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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INTERVIEW : SOOMIN YIM






Q1.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A1. 흑백필름으로 잊혀져가는 일상과 사람들을 찍고 있는 스트릿 포토그래퍼 임수민입니다.  





Q2. 사진을 왜 찍으시죠?


A2. 암실수업을 듣게 되면서 필름이라는 것에 대해서 되게 매력을 느꼈어요. 현상을 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었었고 처음엔 사물을 찍었어요. 근데 너무 지루하더라고요.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밖에 나와보니까 사진을 찍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는게 너무 재밌고 그걸 계기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 같아요.





Q3. 암실수업이라면 사진을 전공하셨다는 얘긴가요?


A3. 교환학생을 갔을 때 전공수업을 4개 듣고 일반수업을 1개 들었었거든요. 그것 중에 하나였어요. 





Q4. 지금은 국제학 전공을 살리지 않고 사진을 하는데 그 계기가 뭐죠?


A4. 저는 전공을 안살리고 사진만을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전공을 할 때 배웠던 세계관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쓰이거든요. 그리고 사진만을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게, 저한테는 사진이 제 직업이 아니고 제가 안하면은 못살 것 같아서 하고 있는, 저한테는 아주 큰 일부지만, 그것만이 저를 정의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Q5. 예전에 교환학생을 가면서 쓸데없는 것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암실수업을 들은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쓸데없는 거라고 생각한거죠?


A5. 음 일단 국제학을 전공하면서 저에게 문화생활 같은게...그러니까 그런 것을 배운다는 게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렸었어요. 스펙을 쌓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했고 모든 활동들도 스펙에 도움이 되는 것만 골라서 해야 했기 때문에. 교환학생으로 떠날 때 즈음 그런 것들이 너무 실증이 났었고 다른 것들을 찾아보는데 다양한 것들이 많더라고요. 컴퓨터 디자인도 있고 다른 것도 있고, 근데 그런 것들은 어떻게든 살릴 수는 있겠더라고요. 적어도 스펙에 있어서는. 근데 암실수업은 아무리 어떻게 생각해봐도 스펙에 넣을 수가 없더라고요. 요즘은 사진을 찍더라도 디지털이고 포토샵을 이용하잖아요. 요즘 이력서 지원사항을 봐도 포토샵 우대자는 있지만 암실기능자 이런 건 없잖아요. 그래서 오기로 했던 것 같아요





Q6. 당시에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의 수민씨를 있게 한 셈이네요. 


A6. 그 3년 전에 교환학생의 경험으로 인해서 제가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Q7. 왜 필름이죠?


A7. 저는 필름을 처음 현상했을 때 너무 신기했어요. 그러니까 나오기 전에 안믿겨지는 거에요. '용액 몇개 섞고 흔들었다고 해서 과연 현상이 될까?' 뭔가 거짓말 같기도 한데 거짓말 일리는 없고...이 수업이 몇십년 동안 해온 수업일텐데. 그러한 의구심을 가진 채 처음 현상을 해봤는데 하얗게 나오더라고요. 근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지금 우리는 기계에 너무 익숙해져서 버튼 하나에 시원해지고 깨끗해지고... 그런데 이거는 제가 있어야 하는 거에요. 제가 정신을 딱 차려야 하고 모든 과정을 제가 직접 손으로 해야한다는게 너무 신선하고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아요. 되게 멍하 마취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가 탁 뭔가 트이는 느낌이였어요. '내가 뭔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이 안되는구나, 적어도 이 암실 속에서는 내가 필요한 존재구나'. 그래서 필름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8. 사진 찍는 행위 자체가 수민 씨 삶의 일부분처럼 들리네요.  


A8. 저는 이제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사진을 찍으면서 터득하게 된 시각, 아니면 행동양식 그런게 다 몸에 베어져 있더라고요. 사진을 찍는 것을 통해서 어떤 부류의 사람을 만나려면 어디를 가야겠구나 그런게 탁 트이고 일상의 일들이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오히려 사진을 찍고 나서 국제학을 공부했을 때 보다 더 넓은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살 줄 아는 것 같고.





Q9. "다른 사람을 위해 살 줄 알게됐다"라는 것이 어떤 의미죠?


