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 입니다. 이번달도 어김없이 트랙리스트 포스팅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불어오는 저녁바람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게 되기도 하고 은행의 냄새가 길바닥에서 풍겨오는 것을 보면 정말 가을이 오긴 왔나봅니다. 제가 태어난 달이 5월이라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겨울이나 여름보다는 봄과 가을을 더 좋아합니다. 이맘때가 되면 전 늘 마음속에서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울렁임을 느끼곤 합니다. 까까머리 학생시절때만 느낄수 있는 기분일 것이라고 아주 어렸던 그때 당시에 생각했던 기분인데 이 계절만 되면 늘상 느껴지니 뭔가 신기하네요. 시간이 흐를수록 가을은 짧아져가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즐겨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요즘은 단풍잎의 색깔, 공기의 냄새 등 모든것에서부터 가을의 청취를 느끼려고 하는 중입니다. 우리의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 하루를 더욱 열심히 살아가는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주 오랜시간 전에 접했던 어떤것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에게 조금 다른 느낌으로 가끔 다가오고는 합니다. 저에게는 오늘 소개해드릴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이 그러한 밴드 입니다. 이미 몇년전 고등학생때 이들의 음악을 접한적은 있었지만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듣는 밴드 중 하나인데요, 이번 트랙리스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트랙 'Protection'은 매시브 어택의 2집인 동명의 앨범 [Protection]의 첫번째 트랙 입니다. 친한 지인이 선물해준 이 앨범을 듣고는 이 트랙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들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하여 일본의 재즈피아니스트 료 후쿠이의 트랙부터 다운템포의 보노보, 재즈힙합의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를 거쳐 트립합의 매시브어택과 디제이 셰도우까지 다양한 장르의 트랙들로 이번 트랙리스트를 구성해보았습니다. 제가 소개해드리는 트랙들과 함께 즐거운 가을을 만끽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MASSIVE ATTACK - PROTECTION, (1994)>
<MASSIVE ATTACK - [BLUE LINES], (1991)>
<MASSIVE ATTACK의 ROBERT DEL NAJA, DADDY G>
트립합은 마약에 의한 환각 상태(TRIP)와 힙합에서 파생된 단어(HOP)의 조합이 의미하는 것처럼, 그루브한 전개의 힙합 비트를 바탕으로 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일렉트로니카의 하위 장르로써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힙합과 비슷한 구성이지만 피아노, 색소폰, 바이올린 등과 같은 악기들이 자주 사용되고 주로 여성보컬이 들어간다는 점과 애시드 재즈, 소울, 얼터너티브 록 등 다양한 장르의 분위기를 아우르는 점은 힙합과는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TRIP-HOP의 효시라 불리우는 앨범이 바로 매시브 어택의 1집 앨범인 [BLUE LINES] (1991) 입니다.
<MASSIVE ATTACK - ANGEL, (1998)>
<MASSIVE ATTACK - SAFE FROM HARM, (1991)>
매시브 어택을 알려면 트립합을 알아야하고, 트립합을 알려면 먼저 브리스톨이라는 도시에 관하여 알아야 합니다. 브리스톨은 런던에서 약 3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영국에서 유일하게 '유렵 친환경 수도'로 채택된 도시인 만큼 이 도시에 있는 건축물들 대부분이 자연을 최대한 해치지 않도록 설계되어 친환경 도시라고도 일컫습니다. 바다에 인접한 도시인 브리스톨은 과거 대영제국의 무역거점이었으며 현재는 항공우주 공업, IT 스타트 업 등 첨단 산업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1980 - 1990년대 영국의 힙합과 그래피티 문화의 발상지였으며, 자연스레 이 도시에서 트립합 이라는 장르가 태동하게 됩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트립합 3인방(매시브 어택, 포티쉐드, 트리키)가 모두 브리스톨 출신이니 트립합 = 브리스톨 이라는 등식 역시 성립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트립합을 브리스톨 사운드라고도 부른다고 하네요.
