 봉제된 의류들이 전용 압력 솥 안의 고온을 비롯한 염색, 마감 공정까지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공정을 루마니아와 같은 동유럽에서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재단, 봉제를 동부에서 하고, 그 것들을 받아 이태리에서 염색하고, 마감을 위해 다시 보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가격적으로 훨씬 더 비싸지만 이태리에서 모든 공정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태리에서는 장인정신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사라져가고 있었고, 패션 산업 또한 중국, 인도, 베트남 등의 값싼 노동력에 의해 무너져가고 있었기에 이태리에서 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우리는 그들이 잘 하는 것에 대해 서포트를 해주고자 하는 것이지, 자선을 하는 개념은 아닙니다.


7. 원단에 변수가 많고 생산에 있어서 매우 복잡한 공정을 요하는데, 「Ten-C」가 제작하고자 했던 것에 제약이 되지는 않았나요? 제작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던 자켓들이 있나요?

P : 여전히 우리가 할 수 없는 여러가지의 것들이 있습니다. 북유럽 또는 북아메리카는 괜찮지만, 일본의 여름은 매우 덥고 습하여 그 시기에 적합한 자켓을 만들 수 없기에, 이러한 부분이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Ten-C」의 피스들은 어떤 특정한 시기만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평생 입을 옷’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시즌성이 없다’는 컨셉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추울 때 자켓을 입고, 그렇지 않으면 입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우린 사람들에게 「Ten-C」의 재킷들이 이상적인 여름 옷이라고 납득시키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옷을 입은 즉시 그 것에 대해 이해했을 때 가장 바람직한 것이지, 설명하기 시작하거나 납득시키려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Bureau」, 베를린의 「14oz」, 일본의 「United Arrows」, 로스 엔젤레스의 「Union」 같은 경우, 우리의 물건을 보자 마자 바잉해갔습니다. 이 샵들은 그들의 고객들에게 -보고 좋으면 사고, 두어달 뒤에 처음으로 꺼내입을 수도 있다-는 사고방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도 그 당시에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구매하기 보다는, 꼭 필요할 것이고 사용할 무언가가 될 것이기 때문에 구매하는 편입니다. 다음 해에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Ten-C」를 구매하는 고객들은 이러한 개념 자체를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플로렌스의 「The Bureau」에서 일하고 있는 Michael을 만나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매장에 설치한 새 대문의 손잡이가 어떤 것이면 좋을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벨파스트에 새로운 샵을 오픈했는데, 마호가니로 제작된 큰 대문에 가벼운 알루미늄 손잡이가 달려있었고, Michael은 그 것을 직접 만져보고는 맞지 않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어떤 것들은 그냥 그 자체로 옳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합니다. 선택하고 즉시 아는 거죠. 항상 옳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무언가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선택가능한 대안은 있기 마련입니다만, 최선의 선택은 있기 마련입니다. 「Mont Blanc」의 펜이 그러하고, 「Rolex」의 시계가 그렇습니다. 「Alden」과 「Church's」 또한 그렇죠. 그 것들은 선택하고는 옳은 선택이라는 것을 즉시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8. 저는 「Ten-C」의 옷 자체를 견고하게 지켜주는 원단을 좋아합니다만, 군복에 가까운 디자인들임에도 디테일들을 숨기지 않습니다. 포켓을 비롯한 다른 디테일들을 바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숨기거나 위장하지 않는데요.

P : 맞아요, 그 발상이 우리가 브랜딩과 같은 부분을 걸러내거나, 실제로 옷 안에 브랜드 라벨을 달지 않게끔 했습니다. 법적으로 옷에 라벨을 달아야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옷 자체가 정말 어떤 옷인지 알 수 있게끔 하고 싶었고, 라벨이나 옷 안에 있는 잡다한 브랜딩으로 정신이 산만해 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옷을 먼저 보고, 원단을 만져보고 입어보고, 그러고 나서 어떤 브랜드인지 고려하는 것, 이것이 「Ten-C」의 브랜드 이름과 연관된다고 생각합니다. 「The Emperor's New Clothes(벌거벗은 임금님)」. 보편적인 이름은 아닙니다만, 전 그 이야기가 담은 의미를 신뢰하며 소비자들 또한 자신이 구매한 것 뒤에 감춰진 진가를 알아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만약 어떤 것이 아름답다면 ‘그 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또는 ‘누가 만들었는가?’에 대한 것은 상관이 없죠. 매우 많은 제품들이 라벨에 어떤 이름이 달려있는지 때문에 그냥 팔려나가는 것을 보고, 그러니까 흔히 ‘명품(Luxury)’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9. 명품 브랜드들의 개념 자체가 희석되어서일까요? 더이상 품질에 관련된 어떤 것도 할 게 없는 것 같아 보이긴 해요. 이런 표현들이 같은 맥락이겠죠. - '명품은 간단히 말해 그냥 비싼 브랜드이고, 제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는 어디에서 제작되었는지는 상관이 없다.'