A9. 제가 국제학을 공부하며 학생 생활을 했을 때, 적어도 그때의 저의 모습은 제 자신이 뭔지도 모르겠는 사람, 미래의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른채로 살았었어요. 나를 위한 거긴 한데, 지금의 저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였기 때문에... 근데 사진을 하고 길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공감이 되는 상황들이 되게 많아요.  


사진을 찍으려고 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처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을 모면시킬 수 있는 사람은 저 밖에 없는거에요. 심지어 그 사람조차 그 상황을 잊고 있을 때 마저도. 예를 들어 버스에서 어떤 할머니가 내리는 순간을 찍으려고 할 때, 막상 할머니가 버스에 내릴 때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할머니를 도와드리러 가거든요. 그런게 버릇이 되다 보니까 제가 버스를 기다릴 때 마다 버스가 오고 할머니가 보이면 그 쪽으로 몸이 먼저 향하게 돼요. 카메라가 없을 때도 그런 관찰력이 더 생기는 거죠. 저는 그런게 정말 좋아요. 되게 하루가 꽉 차요. 나로 인해서 차는게 아니라, 다양한 다른 사람들로 인해서. 자기 전에 정말 수만가지 일들과 얼굴들을 떠올리게 돼요. 







Q10. 사진을 하기 전에는 수민씨의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가 어떤거였다고 생각하세요?


A10. 저는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게 가장 좋았었어요. 제가 지금 실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과 영화를 통해서 보고 느끼고 있었더라고요. 그게 되게 행복했어요. 바쁜 와중에도 소설을 막 읽고 피곤해도 영화를 보고. 그런데 어느 순간 또 갑자기 실증이 나더라고요. 왜냐하면 내가 보는게, 내가 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간접체험이고, 실제로 보여지지 않은 것을 통해서 그걸 먼저 느끼는게 어떻게 보면 현실을 도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때는 너무 심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Q11. 사진을 시작하기 전과 후가 그래도 극단적이지는 않네요. 흔히들 자신의 적성을 찾기 전에는 시체와 다름 없었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흔한데.


A11. 시체였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어렸을 때 되게 행복했어요. 엄마가 조각가여서 그런진 몰라도 되게 감성적으로 자란거 같아요. 모로코에서 가족과 다 함께 살 때, 아빠가 일을 나간 뒤에는 엄마도 밖에 나가기 무서워했어요. 보통 엄마가 이면지를 주면 하루 종일 크레용으로 그림 그리고 동화책 읽고... 그게 제 하루 일과였어요. 엄마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감정을 표현하는게 되게 익숙했어요. 그래서 제가 국제학을 전공한 것이 되게 웃기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감성적으로 살아왔던 사람이 갑자기 이성적으로 모든 이슈들에 대해서 의견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마치 그런 정치적인 견해가 없으면 무식한 사람 같이 되고. 워낙 그런거에 대해 무관심했던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하려니 남의 옷을 입은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Q12. 어쨌든 더 행복해졌다는 이야기니 기분이 좋네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진을 찍어요?


A12. 별로 마음가짐이 없어요. 아,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보고싶어 하는 건. 근데 그거를 딱 파악을 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사진으로 도출해내는거죠.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제가 국제학을 했다보니 자꾸 분류를 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노숙자분을 마주치게 되면 그 사람으로써 보는게 아니라 노숙자로 먼저 인식해요. 할머니를 보게되면 독거노인, 트렌스젠더를 보면 트렌스젠더로. 저는 그렇게 보게 되는게 싫어요. 사실 그건 저에게 억지스러운 것이거든요. 이제는 그냥 형태를 보고, 빛이 어떻게 비추는지 보고, 뒤에 어떤 것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그 뒤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풀어내요. 그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표현하는 것이.









