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단벌신사 (LONELY GENTLEMAN IN HIS ONLY SUIT) : 제14화 티엑스티 커피 (TXT COFFEE)
SLOWSTEADYCLUB2020. 12. 26. 18:26
고독한 단벌신사(Lonely Gentleman in His Only Suit)는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소개하는 SSC 연재물로써, 원덕현 디렉터가 직접 단벌 착장을 입고 평상시에 좋아하는 공간 혹은 가고 싶었던 공간을 직접 방문하여 그의 일상을 소소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카테고리와 지역, 인물 등 상관없이 골고루 소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열네 번째 고독한 단벌신사를 시작하겠습니다.
PROLOGUE
이번에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근처라고 하기엔 좀 더 깊숙하게 자리 잡은 원서동의 TXT COFFEE(티엑스티 커피)를 다녀왔습니다. 이곳이 개업할 당시부터 사무실이 근처라서 자주 갔던 그리고 가는 곳인데요, 사실 그동안 매번 얼굴을 비추지만 대화를 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서 제가 말을 거는 성격은 아니기에 몇 년간 계속 갔지만 어떤 말도 서로 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이런 콘텐츠를 진행함으로써 대화의 장을 연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야기하자면 이곳은 안국역 3호선에 인접한 편인데, 이곳까지 걸어온다면 수많은 카페를 지나쳐와야만 합니다. 개인적으로 커피를 좋아하다 보니, 드립 커피를 하루에 2잔 이상은 매일 마시고 어떤 국내외 낯선 도시를 가더라도 드립 커피가 맛있는 커피숍을 찾아 굳이 그곳까지 걸어가 커피 한 잔을 하곤 합니다. 아무래도 카페인을 섭취해야 하는 하루의 양은 한정되어 있는 만큼 그 커피 2잔은 하루의 작지 않은 삶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TXT COFFEE(티엑스티 커피) 이수환 대표와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고독한 단벌신사 (이하, 고단신) : 안녕하세요 대표님,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티엑스티 커피 이수환 대표 (이하, 이수환 대표) : 안녕하세요. 종로구 원서동에서 티엑스티 커피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 이수환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커피, 제가 잘 할 수 있는 커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단신 : 카페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수환 대표 : 취미생활이 홈 바리스타였어요. 집에서 커피 내려 마시는 사람치곤 하드코어 하게 장비도 많이 들였고요. 원래 아마추어들이 장비를 좀 그럴듯하게 갖추지 않습니까. (웃음) 그러다 30대 초반에 지금이 아니면 직업을 바꿀 기회가 앞으로는 더 없겠다 싶어서 카페 업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고단신 : 카페를 운영한지 얼마나 되셨나요?
이수환 대표 : 다른 카페에서 3년 정도 근무하다가 티엑스티를 오픈한지는 3년 정도 되었네요.
고단신 : 카페를 운영하시기 전엔 어떤 일을 하셨는지?
이수환 대표 : 재즈 보컬리스트였습니다. 공연도 하고, 주로 입시생 레슨을 위주로 했어요. 스케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죠. (웃음)
고단신 : 티엑스티 커피(.txt coffee)의 이름이 독특한데요. 티엑스티라는 이름을 짓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수환 대표 : 보시면 아시겠지만 컴퓨터 텍스트 파일 확장자(.txt)에서 따왔습니다. 티엑스티는 메뉴지에 손님이 직접 메뉴를 선택하는 방법을 통해 주문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메뉴지 종이 한 장에 손님의 취향을 기록하면 하나의 텍스트 파일이 되는 거죠. 저희 메뉴지를 보시면 상호가 우측 끝으로 쏠려 있어요. 컴퓨터에 파일을 저장하려면 확장자 앞에 제목이 필요하잖아요. 상호 앞에 닉네임이나 성함을 적어주시면 그 자체로 손님 각자의 취향이 담긴 하나의 텍스트 파일이 되는 거죠.
저는 그렇게 한 분 한 분의 취향이 담긴 커피에 집중하기 위해서 원두는 늘 한 잔 분량씩 소분해놓고 추출도 한 잔 분량씩만 추출하고 있습니다.
고단신 : 카페 티엑스티? 티엑스티 커피? 텍스트? 정확한 상호는 무엇인가요?
이수환 대표 :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겠다’라고 예상은 했어요. 공식적인 사업자 등록은 티엑스티로 되어있는데 부르는 건 티엑스티, 텍스트 편하신 대로 불러도 괜찮습니다.
Saint Germain des Prés Café 10(출처 : Wikipedia)
고단신 : 티엑스티는 항상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재즈 음악과 커피는 연관성이 깊은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앨범 중에 파리 생제르맹 지역의 커피숍 연합이라고 해야 할까요? 카페에서의 라이브 공연을 녹음한 컴필레이션 앨범이 있거든요. 파리 로컬 싱어들이 부르는 앨범인데 이곳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커피랑 재즈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공연도 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이수환 대표 : 그렇지 않아도 티엑스티를 오픈할 시기에 주변에 음악 하는 지인들과 함께 오픈 축하 공연이나 정기 공연을 해보자는 이야기는 했는데, 현실적으로 주변이 가정집이고 차도 은근히 많이 다녀서 무산된 기억이 나네요.
고단신 :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뽑는다면? 내 인생에서 마지막 이 한 곡만 들을 수 있다면?