<DJ SHADOW - BUILDING STEAM WITH A GRAIN OF SALT, (1996)>
트립합은 또한 모웩스(Mo’Wax) 레이블을 핵심 키워드로 하여 장르의 기원을 추적해볼 수 있습니다. 트립합에 있어서 브리스톨 사운드와 모웩스 사운드라고 불리는 두가지 스타일 모두 트립합으로 분류되면서도 서로 큰 연관성이 없는 흐름을 보였기에 닮은 듯 다른 성향이 존재합니다. 브리스톨 사운드는 소울과 팝의 영향을 받은 보컬이 가미된 대중적인 방법을 활용했던 것에 반해, 모웩스 사운드는 테크노와 하우스, 애시드 재즈와 힙합을 아우르는 레이블의 성격이 혼합된 실험적인 연주 스타일을 지향한 차이점을 보입니다. 다시말해, 브리스톨 사운드는 “몽환”적인 분위기(TRIP)가 부각되고, 모웩스 사운드는 그루브한 “힙합” 비트(HOP)로 그들의 특성을 강조 합니다.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데뷔 앨범 [Blue Lines] (1991)가 트립합의 시초격인 작품으로 통한다는 것은 앞서 말씀드렸죠? 그런데 당시에는 트립합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93년에 싱글로 발매된 디제이 섀도우(DJ Shadow)의 ‘In/Flux’라는 트랙을 영국의 음악 매거진 믹스맥(Mixmag)에서 소개하면서 트립합 이라는 용어를 처음 탄생시켰으며 그 이후에 널리 통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DJ SHADOW - [THE MOUNTAIN WILL FALL], (2016)>
<DJ SHADOW - [ENTRODUCING] (1996)>
조슈아 폴 데이비스 라는 이름을 가진 DJ SHADOW는 캘리포니아의 중하층민으로 태어나 어릴때부터 백인으로서는 드물게 힙합만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리고는 일찌감치 학교를 자퇴하여 주위의 클럽을 떠돌며 DJ로서의 내공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기타, 베이스, 드럼 연주에도 소질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에릭B&라킴, 퍼블릭 에너미와 같은 거물들과 교류하며 힙합의 기본 리듬을 익혔다고 전해지며 이후에 KDVS 데이비스 캠퍼스의 라디오 스테이션 DJ로 활동하게 되는데 힙합을 베이스로 음악을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 장르를 섞어놓은데다가 MC나 보컬을 전혀 기용하지 않고 좀 더 진보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이어오던 그는 4장의 싱글을 발매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웩스를 알게 되어 계약 마친후에 전무후무의 힙합명반인 [ENDTRODUCING]을 1996년에 완성하게 됩니다. 이는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LP에서 추출한 샘플링만으로 앨범을 만들게 되어 2001년에 기네스 북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샘플링만으로 만든 앨범'으로 기록되었습니다.
<JAMES BLAKE - LIMIT TO YOUR LOVE, (2011)>
<SBTKRT - HIGHER, (2014)>
각자 상반된 흐름을 보였던 브리스톨 사운드와 모웩스 사운드는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장르가 번성하는 과정에서 더욱 밀접한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경계를 허물만큼의 교집합을 더더욱 넓혀가게 됩니다. 아울러, 트립합 특유의 몽환적인 감성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대두된 덥스텝(Dubstep) 장르의 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덥스텝은 덥(DUB)과 투스텝(TWO-STEP)이 결합된 형태의 댄스뮤직 입니다. 초기엔 실험적 성향이 매우 강한 일렉트로니카였으나, 2011년과 2012년 워블베이스와 각종 글리치, 디스토션이 난무된 형태의 강력한 쾌감을 자아내는 덥스텝이 스크릴렉스(SKRILLEX)에 의해 한때 일렉트로니카 씬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매김 하는듯 하였으나, 그 인기는 불과 1-2년 사이에 사그라들어 현재는 예전만큼의 인기를 느낄순 없지만, 스크릴렉스의 등장으로 덥스텝을 포함한 하위 베이스뮤직 장르들에 끼친 영향력의 여파는 아직까지도 남아있을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트립합의 감성이 가미된 덥스텝의 하위장르는 대표적으로 포스트 덥스텝을 꼽을수가 있겠네요. 포스트 덥스텝은 현재 국내에서 큰 인기나 관심을 끌고 있지는 않지만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로 마니아층을 보유한 장르이기도 합니다. 덥스텝 리듬에 소울풀한 멜로디를 얹는 제임스 블레이크와, 덥스텝에 R&B를 결합시키며 투 스텝, 훵크, 하우스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영국의 굴지의 레이블 YOUNG TURKS RECORDS 소속의 SBTRKT(서브트랙트) 역시 포스트 덥스텝의 대표 아티스트로 꼽을수 있겠습니다.