Q13. 많은 작품하시는 분들이 적어도 대중에게 보여지는 채널 안에서 만큼은 최대한 완성도 있는 작품을 노출시키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것 일수도 있긴 한데... 아무튼 수민 씨의 사진들은 뭔가 날 것의 느낌을 받아요. 그게 수민씨의 정체성으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A13. 저는 맞는 것 같아요. 과정적인 걸 좋아해서... 이런 말 하는게 웃길수도 있지만 저는 제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최근에 슬럼프가 있었어요. 제가 유일하게 사진을 시작한 이후 처음 느껴본 불행이였거든요. 그게 작가 매너리즘이였어요. 작가병에 빠져서 전시를 되게 많이 했었거든요. 7번 정도 하다보니까 사진을 찍는 시간보다 전시를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더라고요. 그리고 '작가님' 소리를 자꾸 듣다 보니까, 그거에 빠져들어서 자꾸 제 작품이 옛날만큼 저한테 기쁨을 주지 않는거에요, 이 작업이. 저는 그게 너무 충격이었어요. 애초에 돈이나 유명세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 자체가 너무 기뻤었고 보는 이들 중 한명이라도 같이 공감해준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며 찍었었던건데. 어느 순간부터 '아 사람들이 이런거 안좋아 할 것 같아'. '아 이 사진 좋아하겠다' 이런 식으로 제 사진을 판단하게 되는거에요. 점점 더 인스타에 올리는 사진들도 자꾸 의미부여를 하게 되는 것 같고. 이번에 여행을 다녀와서 이런 것들을 버리고 오게 돼서 마음이 너무 편했어요. 





Q14. 전시를 여러번 진행하고 말씀하셨던 작가 병이 생기고 (하하) 반응들을 접하게 되면서 상업성에 대한 감이란게 생기잖아요. 그런 감이 무의식적으로라도 수민씨 사진에 영향을 준 적이 있나요?


A14. 하하하. 그 작가병 걸렸을 땐 사진을 안찍어서 잘 모르겠어요.      





Q15. 아예 안찍었다고요?


A15. 네. 진짜 문제였어요. 사진기를 안들고 다녔었으니까. 그냥 별로...음 인스타그램이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네요. 인스타 하느라 놓치는 순간이 너무 많았어요. 이걸 통해 연락이 너무 막 들어오기도 하고...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알람을 꺼놓았어요. 그러고 나니까 사진 찍기가 너무 좋아요. 일단 사진을 찍으려면 말 그대로 몸도 정신도 모두 집중을 해야 하거든요. 카메라를 들고 다니려면 손을 놓지를 못하잖아요. 근데 예전에는 그게 안되더라고요.





Q16. 예전과 비교했을 때 더 많은 사람이 공감을 못해주더라도, 소수가 더 깊게 공감해주고 느껴준다면 사진 찍는 이로써 만족감이 더 클까요?


A16. 네, 근데 신기한게 그걸 버리고 나서 찍으니까 제가 봐도 사진들이 더 특별해진 것 같은거에요. 근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 반응도 더 좋더라고요.





Q17. 그게 예술가가 주체성을 형성하는 과정 아닐까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화랑이나 아트페어 같은 곳에 너무 많이 개입되고 노출되면 무의식적으로 트렌드가 좀 반영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잣대를 느끼게 하는 것들.


A17. 맞아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슬럼프를 더 느꼈었던게 뭐냐면, 그런 트렌드에 대한 소리가 들려서 신경이 쓰이면 반영을 하던가 하면 되는데, 저는 반영을 안하면서 신경은 또 무지 쓰는거에요. 그러니까 사진찍기가 싫은 거에요. 그냥 뭔가 지금 이 순간 찍으면 아까 들은 소리들을 반영할 것 같은데, 그건 제 자존심상, 제가 사진을 하는 이유상 너무 안맞기 때문에 너무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 딜레마에 빠졌던 거에요. 그래도 창피한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는 거에 대해서는 다행인 것 같기도 해요.


좀 우스운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마케팅 인턴 면접을 하나 봤었어요. 왜 지원했었냐면, 그 작가병에 걸리고 난 이후에, 사진이 제 인생에 메인으로 오면 다시 또 그 위기에 처할 것 같은거에요. 그래서 나는 '사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 있게끔 다른 카테고리를 하나 더 만들고 싶은 거에요. 내 사진을 보호하고 싶어서. 면접도 보게되고 결과도 좋았는데 결국 가진 않게 됐어요 하하. 그래도 그 곳과 좋은 인연이 되어서 전시도 같이 하게 됐네요.


