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C MUSIC : 35TH TRACKLIST

SECTION : MUSIC   2018.09.09 10:59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 입니다. 8월은 5월이나 6월, 7월에 비해 조금은 여유롭게 지나갈 줄 알았는데, 지난달과 비슷한 속도로 지나갔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결국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는 얼마나 많은 일이 지나갔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사소한 일이던지 열심히, 치열하게 몰입하는 자세에서 비롯되는게 아닌가 싶네요. 9월도 지난달에 이어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더욱 열심히 보내고 싶습니다.


지난 달에는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정해진 질서와 위계를 두지 않고 여름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 해보았다면, 이번 트랙리스트 에서는 같은 형식을 유지하되 거기서 장르의 수를 더 늘려서 포크록, 클래식, 프렌치 하우스, 노이즈 앰비언트 등 더욱 다양한 장르들로 구성 해보았습니다. 요즘 저녁 밤에는 굉장히 시원하죠. 산책 하시거나 간단한 운동 하시면서 듣기 좋으실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들어주세요!




https://soundcloud.com/slowsteadyclub/sets/ssc-35th


*사운드 클라우드 링크가 삽입되지 않아 URL로 대체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Hosono Haruomi>




예전에 작성했던 포스팅에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YMO,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라는 신스팝 / 테크노팝 밴드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실은 사카모토 옹의 영향력이 다른 멤버들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크게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 저에게 당연하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호소노 하루오미와 타카하시 유키히로 두 멤버 모두 일본 내에서도 음악사에 기리기리 남을 굉장한 역사를 쓴 위인들 이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포스팅에선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의 멤버이자, 현재까지도 왕성한 솔로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뮤지션 '호소노 하루오미'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Happy End - Kaze wo Atsumete>





타이타닉 호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일본인인 '호소노 마사부미'의 손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그는 1947년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대중음악을 즐겨 들었으며, 중학생이 되었을 땐 록에 심취해 있었다고 합니다. 15살에 처음 기타를 잡게되고, 잠시 만화가의 꿈도 꾸었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음악의 길로 가기로 마음 먹습니다. 


릿쿄 대학 재학중에, 베이스 기타를 시작으로 여러 밴드를 거쳐서 1969년 '만우절' 이라는 밴드로 정식 데뷔를 하게 되고, 그 이후에 오오타키 에이치 , 마츠모토 타카시 , 스즈키 시게루를 만나 전설적이 밴드 핫피엔도 (Happy End)를 결성하게 됩니다. 영어 표기로 하였을때 발음은 '해피 엔드'가 맞지만, 핫피엔도 로 표기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이 밴드를 결성한 당시는 영국에서 시작된 로큰롤의 열풍이 미국을 지나서 일본에도 그 영향력을 막강하게 행사할 무렵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모든 록 음악은 영어로 된 가사로 불려졌지만, 이들은 모든 곡의 가사를 일본어로 부르게 됩니다. 이 사태가 당시에 굉장히 큰 이슈로 떠오르게 됐다고 합니다. 이들은 록에 일본 고유의 정서를 담지 못하게 된 모습에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어로 록 음악을 하는데에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한몸에 받으며 데뷔를 하게 됐는데, 이런 모든 논란을 불식시키고 큰 성공을 하며 훗날 J-POP에 시초 라는 수식어 까지 붙게됩니다.


전 예술의 참된 가치가 바로 이런데에 있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위계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죠. 록이 왜 일본어, 한국어 등과 같이 영어가 아닌 모국어로 불러지면 안될까요? 미국이나 영국에서 온 음악이라도 자국의 정신을 자국만의 언어를 통해서도 충분히 증명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8월에 전 유재하의 앨범을 계속해서 들었는데, 영어로 된 노래들의 감동의 크기에 비해 한국어로 된 가사의 노래를 들었을때 감동이 훨씬 더 와닿았고, 이 기분은 영어로 된 노래를 들었을 때와 비교가 불가능하다 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감동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 포인트가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난 땅과, 우리의 언어를 잊으면 안된다는 점이죠. '핫피 엔도'는 이러한 중요한 정신을 로큰롤로 잘 표현해냈다고 생각합니다. 





<Happy End>




당시 일본의 비틀즈 라고도 불리우던 이 포크록 슈퍼밴드 핫피엔도는, 3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고 3년이라는 짧은 활동을 마치고 해체하게 됩니다. 하지만 각각의 멤버들은 해체 후에도 서로의 작업물들을 위해 계속해서 세션 연주를 해주고 자주 교류했다고 하네요. 제가 생각했을때 호소노 하루오미의 진정한 역량은 핫피엔도의 해체 후에 발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Haruomi Hosono - Hosono House, 1973 >




< Haruomi Hosono - Tropical Dandy, 1975 >




< Haruomi Hosono And The Yellow Magic Band - Paraiso, 1978 >




핫피 엔도가 해체된 후에 호소노 하루오미는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솔로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그의 첫번째 정규 앨범 [Hosono House] 는 핫피엔도 시절의 포크록의 성격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이 시그니처 이기도 한 트로피컬 사운드를 처음 선보이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이 앨범에 세션맨으로 핫피엔도의 기타리스트인 스즈키 시게루도 참여합니다. 호소노 하우스의 앨범 커버의 폰트를 맥 드 마르코가 2012년 발표한 앨범 [2] 에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인디 록과 팝을 아우루는 아티스트가 이 호소노 하루오미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여기서 알 수 있는데요, 여기서 호소노 하루오미의 업적에 대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앨범 뿐만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싱 작업도 많이 했는데요. 일본 원조 테크노팝 아이돌로 알려진 여성 가수 Chiemi Manabi (치에미 마나비) 의 곡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 Chiemi Manabi - Targeted Girl / ねらわれた少女, 1982 >




이 곡은 지금 들어보면 사용된 악기들의 질감은 복고풍의 느낌이기에 단순히 옛날 노래라고 대충 듣고 넘어갈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멜로디나 곡의 전개 등이 굉장히 세련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곡은 꽤나 괜찮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때가 1982년이니, 류이치 사카모토, 타카하시 유키히로와 YMO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활동을 시작하고 몇년이 지난 뒤에 나온 곡이라고 치면, 이들이 내놓은 테크노팝 이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대중 가요 시장에도 흡수되기 시작했음을 의미 합니다. 


이렇듯, 호소노 하루오미를 포함한 YMO 멤버 모두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꾸준히 구축해 나감과 동시에 더욱 발전 시키는 행보를 오랫동안 보여줘왔는데, 일본 자국에서나 세계적으로 대중 가요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발휘 했다는 사실이 무척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사실, 제가 보았을때 현대의 음악가들은 대게 주류 시장과 비주류 시장이라는 활동 영역 및 음악적 구축 세계가 철저히 이분화 되어 있는데 이들만큼 자신의 세계를 예술적으로, 그리고 실험적으로 잘 구축해나가며 대중 문화에도 영향을 행사하는 뮤지션은 몇 없다고 봅니다. 이들은 이미 40년 전부터 이런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으니, 맥 드 마르코가 충분히 앨범커버에 쓰일 폰트를 오마주 하여 존경심을 표했을 법 합니다.




Hosono Haruomi - Cochin Moon, 1978 >




Hosono Haruomi - Watering a flower, 1984>




호소노 하루오미는 YMO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멤버들과 함께 작업한 그의 네번째 스튜디오 앨범 [Paraisp] 이후의 작업물들에서는 더 실험적이고 몽환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5집 에서는 조금 난해한 스타일의 일렉트로니카를 들려주고 있다면, 그 다음 6집에서는 완벽한 앰비언트 사운드를 구현해내 지금까지 점진적으로 발전한 그의 스타일을 매우 추상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그의 앨범들을 들어 보았을때, 대부분의 앨범의 러닝 타임이 50분을 넘지 않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엔 대체적으로 앨범 안의 트랙수가 적은데, 그것은 각각의 트랙마다는 러닝타임이 평균적으로는 길다는 뜻입니다. 앨범 전체의 러닝타임 보다는 하나의 곡 안에서 최대한 감정을 실어 이야기를 풀어내겠다는 그의 뜻이 보이는 듯 하네요. (꽤 비약적인 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Hosono Haruomi  - Paradise View, 1985 >




< Hosono Haruomi - S.F.X, 1984 >




< Hosono Haruomi - Formation of the Venus, 1985 >




Hosono Haruomi  - The Endless Talking, 1985 >




호소노 하루오미는 종교 음악, 민속 음악에도 큰 관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이런 관심은 Paradise View, Mercuric Dance 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는데요. 저는 이 두가지 앨범이 그의 80년대 솔로 앨범들 중 가장 좋았습니다. 대부분 그의 솔로 앨범 작업물들은 실험적인 성격을 띄고 있긴 하지만 이 두가지 앨범들은 뭐랄까요. 저에게 있어서 전위적 일렉트로니카의 아버지, 아 아버지보다 위에라고 할 수 있죠. 할아버지 격인 Karlheinz Stockhausen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 Karlheinz Stockhausen - Oktophonie >




저의 주관적인 연상이긴 하였으나, 그래도 슈톡하우젠의 음악은 전자음악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한번쯤은 듣고 넘어가보셔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링크를 공유해드렸습니다. 어떠신가요? 호소노 하루오미의 작업물과 비교하면서 들어 보시라고 추천해드리고 싶지만, 좀 더 경쾌하고 맑은 그의 음악과 비교하기엔 꽤나 음산하죠. 네. 그럴수 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음악이 지닌 위계를 상당 부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화성과 조성들이 전부 뭉개진 상태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전위적인 전자음악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초에 바그너와 브람스 등이 있습니다. 굉장히 신기하지 않나요? 클래식 음악이 전자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요. 기회가 된다면 이 관계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하는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Hosono Haruomi - Omni Sight Seeing, 1989 >




< Haruomi Hosono - Medicine Compilation, 1993 >




호소노 하루오미는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YMO의 활동을 유지하면서도 솔로 앨범 작업에도 게으르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는데요, 이것을 보고 저는 바쁘다는 이유로 여러가지 일을 더 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YMO 멤버들과의 주고 받은 엄청난 시너지 덕분에 솔로 작업에도  욕심이 생겨 더욱 집중할 수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한번 내는것도 아니고, 1년에 한번 내기도 버거웠을텐데 1984년엔 두차례, 1985년엔 세차례 솔로 앨범을 릴리즈 했습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일을 할 시간도 자신이 컨트롤 하는 것이고, 그 에너지도 자신이 컨트롤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역시나 모든건 결국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 되는 것 같습니다.




< Hosono Haruomi >




< Hosono Haruomi >




지금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일본의 진정한 1세대 슈퍼스타 밴드 YMO의 리더였던 호소노 하루오미. 오늘은 그의 음악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솔로앨범들 위주로 소개해보았습니다. 제가 오늘 소개해드린 앨범들은 사실 그의 솔로 앨범들 중 반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 프로듀싱을 맡은 다른 아티스트들의 트랙이나, 영화음악 등을 더하면 그 양은 굉장히 방대해집니다. 이 많은 작업물들을 어떻게 진행하게 되었을까요? 때로는 고갈된 아이디어의 늪속에서 허우적대지는 않았을까요?


물론 그럤을 것입니다. 제가 두차례 갔었던 남산 소월길에 위치한 피크닉에서 진행중인 류이치 사카모토의 전시 중 알바 노토와 함께 가졌던 인터뷰 내용중에 창조적인 작업물들을 위해 일상 생활에서도 굉장히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모든것을 세심하게 느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저도 이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감정과 경험이라도 그것을 토대로 다른 감정이나 아이디어가 도출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단계에 오른다면, 분명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소노 하루오미도 아마 이런 자세를 가졌기 때문에 더 많은 느낌과 감정을 가지고 많은 작업물을 낼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9월달은 저도 더욱 더 많이 느끼고 깨닫는 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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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세영

SSC MUSIC : 34TH TRACKLIST

SECTION : MUSIC   2018.08.02 12:59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 입니다. 7월 한달간은 정말 매서울 정도의 엄청난 무더위 때문에 많은 분들이 고생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날일수록 체력관리나 컨디션 조절은 정말 필수라고 생각하는데요, 저같은 경우는 여름철에 체력이 굉장히 저하되는 편이라 최대한 깊은 숙면을 취해서 피로를 없애려고 꽤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잠을 잘때 더군다나 꽤나 예민한 편이라 얇은 빛이나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려도 바로 깨는 편인데, 얼마전 귀마개를 구입해서 잘때마다 끼고 있는데 효과가 좋은 것 같네요. 아무튼간,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방식으로 더위를 이겨나가면서 동시에 즐기기도 하셨으면 좋겠네요. 무더운 날씨를 시원하게 이겨내실수 있게 좀 더 다채로운 음악으로 돌아온 SSC MUSIC 입니다.


이번 트랙리스트 에서는 7월 한달간 대구와 서울에 위치한 여러 레코드샵에서 제가 찾은 하우스 트랙들과 거기에 다운템포, 재즈, 힙합, 얼터너티브 록, 앰비언트 등의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로 제가 생각하는 여름의 분위기를 표현하는데 집중해보았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트랙리스트에서는 주로 전개상의 기승전결의 형태가 꽤나 단조로웠습니다. 하지만 이번 트랙리스트에서는 느린 템포의 음악으로 시작하여 점점 빨라지다가, 마지막에 또다시 느리게 마무리 되는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번 트랙리스트에서는 하우스로 시작하여 재즈 힙합과 재즈로 이어집니다. 그 다음 다시 하우스로 시작하여 마지막엔 얼터너티브 록으로 마무리 됩니다. 기존에 제가 해보았던 트랙들의 전개방식을 깨고도 다른 장르들이 서로간에 자연스럽게 어울려지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열대야가 계속 되면서 새벽까지도 잠을 못이루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밤에 맥주 한잔 드시면서 듣기 좋을것 같네요. 재미있게 들어주세요!





 




< John Scofiled >





현대 재즈 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타리스트 두명이 있습니다. 바로 펫 메스니와 존 스코필드 인데요, 펫 메스니는 국내에서도 꽤 많은 층의 팬을 보유한데에 비해서, 존 스코필드는 안타깝게도 두터운 팬층이 없습니다. 펫 메스니의 유려한 멜로디컬한 연주에 비해 그는 좀더 리드미컬하며 블루지한 연주를 선보이기 때문에 조금은 덜 대중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전 이부분이 맘에 들었던 이유가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재즈인지 블루스 록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블루지하면서 흡사 키보드를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톤과 재즈의 즉흥성의 조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께 빨리 그의 음악을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 [East Meets West], 1987 >





1978년 릴리즈 된 그의 첫 정규앨범 [John Scofield], 그러나 1987년에 [East Meets West] 라는 타이틀로 다시 릴리즈 되었습니다. 우선 이렇게 변경된 앨범 타이틀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 앨범에 참여한 드러머인 Hino Motohiko (히노 모토히코),  베이시스트인 Clint Houston (클린트 휴스턴),  트럼펫터인 Terumasa Hino (테루마사 히노) 모두 일본인이거나, 일본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멤버 구성과는 상관없이 제가 들었을땐 동양적인 분위기가 난다기보다 록과 정통재즈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사운드가 좀 더 돋보이는 듯 합니다. 잠시 역사에 대한 공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960년대까지 재즈씬을 리드하는 악기들은 주로 피아노나 트럼펫 등의 악기 였습니다. 이때 당시 웨스 몽고메리가 등장하여 재즈에서 기타가 가지는 위계를 좀 더 높은 위치로 끌어올리는가 싶었지만, 당시에도 이미 엄청난 경지에 오른 마일스 데이비스와 오넷 콜먼이 또 다른 프리스타일 재즈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안타깝게도 웨스 몽고메리의 기가 막힌 연주는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었죠.


그리고 나서 전후세대인 1970년대를 기준으로 하여 많은 것이 변하게 됩니다. 이때 당시는 기타가 중심이 되는 록, 블루스, 리듬앤블루스 등이 장르들이 번성할 때였는데, 이 세가지 장르 모두 굉장히 자유분방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이러한 음악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음악에서 기타가 가지게 되는 가능성은 점차 더욱 크게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재즈 뮤지션들도 이러한 흐름에 합세하여 다른 장르와 혼합하는 크로스오버의 길을 모색하게 되고 많은 뮤지션들이 피아노나 트럼펫 대신 기타를 선택하게 됩니다. 거기에 록 음악의 무시무시한 발전은 기타 이펙터의 발전에도 기폭제 역할이 되며 이는 자연스레 재즈씬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때 등장한 기타리스트들이 존 스코필드를 포함한 팻 메스니, 존 맥러플린, 빌 프리셀 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 있어서 존 스코필드의 데뷔 앨범 역시 실험적이지 않을수가 없었겠죠? 그는 데뷔앨범 뿐만이 아니라 이후에 발자취에서도 실험적인 면모를 마음껏 보여주게 됩니다.





< Miles Davis [Star People], 1983 >




< Miles Davis [Decoy], 1984 >




< Miles Davis [You're Under Arrest], 1984 >




존 스코필드의 발자취에서 빼놓을수 없는 시기가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밴드에서의 시절이라고 전 말하고 싶습니다. 데뷔 이후로 베이시스트 찰스 밍거스와의 협업, 비브라폰에 게리 버튼 퀸텟, 색소폰에 데이브 리브만 퀸텟 활동을 병행하며 선배 정통 재즈 플레이어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했던 그의 연주를 듣고 마일스 데이비스가 부름을 요청합니다. 




< Miles Davis와 John Scofiled >




< Miles Davis - Code M.D. >




전 SSC MUSIC 이라는 컨텐츠를 진행하는 것이 좋은 이유가 음악을 좋아해서가 아닌 다른 것이 있는데요. 바로 제가 알고있었던 또는 몰랐던 음악을 스스로 공부해 나가면서 한단계 더 성장하고 있음이 느껴져서 인데요. 음악을 많이 듣다보면 시대와 장르 상관없이 모든것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는 현상이죠. 이런것들을 통해 음악이 아닌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고나 할까요? 


이번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사실 마일스 데이비스가 이렇게나 진보적인 아티스트 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존 스코필드가 세션으로 참여했던 앨범 [Decoy] 에서 마일스 데이비스는 재즈와 일렉트로니카의 조화를 현실로 구현해냈습니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채 앨범을 들었던 저는, 이 앨범의 처음 세트랙이 연달아 플레잉 될때 드럼머신을 이용해 비트를 찍은듯한 드럼 사운드에 함께 들려오는 신디사이저 멜로디를들으며 '내가 잘못 재생시킨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이 앨범에는 Robert Irving III (로버트 어빙 3 세) 라는 아티스트가 신디사이저와 드럼 프로그래밍으로 참여 했는데요, 트랙들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전혀 어색하지도 않고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이 앨범은 꼭 전부 들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 John Scofield - High And Mighty, 1985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러한 성향의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존 스코필드는 좀 더 강렬하게 자신의 음악적 이고를 내뿜게 됩니다.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 나온 후에 1985년부터 캐나다의 그라마비전(Gramavision) 레이블을 통해 역동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퓨전 재즈 앨범들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시절부터의 그의 연주는 블루지함보다는 조금 더 도시적인 느낌이 더욱 가미되어 날카로운 톤에 유려하면서 부드러움이 더해져 조금 더 원숙한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이 시기 이전에 존은 블루스에 기반을 두어 재즈의 영역에서 다양한 실험을 했다면, 이 시기엔 펑크와 소울의 좀 더 중점을 두고 퓨전 재즈의 울타리 안에서 화려한 연주 대신 좀 더 절제된 사운드가 돋보이는 듯 합니다. 사운드는 절제 되어있지만 더욱 감수성이 짙게 묻어난다고 해야할까요? 전달 하고자 하는것의 최소한만 표현하면서 최대의 감동을 선사하는것. 이런 감동이 저에겐 늘 인상깊게 다가옵니다.




< John Scofield - Since You Asked, 1990 >




1990년대로 넘어오기 전 존 스코필드는 ENJA (엔야)와 GRAMAVISION (그라마비젼) 레이블을 통해 그의 색채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1990년에 드디어 BLUE NOTE (블루 노트) 레이블에서도 정규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때 작품들은 대게 정통 재즈 스타일을 따라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그가 레이블을 옮기게 되면서 나름대로의 과거의 부흥을 다시 일으켜 그 안에서 자신의 실력을 표현해내고 싶은 르네상스적 욕망이 솟구쳤는지 몰라도 블루 노트 레이블에서 낸 앨범들은 대게 굉장히 클래시컬한 재즈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블루 노트 레이블에서의 데뷔작 [Time On My Hands]를 필두로 큰 호평을 얻으며 이어지는 [Meant To Be], [What We Do] 등 모두 정통적인 재즈 작법과 더불어 더욱 미니멀해진 연주가 잘 어우러진다는 평을 받으며 성공적인 행보를 보여줍니다. 이후에도 그는 정통과 현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그만의 재즈 세계를 구축해 나갔는데, 2000년대 초반에 많은 사람들이 그가 다시 정통 재즈로 우회할 것이다 라는 예측을 했지만, 이를 뒤엎고 그는 [Up All Night] 이라는 앨범으로 소울과 펑크로 회귀한 모습을 보여주며 다시 한번 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 John Scofield - Philiopiety, 2003 >




전 집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자주 보는 편입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이 있어서도 그렇지만 저도 보는걸 꽤 즐기는 편이어서죠.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쿵푸팬더 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누구도주인공 팬더인 포를 인정해주기는 커녕 무시하고, 깎아내리고 따돌림 당하기 일쑤였는데, 잘하는 것이라곤 그저 먹는것 뿐이었던 이 팬더가 어떻게 세계 최강의 쿵푸 고수인 타이렁을 무찌를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 비법은 바로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포를 위해 음식으로 유혹하는 방법으로 쿵푸를 가르쳐 고수의 길로 들여놓게 한 시푸 스승님의 지혜로운 태도도 감동적이었지만, 국수집을 운영하시는 아버지가 '비밀 소스는 사실 없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면서 만들면 정말 특별한 맛이 난다' 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포는 각성을 하게 되죠. 


이렇듯 현재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어떻든간에, 100퍼센트 완벽하게 자기 자신을 찾으려 하는 노력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노력을 결과로써 성공적으로 완성 시키려면 부지런함과 성실함, 꾸준함 등의 태도가 뒤따라야만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가 생각했을때 제일 중요한 건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 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믿음으로써 운명을 실현 시킨다는 점에서 전 쿵푸팬더의 포를 보고 매트릭스의 네오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이렇게 잘 믿으려면, 자신감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도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이죠. 2018년도 어느새 상반기가 끝나고 하반기로 접어들었는데, 남은 한해도 여러분 모두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될수 있는 좋은 기회로 가득 찼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8월도 모두 힘내시길 바라며,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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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세영

SSC MUSIC : 33RD TRACKLIST

SECTION : MUSIC   2018.07.03 16:45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 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항상 5월이 한해 중 제일 빨리 지나가는 달이었는데, 이번에는 5월보다 6월이 더 빨리 지나간듯한 느낌이네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7월은 얼마나 더 빠르게 지나갈 지 궁금해지네요.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면서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잠시나마 움츠러들겠네요. 지난달보다 조금 더 시원해진 분위기로 돌아온 SSC MUSIC 입니다. 