<FACT MAGAZINE - 21 YEARS OF MO WAX - PART 1, (2013)>
지난 2013년, 모웩스 레이블은 지난 21년간의 발자취를 Urban Archaeology 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 책 등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프로젝트를 진행 하였는데요, 프로젝트의 진행자인 제임스 라벨은 DJ SHADOW를 발굴하였으며 모웩스 레이블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힙합과 턴테이블리즘 등에 큰 영향을 끼친 모웩스 레이블은 단돈 1000파운드로 시작하여 현재는 DJ SHADOW, DJ KRUSH 등의 거물 아티스트를 거느린 대형 레이블이 되었습니다.
모웩스 레이블의 수장 제임스 라벨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춤을 못춘다는 이유로 디제잉을 시작하게된 것은 유명한 일화죠. 제임스 라벨은 DJ SHADOW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 밴드 U.N.K.L.E로 1998년[PSYENCE FICTION] 이라는 앨범을 발표합니다. 게스트로 참여한 아티스트로는 무려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 스톤 로지스의 이언 브라운 등이 참여 했습니다. 항간엔 유명 아티스트만 대거 섭외하고 정작 본인은 돈만 만지는 사업자 라는 소리를 듣기는 하였으나 그 소문들은 뒤이어 발표되는 앨범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완성도와 치밀하고 섬세한 제임스 라벨의 증명된 작곡능력에 의해 철저히 불식됩니다.
<U.N.K.L.E - [NEVER, NEVER, LAND], (2003)>
<U.N.K.L.E - [PSYENCE FICTION], (1998)>
뜨거웠던 여름이 불과 얼마전 같은데 어느새 더욱 완연한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늘 느끼지만 시간은 정말 빠른 것 같습니다. 한해의 마지막 분기에 제가 목표로 잡은 것은 아침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저는 잠을 깊게 못자는 편이어서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10시간을 자나 4시간을 자나 어차피 피곤한 것은 똑같기 때문에 새벽에 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다가 잠을 청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얼마전부터 저는 나름대로의 특훈에 돌입하기 시작 했습니다. 제 자신을 위하여 평소의 기상시간보다 10분 일찍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을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알람도 평소보다 많이 맞춰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약 일주일째 지속되어 온 결과, 지금은 알람이 울리기 전에도 눈이 떠져서 좀 더 주도적인 자세로 아침을 맞이하곤 합니다. 물론 앞으로는 20분, 30분 더 일찍 일어나는 연습도 해야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행복한 가정을 먼저 만들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큰일을 하기 위해선 작은일 역시 정성과 진심을 다해 할 줄 알아야 하죠.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매우 일상적이고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되는 변화에서도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아닌것 같아도 조금 더 주도적인 삶을 위하여 작은 변화를 시도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가 너무나 힘드셨나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셨을때 아침에 부지런히 개었던 이불과 베개를 보게 된다면, 아주 작은것이라도 성취감을 느낄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입니다. 10월의 시작을 알리며 다시 한번 가을비가 내렸네요. 환절기 건강유의 하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