P : 진짜 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 「Alden」을 예로 들자면, 사실 이런 브랜드 중 몇가지는 「Ten-C」의 기준을 세우는 데에 참고했습니다. 당신의 일부분을 차지할 것들이라는 것이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아지고, 당신의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말이죠. 이 것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Ten-C」의 제품이 이와 같은 매력과 지속성을 가지길 바랍니다. 원단이 매우 촘촘하게 짜여져 입다 보면 부분적으로 약간씩 늘어날 것입니다. 「Ten-C」에서 처음 만든 재킷을 갖고 있는데, 팔이 바나나 모양으로 굽어졌어요. 아주 좋은 의미로요. 4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이렇게 된거죠. 부자재엔 녹이 슬고, 특정 부위의 원단은 바래죠. 데님이나 스웨이드가 갖는 경년변화와 비슷한 겁니다.

10. 「Ten-C」를 성장시키기 위해, 무려 여덟 시즌에 걸쳐 컬렉션을 확장시키기 위해 생산이나 세일즈의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경영했나요?

A : 초기 컬렉션에서 4~5모델정도를 추가했어요. 하지만 매 시즌 7모델만을 선보입니다.

P : 우린 두 모델 정도를 빼고 다시 두 모델을 집어넣는 식으로 진행하는 편입니다. 따라서 매 시즌 약간씩 다른, 그러니까 핵심적인 다섯 모델에, 그 특정 시즌에 출시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여 제작한 새로운 두 모델을 더해서 컬렉션을 선보이죠. 아, 그 시즌에서 제외된, 하지만 과거에 판매했던 모델을 리오더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리고 몇가지 여성 재킷들 또한 막 시작했습니다. 남성용과 같은 모델들이지만, 핏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그냥 작은 버젼이 아니고, 아예 다른 체계로요. 또한 우린 자켓과 라이너의 색상을 조금씩 바꾸기도 합니다. 밀리터리풍에서 조금더 밝은 쪽으로요. 아메리칸 스포츠웨어 쪽으로 방향을 좀 틀었습니다. 또한, 「Ten-C」의 라이너가 다른 모든 「Ten-C」의 재킷에 호환된다는 점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올리브 파카에 안에 오렌지색 라이너를 부착하는 거것과 셔링 라이너를 부착한 것은 느낌이 다르며 옷 자체를 극적으로 바꿔줍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원단입니다.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굉장한 원단이기 때문에 이 원단을 더 개발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원단을 찾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어쨌든, 최근에는 「Ten-C」를 얼마나 성장시키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얘기해봤는데, 그게 얼만큼이든 성장시키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린 자선가도 아니고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한, 동시에 우리의 고객들을 위한 ‘비즈니스’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린 「Ten-C」와 그 주변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존재함에 감사하지만, ‘우리가 「Ten-C를 마음속으로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적합한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우리의 기준들을 우선시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죠. 확장시키기를 원치 않는다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는 이전에 다른 많은 프로토타입들을 만들었었는데, 다시 돌아와서 생각해 봤을 때 「Ten-C」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감히 떨쳐낸 적이 있습니다. 저는 「Ten-C」가 추후에 몇가지 니트웨어들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Alessandro의 경험을 토대로 한다면 「Ten-C의 정체성과 걸맞는 것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해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성장하고 싶지만, 「Ten-C」는 우리 둘 만의 일이기 때문에 타협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업의 확장만을 위해서 어울리거나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생산하는 것보다, 지겹고 심심하더라도 계속 한 원단을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11. 「Ten-C」는 두 분에게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요? 한 번, 혹은 수천 번 당신의 옷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그 옷으로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가요?

P : 자신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꼭 가지라고 하고싶습니다. 우스꽝스럽고 바보같이 들리시겠지만, 궁극적으로 그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입은 횟수에 상관 없이 매번 「Ten-C」를 구매하고 착용하는 사람들은 ‘이 옷 진짜 대단하다.’ 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개념은 매우 힘있는 것이며, 저희에게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 모든것들에 큰 작용을 한 것들 중 하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아이디어와 영감을 아우르는- 우리 할머니의 100년도 더 된 나무 수저입니다. 단지 좋은 물건일 뿐이었지만 저에게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조차 없는, 말 그대로 모든 것(World)을 의미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이와 같은 의미를 알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몇 년 사이에 수많은 장인들과 그 정신이 사라졌는데, 정말 부끄러운 거라고 생각해요. 저에겐 매번 제작을 의뢰하는 목수가 있는데, 그를 예로 들자면 60세 정도 되었고 제가 의뢰한 4개의 옷장을 만들어줬습니다. 그는 모든 접합부를 주먹장 맞춤(Dovetailed) 식으로 제작하는데, 나사와 같은 더 간편한, 널리 쓰이는 방식도 있지만 매 번 이 방식으로만 제작해요.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지니까요. 서랍장을 열 때마다 굉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것이 「Ten-C를 통해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입니다. 아마 누군가는 여름에 옷장을 열고 「Ten-C」의 재킷을 만지며 제가 서랍장을 열면서 하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절이 바뀌길 기다렸다가 비로소 다시 꺼내입을 수 있는거죠.



 DETAILED INFORMATION 

브랜드 : 텐씨 (TEN-C)
국가 : 이탈리아 (ITALY)
디자이너 : 
ALESSANDRO, PAUL


*여러분의 내점을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편히 오셔서 시착부탁드립니다. 

판매처 : 슬로우 스테디 클럽 (SLOW STEADY CLUB)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5길 17 (팔판동 130-1) * 매장 앞 주차가능
운영시간 : 오후 12시 ~ 오후 8시
온라인스토어 : WWW.SLOWSTEADYCLUB.COM 
인스타그램 : @SLOWSTEADY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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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조남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