이번 트랙리스트에서는 Andras (앤드라스), Coastal Haze (코스탈 헤이즈) 레이블의 Hugo Jay (휴고 제이), Seb Wildblood (셉 와일드블러드), String Theory (스트링 띠어리) 등으 아티스트들이 들려주는 딥하우스 트랙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번 트랙리스트를 구상하면서, 장르에 상관없이 여름에 어울릴만한 트랙들로 다양하게 짜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이 트랙리스트를 완성하고 들어보니 전부 딥하우스로만 구성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기대했던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장에서 모니터링 하며 들어보니 모든 트랙들이 여름에 꽤 잘 어울린다고 느껴졌습니다. 출퇴근 길 차 안에서나, 친구들과 집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잔 하실때, 휴식 보다는 조금은 처질 수 있는 분위기를 돋궈주는 느낌이라 이런 상황들에 더 잘어울릴 것 같네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퇴근 후에 맥주를 한잔 해야겠네요. 7월달도 무사히 잘 보내시길 바라면서, 재미있게 들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John Paul Jones>




중학교 1학년, 제가 14살때 생일 선물로 받았던 MP3는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들 중 하나입니다.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가고서는 늘 30분 넘게 음악을 듣다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듣기 일쑤였으며, 시험기간이나 심지어 수업시간에도 음악은 늘 저와 일심동체일 정도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친구 사이였죠.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는 제 성장기 시절 기억중 하나는, 겨울 아침에 학교를 등교하며 버스 안에서 Led Zeppelin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을 들었던 것인데, 곡의 드라마틱한 전개 방식, 소울풀한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 기가 막힌 지미 페이지의 기타 솔로 연주 등 여러모로 흠잡을 구석 등 여러모로 '이런것이 진정 락 이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레드 제플린을 포함해 AC/DC, 딥퍼플, 블랙 사바스 등 하드락에 한창 미쳐있을 시절, 각 밴드를 대표하는 프론트맨들은 저에게 숭배해야 하는 우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때 당시엔 음악을 들으며 좀 더 깊게 파고드는 '질문'을 제 스스로에게 던지지 못했던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 곡의 이 부분에선 왜 이런 이펙터를 사용했을까?' , '이 곡의 가사는 누가 썼을까?', '이 소리는 어떤 악기로 낸 것일까?' 등의 것들 말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이런 원숙한 자세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에 한계가 분명 있긴 있었죠. 지금 성인이 되고 난후에 제가 록 밴드들의 음악을 들었을 때 가장 많이 느꼈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프론트 맨이든 아니던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서로 호흡을 맞추는 팀워크' 라는 것입니다. 어떤 밴드든 모든 멤버들이 비슷한 크기로 큰 인기와 주목을 받을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서로가 서로의 빈자리를 메꿔주고 신경 써주고 배려해주는 것이 진정한 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밴드에서 다른 멤버들에 비해 큰 인기는 누리지 못했으나,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한 멤버들과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그들의 역량을 재조명 해보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앞서 말씀드렸던 레드 제플린의 베이시스트 이자 키보디스트인, John Paul Jones (존 폴 존스)를 소개해드립니다.    




<John Paul Jones>





존 폴 존스는 유년기 시절 피아노를 배웠었지만, 저음의 매력에 매료되어 이내 베이스로 악기를 바꾸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는 편곡자이자 피아니스트 였으며 어머니 역시 음반 사업에 종사하시는 분이었는데, 부모님의 영향과 더불어 그는 Big Bill Broonzy (빅 빌 브론지), Charles Mingus (찰스 밍거스), Sergei Rachmaninoff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등의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받으며 자랍니다. 그는 16살 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롤링 스톤즈의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하게 되며 실력이 출중한 세션맨으로 점차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됩니다.


이때 당시 그는 Jeff Beck (제프 벡), Rod Stewart (로드 스튜어트), Cat Stevens (캣 스티븐스) 등 다수의 아티스들과 함께 연주했으며 편곡을 포함한 영화 음악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는 당시 포화 직전 상태에 이르는 엄청난 작업량으로 인해 서서히 지쳐가는 상황이었는데요, 이때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지미 페이지가 밴드 멤버를 구한다는 사실을 아내를 통해 듣게 되고, 이미 그의 연주력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지미는 적극적으로 그에게 밴드 멤버로 합류할 것을 제안합니다.


유명한 하드록이나 헤비메탈의 밴드 라이브 공연 영상을 보면 연주와 테크닉이 굉장히 화려한 베이시스트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레드 제플린의 존 폴 존스는 꽤나 조용하고 담백한 연주를 들려주는데, 어떻게 보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곡 전체에서 느껴지는 기타, 드럼, 보컬의 밸런스를 따져 보았을때 이 세가지 조합에 아주 적절히 잘 뒷받침 해주고 있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그의 연주는, 잘 들여다 보면 밋밋한 것이 아니라 특유의 절제로 밴드 전체의 사운드를 든든하게 받쳐준다는 것이죠. 





<Led Zeppelin - Black Dog, 1971>




<Led Zeppelin - Kashmir, 1975>





존 폴 존스의 역량에 대해 알아보려면 긴말 필요 없이 우선 음악을 먼저 들어보는 것이 좋겠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 두곡을 한번 소개해드려 보았습니다. 첫번째 곡은, 레드 제플린의 가장 수작으로 손꼽히는 4집 앨범, 앨범 타이틀이 없기 때문에 [Led Zeppelin 4] 또는 [Koda] 라고도 불리는 앨범의 첫번째 트랙 'Black Dog' 입니다. 이 곡은 한번 들으면 까먹기 어려울 정도로 중독적인 기타 리프가 매력적인 곡이죠. 대부분 기타리프를 기타리스트인 지미 페이지가 작곡 했을거라고 가정하지만, 실은 존 폴 존스가 작곡한 것 입니다. 베이스를 연주하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리프를 만들 정도면 그가 세션맨으로 작업하는 동안, 여러가지 악기들에 대한 이해도를 얼마나 깊고 넓게 쌓아왔는지 추측해볼 만 합니다. 실제로 그는 오르간, 리코더, 바이올린, 더블 베이스, 첼로, 우쿨렐레, 오토하프, 만돌린, 시타르 등 수많은 악기를 다루는 데에도 능통한 뮤지션이기 때문에 곡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악기들을 삽입하여 레드 제플린 이라는 밴드를 단순한 하드록 밴드, 그 이상을 넘어서는 뮤지션으로 발돋움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번째로 소개해 드리는 트랙인 'Kashmir'는 제가 생각 했을때 레드 제플린의 명곡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곡입니다. 1975년 발표된 6번째 정규 앨범 [Physical Graffiti]의 6번째 곡입니다. 어쿠스틱, 프로그레시브 록, 블루스, 발라드 등 다채로운 시도가 담겨있는 만큼 이 앨범의 모든 곡들이 주는 울림은 매우 거대합니다. 로버트 플랜트와 지미 페이지도 직접 이 앨범은 그들이 끌어올릴 수 있는 창의력과 독창성의 가장 높은 수준을 보여줬다고 언급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트랙인 'Kashmir'는 존 폴 존스가 연주하는 키보드의 멜로디가 전체적인 곡의 흐름을 이끌어 갑니다. 실제로 사막에 온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멜로디에 오케스트라 세션이 더해져 더욱 커진 스케일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로버트 플랜트의 몽환적이면서 싸이키델릭한 보컬, 존 본햄의 느리지만 우렁찬 그루브, 지미 페이지의 탁월한 연주 실력 등이 한데 어우러져 곡의 시작부터 끝나는 지점까지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합니다.


이곡은 실은 존 폴 존스가 작곡한 곡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다른 멤버들의 모든 요소들이 그가 연주하는 키보드의 흐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때 이 트랙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주도한다는 결론을 지어낼 수 있죠. 인터뷰에서 그는, 이 곡을 성공적으로 이끌게 도와준 멜로디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하여 '이 파트와 동일하게 뒤따라오는 스트링 세션, 다시 말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이 실제로 연주하는 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다.' 라고 말했듯이 그가 자신이 연주해야하는 부분을 이해하는데 있어 얼마나 좋은 센스를 지녔는지 알 수 있죠. 마지막으로, 그가 작곡한 그들의 정규 앨범 5집 [Houses of the Holy] 에 수록된 트랙 'No Quarter'를 들어 보시죠. 이 이 앨범은 전작들의 블루스 록, 하드록 적인 성향에 비해 모든 트랙이 프로그레시브 적인 성향이 매우 짙게 나타납니다. 존 폴 존스가 작곡한 이곡은 앨범의 모든 트랙들 중에서도 가장 어둡고 침울한 느낌으로 제일 눈에 띄는 곡이기도 합니다. 그가 연주하는 일렉트릭 피아노의 독특한 멜로디에 이펙트를 걸어 피치를 낮게 조절한 것으로 예상되는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은 이 곡의 분위기를 한층 더 침울하게 만들어 주는듯 하지만 곡 후반부에는 시원하게 찔러주는 보컬도 나오며 드라마틱하게 마무리 됩니다. 장장 7분간 이어지는 대곡이지만, 지루할 틈 없이 느린듯 하지만 빠르게 치닫지 않고 밀도감 있게, 어딘가 모르게 현란하면서도 절제된 중간 쯤에서 적절히 리스너들의 귀와 온몸의 근육을 조이고 풀어대는 그들만의 연금술을 즐길 수 있는 대곡 중에 대곡 입니다.





<Led Zeppelin - No Quarter, 1974>





<The Edge>





검정색 비니 모자에, 수염이 있는 얼굴과 어딘가 모르게 과묵해 보이는 인상. 아일랜드의 국민 록 밴드 U2의 기타리스트 The Edge의 시그니처 이기도 하죠. U2의 음악을 듣다보면 보노와 함께 후렴구에서 자주 노래하며 상당한 역량의 백업 보컬도 소화해내는 디 엣지. 강력한 리프나 휘몰아치는 속주 연주를 들려주지 않아도 어딘가 모르게 그의 연주는 언제나 U2의 모든 곡들에서 셔츠에 달린 자개단추 마냥 은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런 은은함이 느껴지는 사운드를 들려주는 것은 그의 포지션 자체가 밴드 내에서 리듬 기타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대게 밴드의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나, 밴드 멤버의 포지션을 이야기할때 자주 통용되는 단어인 리듬기타는, 리드기타와 비교하여 설명을 해볼수 있는데요. 대부분의 밴드에서 보컬과 함께 프런트맨을 담당하고 있는 기타리스트는 리드 기타 입니다. 리드 기타는 곡에서 전체적인 멜로디 부분을 담당한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그에 반해 리듬 기타는 곡의 드럼과 베이스에 기반하여 리듬 부분을 이끌어 나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상대적으로 현란한 솔로 연주와, 자유로운 리프 연주를 할 수 있는 리드 기타에 비해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게 같은 코드로만 연주하기 때문에 주목을 받을수는 없는 포지션이기는 하지만, 베이스와 드럼에 전체적으로 일체화 되고 곡의 코드를 정확히 인지하며 리드 기타의 사운드를 확실히 뒷받침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에선 리드 기타보다 더 높은 고도의 집중력과 지구력을 동반하는 포지션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멜로디 없이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으나, 리듬 없이 좋은 음악을 만들긴 굉장히 어렵습니다. 밴드 내에서 큰 부담감을 가질수도 있지만 그렇게 예상되는 부담감을 디 엣지는 지금까지의 활동으로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주었습니다. 리듬 기타 라는 포지션 안에서 왠만한 리드 기타리스트들 만큼, 더 나아가 그들보다 나은 연주를 들려준다고 저는 종종 생각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밴드 전체 내에서 다른 포지션들과의 일체화를 위해 곡의 모든 요소들을 신경써야 할 위치이기 때문에 균형감이 잘 맞춰진 사운드를 안들려 줄래야 안들려줄수가 없겠죠. 때로는 무심한듯 하지만 울림감 있게, 강력하긴 하지만 부드럽게, 날카롭지만 담백하게 늘 꿈틀거리는 듯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U2 - City of Blinding Lights, Live In Chicago 2005>





무대 위에서 현란한 기교와 솔로 연주를 선보이는 것을 관객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늘 철저히 곡만을 위한 연주를 묵묵히 선보입니다. 이런 철학과 대비적으로 그는 그러한 연주를 무대 위를 종횡무진하며 선보이곤 하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라이브 공연 영상을 보시면 그의 움직임 덕분인지 그의 연주는 더욱 울림이 크고 역동적으로 느껴집니다. 디 엣지의 연주를 들으면 많은 것을 전달하기 보다 적은 것을 전달 했을때 감동의 효과는 배가 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U2 -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1987>




<U2 - Pride (In The Name Of Love), 1984>





디 엣지는 다양한 이펙터와 장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기타리스트로도 유명한데요. 다양한 톤을 들려주기 위해 실제 라이브 공연에서는 곡마다 기타를 바꿔 착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수많은 장비들의 세팅을 위해 소형 트랙터로 운반이 되고 전용 엔지니어까지 따로 고용할 정도이니 이쯤 되면 기타리스트가 아니라 걸어다니는 앰프 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의 연주가 지닌 사운드적인 면에서는 대게 두가지의 이펙터로 특징지을수가 있는데요, 바로 딜레이 (지연 효과)와 리벌브 (잔상 효과) 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 두가지의 요소를 적절하게 잘 활용하여 음의 울림을 이용해 마치 6현의 기타이지만 12현의 기타로 낸듯한 사운드를 냅니다. 딜레이와 리벌브와 효과로 인해 기타 사운드에서 풍부한 공간감 역시 부여되며 곡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한층 더 입체적으로 완성시켜 주기도 합니다. 기타리스트이면서 리듬 섹션을 이렇게 효과적으로 잘 이끌어주고 있으니, 리드 기타리스트가 아닌데도 그의 기타 사운드가 눈에 띄는 이유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U2 -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1987>





우리는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각기 다른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관계 지어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린 분명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아가며 우리는 스스로 조금씩 성장해 나갑니다. 물론 누구나 다 영향을 받는다고 해서 성장을 하는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을 통해 먼저 성장을 한 후, 조금 더 자기 반성의 자세가 몸속 깊숙히 스며들어 신체화 되고 습관화 되었을 때엔 비로소 진정 스스로 성장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전 까지는 앞서 말씀 드렸던 '관계'에 의해 성장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점은 우리가 스스로 성장을 한다고 해도 결국은 세상은 혼자서만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죠. 가족도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 등 아무도 없이 혼자 살아도 성장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살아도 별 상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의 온기 없이 정말 행복을 느낄수가 있을까요? 굉장히 의문 입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사람 때문에 제일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사람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이율배반적 딜레마에 알게모르게 사로잡혀있는 듯 합니다. 모든 순간과, 모든 사람으로부터는 배울수 있는 것들이 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보여준 것들이 좋던 나쁘던 그것을 통한 배움으로 인해 제 자신이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게 제일 큰 보람 아닐까요? 내일은 또 어떤 롤로코스터 같은 삶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 탑승하기도 전부터 신이 나네요. 7월은 좀 더 많은 성장을 하길 바라며, 반성과 기대를 같은 크기로 마음속에 지니며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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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세영

SSC MUSIC : 32ND TRACKLIST

SECTION : MUSIC   2018.06.01 02:44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 입니다. 장마 아닌 장마가 5월부터 찾아온게 제일 신기했던 지난달이었네요. 역시나 각종 행사와 공휴일로 가득찼던 알찬 가정의 달은 1년 중에 제일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나무들은 더욱 힘차게 하늘을 향해 뻗쳐 나가고 있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점점 더욱 가벼워지고 있네요. 이 가벼워진 옷차림처럼 지난달보다 조금 더 가벼운 느낌으로 돌아온 SSC MUSIC 입니다. 


이번 트랙리스트에 대해 소개를 해드리기 전에,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1995년에 개봉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알 파치노 주연의 '칼리토'라는 작품에 대해 먼저 소개해 드리고 싶네요. 이 영화의 주인공인 '칼리토 브리간테'는 마약과 뒷골목, 범죄 등으로 점철된 지난 삶을 후회하며 과거를 청산하고 착실히 돈을 모으며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꾸려나갈 밝은 미래를 준비하려고 하지만 믿었던 친구 때문에 큰 사건에 휘말리고 배신까지 당하며 위기를 겪는 내용으로 전개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꽤 비극적인 결말입니다. 영화의 엔딩씬에서는 칼리토가 꿈꾸던 낙원의 모습을 비춰주며 끝이 나는데요.





<Carlito's Way Ending Scene>




실은 5월이 거의 다 끝나갈때까지 6월의 트랙리스트를 어떻게 구성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여름이 다가오니 시원한 느낌으로 구성해보고 싶었으나 단순히 계절의 느낌만을 상상하고 구성을 하기엔 영감의 원천이 없었기 때문에 그 셋을 뒷받침 해줄만한 스토리도 없다는 뜻인데, 스토리가 없다면 메세지도 있을수 없고 메세지가 없다면 저에겐 여러분에게 절대로 자랑스럽게 소개해 드릴수가 없습니다. 6월이 점점 가까워지며 고민이 더욱 극심해지던 와중에, 우연히 친구와 이 영화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게 되며 우연히 이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오게 되었습니다.


칼리토가 사랑하는 여인과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낙원의 아름다운 모습. 칼리토가 사랑하는 여인인 게일로 추정되는 여인이 어린 소년 소녀들과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 실루엣을 보여주고, 배경 음악으로는 Joe Cocker (조 콕커) 의 'You Are So Beautiful'이 흐릅니다. 뭔가 아이러니 하죠.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엔딩씬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습니다. 이루어지지 못할정도로 아름다운 소망이었기에 이 장면은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사랑하는 여인과 낙원에서 함께할 생각을 한 칼리토의 로맨틱한 모습이 감동적이기도 하고 참 여러가지 감정들이 복잡 미묘하게 느껴집니다. 


오랜만에 보게된 이 엔딩씬을 통해 칼리토와 게일의 낙원에 어울릴만한 노래를 구성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이거다!' 싶어 바로 트랙 디깅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 하였습니다.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트로피칼의 색채가 짙은 딥하우스로 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듣다 보면 중간중간에 몽롱한 느낌이 강하게 들수도 있지만 리듬감은 전혀 느리지 않습니다. 몽롱함과 리드미컬함의 중간에 놓여진 애매모호함을 즐겨 주셨으면 좋겠네요. 이번 트랙리스트는 Coastal Haze (코스탈 헤이즈) 레이블의 Hugo Jay (휴고 제이), Pool Boy (풀 보이)과 Project Pablo (프로젝트 파블로), Adam Feingold (애덤 페인골드), Fluid X (플루이드 엑스) 등의 아티스트들의 트랙들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Francois K>




디제잉도 잘하면서, 프로듀싱도 잘하는 DJ는 생각보다 꽤 드문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봐왔던 공연들 중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들로 인한 명성에 비해 디제잉의 수준은 기대에 반만도 못미치는 정도를 보여줘서 실망을 한 경험도 있었고, 또 너무나 좋은 트랙임에도 불구하고 그 곡을 어느 뮤지션이 라이브 공연에서 연주했을때 '어? 잠깐만, 이거 집에서 그냥 혼자 들었을때가 더 좋았던거 같은데?' 라고 느꼈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물론 위에 나열한 상황들은 뮤지션의 역량이 아닌 베뉴의 사운드 시스템 또는 뮤지션의 성향과는 어울리지 않는 베뉴에서의 공연으로 인한 이질감 등이 작용함으로 인해 느낀 것들이지만, 기대와는 달랐다는 점은 동일한데요, 이 기분은 기분좋게 춤추러 온 클럽에서 아주 김빠지기 쉬운 상황이라고 볼 수있죠. 이날 밤은 그저 고개를 까딱이며 땀 한방울 흘리지 않은채 진토닉을 마신후 조용히 집으로 가게 되는 날이라 백프로 확신합니다.


사실 이러한 경우를 저는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좋아하는 아티스트던, 싫어하는 아티스트건, 또는 아예 모르는 아티스트라고 할 경우에도 분명히, 매우 냉정하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는 편입니다. 그러한 태도는 이러한 상황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태도에 대입해 보아도 매우 이성적인데요, 실은 우리 모두가 어떠한 것에 대해 큰 기대를 했는데, 결과가 기대만큼 따라와주지 못했을때 기대의 크기에 비례한 만큼의 실망이 따라오곤 합니다. 실망의 크기가 클수록, 그것은 더욱 이겨내기 어려운 것이란건 누구나 다 잘알고 있습니다. 전 기대라는 것을 버리는 순간 더 많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대를 하지않고 매순간을 대하다 보니, 어떤 결과가 저를 기다리고 있던 저에게 중요한 것은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것 뿐이었습니다. 실망을 하지 않으니, 저에겐 실망을 이겨낼 시간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그 시간에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더욱 할 뿐이었으니, 얼마나 합리적인 태도인가요? 


아무튼간에, 때는 2014년 7월 3일 목요일. 당시 강남에 위치한 대형 클럽 '앤써' 라는 베뉴에서 레드불 뮤직 아카데미 (이하, RBMA) 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게스트 DJ로 하우스의 큰 형님들인 Francois K (프랑소와 케이), Danny Kravit (데니 크래빗)가 초빙되었습니다. 사실 이때의 전 하우스 / 테크노 라는 음악과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없는 상태였고, 이 파티를 갔던 이유도 지금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초대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하고, 친구와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 하네요. 한 마디로 전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상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날 밤을 왜 좀 더 재미있게 즐기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들긴 하지만, 이런 DJ를 보았다는 사실만으로 전 기분이 좋아지네요. 왜냐면, 전 디제잉도 잘하면서, 프로듀싱도 잘하는 DJ가 음악을 플레잉하는 플로어에 있었기 때문이죠. 아무런 기대도 없었던 그날, 하우스의 진가를 깨닫게 도움을 주었던 그 디제이. 바로 프랑소와 케이에 관해 오늘은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Francois K - Awakening>




1954년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부터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그는 드럼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1975년 드러머의 소망을 이루고자 미국의 뉴욕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시기가 그의 첫번째 터닝 포인트라 볼 수 있는데요, 그는 드러머로 음악적 성공을 거두기엔 자신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공연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낚아채기 굉장히 어렵다고 느꼈고, 실제로도 그러했습니다. 70년대 중반은 80년대 초반까지 디스코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클럽들이 밴드의 공연 보다는 DJ 중심으로 운영되는 댄스클럽 으로 하나둘씩 변모되어가는 과도기 였을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1976년, 이러한 변화를 눈 앞에 맞닥뜨린 그 청년은 이내 클럽의 DJ가 되어야 겠다는 결심을 하고 곧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DJ로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가 바로 훗날 뉴욕 하우스 씬의 전설이 될 Francois K (프랑소와 케이) 입니다. 




<View Of The Paradise Garage>




<View Of The Paradise Garage>




프랑소와 케이는 DJ 경력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능력을 인정받았고, 단순히 파트 타임 형식의 디제이가 아닌 한번의 플레잉이 끝나면 다른 베뉴로 이동하여 플레잉 하고, 그 플레잉이 끝나면 또 다른 베뉴로 플레잉 하러 가는 식의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야 하는 DJ로 거듭나게 됩니다. 초창기 하우스 디제이들은 테이프와 테이프를 적절히 이어붙여 (Tape-Editing 이라고도 합니다.) 히트곡 메들리를 만들어 플레잉 하여 플로어를 뜨겁게 달구는 방식을 많이 선호하였는데요, 프랑소와 케이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테이프 에디팅과 히트곡 메들리를 적극 활용하였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프랑소와 케이가 거쳐갔던 파라다이스 개러지 라는 클럽의 당시 플로어를 촬영한 사진을 보시면 당시 클러버들의 패션이 디스코의 그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지실 겁니다. 80년대와 90년대의 영국과 독일의 클럽씬에서 주로 볼 수 있었던 후줄근하면서 편한 복장과는 다르게 좀 더 팬시한 느낌이 강합니다. 사실 테크노도 그러하고 디스코도 그러하듯이 이 두개의 단어는 단순히 음악의 장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전체를 지칭 한다고 저는 생각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힙합이 장악하고 있는 음악 뿐만 아니라 패션, 정신 등을 보면 잘 알수가 있죠.  음악이 음악을 뛰어넘어 문화가 되었을때, 그때가 진정하게 꽃이 피는 순간이 아닐까 싶네요 록이 되었던 디스코가 되었던 테크노가 되었던 말입니다.