아 그 당시 면접볼 때 받은 질문 중에 하나가 기억이 나는데, 가장 크게 실패한 적이 언제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그 질문이 싫었어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한테 힘든 얘기를 하면 대게 본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거에요. 저는 그 말에 동의를 하지 않아요. 저는 실패나 상처 같은 것들이 상대적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감성적으로 커서 그런지, 남들에겐 자그마한 상처라는 것들도 저한테는 되게 크게 다가올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제가 취업을 하지 못하는게, 다른 분들처럼 실수하는 것들에 대해선 사과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저는 마음이 너무 힘든거에요. 일단 실수를 한 날이면 집에 가서 술을 마시게 돼요. 그런 책임이 너무... 그래서 저는 그런거 잘 못하겠어요. 저는 제 주위에 어딘가에 소속이 되서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대단하게 보여요. 정말 강심장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아까 질문이 뭐였지? 아무튼 비록 소위 말하는 '큰 실패'를 해보진 않았지만 작은 것들에게도 많은 걸 느꼈고 큰 실패를 해야만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하여튼.









Q18. 사진 찍는 사람이라고 말하는게 두려웠었나 보네요.


A18. 두려웠었다라기 보다는 싫어요. 왜냐면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자꾸 막...





Q19. 특정 바운더리에 가둬지는 것 같아서?


A19. 네. 저를 카테고리화 시키는게 너무 싫어요 하하하. 더더욱 그런게 뭐냐면 저도 진짜 제가 좋아하는 사진들을 찍은 사람들은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거나 사진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거든요. 저는 그 점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모제스 할머니 (Grandma Moses)는 80년을 농부로 살다 그림을 그리셨고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도 40년간 보모와 가정부로 살아가며 사진을 찍었지만 현상할 형편이 못 되어 필름채로 보관했었고... 결국 돌아가시고 나서야 조명을 받았죠. 이런 분들의 그림이나 사진 작업이 더 와닿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서 인 것 같아요. 저는 사진가가 찍은 사진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찍은 사진들이 더 와닿고 저를 더 울리는 것 같아요. 저도 학생신분으로 전시했을 때 사람들이 더 오픈마인드로 다가와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스트릿 포토그래퍼가 찍은 사진'이라는 타이틀 때문에서인진 몰라도, 몇몇 분들은 너무 비판적이거나 온갖 전문용어를 언급하며 사진을 대하더라고요. 정작 저는 그 용어들을 잘 모르는데... 또 다른 분들은 제 사진에 대해 언급하는걸 너무 두려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학생일 때는 막 "어 이거 제가 예전에 찍었던 사진이랑 비슷한데 보여드려도 돼요?" 혹은 "이 사진 저희 할머니랑 비슷해요! 저희 할머니도 이러셨는데", "이런 마음으로 찍으신 것 같아요" 이러한 반응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아 좋네요" 혹은 "전 사진을 잘 몰라서 그런지 이해하기 어렵네요" 이런 반응 밖에 없는거에요. 그래서 더더욱 그 타이틀을 버려버리고 싶은거에요. 지금은 국제학교 선생님이 하고 싶어요.





Q20. 선생님 되게 잘 어울리네요. 


A20. 애들을 너무 좋아해요. 성질만 좀 버려야 하는데... 어쨌든 너무 하고 싶어요. 그래서 내년부터 준비를 조금 해보려고요. 저는 그게 더 리얼한 거 같아요. 지금 한 사진을 3년 찍었고 작가생활은 학교 졸업 이후로 치면 1년 반 정도가 넘었는데 내가 너무 가벼운거 같아서 싫어요. 제가 잘 못 하나봐요... 다른 작가분들은 깊이있게 계속 하시는 것 같지만 저는 그게 음...그 속에서, 현란함 속에서 제 영역을 잘 못 지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다른 방식으로 지키려고 마음을 먹었어요.





Q21. 인지도가 조금 쌓였을 때는 그냥 맹목적으로 좋다는 피드백으로 느껴질 때도 있을 것 같아요.


A21. 맞아요





Q22. 초반에는 어땠어요?


A22. 초반에는...아 그것도 신기해요. 지금 오는 피드백들은 정말 감사한 말들이 많은데 처음에는 사진하시는 분들의 반응이 더 있었어요. "어 이거 찍기 어려웠을텐데", "오버숄더가 인상적이네요"등등. 저는 댓글을 통해서 사진용어를 배운 것 같아요 하하. 