<Demonstrates Editing Analog Tape By Bradshaw Leigh>



당시 디제이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스킬들을 잘 다루기 위해 이러한 장비들을 다루는데 익숙해져야 함은 물론 출중하게 잘 다뤄야만 플로어의 댄서들을 더욱 신나게 춤추게 할 수 있는 테이프가 완성되기 때문에, 디제이들은 음악을 그날의 플로어, 날씨 등에 어울리게 플레잉 하는 센스 뿐만이 아닌 기계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도도 간과할 수 없는 큰 부분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런 기계들을 잘 다루게 된 DJ 들이 훗날 유능한 프로듀서나 엔지니어로도 거듭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의 제가 첨부해드린 동영상을 보시면 얼마나 정교한 손놀림이 필요한 작업인지 여러분에게도 그 당시 DJ들의 섬세함이 전달 되었으면 좋겠네요.




<Sharon Redd - Never Give You Up, 1982>




<D-Train - You're The One For Me, 1981>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프랑소와 케이 역시 자연스레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로써의 길을 걷게 됩니다. 초창기에 프랑소와 케이는 Prelude Records (프렐류드 레코즈) 에서 A&R (아티스트&레퍼토리) 의 포지션으로 있기도 했었는데, A&R은 레이블 내에서 아티스트로써의 포지션도 있지만 그 외에 아티스트 발굴, 계약 및 육성을 포함하여 기획,제작,홍보 등의 폭 넓은 업무들을 아우르는 직위 입니다. 


이때 당시는 클럽 문화가 태동하던 때라 이 당시에 하우스에 관련하여 폭넓은 범주의 업무들을 주무를수 있는 포지션에 위치하고 있던 프랑소와 케이 입장에서는 단순히 음악을 플레잉 하고 제작을 하는 입장이 아닌, 실질적으로 여러가지 측면에서 음악을 분석하고 바라볼 수 있게 해줬던 업무를 수행했기에 뉴욕의 하우스를 정의내리고 발전시키고 널리 알리기 가장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러한 유리한 조건 역시 그가 뉴욕 하우스 씬의 계보에서 없어선 안될 인물로 자리잡게 된 큰 요인으로도 작용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Musique - In The Bush (A Francois Kevorkian Mix), 1979>




<Sharon Redd - Beat The Street (A Francois Kevorkian Mix), 1982>




프렐류드 레코즈 시절 프랑소와 케이는 리믹스 작업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1978년 발표된 Patrick Adams (패트릭 애덤스)가 프로듀싱을 담당한 Musique의 'In The Bush'가 그의 첫 리믹스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클럽과 라디오에서 모두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본격적으로 프렐류드 레코즈 만의 사운드로 뉴욕의 댄스 뮤직의 틀을 더욱 확고한 기반으로 자리잡게 하였습니다.  


아, 우선 이쯤에서 아마 한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왜 하우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지만 이때 당시의 작업물에서 디스코의 느낌이 더욱 물씬 풍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이부분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시켜 드리기 위해서 하우스와 디스코의 역사를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합니다. 


앞서 설명해드렸듯이 이때 당시의 댄스뮤직은 Funk (훵크), Disco (디스코) 등의 장르로 축약하여 설명해볼수 있는데요, 이런 곡들을 녹음하기 위해서는 우선 스튜디오가 필요 했습니다. 곡을 연주하는데 필요한 드럼과 기타, 베이스 그리고 보컬을 소화해낼 수 있는 싱어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한마디로 모든것이 실제의 악기로만 사용하여 트랙을 만들어 낼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보다 질높은 디스코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데엔 효과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실제 트랙을 클럽에서 플레잉 할 시에 곡과 곡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지점을 찾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테이프 에디팅이 이런 이유에서도 발전되었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트랙을 제작하는데 드는 시간적 경제적, 공간적 문제가 결합하여 한계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0년 세상에 출시된 Roland (롤랜드) 사의 드럼머신 TR-808이 디제이와 프로듀서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게 되는데요. 사실 이 제품은 록 밴드를 위해 만들어진 제품으로, 드러머 대신에 드럼을 연주해줄 수 있는 악기로써 발명된 것이었으나, 록 밴드들에게는 철저히 외면 당하고 오히려 힙합과 디스코 씬에서 환영을 받게 됩니다. 이 드럼머신과 신디사이저를 이용하여 프로듀서들은 좀 더 손쉽게 트랙을 프로듀싱 할 수 있게 되며, 이때가 디스코에서 진정 하우스로 진화되어가는 시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Dinosaur L - Go Bang (Francois K Remix), 1982>




<Yazoo - Situation (Francois K Remix), 1982>




드럼머신의 등장으로 인하여 하우스와 클럽씬의 발전은 더욱 더 가속화 되었고 프로듀서들은 편리한 전자악기의 등장으로 인해 같은 시간 내에 작업량 또한 더욱 늘릴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새로운 변화의 국면을 맞게 된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씬. 이러한 국면에서 프랑소와 케이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1982년 그는 프렐류드 레코즈를 떠나기로 마음 먹고 레이블과 작별하게 됩니다. 그후 같은 해 그는 두개의 리믹스를 발표하게 되는데, 각각 'Dinosaur L'의 'Go Bang'과, 'Yazoo'의 'Situation'으로 이 두개의 트랙은 빌보드 뮤직 댄스 차트에도 오르게 되며 그의 인기는 날로 갈수록 더욱 높아지게 됩니다. 


아마 그는 도전을 즐기는 개척정신을 가진 사람이기에 틀림 없습니다. 어디에도 사실 크게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그는 프렐류드 레코즈에서 별 큰문제 없이 활동을 이어 왔으나, 이내 자신만의 스튜디오를 설립하기 위해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 누구나 실은 다 안정적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안정적인 삶을 원하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늘 불안과 고통으로 가득차있죠. 그런데 이런 상황에 자주 맞닥뜨리다 보면 그것을 인정하게 되고, 인정하는 것을 넘어 좀 더 뭐랄까요. 즐길수도 있게 됩니다. 여기서 즐긴다는 의미는 재미를 느낀다기 보다, 그 안에서 더욱 성장하고 스스로가 그것을 통해 배움으로써 보람과 자부심, 긍지를 축적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프랑소와 케이도 그런 정신이 있었기에 레이블을 박차고 나오지 않았을까요?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의 에고 (Ego)가 그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Kraftwerk - Tour De France (Francois Kevorkian Mix)>




<U2 - New Year's Day (Francois K Remix), 1984>




<Ashford & Simpson - Babies (François K Dub), 1985>




<Cabaret Voltaire - Here To Go (François Kevorkian Little Dub Remix), 1987>




<Pet Shop Boys - Rent (The François Kevorkian 12" Remix), 1988>




프랑소와 케이는 1983년 자신만의 스튜디오를 설립하였고 이때부터 1990년까지 그는 디제잉보다는 리믹스 작업과 프로듀싱 작업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 시기의 그의 작업물들을 몇가지를 소개해 보았는데요, 일단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디스코 시절의 훵키함이 어느정도 살아있긴 하지만 드럼머신과 신디사이저 등의 전자악기의 보편화로 인해 더욱 기계적인 요소들이 많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Kraftwerk, U2, Depeche Mode, Pet Shop Boys 등의 이름만 들어도 혀를 내두를만한 정도의 아티스트들의 트랙들을 리믹스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느꼈을때 이시기에 그의 리믹스 트랙들은 전체적으로 원곡의 보컬, 샘플링은 그대로 살려둔 채 리듬만 하우스의 리듬으로 변형하는 식의 작업을 즐겼던 듯 합니다. 원곡과 비교해서 들어 보았을때, 멜로디나 보컬은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듯 하지만 드럼 샘플을 좀 더 클럽과 어울리게 무게감 있는 샘플로 변형시켜 리듬감을 강화 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 뿐만 아니라, U2, Pet Shop Boys 같은 아티스트 들의 곡을 리믹스 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록이나 팝에서도 하우스의 역량을 실험해보고 싶었던 그의 에고(Ego)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습니다. 




<François K Boiler Room London DJ Set, 2015>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약 6년간 스튜디오에서의 삶을 지속해온 프랑소와 케이. DJ로 음악을 시작한 그였고 누구보다도 잘 해내었기에 슬슬 플로어에서의 삶이 그리워질 법도 하죠. 아마 작업을 하다가도 작업실 한구석에 먼지 쌓인 턴테이블을 깨끗히 닦아내어 홀로 상상속의 클럽 안에서 디제잉을 종종 즐기지 않았나 한번 추측을 해봅니다. 마침내 1990년 그는 플로어에 다시 서기로 결심합니다. 오랜기간동안의 프로듀서만으로의 생활에 지쳤다기보다, DJ로써의 활동이 그리워서가 아니었을까요? 


그가 컴백할 당시 씬은 더이상 지역간의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로컬보다는 더욱 활발히 국제적으로 씬은 돌아가고 있었으며 아마 그런 흐름을 따라가기에 그가 처음에 조금은 애를 먹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80년대 초반 프렐류드 레코즈 시절부터 그의 파트너였던 Larry Levan (래리 르반)과 함께 투어를 기획하게 되었고, 1992년 여름 Harmony Tour (하모니 투어) 라는 타이틀로 일본을 시작으로 하여 월드 투어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후 그는 런던의 'Ministry Of Sound' (미니스트리 오브 사운드), 'Fabric' (패브릭)을 거쳐 이비자의 'Space' (스페이스) 와 'Pacha' (파차), 그리고 이탈리아의 'Angels Of Love' (엔젤스 오브 러브) 등의 클럽에서 공연을 가졌습니다. 프랑소와 케이가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듯이 이때 당시 그가 거쳐간 클럽들도 현재까지 운영중인 그 도시의 씬을 지금까지도 대변하고 있는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도 볼 수 있는, 그런 개념의 클럽들입니다. 




<Clip Of Body & Soul 10th Anniversary Celebration, 2006>




1995년 프랑소와 케이는 자신만의 독립 레이블 [Wave Music]을 설립하게 되고, 이 레이블을 통해 자신의 첫 앨범인 [FK-EP]를 포함하여, Floppy Sounds (플로피 사운즈), Abstract Truth (앱스트랙트 트루스), 등의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발표 하기도 하였습니다. 1996년에는 John Davis (존 데이비스)와 함께 'Body & Soul' (바디 앤 소울) 이라는 타이틀 파티를 기획하기도 했는데 이 파티는 흔히 주말밤에 이루어지는 파티가 아닌, 일요일 낮에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파티로 기획 되었습니다. 주말 낮에 이루어지는 파티를 흔히 Open-Air (오픈 에어) 라고도 불리는데요, 이 파티가 사실상 장기간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뉴욕에서도 전설적인 파티로 남아있다는 점은 오픈 에어 파티의 시초라고 보기에도 꽤나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뉴욕의 길거리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파티는 남녀노소, 인종 구분없이 모든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즐기며 행복을 느낄수 있는, 다시 말해 좀 더 교양있게 표현 하자면 진정하게 음악으로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고양시킬 수 있었던 파티라고 말하고 싶네요.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비추어 봤을때, 클럽이 아닌 야외에서 파티를 했을때가 좀 더 뭐랄까요. 좀 더 자유분방 하기도 하고 실제로 우리 삶에 더욱 근접해 있는 문화라고 느껴진다고나 해야할까요?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로는 제가 생각 했을때, 우리가 숨쉴수 있는 상쾌한 공기,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늘과 내리쬐는 태양빛 등 자연적인 요소들과 함께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클럽이라는 공간이 음악에 집중하기에는 좋지만 때때로 무미 건조하기도 하고 답답하게도 느껴지는데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파티는 이런 한계점을 극복하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클럽과 페스티벌에 즐기러 오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답답했던 부분이 해소되는 걸 느끼고 그게 겉으로도 드러나기 때문이죠. 저는 페스티벌에 놀러오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제가 공유해드린 바디 앤 소울의 10주년 기념 파티의 클립 영상을 보시면서 잠시나마 오픈 에어의 매력을 만끽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서울에서도 날씨가 좋은 요즘 오픈 에어 파티를 간간히 찾아볼 수 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가보셔서 즐겨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맥주 한잔을 마시며 음악과 친구들과 함께 칠링하는 분위기를 느껴보시면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되실거라고 장담합니다. 




<Francois K>

 


디제이로 시작하여 프로듀서까지, 그리고 다시 디제이에서 전설적인 파티의 기획자. 뉴욕 댄스뮤직의 산 증인, 뉴욕 하우스씬의 아버지 등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그에게 뒤따라오는 수식어들은 말로하면 피곤할 정도 입니다. 그의 아카이브를 지금까지 쭉 살펴봐온 결과, 그는 80년대부터 지금까지 뚝심있게 하우스 외길 인생을 걸어온 장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그냥 막연히 프랑소와 케이가 오랜 기간 동안 하우스씬에 몸담아 왔기에 장인 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그는 하우스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이기에, 거기서 전 진정성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을 장인 이라고 부르는데에는 익숙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미련하다고 느낄수도 있습니다. 만약 대중 시장에서라면, 지금은 하우스 보다는 힙합이나 퓨처베이스, 퓨처하우스 등의 장르를 건드리는게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어차피 대중 시장이 아닌 비주류 다시 말해 언더그라운드에 머무는게 스스로가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전 그것만으로 아무 문제가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복을 위해 때로는 미련한 태도가 더욱 도움이 될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때엔 아무리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Larry Levan, Francois k, David DePino>



오늘은 여기까지 프랑소와 케이의 발자취를 탐구해봄과 동시에 그의 음악도 감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여러분께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지난 5월을 돌아보니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슬로우스테디클럽 에서는 리바운드 서비스 마켓을 성황리에 진행하고 마무리 했던 점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저희는 내년 5월에도 리바운드 서비스 마켓을 개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이번 행사에 방문 못하셨던 분들께선 더 발전된 모습으로 내년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개인적으로 5월에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을 실제로 만났던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남산 소월길에 위치한 '피크닉' 이라는 공간에서 전시를 위해 한국에 며칠간 방문해 주신 그가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실 예정 이라는 소문을 듣고, 전 그가 예약을 한 날 저녁에 찾아갔는데,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이 일행분들과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도 그날 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였었는데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식사를 하는 내내 그분을 계속해서 쳐다보기도 하였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이 식사를 마무리 하신 후에는 8년만에 릴리즈 된 정규 앨범 [Async]에 싸인을 받고 함께 사진도 촬영 하였습니다. 제가 27TH TRACKLIST 포스팅에서 소개해드려서 여러분도 알고 계시겠지만 그분은 뉴에이지 음악가 라는 수식어로 설명하기엔 너무나도 폭 넓은 분야에서 작업물을 선보여왔고, 엄청난 방면에 문화적으로 영향을 끼친 분이기에 그를 만난것은 저에게 매우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누구나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인정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정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전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님을 만난후에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진 제 자신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보았습니다. 아직은 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게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제가 가야할 길로 더 열심히 걸어가야겠다는 생각 역시 들었습니다. 바쁘게 지나간 5월이었습니다. 제가 제 자신에게 도전할 수 있도록 바쁜 환경이 주어진 5월이 너무나도 감사하게 느껴지네요. 그만큼 보람 역시 동일한 크기로 느껴집니다. 6월도 바쁘게 지나갔으면 좋겠네요. 여러분도 6월은 좀 더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달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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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세영

SSC MUSIC : 31ST TRACKLIST

SECTION : MUSIC   2018.05.02 18:57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 입니다. 2018년이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이 지나가고 서서히 여름이 다가오기 시작하네요. 이번달은 1년 중에서도 가장 많은 행사와 각종 공휴일로 가득찬, 가정의 달 이라고도 불리는 5월 입니다. 제가 5월에 태어나서 그런지 저는 이정도의 시원함과 따스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 계절이 참 좋습니다. 이번달에는 어떤 셋을 짜볼까 고민을 하던 중에, 문득 Queen의 'Radio GaGa' 라는 노래가 생각 났습니다. 





<Queen - Radio Ga Ga, 1984>




이 노래는 퀸의 1984년 발표된 그들의 11번째 정규앨범 [The Works]에 수록된 곡으로, 밴드의 드러머인 로저 테일러에 의해 작곡 및 작사 되었습니다. 1981년 MTV가 등장 하였고, 당시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주요 매개체가 라디오에서 자연스럽게 텔레비전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전은 음악 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 각종 라이브 콘서트 쇼 등 음악을 다양한 컨텐츠로 접할 수 있는 장점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여 들였습니다. 이로 인해 라디오는 점점 잊혀져 가게 되었고, 여기에 안타까움을 느낀 로저 테일러는 라디오에게 바치는 헌정곡으로 이 노래를 쓰게 되는데요, 노래 가사 역시 전체적으로 라디오와 함께한 추억을 그리워하는 내용 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1980년대를 보았을때, 이때 당시도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이때 나온 음악들을 아직도 추억하고 그시대의 문화를 그리워 하기도 합니다. 제가 'Radio GaGa'를 추억하듯이 말입니다. 여기서 제가 전해드리고 싶은 말은, 어찌 되었던 결국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 한다는 말입니다. 어차피 지나갈 것이고, 어차피 그리워 할 것이라면 지금 주어진 순간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요? 'Carpe Diem' 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죠. 제가 어렸을 적 이 말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에서 처음 접했을땐 단지 삶을 즐겨야 한다는 뜻으로만 알았는데 조금 크고 나니 이 말이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 했습니다. 진정 즐기는 것은 단순히 즐겁게 생각하는것 만이 아닌, 주어진 시간과 환경,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후회없이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진짜 즐기는 삶은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더 치열한 삶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새 1년이 반이 거의 지나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한층 산뜻해진 날씨와 함께 밝은 음악으로 돌아온 SSC MUSIC 입니다. 이번 트랙리스트는 밝은 분위기의 다운 템포와 하우스 트랙들로 구성해보았습니다. 저는 요새 가장 즐겨듣는 튠들의 스타일이 주로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쏟아진 테크노도 하우스도 아닌듯한, 트랜스와 프로그레시브도 아닌듯한 애매모호하지만 미완성과 혼재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곡들인데요. 이때 당시를 대표하던 아티스트로 Leftfield (레프트필드), Bedrock (베드락), Sasha (사샤), Paul Oakenfold (폴 오큰폴드) Deep Dish (딥 디쉬) 등을 꼽을 수 있겠네요.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일렉트로니카뮤직에서 영감을 받아 제가 좋아하는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인 Moby (모비), Jon Hopkins (존 홉킨스), Aphex Twin (에이펙스 트윈), Boards Of Canada (보즈 오브 캐나다) 등의 아티스트들이 들려드리는 음악들을 들어 보실 수 있습니다.







<Moby At Studio>




<Kia 'Sportage' Commercial, 2007>




1990년대의 일렉트로니카 무브먼트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인물이 한명 있습니다. 그 시대를 빛낸 인물이 너무나도 많지만, 오늘 제가 소개해드리고 싶은 아티스트는 바로 Moby (모비) 입니다. 아마 2007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당시 기아의 스포티지 차량 광고에 조인성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살려낸 제임스딘이 함께 등장하여 화제를 끌었었는데요, 이 광고의 배경 음악이 바로 모비의 'Natural Blues'라는 트랙이었습니다. 저는 참 신기하게도 제가 어렸을때 좋아했던 노래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는데 이 곡도 그중에 하나로 아직까지 제 마음속 변하지 않는 명곡으로 저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에게도 특별한 추억을 지닌 이 곡의 주인공 모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Moby Dick's Auther Herman Melville>




<Moby>




Moby 라는 이름을 보면 바로 떠오르는 그이름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Moby Dick (모비 딕) 인데요, 실제로 이 모비 딕에서 따온 이름이 맞다고 하네요. 소설 모비 딕의 저자인 허먼 멜빌이 모비의 고조부의 삼촌이라고 합니다. 모비의 본명은 Richard Melville Hall (리차드 멜빌 홀)로, 어렸을때부터 그의 별명은 자연스레 모비로 불려졌고, 리처드라는 소년의 미래의 무대 활동명이 이렇게 탄생하게 됩니다.


모비는 1965년 뉴욕의 할렘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실 할렘 출신이라 하면 당연히 힙합의 색채가 굉장히 짙은 타운인데, 그의 음악에선 힙합의 색채가 보이긴하나 그렇게 눈에띄진 않으며(음악 활동을 하며 계속해서 할렘에서 살았다면 얘기가 달라졌을수도 있겠지만 그는 출생 직후에 코네티컷 주의 대리앤으로 이사가게됩니다.), 그 외의 펑크록, 얼터너티브 록과 그레고리 성가와도 같은 종교적 성향과 더불어 재즈나 앰비언트의 성향도 느껴지는데 다시 말해 그는 어느 특정 장르에 구분지어 정의 하기엔 수많은 시도와 실험을 아직까지도 게으르게 하지 않기 때문이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유년기 시절 아버지를 여읜 모비였지만, 히피였던 어머니의 사랑과 배려를 듬뿍 받으며 성장했고, 어머니의 자유 분방한 개성 역시 고스란히 물려받게 됩니다. 10대에 클래식 기타를 잡기 시작하게되면서 The Clash (더 클래쉬), Joy Division (조이 디비전) 등과 같은 펑크록과 뉴웨이브 사운드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는 10대 후반에 하드코어 펑크 밴드 Vatican Comandos (바티칸 코만도스) 와 얼터너티브 록 밴드 Ultra Vivid Scene (울트라 비비드 씬) 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 했었던 이력이 있으며 특히 바티칸 코만도스에서 1983년 발표한 EP [Hit Squad For God]은 그의 첫번째 레코딩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이기에 그의 음악에서 록의 색채가 짙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결과겠죠?




<Moby - Go, 1991>




저도 어렸을적 메탈과 하드록, 여러 장르의 록 음악을 들으며 성장해왔고, 성인이 되고 난 후부터는 테크노에 심취하게 되었었는데, 생각해보니 록의 파괴적인 무드가 테크노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비도 역시 저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고, 저처럼 그냥 느끼는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음악가로써의 욕망을 실현해내야 했고 1991년 데이빗 린치의 인기 TV 시리즈 [트윈 픽스]의 테마곡을 샘플링한 테크노 싱글 [Go] 를 발표하게 됩니다. 


작년에 친한 지인의 집에 방문해서 그분 집에서 테크노 엘피 몇가지를 들어보았는데 그때 그분께서 모비의 엘피 한장을 집어들고서 저에게 보여주면서 '이 형이 진짜 파이오니어지.' 라고 말해주셨던게 기억이 나네요.아, 갑자기 생각해보니 그 지인분도 그렇고 모비도 그렇고 저도 셋 다 대머리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테크노와 록을 좋아하면 대머리일 확률이 큰가 봅니다.




<Moby [Moby]  Drop A Beat,1992>




모비의 첫번째 싱글인 [Go]는 백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단숨에 그를 일렉트로니카의 유망주 반열에 올리게 됩니다. 이 트랙은 강렬한 비트 안에서도 모비 특유의 스트링 세션으로 공간감과 세련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등 모비 음악의 특징이 고루 느껴지는 트랙 입니다. 이에 힘입어 그는 <Go>가 수록된 그의 데뷔 앨범 [Moby]를 1992년에 발표합니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Go> 와는 상반된 분위기의 직설적이고 강력한 테크노 트랙으로 꽉차 있습니다. 요새 말로 후진 없이 직진한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냥 빠르고 강력합니다. 이 한줄이면 충분합니다. 이 앨범으로 모비는 미국 최초의 테크노 스타 라는 평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아, 이제 와서 말씀을 드리긴 하지만 사실 오늘은 모비의 모든 앨범에 관련해서는 소개해드리지 않을 생각 입니다. 왜냐하면 모비라는 아티스트의 초창기의 발자취를 추척해봄으로써 그의 음악적 성향이 어떻게 자리잡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추적이 주된 목표이기도 하고, 이 안에서 효과적으로 소개를 하면서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기 위해서이죠. 이 포스팅이 끝난후에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모비 라는 아티스트가 말끔히 지워진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결국은, 제가 잘! 소개를 해드려야 한다는 뜻이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Moby [Ambient], 1993>




제가 생각했을때 모비의 음악은 최근 음악성향을 먼저 파악한뒤 데뷔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행보를 살펴보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 과거의 행보에서 영향을 받은 것들을 토대로 해야만 그의 음악세계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넓은 음악적 바운더리를 이해하려면 필수요소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 1집에서 우리는 그의 휘몰아치는 빠른 리듬과 헤비메탈에 맞먹는 강력함을 맛보았다면 2집은 조금은 다른맛을 느낄수 있습니다. 제 지인 중에 제가 모비의 이야기를 했을때 1집만 들어보고 나머지는 들어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분이 있었는데, 이건 아마도 1집 이후의 모비의 음악을 들어보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2집 이후에 출시된 앨범들을 들어보시고 나서 1집을 듣게 되시면 '아! 이분이 이런것도 하셨구나..' 라고 분명 느끼시게 될겁니다.


1993년 발표된 모비의 2집은 두명의 인물을 키워드로 하여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바로 모비도 직접 언급 하였던 브라이언 이노와 프로그레시브 & 아트 록 밴드 킹 크림슨의 로버트 프립 입니다. 25TH TRACKLIST 포스팅에서 이미 소개를 했었던 이 아티스트들의 행보는 록 역사와 일렉트로니카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특별합니다. 각기 다른 두 장르의 상호간의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각 장르를 더욱 깊게 연구해볼수 있기 때문이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두명의 아티스트의 영향으로 모비는 1집과는 정 반대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앨범을 출시 했는데, 앨범명 [Ambient]에서도 느낄수 있듯이 앰비언트를 주로 하여 그안에서 테크노와 클래시컬의 아름다움, 웅장함 등을 고루 느낄수 있습니다. 1집의 분위기에 비해서 확실히 우아하고 심미적이며, 세련미가 더해졌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Moby [Everything Is Wrong], 1995>




원래 디제이로도 활동 하였던 모비는 이때부터 Aphex Twin(에이펙스 트윈)과 The Progidy(더 프로디지)의 투어와 다양한 컴필레이션 앨범에도 참여하는 등 더욱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이후 레이블을 뮤트 레코즈로 옮기게 되면서 그는 1995년 대망의 3집 앨범인 [Everything Is Wrong]을 발표하게 되는데, 기존의 그의 스타일에 하우스, 정글, 펑크, 소울 등을 결합시키면서 그의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이 앨범을 계기로 그는 Michael Jackson (마이클 잭슨), Guns N' Roses (건즈 앤 로지즈), Metallica (메탈리카) 등에게 러브콜을 받으며 프로듀서 겸 리믹서 로써도 더 높은 자리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Moby [Animal Rights], 1996> 




이 앨범을 발표한 후 그는 테크노에선 인정받는 아티스트가 되었지만 메탈 사운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진 못했는지 하드코어를 표방한 새로운 메탈 사운드를 4집 앨범에서 들려줍니다. 1집에서는 테크노, 2집에서는 앰비언트, 3집에서는 소울,펑크,하우스,테크노 거기다가 4집에서는 메탈. 도대체 모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요? 안타깝게도 이 앨범은 우선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습니다. 이때 당시 메이져 록 씬의 추세가 록과 일렉트로니카를 결합시키는 것이었는데, 모비는 이러한 추세에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실험과 도전 이라는 것이 꼭 성공으로 이어져야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교훈을 통해 모비는 자신이 기타와 관련된 메탈엔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크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당시에 록과 일렉트로니카를 접목하여 인더스트리얼 록을 주류의 씬으로 끌어올려 큰 성공을 한 Nine Inch Nails(나인 인치 네일스)의 음악을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Moby [Play] Rushing, 1999>




<Moby [Play] Extreme Ways, 1999>




<Moby [Play] Bodyrock, 1999>




1999년, 지금까지의 모든 실험의 결실을 이 앨범에서 드디어 열매를 맺게 됩니다. 4집까지의 모비의 발자취엔 성공도 있고 실패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 재능은 있으나, 본인의 방향성에 대해 답은 찾지 못했기 때문에 늘 새로운 시도를 갈망하고 부딪쳐 왔음이 분명합니다. 마치 이 앨범을 작업하던 시점이 모비가 자기 자신에 대해 진정 알게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앨범을 소개하는 지금이 바로 오늘 제가 포스팅에서 정말 전달해드리고 싶었던 메세지 입니다. 수많은 장르를 결합하고, 시도했던 그가 이 앨범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완전히 실현시켰다는 점이 우리에게 결과를 단순한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여겨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리마인드 시켜주는 듯합니다. 


제가 묘사하는 몇마디 말로 다 담지 못할만큼 그는 엄청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고 걱정과 불안함, 동시에 희망 역시 느꼈을 것입니다. 이런 감정들을 느끼며 꿈을 향해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는 그의 정규 5집 앨범 [Play]. 예술이란 진정 인간으로 하여금 희노애락을 느끼게 하고, 인간의 희노애락을 예술도 그자체로 표현해내고 재현 한다는 점에서 인간과 뗄레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이 앨범으로 여러분도 여러분 스스로의 희노애락을 분명 느껴보실수 있을거라고 장담합니다. 마치 거울같다고나 할까요?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모비의 1집부터 5집까지의 행보를 살펴봐왔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앞서 말씀 드렸듯이 그의 도전과 실험, 고민들이 최선의 결과물로 실현 될 수 있었던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감동을 느끼고 우리 자신안에 있는 도전정신과 자아를 일깨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결과물을 결과물이 아닌 과정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이렇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비의 5집은 그때까지의 그의 스타일을 자리잡게 하는데 까지의 모든 것들을 축약시켜 놓은 역대급 결과물 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것 역시 과정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결과물과는 상관없이 어차피 모든게 과정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스스로를 넘어서는 것만이 우리 삶에 있어서 주어진 유일한 목표가 아닐까 싶네요. 


최근에 망가진 핸드폰 액정을 귀찮아서 나중에 수리하려고 그냥 사용하고 있었는데, 터치 오작동으로 이어지더니 마침내 비활성화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이폰 비활성화는 초기화밖에 답이 없다는 것을 유저분들을 잘 알고 계실겁니다.) 저는 핸드폰 초기화를 시키기위해 어쩔수 없이 애플 서비스센터로 가야만 했고, 눈물을 꾹 참고 결국 초기화를 실시하였습니다. 제가 가진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어플들도 새로 다운 받아야만 했고, 사진과 동영상도 일부만이 남았는데 이상하게도 저에게 사라진 사진과 동영상 속 추억들이 생각보다 아쉽게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전 주어진 순간에 느낄수 있는걸 최대한 느끼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는데요. 어쩌면 진정한 추억과 기억은, 기록으로 남겨놓으려는 것보다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고 보다 더욱 깊게 즐기고 느낄줄 알아야만 우리 가슴속에 더 오랫동안 남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늘 생각 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좀 더 깊고 의미 있는 이야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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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세영

SSC MUSIC : 30TH TRACKLIST

SECTION : MUSIC   2018.04.02 02:55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 입니다. 최근에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가 있는데요, 바로 폴 토마스 앤더슨, PTA 라고도 불리우는 미국 감독의 '데어 윌비 블러드' 라는 작품입니다. 1927년 발간된 소설 <석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 다니엘 플레인뷰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돈을 벌어들이는 석유업자로 등장하는데, 작품 속에서 그와 끊임없이 갈등의 양상을 보여주는 대립적인 인물은 성실한 기독교 신자인 일라이 선데이 입니다. 이 둘의 팽팽한 신경전과 물리적 출동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건들을 관통하며 이루어집니다. 보통 인물간의 대립은 주로 반대되는 성향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 둘은 캐릭터만 다를 뿐이지, 동일한 물질적 욕망을 소유하고 있고 그로 인해 충돌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대립과는 사뭇 다릅니다.





 


극중에서 다니엘은 괴팍한 성격과 벌어들이는 만큼의 물질적 욕망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에 반해 일라이는 마을에서 신임을 얻고 있는 교회의 신실한 전도사이자 신을 자신의 영혼으로 불러들여 사탄을 쫓아 내기도 하는 다소 사이비스러운 양상을 보여주는 종교인 제3계시교의 열렬한 신자입니다. 그는 겉으로는 종교의 우아함과 품위와 지성미를 갖춘 사내이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물질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고군분투 합니다. 한마디로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일라이에 비해 다니엘은 상대적으로 몰지각하지만 솔직한 인물, 비사회적이지만 인간적인 인물로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니엘과 일라이의 욕망은 감정의 표출을 넘어서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고, 서로 헐뜯는 것을 넘어서 분노 표출이 자신의 핏줄인 가족에게로까지 고스란히 전달 됩니다.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의 양상을 보여주는 두 인물에 대해 주변 인물들은 전혀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이 부분 역시 철저히 관객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놓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것으로 예상 되네요. 영화에서 비판과 불만의 목소리가 표출되는 부분은 오직 석유의 생산에 관하여 금전적 이득을 취할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있는 자리에서 뿐만이죠. 이렇듯 각자의 방식으로 두 인물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선동하기도 합니다.

 



<영화 데어 윌비 블러드의 한장면>



제목 '데어 윌 비 블러드' 직역하면 '그곳에 피가 있을 것이다.' 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석유처럼 분출된 인간의 욕망을 함유한 뜻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극중에서 잠시 다니엘의 잃어버린 친동생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다니엘은 온화하기도 하며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혈육에 관한 집착도 보여주며 욕망을 솔직하게 노골적으로 분출시키는 것과는 다르게 사랑을 갈구한다는 점에서 진정 인간적이라 말할 수 있는 성향도 나타납니다. 다니엘과 일라이의 점점 치닫는 갈등의 끝은 어떻게 마무리 짓게 될까요? 다른듯 하지만 결국은 같은 인간의 욕망. 그러한 욕망의 충돌. 이렇게 욕망은 결국 피를 부르게 된다는 메세지를 던져줍니다. 저는 이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집중할 수 있었던 요소로 음악을 꼽고 싶은데요. 이 음악을 누가 디렉팅 하였는가에 대해 살펴 보던 중 바로 라디오 헤드의 기타리스트인 조니 그린우드 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Paul Thomas Anderson And Jonny Greenwood>




<Jonny Greenwood & London Contemporary Orchestra Boiler Room Live>



폴 토마스 앤더슨과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는 데어 윌비 블러드를 통하여 영화와 음악의 앙상블이 관객에게 깊은 몰입도와 뇌리를 스치는 것이 아닌,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극장안 또는 관객이 앉아 있는 의자 주변을 계속해서 멤돌게 하는 은은한 여운을 그들의 의도에 맞게 잘 구현해낸 훌륭한 작품임이 틀림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영화가 끝난후에 영화 속 특정 음악을 통해 그 영화를 떠올려내곤 하는데요, 아마 여러분들 중 대다수가 이러한 경험이 있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들은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불규칙적인 음렬과 우연 맥락 안에서 겉도는듯한 멜로디와 화성들은 음악이라기보다 오히려 소음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조니 그린우드는 이러한 소음들과 클래식을 뻔뻔하게 병렬 배치 함으로써 관객의 집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내고자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집중을 이끌어 낼까요? 우선 데어 윌비 블러드의 첫 장면에선 광산을 한번 비춰주며 오싹한 분위기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서부 개척시대에 처음엔 광부로 일하던 다니엘의 모습을 대사없이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관객을 관찰자의 입장으로 만들어놓은 후에 오싹한 음악으로 그의 삶 자체가 어떠할지 힌트를 처음부터 던져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슷한 예시로 1980년 개봉한 공포 스릴러 작품 중 최고의 클래식으로 손꼽히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의 오프닝 씬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호텔을 향해가는 잭 토렌스의 가족이 탑승한 차를 카메라가 저 멀리서 비추고 음산한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옵니다. 알수 없는 기괴한 공포에 홀리는 듯한 분위기와 동시에 어디까지 깊숙히 들어가는지 알수 없는 불안감, 넓은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차량(인간)의 모습은 초라하고 나약해보이기까지 합니다.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오프닝 시퀀스 역시 음악과 함께 세기말의 우울하면서도 신비로운 지구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리들리 스콧의 연출력 역시 지금까지도 공상과학 영화의 최고로 손꼽히게 된 역할을 톡톡히 해낸것으로 유명하죠. 여기서 제가 열거한 세가지 작품 모두 오프닝 씬에서 음악과 함께 영화 전체의 분위기나 맥락을 예상해볼 수 있는 힌트를 던져 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 오프닝 시퀀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오프닝 시퀀스>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오프닝 시퀀스>




앞서 말씀드렸던 영화들의 오프닝은 비슷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요, 바로 영화 전체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아울러 인물의 깊은 감정의 심연에까지도 힌트를 준다는 점인데요. 다시 말해서 음악을 통해 그것을 말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음악도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고자 하면 어떤 것이든 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춤이나 그림, 사진, 건축 모든것들이 말입니다. 서론이 너무나 길었던 것 같네요. 오늘은 영화안에서 언어의 관점으로 음악을 바라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데어 윌비 블러드를 보며 단순한 서사가 아닌, 인물의 심층적 내면과 스토리 내의 역사적 배경의 은유적 표현, 관객의 집중을 유도하는 장치로써의 역할 등을 하게 됨으로써 다양한 방법으로 음악이 영화에서 지니는 의미와 이를 통하여 영화를 어떻게 더욱 심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보았고 언어적 기능을 위해 불규칙적이고 불협화음적인 음악들 사이에 뻔뻔하게 브람스의 클래식을 삽입하는 등의 모습을 보고 가장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 트랙리스트에서는 좀 뻔뻔해져보고 싶었습니다. 트랙리스트 전체를 아우르는 구성에서 리듬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조용하고 잔잔한 네오 클래식과 앰비언트 트랙들로만 구성을 해보았습니다. 특히나 서울숲 매장의 차가운 분위기에서 이런 음악들로 어떤 분위기가 연출될지도 궁금하였고, 어중간한 것 보다 차라리 음악 마저도 완전 미니멀하게 한번 가보자 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어 차갑고 잔잔하게 가보는것도 좋은 시도인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정해진 리듬이 없는것은 곧 청자들의 감정과 상상력을 자극하기엔 가장 좋은 아웃라인이며, 마치 영화의 열린결말과도 같다고 느껴졌고, 그러한 열린 결말처럼 정해진 길이 아닌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로 가득 차 있지만 꿋꿋히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저희의 모습과도 비슷하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현대 음악가인 Jóhann Jóhannsson (요한 요한슨), Ludovico Einaudi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Ólafur Arnalds (올라퍼 아르날즈), John Cage (존 케이지), Arvo Pärt (아르보 패르트) 등의 아티스트들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번 트랙리스트는 샤워 하실때나 잠들기 전 또는 명상의 시간을 가지실때도 듣기 좋은 편안한 셋입니다. 재미있게 잘 들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Max Richter>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클래식 작곡가 중 한 명인 막스 리히터(Max Richter)는 1966년 독일의 하멜린에서 태어났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의 베드포드로 넘어와 그곳에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내게 됩니다. 영국 왕립음악원(Royal Academy of Music)을 졸업하고, 이후 이탈리아 피렌체로 건너가 유명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의 제자로서 클래식과 전자음악을 익혔고, 졸업 후엔 컨템포러리 클래식 앙상블인 <피아노 서커스>를 조직하여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10년간 피아노 서커스 팀원들과 일하면서 Arvo Pärt, Brian Eno, Philip Glass, Julia Wolfe, Steve Reich 등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작품 다수를 연주하였습니다. 또한 Decca/Argo 레이블에서 5종의 음반도 발표했다. 그는 2000년 초반부터 기존 클래식에 일렉트로닉을 가미한 앨범 <Memoryhouse>(2002),<The Blue Notebooks>(2004), <Songs from Before>(2006) 등을 꾸준히 발표하며 미니멀리즘 사운드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우뚝 서게 되며 현재까지도 많은 매니아층과 팬층을 보여한 명실상부한 작곡가로 그 명성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Max Richter [Memoryhouse], 2002>




컨템포러리 클래식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막스 리히터의 데뷔 앨범 [Memoryhouse] 는 2002년에 릴리즈 되었습니다. 잔잔한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어딘가에선 나레이션이 등장하여 마치 영화속의 한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며, 또 어딘가에선 전자음이 섞인 실내악이 등장하여 일렉트로니카인지 네오 클래식인지 구분이 안되게끔 혼란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게 진짜 크로스오버의 매력이 아닐까요? 어딘가 모르게 애매모호하면서도 일관성이 있는 그런 분위기 말입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트랙들 중 'Sarajevo', 'November', 'Arbenita', 'Last Days' 는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 분쟁을 다루고 있으며, 'Laika 's Journey' 와 같은 트랙은 그의 어린시절을 다루고 있다고 하네요. 이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점은, 그의 음악 세계에선 개인과 사회, 국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역사적 비극을 개인의 비극으로도 확대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영국에서 보낸 어린시절의 이야기와 유럽 동남부에 위치한 먼 국가의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과연 그가 어떠한 사유의 변증법적 논리를 통해 이러한 음악적 언어를 이 앨범에서 구축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궁금해지네요. 




<Max Richter [The Blue Notebooks], 2004>



2년 뒤 새로운 앨범으로 돌아온 막스 리히터는 어떤 언어를 가지고 등장하였을까요? 이 앨범에서 그는 프란츠 카프카와 폴란드의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불멸한 불안과 절망, 그로 말미암아 귀결되는 니힐리즘의 영향을 받고 체스와프 미워시가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하에 유대인 말살에 동조를 〈불쌍한 기독교인들 게토를 바라보네(Biedny chrześcijanin patrzy na getto)〉라는 시와 〈피오리 광장(Campo dei Fiori)〉이라는 두편의 시를 통해 고발한 점과 당시 나치에 동조할 수 밖에 없었던 폴란드의 시대적 상황, 인간의 존엄성을 갈기갈기 짓밟아 놓은 당시의 시대상을 통해 아마 여러 방면으로 깊은 고뇌의 시간을 가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앨범은 그리하여 이라크 전쟁에 대한 그의 항변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앨범이며, 그가 영향을 받은 문학가와 문학가가 처한 시대적 상황 등이 중첩적으로 맞물려 더욱 깊은 심연속에서의 고뇌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전작보다 더 무게감 있고 깊이가 있어진 점을 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저는 역사는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도 배울수 있지만, 나치 정권하에 있었던 모든 국가에서는 아마 정상적인 인간 행위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유대인을 숨겨줬다는 것이 들통나면 그 일가족들이 몰살 당하기도 하였으니 이런 반인륜적 행위를 일삼은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간의 극단전인 몰락을 통해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비극적인 역사들을 숨기고 더이상 피할것이 아니라, 스스로 되뇌이고 기억하며 눈앞에 마주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막스 리히터도 자신의 고뇌를 음악적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요? 물론 이러한 장치가 없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하겠지만 말입니다.




<Max Richter [Songs From Before], 2006> 




<Max Richter [Vivaldi - The Four Seasons Recomposed By Max Richter], 2012>




<Max Richter [Sleep] - Dream 3, 2015>



직역하자면, '그 이전으로부터의 음악' 이라는 타이틀로 돌아온 막스 리히터. 이번엔 그는 영국의 소프트 머신의 멤버 존 와이어트가 낭송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보고 영감을 받아 과거를 추적하는 내용을 담아 음악으로 표현해냈네요. 막스 리히터의 음악 세계를 우선 접한 후에 음악을 들으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바라보게 할 것 인가에 대한 고민이 잘 느껴질 정도의 소울이 늘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살펴봐온 결과 그는 대게 역사나 인문학을 통하여 영감을 주로 받는 듯 하네요. 어떤 행보를 밟아 왔기에 이러한 음악적 언어를 구축하게 되었는지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막스 리히터의 개인적인 노력도 있었겠지만, 그가 받았던 교육이나 가정 환경에도 분명 영향이 있었을 것 이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음악 교육에 있어서 좀 더 이상적이고 다른 예술 작품들 속에서 더욱 깊이감 있는 음악의 역할로 자리잡기 위해 막스 리히터의 음악과, 그와 같은 현대 음악가들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해 연구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막스 리히터의 최고의 걸작을 2012년과 2015년에 각각 발표한 [Vivaldi - The Four Seasons Recomposed By Max Richter] 과 [Sleep]을 꼽고 싶습니다. 이 앨범들의 타이틀에 아주 간략하게 모든것이 함축되어 있죠. 전자는 말그대로 비발디의 사계를 전부 해체한 후에 그의 스타일로 재작곡한 앨범이고, 후자는 잠을 위해 만든 앨범으로, 수면 기간동안 계속 들을수 있도록 총 8시간의 러닝 타임을 가진 앨범 입니다.  비발디의 사계는 사실 누구나 알법한 클래식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이지만, 막스 리히터의 재해석된 사계를 들으시면 비슷한것 같지만 현대적인 무드가 더욱 짙게 느껴집니다. 기존의 구성 방식은 온데간데 없는채,  화성과 멜로디, 전개 등 모든 부분을 기존의 요소들로 완전히 재조립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도 전 음악이 가진 언어의 능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데요, 어떤 뜻을 이루는 말이나 글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에 의해서 다르게 표현 됩니다.  즉 다시 말해, 어떻게 표현 되었던 상관없이 그것이 지닌 본질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한 본질, 정신이 먼저 갖추어 졌을때야말로 우리가 무엇을 표현하던 간에 중요하지 않게 되고, 또 진정한 문화 국가가 되기 위해선 작은 일이라도 정신을 담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Max Richter - On The Nature Of Daylight>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 에도 삽입 되었던 그의 트랙 <On The Nature Of Daylight> 그의 곡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한데요, 사실 전 셔터 아일랜드 보다는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에 삽입되었을 때가 더 좋은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영화 역시 언어에 관련된 영화인데요, 극중에서 지구에 착륙한 외계인의 언어에 대해 연구하는 여성 언어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외계인의 언어가 음성이 아닌 이미지로 표현되는, 선험적인 형태를 지녔기 때문에 그것을 해독하고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 이영화는 단순히 외계인이 아닌 더욱 깊은 철학적 메세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꼭 보시길 추천해드립니다. 다시 본론으로 넘어와서, 막스 리히터를 포함한 현대 음악 작곡가들은 이렇게 영화 감독들과의 협업을 통하여 다방면으로 영화의 이해와 몰입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음악을 우리는 BGM, 다시 말해 백 그라운드 뮤직 이라고 부르는데, 전 이 어감이 조금은 불만족 스럽습니다. 영화와 음악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인데, 왜 영화 뒤에 깔려 있다는 것을 전제하로 하는지 말입니다. 