Q23. 전시 얘기를 조금 해볼게요.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진행되는 전시에 대해 간략히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A23. 간략히는 안되죠. 6개월 동안 준비한건데 하하. 이 전시는 3부작으로 기획된 전시인데, 음 저는 기획을 재밌게 하는걸 좋아해요. 제 사진이 흑백, 필름, 스트릿포토그래피이고 되게 정통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갔지만 저는 젊잖아요. 그래서 보여지는 방식이나 기획하는 방식에 있어서 과하게 점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스트릿 포토그라피 필름으로 한다 하면 다 할아버지인 줄 알아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Henri Cartier Bresson)이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검정색 프레임에 하얀색 여백을 남겨놓는, 이런 전형적인 방식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처음에는 학생이고 너무 아마추어여서 그렇게 하긴 했지만.


SLOW STEADY CLUB의 SLOW & STEADY가 제 모토이기도 하고 또 거기에 추가로 SMALL을 넣었어요. 6개월 전시인데 3개월씩은 너무 길까봐. 그래서 2개월씩 3부작으로 기획을 했고 1부는 SLOW, 2부는 SMALL, 그리고 3부는 STEADY. 이렇게 나눠져 있어요. 1부는 다양한 속도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다양한 나라들에서 찍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저만의 속도 공식으로 풀었어요.


2부는 SMALL의 타이틀은 "작은 것들의 신 (God of small things)"인데, 벼룩시장 상인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벼룩시장에 가면 정말 쓸모없는 물건들이 너무 많거든요. 저는 저걸 왜 가져왔는지 모르겠는 이상한 것들인데, 그것의 가치를 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물건들이 존재하는 거잖아요. 사실 그것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아무도 모르는거죠. 그래서 그런 물건들의 빛, 가치를 봐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2부 전시는 재미있게 진행돼요. 사진을 정말 조그맣게 뽑아서 컨택트 시트라고 사진을 뽑다보면 네거티브 형식으로 필름을 뽑는게 있어요. 제 사진을 이런식으로 조그맣게 뽑아서 큰 액자에 담을거에요. 이게 스토리가 있어요. 제가 찍은 순서거든요. 예를 들어 아이가 걸어서 앉기까지의 순서, 상인이 뭔가 집는 과정,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거고 사진은 돋보기로 봐야해요.  


3부 타이틀은 "Mr.c & Mr.?"인데, 아직 미정이에요. 3부에 책도 쓰려고 했었는데 쓰고 싶었던 것이 좀 더 깊어졌어요. 좀 더 어른이 되고 난 후 쓰고 싶어서 조금 삭혀두고 싶은 마음이에요. 책은 재밌을거에요! 책을 보통 페이지 순서대로 읽잖아요? 근데 이 책은 한 챕터가 끝나면 책 하단에 특정 다른 페이지로 가라고 써있을거에요. 제가 여행을 할 때 정말 여러군데 뒤집어놓고 다녔거든요. 독자분들도 저 같이 모험을 하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해서요. 아무튼 전시 3부도 이런 식으로 기획할 것 같아요.





Q24. 사진 뿐만 아니라 수민씨 글도 색깔이 뚜렷한 것 같아요.


A24. 잘 모르겠지만...책 읽는 거를 되게 좋아하는데 쓰는 것도 정말 즐겁더라고요. 사실 아직 안올린 글도 너무 많고 쓰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 많아요.         





Q25. 이번 전시 통해서 전달됐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A25. 이 전시를 왜 이렇게 기획을 했냐면, 사실 전시를 처음 할 때 가장 어려웠던 게 네거티브로 제가 뭘 찍었는지 확인하는 거였어요. 분명 제가 너무 안보이더라고요. 심지어 만약 제가 동희씨를 찍고 동희씨한테 그 사진을 네거티브로 보여줘도, 누군지 못알아볼거에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게 익숙해지다보면 보여요. 네거티브로 전시하면 정말 이해를 못할 것 같아서 포지티브로 바꾸기는 했지만. 그래서 작은 것들도 오래 관심을 기울여서 보면 새롭게 보이고 잘 보인다라는 걸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1부 전시도, 속도 속에서 이야기가 있다라는걸 보여주고 싶었었던 거든요. 이번에는 그런 것 같아요. '작은 것들에게도 가치가 있다'. 제 올해 하반기 키워드가 소박함이거든요. 소박한 행복





Q26. 소박함이라...


A26. 유혹에 굉장히 약해요. 남들이 봤을 때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들에도. 근데 저는 그런 것들이 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두려워요. 분명 제가 한번 맛보기 시작하면 더 원할 것 같아서. 그냥 이런 것들이 저랑 맞지 않다는 걸 알고 지금 내 손안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열심히 즐기면 충분히 행복할텐데...