전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음악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음악인것은 무엇이며, 음악이 아닌것은 무엇일까요? 전 이세상 모든 소리와, 언어와 시지각적 감각들 전체가 음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의 형태가 어떤것이 되었든, 우리는 그것을 이루고 있는 단순한 표면을 넘어 그안에 내재된 실체를 볼 줄 알아야만 합니다. 오늘은 영화를 통해 음악이 가질 수 있는 단순한 청각적 요소로서의 역할이 파괴됨과 동시에 감각의 위계에 대한 저항, 그리고 영화와 분리된 요소가 아닌 하나로 융합된 필수적 예술요소로써 자리매김 해야하며 권위있는 음악 아카데미들의 교육과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를 구축할 수 있게 된 배경 등을 철저히 연구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음악의 가능성을 더욱 넓고 깊게 펼쳐 나가야만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 그런데 저의 이런 바램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과연 어떤 음악이 나올까요? 열린 결말이니 상상은 여러분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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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세영

SSC MUSIC : 29TH TRACKLIST

SECTION : MUSIC   2018.03.02 18:44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 입니다. 길었던 설 연휴를 뒤로한 채 3월을 맞이하게 되었네요. 3월은 여러모로 시작의 의미가 큰 달로 느껴지는데요, 모든 학생들은 새학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또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달이기도 하기 때문에 활기참이 느껴져서 그런지 전 매우 좋아하는 달인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날씨가 많이 풀렸고 옷차림도 많이 가벼워졌기에 좀 더 가벼운 느낌으로 가야하나 싶었지만 아직은 조금 이른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에 이번 트랙리스트 에서는 뉴에이지와 테크노, 딥하우스와 하우스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더불어 삼청점에 비해 서울숲점의 분위기가 조금 더 차갑기 때문에 하나의 트랙리스트로 두 매장의 분위기의 밸런스를 맞춰야 해서 트랙리스트를 짜기 전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고민 끝에 이전 트랙리스트에서 선보여 드렸던 느낌과 비슷하게 가되 처음과 끝 두 구간에 많은 하우스 트랙들을 삽입하여 지루하지 않게 분위기를 끌어나가보려고 시도하였으며, 또한 너무 가벼운 느낌이 들지 않도록 맨첫과 맨끝 트랙은 비교적 웅장하면서 잔잔한 분위기의 트랙으로 삽입하고, 중간 구간에선 미니멀한 테크노 트랙들을 삽입하여 템포를 조절하였습니다.


첫번째 트랙으로 블레이드러너 2049의 감독이자 차세대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영화 감독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 컨택트, 프리즈너스 등의 음악 감독을 맡은 작곡가 요한 요한슨의 뉴에이지 트랙으로 시작한 후, 이 트랙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프랑스 마르세이유의 Bwi-Bwi와 미국의 Josh Mace가 함께 프로듀싱한 1분 이상의 덥 구간으로 구성된 오프닝을 가진 딥 하우스 트랙으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립니다. 이후에 독일의 딥 하우스 프로듀서 Midas 104 (마이다스 104)  Christian Löffler (크리스챤 뢰플러)가 들려주는 딥 하우스를 거쳐 미국 켄터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하우스 프로듀서 Amtrac (암트랙)이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슈게이징 밴드 Sigur Ros의 곡을 멋지게 하우스로 리믹스한 트랙으로 빠른 리듬을 유지한 채 조금 더 밝은 분위기로 전환시켜 줍니다. 이후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의 하우스 프로듀서 Delano Smith (델라노 스미스)가 들려주는 하우스 트랙은 이전의 딥하우스 트랙들이 들려준 테크노와 같은 리듬의 노선을 살짝 틀어 더욱 경쾌한 리듬으로 여러분의 귀를 열어드립니다. 이후 점점 더 고조될것만 같았던 신나는 리듬을 아이슬란드의 Olafur Arnalds (올라퍼 아르날즈)와 Janus Rasmussen (야누스 라스무센)이 결성한 미니멀 테크노 듀오 Kiasmos (키아스모스)의 테크노로 다시 한번 템포를 살짝 낮춥니다. 이어지는 영국 런던의 Max Cooper (맥스 쿠퍼)와 Nils Frahm(닐스 프람)의 트랙들을 거쳐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의 하우스 트리오 Fresh & Low (프레쉬 앤 로우)가 1997년에 릴리즈한 하우스 명곡 <New Life>로 템포를 한층 더 높입니다. 이후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실험적인 하우스 듀오 Session Victim (세션 빅팀)과 헝가리의 프로듀서 Viktor Udvari (빅토르 우드바리), 디트로이트의 하우스/ 테크노 프로듀서 Omar-S (오마르 에스)의 하우스 트랙으로 쉴틈없이 포-투더 플로어의 리듬을 이어나갑니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트랙으로는 1990년대 맨체스터를 매드체스터로 만들었던, 테크노와 하우스 문화의 기폭제 역할이 되어준 클럽들 중 하나인 하시엔다에서 오랜 기간동안 활동하였고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초의 슈퍼스타 디제이 Sasha (사샤)의 라이브 공연 Re:Fracted 에서 오케스트라 세션들과 함께 공연한 1999년 릴리즈 된 그의 손꼽히는 명곡 <Xpander>의 라이브 공연 실황곡으로 웅장하게 마무리 지어집니다.  


수많은 음악들을 들어오며 살고 있지만, 클럽, 댄스 문화와 뗄레야 뗄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일렉트로니카, 그중에서도 댄스뮤직은 저에게 유독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몇년간 이 음악을 들어오며 과연 댄스뮤직이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보았는데요.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며 춤추는 것을 좋아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순간이 있기도 하고 무아지경에도 이르게 하는 이 음악의 개념을 단순히 춤을 추기 위한 목적으로만 남겨두는 것, 이것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는것은 더 깊은 음악 애호가가 되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걸 넘어서 이 나라의 문화 전체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느꼈습니다. 진정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왜 좋아하는지 분명히 말로써 또는 글로써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 까지의 음악은 '소리'의 개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오로지 청각만으로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었지만 1950년대 당시 독일의 유학생이었던 한 아시아인 청년에 의해 음악의 개념은 행위로써 표현이 되고 음악은 비로소 청각을 넘어서 시각적, 촉각적으로도 느낄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태를 '감각이 전복 되었다.' 라고 종종 표현하는데, 그 유학생은 행위를 통하여 음악을 전시하고 온 몸과 일상속의 도구들, 일상의 소리들로 이루어진 각종 소음들을 이용하여 예술과 일상의 경계 역시 전복 시키고자 하였으며 이는 음악을 넘어 우리의 정신을 옥죄여 온 전통과 질서에 반기를 드는 혁명적 운동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곧 독일의 요셉 보이스와 오노 요코 등과 함께 이런 전위적 예술 운동을 그 이름도 유명한 플럭서스를 통해 펼쳐나가는데, 그 유학생은 바로 고 백남준 선생님 입니다.


같이 근무하는 멤버의 선물을 통해 고 백남준 선생님과 아방가르드가 예술사에서 가지는 의의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곧 저만의 댄스뮤직에 대한 구체적인 논리적 구축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음악을 청각 이라는 감각을 이용해서 접하게 되지만, 춤을 춤으로써 이 청각이라는 감각은 온몸으로 전이 됩니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러한 감각의 전이는 사실 상호 의존하고 있으며, 앞서 말했던 현상인 감각의 전복이 춤을 추는 동안 쉴틈 없이 이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저에게 있어 댄스 뮤직은 아방가르드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고 백남준 선생님에 이어 우리는 얼마전 또 다른 아방가르드 뮤지션인 황병기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고 황병기 선생님을 그저 가야금 명인으로만 기억하는 것과 고 백남준 선생님 역시 그저 행위예술가로만 기억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과거에 묶어놓고 동족의식으로 치장된 허세와 자아도취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을 자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몇번을 언급해도 전혀 과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역사속에 큰 지표를 제시했던 그분들의 흔적을 추적하고 그들의 사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러한 사유들이 어떠한 지도를 그렸는지에 대해 더욱 면밀히 분석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오늘은 고 황병기 선생님의 대표곡인 미궁에 대한 소개를 간단하게 해드리며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황병기 - 미궁>





학창시절 누구나 접했을법한 전설의 게임이 있죠. 화이트데이 라는 학교를 배경으로 한 공포게임인데요, 이 게임의 명성만큼 유명해진 곡이 있습니다. 바로 그 이름도 오싹한, 황병기 선생님의 <미궁> 입니다. 사실 이곡은 모르고 들으면 오컬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무서운 곡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곡의 첫 공연 당시 충격을 먹은 여성 관객이 소리를 지르며 뛰쳐 나가는 등의 소동이 있었고, 70년대에 발표된 후에 너무 쇼킹하여 연주 금지를 받게된 곡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고 들으면 이곡이 이렇게나 깊은 의미를 가졌다는 사실에 대부분 놀라게 되실겁니다. 지금부터 이 곡이 구성된 네가지 부분을 여러분께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음하는 목소리로 시작하는 부분 :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무언가를 읊조리는 듯하기도 하고 앓는 듯한 목소리는 공포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히 차갑습니다. 마치 얼음같은 동굴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면서 날카로운 가야금 소리가 귀를 긁기 시작합니다.  이 부분은 인간의 탄생을 뜻하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탄생은 우주를 떠돌아 다니는 인간의 영혼을 불러오는 과정인 '초혼'을 뜻하는데, 즉 산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을 다시 부른다는 의미에서 저는 불교적 메타포 역시 함의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불교적 메타포는 이어지는 부분에서도 나타납니다.




<고 황병기 선생님>




웃음소리, 울음소리, 신음소리가 이어지는 부분 :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소리가 도대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미묘한 감정적 충돌이 연속되는 부분인데요, 모든 인간이 문화나 언어와는 상관 없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소리를 담은 것이라고 하네요. 제가 생각했을 땐 인종이나, 시대 역시도 거스를 수 있는 언어가 바로 이런 소리들인것 같습니다.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고유의 소리가 있듯이, 모든 물질이나 물체에도 소리가 있지 않을까요? 언어가 의사 소통이 아닌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보게 된다면 언어가 사실은 인간이 있기 전부터 태초에 이미 존재 했던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문 읽는 소리를 내는 부분 : 대개 연주 당일 발간된 신문에 수록된 기사 중 하나를 선택하여 읽는 듯하며, 처음에는 천천히 또박또박 읽지만, 가면 갈수록 목소리의 음역대가 높아지고 빨라져서 나중엔 마치 빨리 감기를 한듯 알아 들을수 없는 말로 굉장히 빨리 말을 합니다. 이 부분은 문화와 문명을 이루고 있는 인간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풍요롭고 지혜로운 삶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잔혹함과 이기적임, 폭력성도 안겨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진정 편리한 시대인지, 더욱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때때로 우리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부분들에 대해 스스로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반야심경의 마지막 부분을 외우는 부분 : 반야심경의 마지막 부분을 천천히 길게 늘어뜨려 읊조리는 부분 입니다. 짧은 멜로디를 툭툭 던지듯이 연주하는 황병기 선생님의 가야금 선율 위에서 어우러지는 반야심경은 저절로 명상의 시간에 잠기게끔 유도합니다. 이 곡의 주제가 인간의 희노애락과 더불어 인생 한 주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깨달음을 얻고 피안(불교에서 해탈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으로 넘어가자'는 뜻을 가진 이 부분은 죽음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황병기 - 춘설>




<황병기 - 비단길>


<황병기 - 침향무>




지금까지 총 네 구간으로 나누어 황병기 선생님의 미궁에 관해 소개해드려 보았습니다. 이 설명들을 보고 다시 들어보시면 아주 많이 다르게 음악이 들린다는 걸 분명 느끼실 것 같습니다. 인간의 희노애락, 탄생과 죽음, 언어 이전의 언어 라고 표현될 수 있는 원초적 언어들. 다소 원초적이면서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듯한 내용의 이 곡을 국악이라는 장르로 작곡했다는 것을 진정 아방가르드가 아닌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미궁을 포함하여 황병기 선생님은 생애 동안 총 다섯개의 정규 음반을 내셨고,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도 활동 하며 국악의 아름다움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으셨던 분이었습니다. 유투브로도 황병기 선생님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지만, 저는 다음 휴무엔 세운상가 옆에 위치한 서울레코드에 방문하여 그의 앨범을 몇가지 구입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제 자식들에게 씨디를 보여주면서 우리나라에도 아방가르드적 음악 세계를 국악으로 구축하셨던 선구자가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말해줄 것입니다. 




<Sasha - Xpander (Re-Fracted : Live At The Barbican)>




본명 알렉산더 코(Alexander Coe)라는 이름을 가진 디제이 사샤(Sasha)는 1969년 영국의 웨일즈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년기 시절 스팅의 폴리스(The Police)나 뉴웨이브 밴드인 더더(The The) 같은 유명 밴드들의 음악을 즐겨 들으며 음악적 감성을 키워나갔고, 영국의 아이들이 한창 축구에 미쳐있을 법한 열일곱살 이라는 나이에 그는 대학교 입학 자격 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총명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와 재혼한 계모의 권유로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고, 머지 않은 미래에 맨체스터에서 최초의 슈퍼스타 디제이/프로듀서로 발돋움 하게 도와줄 본격적 음악 활동이 그렇게 시작하게 됩니다.




<Alexander Paul Coe, Aka Sasha>



<Sasha & John Digweed Live at Ultra Music Festival 2017>



1988년 부터 영국 맨체스터(Manchester)에 위치한 한 펍에서 30개의 바이닐로 디제잉을 하며 데뷔 무대를 치르게 되고, 이후 클럽 하시엔다(The Hacienda)에서 본격적인 레지던트 활동하기 시작한 사샤는 자신이 직접 리믹스한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 음악을 플레잉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명성을 높이기 시작합니다. 하우스의 본고장은 사실 미국의 시카고 이지만, 전국적인 명성을 얻으며 인기가 급부상 하기 시작하게 된 국가는 바로 영국입니다. 그중에서도 런던보다 북부에 위치한 맨체스터에 하시엔다는 하우스 무브먼트의 중심지였습니다. 하시엔다는 영국을 대표하는 뉴웨이브 그룹 뉴오더를 배출한 전설적인 레이블 팩토리 레코즈에서 만든 클럽이었습니다. 오픈후 처음 몇년간은 적자였으나, 1985년 누드 (Nude) 라는 이름의 하우스 음악 파티로 본격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맨체스터에서의 활동 이후 사샤는 90년대 초반엔 유명 클럽 겸 레이블인 르네상스 (Renaissance) 레지던트 디제이로 진출하게 되면서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함께 펼쳐가고 있는 그의 파트너 존 딕위드 (John Digweed)를 만나게 됩니다. 




<Sasha & Digweed Northern Exposure Expeditions CD1>




서로 비슷한 이상향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1997년부터 매년 각자의 음악적 성향을 적절히 융합하여 르네상스 레이블을 통해 이들은 Leftfield , Fluke , 2 Bad Mice 와 같은 아티스트들의 트랙을 자신들의 오리지날 트랙과 함께 믹스하여 3장의 [Nothern Exposure] 시리즈 앨범을 발표해 백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게 됩니다. 바야흐로 디제이 전성시대. 이때 당시엔 오리지날 트랙이 수록된 정규 앨범이 아닌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곡을 믹스해 만든 이런 믹스테잎도 정말 잘 팔렸다고 하네요. 이 두명의 슈퍼스타 디제이의 인기 고공행진을 멈출줄을 몰랐습니다. 거대 레이블 울트라 레코드(Ultra Records)의 제의를 받아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며 미국 투어는 물론이며 뉴욕 최고의 클럽 트와일로(Twilo)에서 레지던트 디제이로도 활동하며 그 위상을 나날히 높혀가게 됩니다.


초기 사샤의 작업물들은 영국의 레이브 컬쳐에서 영향을 받아 거친 스타일을 보여주었으나 1990년대 초반에는 좀 더 어두운 스타일의 하우스로 아이덴티티를 강화하였고 르네상스 시절엔 Moby, Spooky, Leftfield 등의 영향을 받아 팝 기반의 사운드 역시 흡수하게 됩니다. 이후 [Xpander] 발표를 하기까지엔 Armin Van Buuren, Sven Vath 등의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트랜스에서도 영향을 받게 되며 점진적으로 더욱 굳건한 정체성을 굳혀나가게 됩니다.




<BT - Remember (Sasha's Remix)>




<Bedrock Feat. KYO - For What You Dream Of>




사샤의 레지던트 디제이로서의 활동은 영국 런던의 패브릭(Fabric), 스페인 이비자의 스페이스(Space)에서도 이어졌으며 그는 미국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BT, Seal등의 아티스트들의 트랙들 프로듀싱에 참여한 이후 Orbital의 리믹스를 맡아 96년 ‘올해의 리믹스’ 상을 수상하였으며, Madonna 의 <Ray of Light>와 GusGus 의 <Purple>을 리믹스 하여 더 대중적인 인지도를 지닌 아티스트로 확립하게 됩니다. 1997년엔 존 딕위드와 사샤는 각자 [Bedrock Records]와 [Excession Records]라는 이름으로 레이블을 설립하게 됩니다. 사실 Bedrock은 존 딕위드의 데뷔시절부터 사용해오던 가명이었는데, 1993년에 프로듀싱 파트너 닉 뭐(Nick Muir)와 함께 Bedrock 이라는 이름하에 <[For What You’re Dreamed Of] 라는 타이틀의 싱글 앨범을 발매하게 되고, 이 곡은 영국 클럽씬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1995년엔 영화 트레인스포팅에 삽입되며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됩니다.




<Sasha & John Digweed Presents [Delta Heavy] Live At Detroit>




또 이후 이들이 레지던트 디제이 활동을 해오던 클럽 트와일로가 폐업하게 되고, 이들은 'Delta Heavy' 라는 디제잉과 레이저 쇼와 비디오 프로덕션을 결합한 투어를 기획하였고  이 투어로 디제이와 클럽 문화가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였습니다. 델타 헤비 투어 이후에 이들은 각자의 활동으로 인하여 공동 작업을 하기에 무리가 갈 정도의 스케줄을 소화해야만 했고, 이 듀오의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게 됩니다.




<Sasha ‎– Global Underground 009: San Francisco (CD 1)>




<Sasha ‎– Global Underground 009: San Francisco (CD 2)>




<Sasha - Xpander>




1999년 사샤는 마리아 네일러(Maria Maylor)를 피쳐링한 싱글 <Be As One>을 발표해 싱글 차트 20위 안에 드는 쾌거를 거두었고 2000년 여름 진정한 아티스트로서 그의 잠재력이 완전히 발현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는 최고의 명곡 <Xpander>가 수록된 [Xpander Ep]를 발매하여 앨범 차트 18위를 기록하였습니다. 1999년과 2000년 영국의 [Global Underground] 레이블에서 발매한 [GU #009 San Francisco]와 [GU #013 Ibiza] 라이브 믹스 앨범은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샌프란시스코 라이브 믹스 앨범은 그의 최고의 명반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Xpander> 트랙 같은 경우, 오리지날 트랙과 저희의 트랙리스트에 삽입되어 있는 2017년 오케스트라 라이브 버젼과 비교하여 감상해보시면 좀 더 재미있게 들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리지날 트랙 같은 경우, 빠른 BPM의 트랜스와 같은 분위기의 트랙인데 라이브 버젼에서는 곡의 전개는 물론 BPM도 길게 늘어뜨려 좀 더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네요. 





<Sasha -‎ [Airdrawndagger], 2002>




<Hot Chip - Flutes (Sasha remix), 2012>




2002년 최초의 정규 아티스트 앨범 [Airdrawndagger]를 발표한 사샤는 에이블톤 라이브(Ableton Live)와 턴테이블을 함께 사용하여 라이브 공연을 펼치며 기술적으로도 진보된 아티스트임을 스스로 증명해냈습니다. 그는 2004년 에이블톤을 이용한 [Involver] 앨범을 발표한 후 [Fundacion]이라는 이름으로 뉴욕의 Crobar, LA의 Avalon, 이비자의 Space와 같은 클럽에서 정기적으로 파티를 열기도 하였고, 이어 2005년 여름 뉴욕에서 열린 [Fundacion] 의 라이브 실황을 담은 동명의 앨범이 글로벌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발표 되었고 사샤는 기술적으로도 진보된 아티스트로써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샤의 소개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트랙은 바로 2012년 발표된 Hot Chip의 곡을 매력적인 테크하우스로 리믹스한 곡 입니다. 이때 당시가 전 너무나도 생생히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전 수능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의 학생이었고, 일렉트로니카를 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이곡을 밤에 혼자 들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뭐랄까요. 마치 기쁘거나 슬플때, 외롭거나 심심할때 등 언제 들어도 저를 위로해주는 느낌을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받고 있습니다. 아, 특히 이곡은 당시 꽝꽝 울려대는 일렉트로 하우스 같은 장르들이 비트포트의 차트를 장악할 당시, 그런 곡들 사이에서 테크하우스 라는 장르의 곡으로 1위를 한 위엄을 보여주며 일렉트로 하우스를 비롯한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등의 메이저 씬의 헤게모니를 잠시동안 섭렵하여 1세대의 클래시컬함을 증명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때 당시의 기분을 전해드리고 있으니 클래식은 영원하다 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 나네요. 오늘 퇴근길에 이곡을 들을 생각을 하니 창문 너머 노랗게 변해가는 노을이 이렇게 반가울수가 없네요. 마지막으로 Sasha의 Xpander를 연주한 Sasha의 Re:Fracted 라이브의 다른 곡들과 함께 사샤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무드있게 주말을 보내고 싶으신 분들께 적극적으로 추천해드립니다.




<Sasha - Battleships (Re:Fracted : Live At The Barbican))>




<Sasha - Wavy Gravy (Re:Fracted : Live At The Barbican)>




평창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이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사실 전 텔레비전을 아예 시청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올림픽 경기를 관람한 적은 행사 기간동안 한번도 없었네요. 이번 동계 올림픽이 그래도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뉴스 기사로 접했는데요, 사실 전 올림픽을 통해 얼마나 많은 수익이 창출되었냐가 성공의 판단 기준이 아니라 올림픽 정신을 얼마나 흡수하려고 했느냐가 더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운동을 통해 선수들은 승리와 패배, 서로간의 화합을 통해 전세계인들이 진정한 평화를 실현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에만 이루어지는 평화가 진짜 평화인가 과연 의문이 듭니다. 


실은 우리 인생도 올림픽도 다름 없습니다. 누군가는 노력하고, 누군가는 안주하고, 누군가는 정치를 통해 승리를 취하려 하고, 실패를 딛고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한번의 실패로 좌절하고 포기하는 경우도 있죠. 이 모든걸 이기고 성장해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메달을 걸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의 삶의 태도 자체가 올림픽이 되어야만 합니다. 서로의 승리와 패배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도 조금씩 본받아야겠다고 느꼈으면 좋겠지만 제 욕심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느낄수는 없겠죠. 그러나 어린 아이들이 부모들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듯이, 삶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말과 행동이 타자의 자아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진정한 교육은 스스로가 먼저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을 되돌아 보았을때 전 우리나라의 시민의식이 그래도 점점 고취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미래에 우리나라에서 다시 한번 올림픽이 열리게 되었을땐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올림픽 정신을 흡수하고 실천하게 된다면 좋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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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세영

SSC MUSIC : 28TH TRACKLIST

SECTION : MUSIC   2018.02.04 15:34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 입니다. 어느새 2018년의 1월도 지나가버리고 2월이 찾아왔네요. 1월의 마지막 날인 1월 31일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희 슬로우스테디클럽의 두번째 공간 Slow Steady Club Discovery가 서울숲에서 여러분께 처음으로 소개해드린 날입니다. 원덕현 실장님께서 처음 이 공간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을때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인 2001 :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언급 하셨는데, 전 우주의 텅 빈 공간과 진공의 상태, 그리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 분위기를 이 트랙리스트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트랙리스트 에서는 앰비언트와 덥 테크노, 딥하우스와 하우스의 장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처음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조금씩 빨라지는 템포에 따라 장르를 변환하는 방식으로 구성해보았습니다. 우선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제자에게 클래식 피아노 교육을 받은 독일의 프로듀서 닐스 프람과 아이슬란드의 프로듀서 올라프 아르날즈의 잔잔한 네오 클래식 트랙으로 시작을 알립니다. 이후에 그리스의 프로듀서 멜로르만의 다운템포와 앰비언트 트랙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금 고조시킨 후에 러시아의 테크노 프로듀서 Deni Diezer의 덥 테크노 트랙들과 세르비아의 <Tehnofonika Records>, 이탈리아의의 <Biorecordings>, 헝가리의 <Moira Audio> 레이블에서 찾은 덥 테크노 트랙들로 몽환적인 분위기에 리듬을 가미하여 집중을 유도해보았습니다. 


덥 테크노에서 딥 하우스로 전환되는 시점에는 런던의 <Rhythm Section Intl> 소속 아티스트들이 들려주는 딥 하우스 트랙들은 조금 더 빨라진 템포로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켜줍니다. 이후 캐나다 몬트리올을 기반으로 한 매거진 <Bolting Bits>에서 소개하는 딥 하우스 트랙과 영국 런던의 레이블 <Just Music Label>에서 소개하는 앰비언트 하우스의 트랙을 거쳐 노르웨이의 피아니스트이자 프로듀서로 활동중이며 재즈 레이블 <Jazzland>의 수장으로 활동중인 Bugge Wesseltoft(부게 베셀토프트) 와 독일의 테크노, 하우스, 누재즈 등을 기반으로 하여 디제이와 프로듀서로 활동중인 Henrik Schwarz(헨릭 슈바르츠) 로 결성된 듀오 Bugge Wesseltoft & Henrik Schwarz의 재즈 앰비언트 트랙을 각각 독일 베를린의 Yves & Malik (이브스 앤 말릭) 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Daniel Zuur (다니엘 주르)가 아주 멋지게 하우스로 리믹스한 트랙을 소개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 활동중인 현대 음악의 거장 Ludovico Einaudi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뉴에이지 트랙을 호주 시드니의 하우스 프로듀서 Alex Daniell가 리믹스한 트랙으로 마무리 됩니다. 즐겁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Ludovico Einaudi>




이 사진은 합성 사진이 아닙니다. 피아니스트의 발 아래에 있는 것은 북극 바다위에서 떠도는 빙하 조각이 아닌, 인공적으로 설치된 빙하 모양의 무대입니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현대 음악가이자 피아니스트, 작곡가인 Ludovico Einaudi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와 그린피스가 협업하여 진행한 지구 환경 보존 캠페인의 일환으로 펼쳐진 퍼포먼스 입니다. 이 퍼포먼스에서 그는 'Elegy For The Arctic' 이라는 곡을 연주하는데, 연주 중간에 실제로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며 인간들로 인하여 파괴된 자연의 고통을 극대화시켜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실 이 아티스트를 소개하면서 제일 첫번째 사진으로 무엇을 올릴지 꽤나 고민되었습니다.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되 다양한 일렉트로니카적인 요소를 결합해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음악과 뉴에이지 등의 여러 장르를 섭렵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가진 음악적 다양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라이브 공연 중 여러 세션맨들과 찍힌 사진을 처음에 골랐었지만, 그런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인간의 삶에서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제일 아름답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잠시 생각해보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진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진을 보시게 되면 이 남자가 어떤 음악가인지 궁금하지 않을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에 관하여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Ludwig van Beethoven>




<Franz Joseph Haydn>




<Wolfgang Amadeus Mozart>




우선 이 아티스트의 관해 설명을 드리기 전에 '클래식' 이라는 단어에 기원을 추적하여 역사에 따른 개념의 변화를 알아봄으로써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Classic (클래식) 이라 하면 보통 우아하고, 고상하며 어렵고, 지루한 이미지를 가지는 단어 입니다. 클래식은 넓은 의미로는 전통적인 서양 음악을 표현하며, 특정 연대에 있어서는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등이 활동했던 유럽의 고전시대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음악뿐만 아니라 예술에서 장르를 불문하고 특정의 다수 작품을 가리켜 클래식 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고전' 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단어가 중세시대 유럽에서 어떻게 다시 표현되기까지 이르렀을까요?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클래식의 어원은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로, 기원전 6세기 경 고대 로마 시민의 6계급 중 최상위의 계급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고로, 그당시의 클래식 음악은 최상급 계급, 즉, 부자들이 우아하고 고상하게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의미로 군인의 최고 지위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중세시대 말을 지나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 들면서 클래식 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조금 달라지게 되는데요, 그때 당시 유럽인들에게 고대 로마인들의 예술성은 본받아야 할 정신의 모범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고대 로마 시대의 예술을 통틀어 클래식이라고 총칭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클래식 음악의 목적은 단순한 오락 보다는 삶과 정신적 풍요로움을 위한 교양 목적의 음악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우리의 삶과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음악.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하는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의무는 아니지만, 이 음악이 기저에 놓여져 있는 고대 로마 시대의 정신,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한 선조들의 켜켜히 쌓여온 사유의 흔적들을 탐구하며 아름다운 삶과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려고 하는 자세는 저에게 있어서 의무를 넘어 삶의 가장 큰 목적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클래식 음악의 정신을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어떤 방식으로 계승해나가고 있을까요? 앞에서 보았던 그린피스와의 프로젝트를 통해 펼쳐진 퍼포먼스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유년기 시절부터의 행보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Ludovico Einaudi>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이탈리아의 북부 피에몬테주의 토리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인 루이지 에이나우디는 이탈리아의 2대 대통령이었으며, 아버지인 줄리오 에이나우디는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출판업자 였습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집안은 꽤나 풍요로웠을 것으로 예상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풍요로웠던 가정 환경보다 그의 유년기에 직접적으로 영향 끼쳤던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그의 어머니인 레나타 알드로반디는 어린 아이인 루도비코에게 자주 피아노를 연주해 들려주었는데, 그녀의 아버지 (즉 루도비코의 외할아버지)인 왈도 알드로반디는 제 2차 세계 대전 후에 호주로 이주한 피아니스트, 오페라 지휘자 및 작곡가였습니다.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고 외할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탓일까요? 그는 10대라는 이른 나이부터 본격적으로 민속 기타를 이용하여 작곡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 들어가 음악 공부를 하기 시작하는데, 1982년에 학위를 수여한 기록이 있는것으로 보아 1970년대 중후반에 공부를 시작하였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그는 루치아노 베리오에게 오케스트라 수업을 받았고 탱글우드 음악제에서 장학금을 수여하기도 합니다. 그에 따르면, 루치아노 베리오는 아프리카 음악과,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음악에 매우 관심이 많았었다고 하네요. 이런 음악에 대한 열린 사고 방식을 가진 스승의 가르침은 미래에 그가 클래식에 일렉트로니카와 재즈 팝 민속 음악 등을 크로스오버하여 작업물들을 선보이는 그의 음악 형태에도 꽤나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예상 됩니다. 


밀라노에서 음악 공부를 마친후에 그는 몇년간을 전통 음악을 작곡하는데에 시간을 보냅니다.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는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색다른 결과물을 선보이기로 하는데, 다름 아닌 발레와 무대극이었습니다. 1984년 극작가인 안드레아 드 카를로와 함께 발레 연극 'Sul filo d'Orfeo'의 작곡 작업을 함께 하여 주목을 받았으며 1988년에 같은 팀들로 구성된 발레 연극 'Time Out'을, 1991년엔 'The Emporer'를 작곡하여 이탈리아 최고의 고전무대인 베로나 오페라 축제에서 오페라 발레극을 발표합니다. 1997년에는 'E.A Poe' 라는 무성 영화에 자신이 작곡한 사운드 트랙을 얹는 등의 작업물도 발표하여 그의 작업물들은 이때 당시 대체로 연극과 영화계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자신을 평가하는 수식어로 자주 따라붙는 '미니멀리스트' 라는 단어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정의하는것을 싫어하지만, '미니멀리즘'이 우아하고(Elegance), 개방적인(Openness) 음악을 지칭하는 단어라면, 나는 다른 어떤것들보다 미니멀리스트로 불리고 싶다.'


이전 포스팅에서 소개해드렸던 류이치 사카모토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자신 또는 자신의 음악이 특정 장르로 구분되는 행위에 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들은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과 여러 요소들은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색해질 정도의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전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음악을 혼자 명상하거나 독서를 할때 자주 듣고는 합니다. 그의 라이브 공연 영상과 함께 여러분도 깊은 생각에 잠기시거나 집중하실때 들어보시면 더욱 아름답게 들려올 것 같습니다.




<Ludovico Einaudi Elements Live, 2015>




2018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이 개최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역대 올림픽 주제곡들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부터, 2016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 올림픽까지 정리해보았습니다. 정보가 많이 없는 곡들은 꽤 부족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지만, 제가 소개해 드리고 싶은 곡이나 아티스트 위주로 최대한 알차게 구성해보고자 하였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Rene Simard - Bienvenue a Montreal>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올림픽 역사상 첫 테마곡이 탄생하게 됩니다. 청중들 앞에서 흥겹게 노래하고 있는 바가지 머리의 소년을 한번 보세요. 짧은 자켓과 통큰 나팔바지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패션 트렌드 였었나 봅니다. 이 최초의 올림픽 테마곡을 부르게 된 영광을 안게된 소년은 퀘백 출신의 15살의 르네 시마르 입니다. 현재까지도 가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곡 및 프로듀싱은 샹송으로 유명한 프로듀서 르네 안젤릴으로 대표곡으로는 'Non pleure pas', 'L'oiseau'이 있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Tõnis Mägi - Olympiad>


러시아의 서쪽에 위치하여 발트해에 맞 닿아 있는 작은 국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에스토니아 인데요, 이름만으로도 생소한 이 에스토니아에서 두번째 올림픽 주제곡을 부르게 된 영광을 누린 가수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토나스 마기 인데요, 그는 에스토니아의 록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음악가 중 한명으로  가수이자 기타리스트, 배우로도 활동중인 아티스트 입니다. 특히 1970 - 1980년대엔 에스토니아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 했었습니다. 아, 그 당시라면 러시아가 아니라 소비에트 연방국 (소련) 이었겠네요. 1987년 반소비에트 혁명인 '노래하는 혁명'을 통해 그는 'Koit'이라는 곡을 발표하였는데 이 곡을 에스토니아에서 자유의 상징으로 불리는 송가로 불러지게 되며 그의 노래와 함께 그 역시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John Williams - Bugler's Dream Olympic Fanfare And Theme>


우리가 통상적으로 TV에서 방영해주는 올림픽 방송들을 볼때, 중간중간에 흘러 나오는 음악들은 대부분 음악감독인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곡들입니다.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의 테마곡으로 사용된 이곡은, 리용과 파리 음악원에서 라벨, 당디 등의 음악가와 작곡을 공부했고, 미국으로 이민가서는 헐리우드에서 영화음악등의 작곡가, 기획가등으로 활동한 Leo Arnaud의 'Bugler's Dream' 이라는 곡을 편곡하여 제작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노래의 제목은 두개의 제목이 합쳐진 타이틀로 불리우곤 하는데, 이곡은 미국에서 ㅎ학교 졸업식에 재생되는 음악으로 자주 쓰인다네요. 사실 저는 잘 모르겠으나 미국인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음악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존 윌리엄스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절친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음악감독 입니다. 그는 엔니오 모리코네, 한스 짐머와 더불어 생존하고 있는 영화음악계의 거장 중 하나로 <죠스> 와 <스타워즈>시리즈의 장엄한 배경 음악들을 작곡하며 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앞서 소개해드렸던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테마 주제곡을 맡은 이후부터는 미국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영화음악 작곡가가 되었다고 하네요. 그는 특히 리하르트 바그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죠스>, <스타워즈>, <슈퍼맨>, <E.T.>, <인디아나 존스>, <JFK>, <라이언 일병 구하기>, <쥬라기공원>, <해리포터> 에서 웅장하고 장엄한 스케일의 음악을 들려주고, <쉰들러 리스트>, <뮌헨> 등에선 우울하고 잔잔한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였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쥬라기공원의 테마곡을 참 좋아합니다. 어렸을 적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공룡 이라는 생물은 아직까지 저에게 가장 멋진 판타지로도 남아있기 때문인데요. 퇴근길에 오랜만에 쥬라기 공원 테마곡을 들어야겠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추억으로 남아있는 영화 음악을 오늘 한번 들어보는게 어떠신가요? 그 곡 역시 아마 존 윌리엄스의 곡일지도 모릅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Giorgio Moroder - Reach Out>


2014년에 발표되어 큰 이슈가 되었던 전설적인 프랑스의 일렉트로닉 듀오 Daft Punk의 정규 앨범 [Random Access Memories]의 3번 트랙 'Giorgio By Moroder' 라는 곡을 들어보셨나요?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남성의 내레이션이 계속 되는데, 이 내레이션의 주인공이 바로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릭핌 테마곡의 작곡가이자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조르지오 모로더 입니다. 




<젊은 시절의 조르지오 모로더>




<Giorgio Moroder Live At 'I Feel Love' 40 Years Celebration Brooklyn>




조르지오 모로더는 1970~80년대에 신시사이저를 통한 혁신적인 연주를 통하여 일렉트로니카, 뉴 웨이브, 하우스, 테크노 음악 등에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 입니다. 특히 디스코의 시대에 도나 서머와의 작품으로 알려 졌는데, 그가 만든 트랙이 바로 'I Feel Love' 인데, 이곡은 댄스 뮤직의 혁명이라는 호평을 받은 곡으로도 유명하죠. 모로더는 또한 뮌헨의 뮤직랜드 스튜디오(Musicland Studios)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 레드 제플린, 퀸 그리고 엘튼 존 등 1980~90년대의 많은 가수들이 거쳐 녹음하였던 음악계의 성지 중 하나로 불리웁니다. 그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영화 음악 작곡으로 1978년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고, 이후에도 1984년 영화 《플래시댄스》의 삽입곡 'Flashdance...What a Feeling' 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1987년 영화 <탑 건> 의 삽입곡 'Take My Breath Away' 로도 아카데미 주제가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모로더는 총 3번의 오스카 트로피를 안는 영광을 누린 영화 음악과 일렉트로니카를 아우르는 엄청난 뮤지션 입니다. 


백발의 노인이 되었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디제이로도 무대에도 오르곤 합니다. 믹스맥 매거진, 카사블랑카 레코즈 그리고 스미노프가 합작하여 주최한 도나 서머의 'I Fell Love'의 40주년 파티에서 그는 아주 멋지게 디제잉을 하며 청중을 압도합니다. 청춘은 정말 외모가 아닌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영상이기에 여러분께 꼭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이 말이 떠오릅니다. 청바지! (청춘은 바로 지금) 




<1988년 서울 올림픽 코리아나 - 손에 손잡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 곡을 모를수가 없죠. 코리아나의 전설적인 올림픽 테마곡인 '손에 손잡고' 입니다. 이곡은 전세계에 1,700만 장의 싱글 판매액을 올렸다고 추정되고 있으며 독일, 일본, 홍콩, 스위스, 스페인을 비롯한 17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올림픽 기간 중 라디오 방송 리퀘스트 1위를 달리는 등 대단한 기록록을 남깁니다. 


제가 한국인이어서도 있지만, 노래의 가사나 무대의 연출 등 모든것이 저에겐 사실 이 곡을 따라올 올림픽 주제곡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곡이 나올 당시 제가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노래 입니다. 저는 이 공연의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을 많이 받았고 저에게 큰 영향을 준 곡 입니다. 가사와 무대 연출은 전세계 사람들 모두가 공감하고 염원하고 있는 전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너무나도 잘 표현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곡 역시 앞서 소개해드렸던 작고가 조르지오 모로더에 의해 탄생한 곡입니다. 당시 조르지오 모로더의 능력은 이미 앞서 작곡을 맡았던 영화 음악이나 수상 경력에 의해 충분히 검증되었기에 그는 역사적인 올림픽 테마곡의 작곡가로 의뢰 받기에 충분한 자격을 지닌 뮤지션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전세계에 최초로 알려지는 기회인데, 해외의 작곡가에게 주제곡을 맡기는 것이 타당하냐는 반발이 빗발쳤으나 이 곡에 대한 믿음이 컸는지 서울 올림픽 조직 위원회에서는 국내의 음악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국내에서 만들어진 올림픽 관련 곡들과 '손에 손잡고'를 직접 비교하며 들어보는 품평회를 실시하는 파격적인 이벤트를 열게 됩니다. 이 이벤트에는 조르지오 모로더도 직접 참가할 정도로 그는 엄청난 열정을 보여줬는데, 그의 열정은 이게 끝이 아니라 이미 이 곡을 작곡하기 전에 한국에 대해 잘 알기 위하여 한국의 곡을 3000개 넘게 들어보았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후 품평회에서 그의 곡을 월등히 뛰어난 퀄리티로 국내 음악 관계자들도 이를 인정하고 결국 마침내 최종적으로 1988년 올림픽 테마곡으로 선정 되었다고 하네요.


이미 최고의 자리에 위치한 조르지오 모로더 였으나, 한국의 노래를 3000곡을 들어보는 태도는 정말 의욕이 넘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가 왜 성공한 작곡가가 되었는지 이 단편적인 이야기만 봐도 잘 알수 있는것 같네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Sarah Brightman & José Carreras - Amigos Para Siempre>


우리나라 말로 영원한 친구들 이라는 뜻을 가진 'Amigos Para Siempre' 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주제곡 입니다. 전설적인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과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추앙받고 있는 호세 까레라스가 함께 불렀습니다. 노래의 가사는 지구촌 사람들 모두 친구가 되자는 뜻을 담고 있는데, 올림픽 정신에 걸맞게 평화와 사랑을 염원하고 있는 아름다운 노래 입니다. 


이 노래를 작곡한 작곡가는 영국의 앤드류 로이드 웨버 라는 뮤지컬 작곡가 인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오페라의 유령, 캣츠, 에비타를 작곡한 슈퍼스타 작곡가 이기도 합니다. 그의 음악이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눈에 띄는 점이 있는데, 그 이전의 작곡가들이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였지만 ,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클래시컬한 음악을 들려주었다면 그는 팝, 록, 재즈 등 다양한 장르에 클래식을 곁들이는 음악적 절충주의를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그의 대표작인 오페라의 유령은 전체적으로 보았을땐 오페라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같은 제목의 주제곡은 굉장히 거친 하드록에 가까운 음악으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에비타는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탱고, 룸바등의 다양한 라틴계 음악들이 록, 팝, 클래식 등과 함께 섞여 있습니다. 


전 어렸을 적 저희 집에서 제일 자주 흘러 나오던 음악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과 캣츠, 이렇게 두가지 였었는데요, 그당시에는 이해가 안되는 음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니 제가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며 듣지도 않았어도 저의 귀를 열어주게 한 큰 영향 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Gloria Estefan - Reach>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테마곡에서는 쿠바 출신의 미국 가수 글로리아 에스테판을 기용한 것은, 다문화/ 다민족 국가를 표방하는 미국을 표현하기 위해서 라네요. 


라틴 팝의 대모로 불리는 글로리아 에스테판은 쿠바 아바나에서 태어나 피델 카스트로의 통치를 피하기 위해 3세 때 온 가족이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로 이주하게 됩니다. 난민의 처지로 미국에 정착하게된 그녀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습니다. 일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며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고 때문에 야간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힘든 상황에서 글로리아를 지탱해 줬던 것은 기타와 음악이었습니다. 1975년 마이애미 대학에 진학한 글로리아는 밴드 ‘마이애미 라틴 보이스’를 이끌던 에밀리오 에스테판을 만나 함께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였고 꿈꾸던 음악적 욕구를 실현할 토대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 그룹이 유명한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이었습니다.


1977년에 <Audiofon Records>에서 첫 음반 'Live Again'과 'Renacer' 발매를 시작으로 밴드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첫 디스코그라피가 됩니다. 1978년에 밴드와 동명의 앨범 [Miami Sound Machine]을 발매하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1984년의 [Eyes of Innocence], 1985년 [Primitive Love] 앨범을 발매, 4곡을 빌보드 상위권에 올리는 기염을 토한다. 같은 해에 영화 <Top Gun>에 싱글 'Hot Summer Nights'를 실으며 이들의 인기는 정점을 찍게 됩니다. 87년의 <Let It Loose>는 미국 본토에서만 3백만장이 팔리며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6곡이 빌보드 상위권에 올라가며 밴드명을 'Gloria Estefan and Miami Sound Machine' 으로 바꾸지만 1989년에 밴드명에서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을 빼버리게 되고,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글로리아 에스테판이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업적은 바로 라틴 팝의 시장을 미국에 개척하여 큰 성공을 거둔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로리아 에스테반의 기운을 이어 받아 그녀 이후 샤키라,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등 기라성같은 라틴 팝 가수들이 미국 시장을 공략해서 성공적으로 빌보드 차트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1990년 눈보라에서 일어난 버스 사고로 척추가 파열되는 큰 사고를 겪기도 하는데, 목숨을 잃을수도 있는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척추에 티타늄 보형을 이식하고 1년간의 긴 재활 끝에 활동에 시동을 걸었는데, 그때 발표한 곡 'Coming Out Of Dark'는 그녀 커리어 사상 최초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달성하는 감동적인 순간을 그녀에게 안겨줍니다. 현재까지도 라틴팝의 대모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녀의 딸 역시 에밀리 역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중인데 무려 퀸시 존스의 대녀로, 어머니와 함께 종종 무대에 오른다고 합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Tina Arena - The Flame>


호주의 팝 가수 티나 아레나가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노래하는 모습으로 연출된 이 곡은 호주의 대표적인 팝송 작곡가이며 ‘호주의 우상(Australian Idol)’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한 존 푸어맨이 작곡한 'The Flame' 입니다. 새천년에 접어들어 처음 열리게 된 올림픽인만큼 당시 호주 국민들은 굉장히 새로운 감회였을 것 같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Bjork - Oceania>


아이슬란드 출신의 가수 비요크가 부른 오세아니아는, 역대 올림픽 주제곡 중 가장 아방가르드한 곡으로 평가받는 노래 입니다. 이 노래는 올림픽 주제곡 모두를 모아서 보아도 비요크 아니면 부를만한 가수가 없는 것이라고 느껴지네요. 그만큼 그녀의 전위성이 무척 짙게 느껴지며 그리스를 둘러싸고 있는 지중해와 신비로운 역사의 아우라까지 느껴지는 곡 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Sun Nan and Coco Lee - Forever Friends>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주제곡, 영원한 친구들 이라는 제목의 노래 입니다. 이 곡의 작곡에도 역시 조르지오 모로더가 참여 했습니다. 중국의 남성 가수 ‘쑨난’과 홍콩 여가수 ‘코코리’가 함께 불렀습니다. 




<2012 런던 올림픽 Muse - Survivor>


말할 것도 없는 영국 최고의 밴드 중 하나인 뮤즈가 부른 Survivor은 2012년 런던 올림픽 테마곡으로 지정 되었는데,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록 이라는 장르로 만들어진 곡 입니다. 피아노 연주 뒤에 이어지는 매튜의 비장한 느낌의 보컬과 코러스의 조화, 매튜 벨라미의 보컬 위에 얹혀지는 묵직한 기타소리 등 전투를 준비하는 군인의 날카로운 총칼에 올림픽 성화의 불빛이 반사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요새 말로 빠이팅 넘친다고 해야할까요. 기존의 테마곡들의 평화로운 느낌에 비해 좀 더 투지가 불타오르는 느낌이 굉장히 색다릅니다. 




<2016년 리우 데 자네이로 올림픽 Alma e Coração - Olympic Games>


2016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열린 올림픽의 테마곡 입니다. 경쾌한 리듬 위에 브라질의 래퍼들이 랩을 하는 형식의 힙합 곡입니다. 남미의 열정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라틴의 분위기까지 잘 느껴지는 곡이네요.