Q27. 의외네요. 대게 주체성이 뚜렷해보이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별로 휩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A27. 저는 정말 제가 주체성이 확고한 지 정말 모르겠거든요 하하. 장점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한번도 제 자신을 카테고리화 시킨 적이 없어요. 저는 숨 막혀요. 누가 그걸 하면.





Q28. 주체성 뚜렷해보인다는 말 들어보지 않았어요?


A28. 네. 더불어 자유롭다는 이야기도요. 사실 그냥 두렵고 귀찮아요. 너무 분에 넘치는 얘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태원에 오면 항상 저에게 연락을 해요. 제가 자고 있을 늦은 시각에도. 가끔은 한번 뵀던 분들도 전화가 와서 이태원에 놀러왔는데 작업실 놀러가도 되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되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페이스북으로도 놀러가게 주소 좀 알려달라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한번도 뵌 적도 없는 분들이. 근데 저는 그게, 상처를 안받으면 되는데, 그런 거에도 상처를 되게 많이 받아요. '내가 그렇게 쉬워보이나?', 저는 저렇게 무례하게 행동하지 못할 것 같은데 왜 정작 저는 그런 것들을 수용해야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그러다 보니까 제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저는 사람, 인간이라는 것이 너무 좋았는데, 지치게 되더라고요.





Q29. 관심이 많으면 많은대로 컨트롤 하기 힘들고 없으면 또 외로워서 힘들고...


A29. 그냥 이대로였으면 좋겠어요. 지금 전 딱 좋아요. 전시를 하면 감사하게도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방명록도 꽉 차고, 딱 제가 생각한만큼 와주신다는 거 잖아요.









Q31. '자신의 색깔을 찾아야겠다' 류의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A31. 아니요, 없어요. 이번에 책 제목 생각을 하다가 "집이네? 집시가 울었다"가 갑자기 떠올랐었어요. 그냥 계속 떠올랐어요. 그 말을 어디서 읽은 것도 아닌데 계속 머릿에 맴돌았어요. 집시는 엄청 떠돌아다니잖아요. 집이란 개념이 없고 계속 새로운 곳을 휘젓고 다니는데 저는 그게 만족이 안되니까 자꾸 돌아다닌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집이네'라는 말이 그냥 눈물을 나오게 하고 그 순간만큼은 모든게 내려놔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부다페스트에 집시가 굉장히 많은데 거기 있을 때 그들에게 침도 맞을 뻔 했어요. 거기서 제가 동양인인줄 몰랐나봐요 하하. 집시들이 그 나라 언어로 계속 말을 걸었어요. 저는 못알아들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걸 무시한다고 생각했나봐요. 아무튼 계속 그 말이 맴돌았어요. 제 색깔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누구는 시크한 힙스터, 누구는 힙합 힙스터, 그런 식으로 딱 보이잖아요. 그 사람들이 입는 옷만 봐도. 근데 저는 옷 입는 스타일도 정말 매일 바뀌고... 저도 제 자신을 너무 잘 몰라요. 다른 사람들도 절 보고 "생각보다 진지하네", '"생각보다 감성적이네", "생각보다 학구적이네" 같이 '생각보다'라는 말들을 하도 하니까 저도 더 헷갈려지더라고요. 


사춘기가 심했을 때는 가족과 함께 밥을 먹어도 혼자 동 떨어진 느낌도 들었었고. 아무 이유없이 그랬어요. 지금은 정말 저의 안식처라는 개념을 생각했을 때 가장 근접하게 떠올르는 것은 가족이에요. 근데... 뭔가 다른 것이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트윈스터즈 (Twinsters)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어요. 서로의 존재조차 모른채 각자 다른 곳에 입양되어 살아가던 쌍둥이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그 쌍둥이 중 한명이 하는 말이, 집에 항상 가족도 있고 친구들도 다 있는데 너무 외로움이 느껴졌다는 거에요. 자기도 모르게. 나중에 자기 트윈을 만나게 됐을 때 이야기 하더라고요. 자기가 왜 외로웠는지 알 것 같다고, 항상 곁에 뭔가 없었던 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고.


자기가 쌍둥이인지도 몰랐는데도 그게 느껴졌었다라는 거에요.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근데 저도 그런 기분이 들어요. 뭔가 제가 느끼고 있는 이런 류의 느낌이 나아질 거라는 확신은 있어요. 뭐 제 색깔은 충분히 있는거 같기도 해요, 제 집 한번 봐보세요. 온통 핑크잖아요.