<Frankie Knuckles - Your Love, 1987>




얼마 전 음악 평론가이자 [BACK TO THE HOUSE : 테크노와 하우스가 주류를 뒤흔들기까지]의 저자인 이대화 씨가 SNS에 남긴 글을 하나 보았습니다. 어떤 튜토리얼 영상에서 올드스쿨 하우스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는데, 오픈 하이햇의 샘플의 피치를 고의적으로 낮추고, 최종 믹스 단계에서 고음역 전체를 조금 깎아내버리고 미세한 디스토션을 삽입하여 일부러 노이즈를 만드는 등의 행위를 보고는 한가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튜토리얼 영상에서 일부러 퀄리티를 조금 낮춰서 트랙을 만든 이유는 바로 올드스쿨 하우스의 로우한 특성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 인데요, 퀄리티를 낮추어서 더 나은 퀄리티를 만든다. 조금 아이러니컬 하지 않나요? 아니, 아이러니컬 하기 보다는 로우 파이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이러한 행위가 사실은 너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는 걸까요?


이대화 씨의 경험이 담긴 짧은 글을 통해 그가 느꼈던 것처럼 저도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겼습니다. 그건 바로 완벽에 다다르는 것만이 꼭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점인데요, 음악가를 포함한 아티스트들에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결과물을 접할때 거기서 풍기는 분위기가 특별하거나 튀거나 인상적인 무언가가 있었다면, 그것은 꼭 '완벽'하지는 않은 결과물일 것입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이상하거나 기괴해보일수도 있겠죠. 이러한 특정 결과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이러한 태도에 대입시켜 본다면 더욱 넓어진 시야에서 모든 현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저 역시도 완벽한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저는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면도 많고, 보편적인 잣대에서 평가받는다면 전 그저 하나의 돌연변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돌연변이의 모습을 가진 제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환경이 갇혀있던, 어떤 상황에 부딫히던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가 느끼진 못하지만 매일 매일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지각하게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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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세영

SSC MUSIC : 27TH TRACKLIST

SECTION : MUSIC   2018.01.03 01:28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 입니다. 이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문득 궁금해져서 제가 2017년의 1월에 작성한 트랙리스트 포스팅부터 지난 한해 작성해 온 음악 소개 글들을 쭉 살펴 보았는데요, 하반기 포스팅들을 기점으로 하여 컨텐츠들이 대체적으로 더 깊이감이 있어진 것 같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이전에 소개했던 아티스트나 레이블 또는 음악 매거진에 대해 소개를 해드리는 경우에도 더 깊이 있게 소개를 할 수도 있었다는 점이 조금 아쉽긴 하나 앞으로 더욱 개선해 나가며 발전된 포스팅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올 한해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트랙리스트에서는 클래식부터 다운템포와 딥하우스, 리퀴드 드럼앤 베이스, 시티팝 등 다양한 장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드뷔시와 류이치 사카모토의 트랙으로 시작하여 벨기에의 레이블인 <Apollo Records> 에서 소개하는 앰비언트와 딥하우스가 혼재된 트랙들로 이어집니다. 그 이후에 계속되는 딥하우스 트랙들 이후에 로버트 글래스퍼의 트랙을 힙합 리듬을 뺀 체로 재지하고 블루스하게 리믹스한 남아프리카의 M Keys 라는 프로듀서의 트랙이 이어지고 톰 미쉬의 인스트루멘탈 힙합을 거쳐 노리요 이케다가 들려주는 시티팝 이후에 리퀴드 드럼앤베이스와 이안 브라운의 <F.E.A.R>를 U.N.K.L.E이 리믹스한 트랙으로 마무리 됩니다. 재미있게 들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Ryuichi Sakamoto>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경력자이자, 골든글로브상과 그래미 어워드 역시 수상한 음악가가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도 익숙한 이름인 류이치 사카모토 입니다.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민속 음악이나 현대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여러가지 스타일의 작품들을 발표 하였습니다. 영화 음악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가장 최근 개봉한 국내작 남한산성의 음악감독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독일의 미디어 아티스트 겸 테크노 디제이 프로듀서인 알바 노토와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 류이치 사카모토 & 알바 노토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몇번의 고배 끝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손에 쥐게 해준 작품인 레버넌트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하였죠.


류이치 사카모토는 1952년 도쿄의 나카노 구 출생으로, 유치원을 다닐 적 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던 아버지는 늘 장서와 클래식 LP들을 곁에 두셨다고 하네요. 열살이 된 무렵에는 도쿄 예술대학의 마츠모토 다미노스케에게 작곡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중학교 무렵에 우연히 포스트모던 연주회에 참가하여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당시엔 당시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과 백남준의 작품 등 다양한 포스트 모더니즘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네요. 대학교 재학 당시에 그는 전자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이때 여러 음악가들과 어울리게 되는데 이때 알게된 호소노 하루오미, 다카하시 유키히로와 함께 1978년 일렉트로니카 팝 밴드 YMO (Yellow Magic Orchestra)를 결성합니다. 오늘은 피아니스트인 류이치 사카모토가 아닌, 류이치 사카모토가 있었던 YMO에 관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Yellow Magic Orchestra [Yellow Magic Orchestra], 1978>




<Yellow Magic Orchestra - Computer Games, 1978>




당시 이미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호소노 하루오미, 타카하시 유키히로를 알게 되었을 때, 사카모토 자신은 팝에 문외한이라 그들과 어울리면서도 정작 왜 그들이 유명한지 전혀 몰랐었다고 합니다. 원래 친했던 둘의 앨범에 단순히 참여를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오가다 우연히 함께 앨범을 만들자고 이야기가 나와 함께 음악을 만들게 되니 그게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였다고 하네요. 


이들의 1집 앨범인 [YELLOW MAGIC ORCHESTRA]는 게임에서 주로 사용하는 신디사이저 소리를 이용하여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듯한 기분을 내게 하는 음악과 일본 민속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멜로디를 가진 트랙 등 굉장히 이색적이면서 실험적 성향이 매우 돋보이는 앨범 입니다. 이 1집을 포함하여 이들의 음악들은 전반적으로 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이 짙게 느껴집니다. 특히, 제가 1집에서 가장 인상깊게 들었던 트랙은 <Computer Games> 라는 트랙인데, 컴퓨터 효과음들에 이어지는 일본 민속 음악에 나올법한 멜로디의 전개와 백남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매우 전위적인 스타일의 뮤직비디오의 조화가 정말 놀라웠습니다. 사실 이들이 데뷔했던 당시 일본 내에선 큰 반향은 없었지만, 영미권 국가에선 이러한 동양풍의 신스팝이 매우 새롭게 다가왔다고 하네요.  




<Yellow Magic Orchestra - [Solid State Survivor], 1979>




이들은 2집 앨범으로 로클롤과 팝적인 성향이 좀더 짙어져서 돌아오게 되었는데, 1집의 실험적 성향은 배제 된체 더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음악들을 들려줍니다. 앨범 커버에서 다들 새빨간색의 수트를 입고 있네요. 역시나 크라프트베르크를 연상시킵니다. 이들은 라이브 공연에서도 빨간색 수트를 입고 공연하기로 유명하죠. 2집 앨범에서 이들의 대표곡이 탄생하게 되는데, 바로 5번 트랙인 <Behind The Mask> 입니다. 이 곡은 특히 에릭 클랩튼과 마이클 잭슨이 리메이크 한 곡으로도 유명합니다. 마이클 잭슨의 리메이크에 관해 흥미로운 일화로, 원래 댄스버젼의 리메이크 버젼으로 가사를 덧붙여 마이클 잭슨의 [THRILER] 앨범에 실릴 계획이었으나, 어떤 이유로 안타깝게 빠지게 되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마이클 잭슨이 사망한 뒤에 출시된 앨범 [MICHAEL]에 실려 출시 됩니다. 





<Yellow Magic Orchestra - Behind The Mask, 1979>




<조용필 - 단발머리, 1980>




<나미 - 빙글빙글, 1984>





이 곡은 다소 신나는 느낌의 신스팝 트랙이기는 하나, 다소 짧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가사 길이와 우리의 얼굴 뒤에 숨겨진 표정들이 과연 나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질문을 던지는 듯한 가사들이 마치 로보트가 우리에게 대화를 건네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이런 점들로 보아 단순히 형식적 전위적 뿐만 아니라 가사가 가진 철학적 면모 역시 이들이 왜 일렉트로니카 팝의 선두주자로 존경 받는지 이해가 갑니다. 이 트랙을 연주하는 라이브 공연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멤버들이 일렬로 세워진 무대 연출에서도 크라프트베르크를 연상시킵니다. 이쯤 되면 거의 크라프트베르크를 오마주 했다고도 느껴지네요. 이들은 일본 최전성기였던 버블 경제 시대의 최초의 일본 월드스타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일본이 지금처럼 전자 음악 강국에 오르게 된 것도 이들의 공이 굉장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선 이때 당시 왜 이런 아티스트가 탄생할 수 없었을까요? 당시 우리나라에선 조용필이나 나미가 이러한 시도를 했었으나 세계적인 흐름엔 따라가지 못했으며, 당시 한국에서 창작 활동은 엄혹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매우 위축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어떤 작업물을 내더라도 심각한 검열 수준 때문에 그 벽을 넘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하네요. 그래도, 그런 환경에서도 아티스트들은 포기를 하지 않고 창작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어떠한 환경이 되었든 포기하지 않고 그 환경을 인정하고 이겨내려 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도 익숙하지만 당시 한국의 신스팝인 조용필의 단발머리와 나미의 빙글빙글 한번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Yellow Magic Orchestra - [X∞MULTIPLIES], 1980>





3집으로 돌아온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의 앨범에선 일렉트로니카의 질감은 더욱 섬세해지고, 팝적인 요소가 더 가미가 되어 좀 더 키치하면서 펑키한 신나는 음악으로 돌아옵니다. 특히나 눈여겨 볼 점은 곡 중간 중간에 <Snakeman Show> 라는 특이한 제목으로 된 트랙이 껴있는데, 이것은 남성 두명이 영어로 코메디한 대화를 주고받는 내용 입니다. 조금은 유치하게 다가올 수 있는 꽁트 형식의 대화이지만 너무 생각도 못했던 전개라 들으면서 저도 웃음이 터져 나왔네요. 일본의 경제 호황과 맞물려 이런 긍정적인 무드가 나온다는 분석도 많은 편입니다. 





<Yellow Magic Orchestra - [BGM], 1981>



<Yellow Magic Orchestra - [Naughty Boys], 1983>


<Yellow Magic Orchestra - Kimi Ni Mune Kyun, 1983>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는 정규 4집 앨범인 [BGM] 에서는 인스트루멘탈의 트랙들과 냉소적인 느낌의 보컬로 이루어진 트랙과 앰비언트 트랙으로 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전반적으로 테크노의 세기말적 분위기가 어느정도 느껴집니다. 정규 5집 앨범인 [NAUGHTY BOYS]는 전작과 상반되게 거의 모든 트랙들이 빠른 템포의 보컬이 가미된 신스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Kimi Ni Mune Kyun> 라는 트랙은 당시 오리콘 차트 2위 곡이자 YMO 싱글 최다 판매 곡으로, 당시 가네보 화장품 광고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고 지금도 일본 내에서는 자주 리메이크되는 유명한 곡이고 월드뮤직을 하던 중후한 이미지의 뮤지션 아저씨들이 갑자기 이러한 깨는 모습으로 나왔다는 것과, 뮤직 비디오의 중간엔 호소노 하루오미, 타카하시 유키히로가 키스를 하는 퍼포먼스가 나오는 등 당시 일본에도 상당히 큰 충격을 줬다고 합니다. 그래도 상당히 로맨틱한 분위기의 곡이니 한번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Yellow Magic Orchestra - [Service], 1983>





5집과 6집 앨범인 [Service] 에서는 주로 가볍고 통통 튀는 느낌의 J-POP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5년 남짓 활동을 하고 [Service]를 마지막으로 돌연 해체를 합니다. 정확한 해체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류이치 사카모토는 '지나친 인기가 너무 두려워서' 라고도 하였다네요. 실제로 그는 엄청난 인기 때문에 대인기피증까지 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해체후 1993년 깜짝 복귀를 한후에 이후 2007년 재결성 하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YMO 활동 당시 류이치 사카모토의 눈에 띄는 이력으로는, 1981년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주연과 OST를 맡았습니다. 영국의 뮤지션 데이빗 보위와 공동으로 주연한 이영화의 OST는 바로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라는 곡으로, 류이치 사카모토나 이 영화에 대해선 몰라도 이 노래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하죠. YMO 해체 이후, 영화 <마지막 황제>의 OST를 통해 오스카 상을 수상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일본은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 하게 되며, 1992년엔 바르셀로나 올림픽 테마곡 까지 맡게 됩니다.


이후 2014년에는 인두암 판정을 받아 요양을 위해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한 후에 2015년 복귀작으로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 <어머니와 살면>의 OST를 발표합니다. 이후에도 재즈, 탱고, 보사노바, 영화음악을 비롯해 일렉트로니카와 월드뮤직[11] , 뉴에이지, 힙합까지 아우르는 음악적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가 인터뷰에서 말했듯 그는 자신이 뉴에이지 뮤지션으로만 국한되지 않았으면 한다라는 바램을 직접 표출 한 바가 있는데, 오늘 제가 소개해드린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로 인해 그러한 편견이 조금이나마 없어지셨을지 모르겠습니다. 





<Ryuichi Sakamoto -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지난 한해동안 참 많은일이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제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안타까운 소식들이 특히 많아서 기억에 남는 한해였네요. 저는 늘 제가 겪은 모든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는 편인데, 늘 흥미로운 것은 어떠한 현상, 특히나 인간관계에 있어 친구 사이에서 발생한 다툼이나 논쟁이라던지 그 사건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특히 어떤 사건으로 인해 누군가가 잘못을 한 가해자의 입장이 되었을때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장은 모두 그를 비난하거나 매도하는 등의 행위로 이어집니다. 물론 가해자가 잘못을 한 입장은 맞습니다. 여기서 진정 우리가 인간으로써 존엄한 삶을 살려면, 무조건적인 비난을 하기보다 좀더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하는 행위를 먼저 실천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남에게 먼저 엄격한 잣대를 내세우기 전에 자신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하는것이 맞는 것 같네요. 2018년의 시작과 함께 여러분도 모두 올 한해의 목표를 위해 달려나가고 계시겠네요. 목표를 이루는것도 곧 자기 자신에게 엄격해져야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 자신에게 더욱 엄격한 한해가 되도록 다짐해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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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세영

SSC MUSIC : 26TH TRACKLIST

SECTION : MUSIC   2017.12.07 11:37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 입니다. 저는 글을 쓰기에 앞서 먼저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고 싶네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DJ란 무엇이신가요? 우선 통상적 의미에서 DJ는 Disc Jockey의 준말로 레코드를 틀어주는 사람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음악이 담겨있는 레코드를 틀어주는 사람이라는 건 바로 음악을 소개한다는것과 같은 뜻이기도 합니다. DJ가 존재하는 클럽이나 라디오는 우리가 특정 목적을 가지고 그 장소를 향하거나, 특정 시간에 채널을 돌려야 하는데 사실 우리는 어떤 음악을 소개받고자 하는 목적이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일상생활 속에서도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음악을 소개받고는 합니다. 음악을 몇시간동안이나 소개를 하려면 소개 하고자 하는 사람의 테이스트를 정확히 파악을 해야 합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의 성향을 충족 시키려면 많은 음악을 알고 있어야 하는건 당연한 것이겠죠.


이것이 바로 DJ 입니다. 단순히 음악을 플레잉하고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것이 아닌, 음악을 정말 잘 소개하는 사람인 것 입니다. 클럽 안에서 사람들을 춤을 추게 하는것은 DJ의 목적이 아니라, 단지 음악을 그들의 테이스트에 맞게 잘 소개함으로써 나타나는 하나의 효과일 뿐인거죠. 저는 이렇게 생각 합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음악을 틀어도 사람들이 춤을 추면서 DJ가 다음에 어떤 트랙을 플레잉 할지 궁금해하고, 심지어 그 흐름에 이미 혼을 빼앗겨 버려 평범한 트랙도 좋게 들리게 만들수 있는 DJ가 진짜 DJ 아닐까요? 그런 측면에서 전 1시간이나 1시간 30분 동안의 셋은 그 DJ의 진정한 역량을 보여주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플레잉 해도 플로어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DJ, 더 나아가 플로어를 더 뜨겁게 만들수 있는 DJ가 진짜 DJ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트랙리스트에서는 슬로우스테디클럽의 영업시간인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7시간 동안 재생되는 79개의 다른 트랙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 첫 롱 셋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장르는 클래식, 재즈, 록, 힙합, 일렉트로니카 등의 모든 장르를 아우릅니다. 2017년동안 제가 셀렉한 트랙들 중 저희 직원들과 손님들의 반응이 좋았던 트랙들과 그 외에 제가 소개하고 싶은 다른 트랙들을 믹스하여 구성해보았습니다. 구성은 계절과 시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초반 한시간 반 정도 가량은 클래식과 재즈, 앰비언트 등으로 구성하여 여유로운 오전시간의 분위기를 즐기시기에 알맞으며, 그 이후엔 밝은 분위기의 인스트루멘탈 힙합과 다운템포 트랙들을 거쳐 차분한 느낌의 딥하우스로 분위기를 그루비하게 전환 시킵니다. 저녁에는 트립합과 다운템포, 싸이키델릭 록 으로 마무리됩니다.


예전 포스팅에서 한번 말씀드렸던 저의 생각이 있습니다. 바로 DJ가 음악을 소개하는 것과 저희가 옷이나 커피를 소개하는 것도 결국 무언가를 소개하고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측면에서는 결국 똑같은 일 이라는 것이죠. 음악에 있어서 DJ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드리면서 동시에 모든 일은 결국 무엇을 하느냐가 아닌, 어떤일을 해도 정성과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ink Floyd : Roger Waters, Nick Mason, David Gilmour, Rick Wright>




1963년,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던 로저 워터스, 닉 메이슨에 의해 결성되었습니다. 후에 건축학과 동기였던 릭 라이트가 영입되고 클라이브 멧카프, 줄리엣 게일, 키스 노블이후 1964년엔 밥 클로스와 시드배릿이 밴드에 들어왔고, 이후 'Meggadeath', 'The Abdabs', 'The Screaming Abdabs', 'Leonard's Lodgers', 'The Spectrum Five' 등의 많은 이름들을 거쳐 당시 유명했던 블루스 연주자 핑크 앤더슨과 플로이드 카운슬의 이름을 각각 따와 그룹 이름을 The Pink Floyd Sound라고 짓게 됩니다. 이때 당시엔 클라이브 멧카프와 키스 노벨은 각자의 활동을 위해 밴드를 탈퇴한 상태였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밥 클로스 마저 부모의 압박에 의해 밴드를 탈퇴하게 됩니다. 이렇게 핑크 플로이드는 4인조 밴드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Pink Floyd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 Astronomy Domine, 1967>




핑크 플로이드는 활동 초기에 주로 공연했던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클럽 UFO Club, Marquee Club, the Roundhouse 에서 인기를 얻었고, 1966년 밴드는 피터 화이트헤드 감독의 영화 <Tonite Let's All Make Love in London>에 <Interstellar Overdrive>와 <Nick's Boogie>의 라이브 버젼 두 곡을 삽입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후에 이 두곡만이 담긴 EP인 [LONDON 66-67]이 발매가 되고, 핑크 플로이드는 점점 더 대중들에게도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대중적 인기를 얻게된 이들은 1966년 EMI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1967년 8월 5일 핑크 플로이드는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노먼 스미스가 프로듀싱을 맡은 첫 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을 발표합니다.


이 앨범이 출시된 1967은 록을 좋아하시는 팬분들에게는 굉장히 의미가 있는 년도이기도 합니다. 바로 

THE BEATLES 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출시된 년도이기 때문이죠. 이 앨범이 지닌 싸이키델릭한 성향들은 1967년도에 출시된 여러 밴드들의 음악에서 굉장히 두드러지게 표출되는 부분 입니다. 1967년은 싸이키델릭 록의 전성기라고도 말할 수 있으며, 당시 핑크 플로이드의 리더였던 시드 배릿이 주도한 앨범으로 싸이키델릭 록의 명반으로 손꼽히는 앨범입니다. 시드배릿에 의해 단순한 블루스 밴드에서 싸이키델릭 록 밴드가 된 핑크 플로이드는 점점 더 큰 인기를 얻게 되고 이에 압박감을 느끼던 시드는 점점 약물 복용에 의존하게 되고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Pink Floyd [A SAUCERFUL OF SECRETS] - A Saucerful Of Secrets, 1968>




시드 배릿의 정신 상태가 점점 악화됨에 따라 다른 멤버들의 걱정도 점점 깊어져 갔습니다. 결국 멤버들은 시드 배릿을 대신할 기타리스트를 찾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영입을 고려했던 기타리스트로 제프 벡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프 벡은 그 제안을 거절했고, 당시 Jokers Wild라는 블루스 록 밴드에서 연주를 맡고 있던 데이빗 길모어를 영입합니다. 사실 처음에 데이빗 길모어를 영입했을 당시엔 단지 시드 배릿의 연주를 대체할 세션맨이었으나, 1968년 2집 정규 앨범인 [A SAUCERFUL OF SECRETS]가 발매되기 직전 시드 배릿은 밴드를 탈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앨범에서는 시드 배릿과 데이빗 길모어의 곡들이 섞여 있습니다. 전작에 비해 소리의 왜곡과 다중의 노이즈와 각종 이펙터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 하였으며 이 앨범 까지도 여전히 싸이키델릭 록의 짙은 성향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69년 초에는 히피를 주제로 한 영화 <More> 사운드 트랙에 제작에 참여했고, 비공식 사운드 트랙겸 3번째 정규음반이 [MUSIC FROM THE FILM MORE] 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였다. 1969년 말에는 [UMMAGUMMA] 라는 음반을 출시하는데, 밴드 역대 음반중 가장 실험적인 음반이기도 합니다. 당시 유행하던 Live / Studio형식으로 출시 되였고, A,B면(Live)는 무관중 라이브로 녹음된 라이브를 들려주는 반면 C,D면(Studio)에서는 멤버들이 각자 작곡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자신들의 실험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발표 당시 평론가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후에 이들의 방향성을 모색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앨범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Syd Barrett>




시드 배릿이 탈퇴한 후 그의 절대적이었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멤버들은 각자의 장점들을 가지고 고군분투 하며 밴드의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로저 워터스가 복잡하고 상징적인 가사, 전체적인 곡의 구조를 결정했다면 데이빗 길모어는 블루스적인 멜로디, 릭 라이트는 사이키델릭한 화음을 구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때가 바로 이들만의 정체성을 구축하게 되는 실험 시기인데, 후에 발표되는 앨범들에선 싸이키델릭이 아닌 프로그레시브적 성향이 깊게 가미되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 입니다.




<Pink Floyd [Atom Heart Mother] - Atom Heart Mother Suite, 1970>




1970년엔 [ATOM HEART MOTHER] 라는 타이틀의 앨범을 발표하는데 여기에선 본격적으로 싸이키델릭 록을 탈피하려는 시도가 눈에 띕니다. 오케스트라와 무의미한 가사의 조합, 앨범의 제목은 신문기사에서 따오오기도 하며 앨범과 전혀 상관없는 커버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다방면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싸이키델릭으로 규정지어지는것에 대한 반발심리를 표출합니다. <Alan's Psychedelic Breakfast>라는 곡에서는 밴드의 공연 매니저인 앨런 스타일스 의 목소리가 녹음되었으며, 이음반의 엔지니어인 알란 파슨스와 함께 작업하며 계란 굽는소리, 오줌 소리 등 각종 효과음을 사용하며 음악을 만들었고, 이는 그들과 알란 파슨스가 작업한 두번째 앨범인 《The Dark Side of the Moon》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Pink Floyd [Meddle], 1971>




<Pink Floyd : Live At Pompeii - Echoes Part 1, 1972>




1971년 Pink Floyd는 [MEDDLE] 이라는 앨범을 발표합니다. 여기에서부터는 시드 배릿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훨씬 원숙함이 넘치는 사운드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곡으로는 <Echoes>를 꼽을 수 있는데, 장장 23분에 다다르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손꼽히는 명곡 중 하나 입니다. 이 트랙은 핑크 플로이드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음악성의 시작 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심오한 가사와 클래시컬하면서 아름다운 화음, 블루스하면서 멜로디컬한 기타 연주, 원초적인 드럼 사운드와 곡의 프로그레시브한 구성으로 우주로 가는듯한 기분을 들게 합니다. 특히 이 앨범이 나온뒤에 이들은 사라진 고대시대의 도시인 폼페이에서 무관중으로 진행한 라이브 공연 실황 영상을 릴리즈 했는데, 이들의 라이브 공연 중 최고로 손꼽힐정도로 예술적이고 아름답습니다.


2000년전 사라진 도시 폼페이. 그토록 오래된 도시이지만 이미 모든 가정집에 수도시설이 구축 되어 있을 정도로 앞서간 문명을 자랑하던 도시에서 이들이 음악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세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Pink Floyd의 음악들에서 느껴지는 이러한 심오함들은 늘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주기에 정말 매력적인것 같습니다. Pink Floyd의 베이시스트인 로저 워터스는 <Echoes>를 가르켜 '사람들이 개개인의 인간성을 인정하고 반감이 아닌 공감으로 이를 대하는 가능성' 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우리가 소리친 메아리는 결국 다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옵니다. 로저 워터스의 말처럼 개개인의 인간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결국 그들도 모두 같은 인간이기에 나 자신의 메아리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Pink Floyd [The Dark Side Of The Moon] - The Great Gig In The Sky, 1973>




1973년에 핑크 플로이드는 이들의 가장 위대한 걸작인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발표합니다. 이 시기부터는 이들은 싸이키델릭이나 프로그레시브 등 어떤 장르로 규정짓기 어려울 정도로 록 음악계에선 독창적인 위치를 점하게 됩니다. 이 시기는 또한 서로의 음악적 견해가 달랐던 멤버들 간에 음악적 협력관계가 제일 균형있게 잘 이루어졌던 때였습니다. 이 앨범은핑크 플로이드의 모든 앨범들 중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해준 앨범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4000만장 이상 판매되었고, 빌보드 앨범 차트에 741주 이상, 영국 앨범 차트에 301주 이상 등재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앨범의 곡들은 <Money>, <Brain Damage>, <Us And Them>, <Time> 등의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달의 어두운 면이라는 이 앨범의 타이틀은 '광기'를 나타낸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광기'라는 주제를 다루는 만큼 노래의 제목들로 많은 작은 주제들 역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드배릿의 영향력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로저 워터스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컨셉 앨범인데요, <Time>에선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말하고 있고, <Money>나 <Us And Them> 같은 곡에서는 자본주의와 반전주의 등의 사회적인 주제, <Brain Damage>에선 극단적인 허무주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로저 워터스는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이 폭력을 행사했을때 정당하다고 생각했나?', '죽음이 두려운가?', 다양한 질문을 던졌는데, 이 질문들 역시 앨범 곳곳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습니다. 반사된 태양빛이 달을 비추고, 우리가 보는 달은 달이라는 매개체에 반사된 태양빛이죠. 다시 말해서 달의 어두운 면은 없습니다. 사실 달은 원래 어둡기 때문이죠. 그러나 달은 주로 '광기'에 많이 비유되고는 합니다. 태양과 달, 빛과 어둠. 그러나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 <Eclipse>에서 이야기 하듯이 태양 아래 모든 것은 자리를 잡고 있지만, 그 태양은 결국 달에 의해 가려집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무엇이 맞고 틀리고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태양 아래 모든것이 정렬이 되던, 그 태양이 달에 의해 가려지던 결국 자연의 이치인 것 같습니다. 


이 앨범에서는 다양한 작은 주제들 만큼이나 획기적인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싸이키델릭 적인 요소가 거의 배제되었고, 재즈와 블루스한 분위기를 많이 느끼실 수 있습니다. 당시 릭라이트가 재즈 화성학을 공부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트랙들 전체에서 재지한 화성들 역시 많이 들으실수가 있습니다. 후에 발표되는 컨셉앨범 [THE WALL] 역시도 로저 워터스의 주도하에 탄생하게 된 걸작이지만, 좀 더 그만의 냉소적인 광기가 느껴지는 데에는 [THE DARK SIDE OF THE MOON]에 비해 다른 멤버들의 피드백과 서로간에 음악적 조율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큰 이유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후에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Pink Floyd [Wish You Were Here] - Wish You Were Here, 1975>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발표로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은 쉴새없는 나날을 이어갑니다. 이 앨범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1974년까지 투어 일정을 소화해내고, 이들은 상업적 성공을 배제한체 초창기의 실험정신을 되살리기로 마음 먹고 다시 한번 의기투합 합니다. 이의 일환으로 내세운 프로젝트가 <Household Object> 인데, 말 그대로 집안에 있는 물건들만을 이용해서 녹음을 하겠다는 취지였지만, 녹음의 난이도와 공연시 연주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이 앨범은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멤버들이 투어를 소화해내면서 느꼈던 스트레스로 방향을 바꾸어 소외와 상실에 관한 스토리를 써내려가기로 합니다.


이 앨범의 주제는 Abssence, 바로 '부재' 입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핑크 플로이드 멤버들이 느꼈던 음악 산업 속 인간성의 부재도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더욱 큰 주제는 바로 탈퇴한 멤버, 이들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였던 시드 배릿의 부재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전작 [THE DARK SIDE OF THE MOON] 에서도 은유적으로 시드 배릿의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 앨범에서는 <Shine On Your Crazy Diamond> 라는 트랙의 제목으로 직유적으로 표현 됩니다. 맨 앞글자만 조합해보면 'SYD' 가 완성이 되죠. 이 트랙은 그에대한 그리움 만큼이나 광활하게 9개의 파트인데, 총 합하면 대략 24분 30초라는 러닝 타임이 됩니다. 멤버들이 그를 얼마나 그리워 했는지 알 수 있겠죠? 이 앨범에 대한 유명한 일화로 녹음 도중 시드 배릿이 방문하였는데 그가 너무나 달라진 모습으로 찾아온 나머지 처음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핑크 플로이드 탈퇴 후 호리호리한체격에서 뚱뚱한 대머리로 변하게 됩니다.)




<Pink Floyd [Animals], 1977>




밴드의 경력이 순조롭게 이어지는 듯 싶었지만 로저 워터스의 독주 체재로 인해 밴드의 분열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WISH YOU WERE HERE] 이후로 밴드내 로저 워터스의 영향력은 굉장히 막강해졌습니다. 이때부턴 음악과 가사 전체에 그의 사상이 반영되기 시작하는데요, 그러한 경향이 처음으로 발현되기 시작하는 앨범이 바로 1977년에 발표된 [ANIMALS] 입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영감을 받아 트랙들은 <Pigs>, <Dogs>, <Sheep>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시 영국엔 펑크 록이 등장하고 음악적 조류가 그러한 펑크의 기류로 흘러가는 추세였습니다.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인 시드 비셔스가 오디션에 'I HATE PINK FLOYD' 라고 프린트 된 티셔츠를 입고 나왔을 만큼 당시는 복잡함 보다는 초기 로큰롤의 단순함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기류가 무척 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에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은 너무나 복잡하다는 이유로 음악계에서 주된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어려운 경제 상태 역시도 이러한 기류에 한 몫을 했는데, 대중들은 국가와 체제에 거세게 비난하는 펑크록에 굉장히 열광 했습니다. 이에 다른 프로그레시브 록을 지향하던 밴드들은 해체를 하거나 다른 장르로 변경하여 활동을 하는 등의 행보를 이어나갔습니다. 


핑크 플로이드는 이러한 시류를 인식하고 [ANIMALS] 에서는 조금 더 강력한 기타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전작들에 비해 사운드는 단순하지만 가사의 내용을 통해 이들 음악의 깊이들은 그대로 표현 됩니다. <Pigs>, <Dogs>, <Sheep>은 여기서 자본주의 사회속의 3개의 계층에 관한 이야기를 동물로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는데 맨 처음과 맨끝 트랙 <Pigs On The Wing>을 제외하곤 세 곡 모두 10분이 너머가는 대장정의 곡들 입니다. <Dogs> 에서는 경쟁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서 피도 눈물도 없이 비열한 짓을 일삼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관료와 하수인들 이라고 표현하면 되겠네요. 가사의 내용을 보면 그러한 비열한 짓을 일삼다 권력을 쥐게 되지만 그 권력을 잃어버렸을때 비참한 최후를 맞게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어쩌면 권력의 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Pigs>는 권력을 쥐고 있는 정치인들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첫번째인물로 래너드 제임스 캘러헌, 두번째 인물은 마가렛 대처, 세번째 인물은 메리 화이트 하우스를 돼지로 비유하여 비난하는 내용의 가사들인데, 세 인물 모두 앨범이 발표되었을 당시 1977년에 영국 정치계에 있었던 인물들 입니다. 마지막으로 <Shepp> 은 양치기를 따라다니기만 하는 양, 즉 다시 말해 우매한 민중들을 뜻합니다. 당시 영국의 정치적 상황들이 반영된 내용이긴 하나,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대입해보아도 우리가 어떠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의 곡들 입니다.




<Pink Floyd [The Wall] - Another Brick In The Wall, 1979>




<Pink Floyd [The Wall], 1979>




[ANIMALS] 는 1977년 1월에 발표해 영국차트 2위, 미국 차트 3위에 오르고 투어는 표가 매진 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멤버들의 불만과 피로도는 점점 증가해갔습니다. 이후 데이빗 길모어는 [DAVID GILMOUR] 를 릭 라이트는 [WET DREAM] 을 발표하는 등, 멤버들은 솔로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로저 워터스는 다음 음반의 컨셉에 대해 생각하는데, 하나는 [THE WALL] 의 컨셉이고 또 다른 한개는 나중에 워터스의 솔로앨범으로 출시되는 [THE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 의 컨셉이었습니다. 


1979년 발표된 [THE WALL] 역시 로저 워터스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그래서인지 로저 워터스의 광기와 냉소적인 태도가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들 중 그 어느것보다 잘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는 로저 워터스가 의도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러한 의도는 충분히 잘 느껴진다고 봅니다. 그리고 비록 독주 체제하에 탄생하게 된 작품이긴 하나, 핑크 플로이드의 최고의 앨범이라 논할 수 있는 작품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앨범에서는 70-80년대를 살아오신 우리 부모님 세대라면 누구나 아실만한 곡으로 <Another Brick In The Wall>을 꼽을 수 있는데요, 주입적인 교육을 받음으로써 벽 안에 있는 똑같은 수많은 벽돌들 중 하나에 지나게 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We don't need no education. We don't need no thoughts control.' 이라는 직설적인 가사로 유명합니다. 그 외에 수많은 좋은 곡들이 있지만 데이빗 길모어 와의 합작으로 탄생한 <Comfortably Numb>는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 솔로 트랙 중 꼭 빠지지 않는 곡입니다. 암울하면서 몽환적인 느낌과 어두운 가사, 데이빗 길모어의 환상적인 연주 등을 등. 이 트랙을 들으신다면 제목처럼 정말로 편안하게 마비되는 기분을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이 앨범은 록 오페라 형식으로 된 더블 앨범 입니다. 앨범 전체의 내용은 로저 워터스의 인생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는데, 이 앨범의 주인공 Pink는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고, 선생에게 잘못된 교육을 받고, 과잉 보호를 하는 어머니에게 길러져 자립심을 잃고, 나중에는 아내에게 버림 받는 등 고통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로 인해 그의 내면엔 세상과 정신적으로 단절되는 벽을 쌓게 되고 이를 비유적으로 'The Wall' 이라 칭합니다. 이 앨범은 후에 1982년 개봉된 동명의 영화 [PINK FLOYD : THE WALL]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영화엔 일러스트레이터 제랄드 스카프의 애미메이션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데 특유의 혐오스러운 스타일 덕분에 현재까지도 락 오페라와 뮤지컬 장르에서 가장 그로테스크하고 초현실적인 영화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Pink Floyd [The Final Cut], 1980>




1979년 [THE WALL] 이 발표된 후 1982년에 이들은 영화 [PINK FLOYD : THE WALL] 의 사운드 트랙을 제작할 예정이었지만 당시 일어났던 포클랜드 전쟁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로저의 아버지에 대한 컨셉으로 변경되였고, 로저 워터스의 아버지인 에릭 플레처 워터스에 대한 헌정 앨범인 컨셉음반 <THE FINAL CUT> 이 제작되었습니다. 전작 [THE WALL] 에 얽힌 한가지 일화가 있는데, [ANIMALS] 투어가 끝난뒤 잠시 멤버들이 솔로 활동을 가지고 있던 때에, 로저 워터스는 [THE WALL] 작업을 위해 멤버들에게 휴가를 끝내고 얼른 돌아오라는 부탁을 하였지만, 릭 라이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THE WALL] 앨범 녹음 도중 릭 라이트가 해고 당하는 사건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릭 라이트는 밴드를 떠나게 되고, [THE FINAL CUT] 에선 그를 대신해 키보드 파트는 마이클 카멘과 앤디 바운에 의해 완성 됩니다. 


이 앨범은 전 곡 로저 워터스에 의해 작곡 / 작사 되었으며 사실상 로저 워터스의 솔로 앨범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로저 워터스는 인터뷰에서, 이 앨범을 솔로 앨범으로서 작업하려 했지만, 다른 멤버들이 반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닉 메이슨은 그의 책 <Inside Out> 에서 사실은 정반대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데이빗 길모어가 로저 워터스의 솔로 앨범으로 발표하라고 제안했지만, 로저 워터스는 핑크 플로이드의 이름을 붙여서 내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THE FINAL CUT] 은 영국 차트 1위, 미국 차트 6위를 기록했지만 평론가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못했습니다.


이후엔 1984년에 워터스는 [THE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 길모어는 [ABOUT FACE], 닉 메이슨은 85년에 릭 펜과 함께한 [PROFILES] 라는 음반을 발표하는 등, 멤버들은 솔로로 활동하게 됩니다. 또한 탈퇴당한 릭 라이트는 1984년 뉴웨이브 그룹 '패션'출신의 데이브 해리스와 'Zee'라는 밴드를 결성해 [IDENTITY] 라는 음반을 발표하고, 잠시 음악 생활을 은퇴해 그리스에서 요트생활을 즐겼다고 하네요.




<Pink Floyd [The Division Bell] - High Hopes, 1994>




1985년 로저 워터스는 핑크 플로이드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제 남은 멤버는 닉 메이슨과 데이빗 길모어 두명. 사실상 해체 상태에 놓이기 되었던 그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핑크 플로이드의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자 하였습니다. 데이빗 길모어는 핑크 플로이드의 리더를 맡고 로저 워터스에 의해 탈퇴 당한 릭 라이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킹 크림슨에서 채프먼 스틱을 연주하는 토니 레빈, 재즈 록밴드 슬립해피의 안토니 무어등의 세션맨들을 불러들어서 제작해, 1987년 [A MOMENTARY LAPSE OF REASON] 을 발표하는데, 로저 워터스 특유의 냉소적이고 어두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좀더 가볍고 경쾌한 음악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평론가들에게 제일 저평가 받는 음반이지만, 상업적으로는 영국과 미국차트 3위에 올라갈 정도로 성공하였습니다.


1993년에는 여러 문제 때문에 세션으로 머물렀던 릭 라이트를 다시 정규 멤버로 영입하고 여러 세션을 거처, 1994년 [THE DIVISION BELL]을 발표하는데, 전작보다는 좀 더 분위기 있고 무게감이 확실히 있습니다. 이 앨범은 당시 브릿팝과 얼터너티브 록 등이 점유하고 있는 로큰롤 씬과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여러나라와 미국 차트에서 모두 1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되고, 이후 밴드 [THE DIVISION BELL] 투어를 여는데, 역대 핑크 플로이드의 투어중 가장 스케일이 큰 투어 였습니다. 큰 원형 스크린에다 레이져, 1977년 투어부터 있던 [ANIMALS]의 돼지 인형 등 다양한 소품들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당시 유럽과 북미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열었는데, 표가 거의 매진될 정도로 성공하였습니다. 당시 투어중 런던 얼스 코드 공연 실황은 <P.U.L.S.E> 라는 이름으로 출시가 되었습니다.




<Pink Floyd : Live 8, 2005>




[THE DIVISION BELL] 활동 이후 핑크 플로이드는 [THE WALL] 투어 실황을 담은 [IS THERE ANYBODY OUT THERE? THE WALL LIVE 1980-81] 이 출시되고, 2001년엔 컴필레이션 앨범 [ECHOES : THE BEST OF PINK FLOYD] 를 발표 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 나갑니다. 또 2002년엔 로저 워터스가 [IN THE FLESH] 월드 투어로 서울을 방문하여 잠실 종합 운동장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하였습니다. 핑크 플로이드 시절의 히트곡들과 솔로 시절 곡들을 연주 하였다고 하네요. 




<Pink Floyd : David Gilmour, Roger Waters, Nick Mason, Rick Wright, 2005>




그리고 2005년 2월 7월 2일 전세계에서 동시에 열린 자선 콘서트인 LIVE 8 에서 핑크 플로이드는 24년만에 로저 워터스, 닉 메이슨, 릭 라이트, 데이빗 길모어 모든 멤버가 한자리에 모여 공연을 펼칩니다. 이들은 <Speak to Me / Breathe / Breathe (Reprise)>, <Money>, <Wish You Were Here>, <Comfortably Numb> 등의 히트곡들을 연주하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멤버들이 다같이 어깨 동무를 하며 포옹하는 장면은 말로 다 할수 없는 감동을 자아냅니다. 이 공연이 끝난 후 [ECHOES : THE BEST OF PINK FLOYD]의 앨범 판매량은 일주일만에 1343%가 증가 했으며, [THE WALL]의 판매량이 3600%, [WISH YOU WERE HERE]이 2000%, [THE DARKS SIDE OF THE MOON] 이 1400%, [ANIMALS] 가 1000% 증가했다고 합니다. 데이빗 길모어는 음반 판매의 수익을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라이브 8에 참여한 다른 모든 아티스트도 이에 동참하였습니다.


1996년 핑크 플로이드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를 당시 로저 워터스는 참석을 하지도 않았었고, 핑크 플로이드 탈퇴후에 남아있는 멤버들과 법정 공방을 벌이는 등 갈등이 많았지만 이 한 장면으로 인해 전세계에 있는 핑크 플로이드의 팬들은 잠시나마 그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함께 연주 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많은 팬들이 이들이 재결합하여 다시 활동을 하기를 원하고, 로저 워터스 역시 재결합에 늘 희망을 가지고 있는 마음을 인터뷰를 통해 전하지만, 아쉽게도 데이빗 길모어는 과거에 얽매이지 싫다고 하며 한결같이 재결합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6년 7월 7일엔 핑크 플로이드의 정신적 지주였던 시드 배릿이 당뇨로 사망 합니다. 2년이 지난 2008년 9월 15일엔 암으로 투병 중이었던 릭 라이트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데이빗 길모어는 릭 라이트의 사망 소식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전하며 이와 같은 추도문을 전하였습니다. 


'누구도 리처드 라이트를 대신할 순 없다. 그는 내 뮤지컬 파트너이자 친구였다. 온화하고 겸손했으며 남에게 나서기를 꺼려 했지만 그의 감동적인 목소리와 연주는 그룹의 사운드에 있어 마법 같은 존재였다.'


2011년 5월 12일 로저워터스의 <THE WALL LIVE> 투어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영국 O2 ARENA THE WALL TOUR 에서 <Comfortably Numb>를 데이빗 길모어와 함께 공연했고 마지막곡 <Outside The Wall> 에선 닉 메이슨을 포함한 3명의 멤버가 함께 공연했습니다. 2014년 7월엔 [THE DIVISION BELL] 앨범 녹음 당시 진행되었던 세션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들의 20년만의 신보인 [THE ENDLESS RIVER] 가 발매 됩니다. 이 앨범은 릭 라이트가 참여한 마지막 앨범 입니다. 데이빗 길모어는 이 앨범이 핑크 플로이드의 마지막 앨범이 될것이라고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릭 라이트를 위한 추도 분위기의 앨범인데 곡의 대부분이 인스트루멘탈(연주곡) 으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큰 굴곡이 없는 꽤나 잔잔한 분위기를 가진 앨범 입니다. 이 앨범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계적으로 우수한 판매실적을 거두게 됩니다.




<Interview : David Gilmour, Nick Mason>


지금까지 저의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던 핑크 플로이드의 행보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사실 이 자료들을 조사하며 저도 몰랐던 이야기들을 많이 알 수 있었고 들었던 앨범들을 다시 한번 또 들어보고, 가사들을 다시 한번 더 느끼며 들었는데 가사들의 철학적인 부분이나, 음악들의 기술적인 부분과 음악 전체를 아우르는 화성과 구성 등 지금의 어떤 음악가들의 음악과 견주어 봐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고 촌스럽지도 않습니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들은 곡 하나 하나를 들었을때보다 앨범 전체를 들었을 때에 곡들끼리 이어지는 유기성과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철학과 정신이 만들어내는 응집력이 느껴지기 때문에 더욱 좋은것 같습니다. 저는 음악도, 영화도 무엇이든지 질문을 던져주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음악이 끝났을때, 영화가 끝났을때부터 진짜로 시작되는 그런것들 말이죠. 학창 시절에 전 친구들에게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그때 당시엔 제가 잡념이 많은건가 하고 떨쳐내버리려고 했지만, 제 성격상 혼자 사색하기를 좋아하는 터라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또 지금 생각해보면 전 어렸을때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어렸을때부터 사색하기를 즐겨해서 그런지 지금의 제가 핑크 플로이드를 좋아하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위에서 설명드렸던 핑크 플로이드의 폼페이 무관중 라이브 공연을 전 매우 좋아합니다. 공연에서 느껴지는 세기말 적 분위기와 어우러지는 그들의 음악이 주는 감동은 쉽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 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왜 폼페이에서 공연을 했던것일까요? 폼페이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먼저 드리자면, 폼페이는 2000년전 최고의 문명 사회를 이룬 도시였습니다. 시민들의 위락을 위한 공연장, 경마장 공중목욕탕 등의 시설이 있었고 술집과 유흥가 또한 있었으며 부자의 바로 옆에는 빈자들이 살았으며 도시의 외곽에서는 풍부한 농산물들이 공급되었고, 2000년전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수도시설이 발달된 현대의 도시와 견주어 봐도 전혀 손색 없는 도시로서의 기능을 갖춘 곳이었습니다. 건축가 승효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건축이란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을 완공함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살게 되는 거주자의 삶으로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나로서는, 도시 역시 태어날 뿐이어서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하는 생물적 존재라고 여긴다. 만약에 건축이나 도시가 완성되는 순간이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붕괴나 몰락을 의미한다고도 했다. 극단적이지만 그 완성의 존재체가 폐허라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간에 결국 도시는 붕괴되고 인간 역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최고의 문명 사회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베수비오산의 화산 폭발로 인해 잿더미로 변해버린 도시 폼페이에서 우리는 도시인으로써, 인간으로써 삶이 중단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되물어볼수가 있습니다. 핑크 플로이드가 표현한 <Echoes> (메아리)는 결국 개인과 개인 사이를 비춰볼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하지만 폐허가 된 폼페이처럼 인간에게도 죽음이라는 것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는데, 이는  곧 우리에게로 하여금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의 진리를 욕망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 저 먼곳 끝에서 이곳 앞으로 울려퍼지는 가장 큰 메아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소개해드린 음악과 글 또한 여러분에게 메아리로 울려퍼져 전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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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