Q39. 사진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A39. 음 그냥 소설을 읽을 때, '아 이게 누가 쓴거네?'. '이게 진짜 있었던 일인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되게 궁금해하면서 읽잖아요. 저는 그 호기심이 호의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제 사진을 그런 호의를 가지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호기심에 찬 호의.


'스트릿포터그래퍼가 찍었네', '필름으로 찍은거래', '외국물 빨이네' 이런 생각 안하고 그냥 순수하게 그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주려고 노력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걸로 조금이라도 옛날에 있었던 좋은 일이나 잊고 있었던 일 등을 떠올려줬으면 좋겠어요.







Q40. 수민씨에게 예술이란?


A40. 저는 어렸을 때 부터 엄마의 영향을 받아 예술과 되게 가까이 지냄과 동시에 예술과 까탈스럽게 지낼 수 밖에 없었어요. 어렸을 때 그림을 그려오면 비례가 안맞다는 등 칭찬보다는 비평을 먼저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에게는 완벽해야되는 뭔가 공식이 있는게 예술이였었어요. 근데 사춘기 때 처음으로 그림을 보면서 울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아 이게 뭐지?' 싶었고... 그런 거 아닐까 싶어요. 내가 어떻게해야 할 지 모르겠는 감정들을 내 눈 앞에 보여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그게 해결이 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그때 그림을 보고 울었었을 때는 그 당시 제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과 외로움들을 이 사람들이 그걸 느끼고 그거를 너무 고민을 많이해서 그림으로 나타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울었었고 아직도 그 그림이 가장 좋아요. 





Q41. 작품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A41. 워낙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들을 많이 찍어서 그런진 몰라도 사람들이 저에게 항상 물어봐요. 너는 사진을 통해 도출해내고자 하는 것이 뭐냐고. 근데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분들을 찍는 이유가 그 사람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여서 찍는게 아니에요. 그 사람들의 행동이 저에게 뭔가를 알려줬을 때 찍는거에요. 


그래서 저는 제 사진을 통해 도출해내고 싶은 결과는 그냥 한번이라도 '이런 사람들이 있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네' 이런 것들을 1초라고 상기시켰으면 좋겠어요. 그게 끝이에요. 제 입장에서 예술은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기회를 주는 것. 그게 예술이 할 수 있는 일 이잖아요.





Q42.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죠?


A42. 한국에서 사진을 더 많이 찍는거에요. 정리를 하다보니까 외국에서 찍은 사진들이 더 많더라고요. 





Q43. 왜 한국에서 더 찍고 싶은거죠?


A43. 사진을 통해서 한국을 재발견하게 됐거든요. 한국을 되게 싫어했었는데 사진을 찍으면서 좋아하게 됐어요. 휴학을 하고 낮에 사진을 찍으면서 돌아다니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저를 외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특히 한국 처음 왔을 때 말도 좀 어눌하고 까맣고 그래서인지 젋은 분들은 저를 완전한 한국인으로 생각해주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근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저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더라고요. 스스럼없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런 거를 통해서 한국 사람들의 정이란 걸 느껴봤거든요. 





Q44.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부탁드려요. 


A44. 이 인터뷰는 제가 뭐 특별해서 하게 된 것도 아니고 제 전시 또한 제가 엄청 특별해서 전시하는게 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사람들과 공감을 하고 싶어하는 부분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게도 진행하게 된 거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공감해줬으면 좋겠어요.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공감을 많이 해주면서 그 기쁨이 뭔지 제 사진을 통해서 느껴실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리고 본인들도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DETAILED INFORMATION 

이름 : 임수민 (SOOMIN YIM)
국적 : 한국 (KOREA)

사이트 : WWW.SOOMINYIM.COM


* 임수민씨의 전시는 2016년 12월 31일까지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진행됩니다.


전시 : EXPERIMENT::HUMAN SERIES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5길 17 (팔판동 130-1) * 매장 앞 주차가능
전시기간 및 시간 : 2016년 7월 16일 - 12월 31일 (오후 12시 ~ 오후 8시)
온라인스토어 : WWW.SLOWSTEADYCLUB.COM 
인스타그램 : @SLOWSTEADY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