BILL EVANS - Waltz for Debby, The Complete Village Vanguard Recordings, 1961
이수환 대표 : 글쎄요. 사실 아주 좋아하는 곡이 하나만 있진 않아서 모르겠어요. 지금 불현듯 떠오른 앨범은 빌 에반스 트리오 라이브 앨범! 빌 에반스 트리오가 재즈클럽에서 녹음한 앨범인데, 첫 연주 때 손님이 적어 급하게 지인들을 초대했다는 비하인드스토리가 있어요. 그게 명반이 됐죠.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1961)’라는 앨범과 ‘Waltz for Debby(1987)’라는 앨범입니다. 두 앨범 모두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녹음한 곡들을 추려 발표한 앨범이에요.
고단신 : 재즈 보컬리스트를 선택했던 이유가 있나요?
이수환 대표 : 정확한 장르는 블루스에요. 블루스를 좋아했어요. 블루스 밴드로 활동을 많이 했고요. 처음부터 재즈를 해야지는 아니었고요.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전문 음악 기관에서 음악을 취미처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하게 되었는데,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웃음) 원래 전공은 국어국문학입니다. 손님들이 가끔 국어 선생님의 이미지가 있다고 말씀해 주세요.
이수환 대표 : 맞아요. 원래는 브루잉 커피만 하고 싶었는데, 우유가 들어간 음료를 찾으시는 분들도 많아 에스프레소 메뉴도 추가했어요. 티엑스티의 공간 속 모든 소품이나 디자인, 인테리어엔 제 취향이 담겨있어요. 메뉴도 마찬가지로 제가 좋아하는 커피, 잘 할 수 있는 커피만 선택을 하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요. 제가 좋아하는 커피가 브루잉 커피이고 그중에서도 블렌딩하지 않은 싱글 오리진 원두를 찾아 마시는 걸 좋아해서 손님들에게 제 취향이 담긴 커피를 제공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간혹 시럽이나 파우더가 들어간 달달한 커피를 찾으시는 분들도 계시긴 한데, 저희 매장이 워낙 교통이 좋지 않다 보니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오픈한지도 3년이 좀 넘어서 ‘그 집은 커피만 하는 집’이라고 요즘은 다들 알고 오시는 편인 것 같아요.
고단신 : 원서동 골목 끝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나요?
이수환 대표 : 이 골목은 아주 예전부터 제가 자주 산책 다니던 좋아하는 골목이었어요. 매장을 준비하던 시기에 이런 고즈넉한 공간에 조그맣게 하고 싶단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좋아하던 동네에 자리가 생겨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멀리까지 오시는 대신 좋은 원두를 잘 로스팅하고, 정성스레 추출해서 제대로 대접해야겠단 생각이 커요. 사실 저희 커피는 다른 카페에 비해 가격대가 있어요. 흔하게 만나볼 수 없는 레어한 생두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가격대가 있는 생두들을 쓰다 보니 일반적인 커피 가격과의 간극이 있긴 한 것 같아요. 늘 좋은 재료를 선정해 시장 가격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한두 명은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고단신 : 저는 오히려 좋은 맛에 합리적인 가격이란 생각이 들어요. 원두도 신선하다고 느낀 게 시간이 지나도 향이 유지되는 것 같더라고요. 평소에 열심히 내려 먹고 있습니다. (웃음) 그리고 커피 맛이 항상 일정한 편이에요. 대표님이 로스팅부터 추출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하기 때문에 가능한 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1인 시스템은 성장을 위해서는 한계가 있다고도 생각하는데 어떠세요?
이수환 대표 : 균일하고 일정한 품질의 커피를 내어드리는 건 정말 제가 혼자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직원을 고용했을 때 지시를 하게 되는 것들, 일례로 맘에 맞지 않으면 이해를 못 할만한, 번거로운 일들이요. 보통의 다른 카페에서 하지 않는 일들이 많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혼자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어서 유지가 되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엔 그런 번거로운 것들을 몇 번 더 하느냐에 따라 품질, 수준에 따른 디테일 차이가 나지 않나 싶어요.
고단신 : 제 생각엔 안정적인 맛을 내는 커피가 가장 맛있는 커피라고 느껴져요. 티엑스티가 저희 사무실 근처라 다행이에요. (웃음) 그렇다면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장을 확장하진 않을 생각이신가요?
이수환 대표 : 네. 매장은 건물주님이 허락해 주시는 한. (웃음) 이곳에서 유지하고 싶어요. 대신 로스팅, 원두 납품 쪽으로 사업을 확장해보고 싶어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 로스팅 팩토리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백지화된 상태에요. 올 초부터 공장부지 보러 다니고 있었거든요. 코로나가 심각해지고 나서는 원두 납품처들이 없어지거나 주문량이 1/5, 많게는 1/10씩 줄어든 상황이라서요. 로스팅 팩토리의 경우 코로나 진행 상황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2-3년은 더 지나야 착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고단신 : 커피 1잔의 정량은 어느 정도인가요? 대표님이 고집하는 황금비율이 있나요?
이수환 대표 : 커피 하시는 분들 똑같이 말씀하시겠지만 상황에 따라 너무 달라서 매장마다 비율은 다 다르긴 해요. 저희는 원두 1에 물 16.5 비율로 하고 있습니다. 로스팅 정도가 강하지 않아서 커피 성분을 잘 추출하려면 물을 많이 쓰는 게 좋거든요. 저희가 지향하는 커피도 차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커피라서 물을 좀 많이 쓰고 있어요.
고단신 : 확실히 원두가 좋아서 오히려 물을 많이 넣는 게 복합적인 맛을 더 느껴지게 하는 것 같아요.
이수환 대표 : 정확해요. 예전에는 생두 자체의 질이 좋지 않아서 로스팅도 강하게 해야 하고, 물을 많이 쓰고 오랫동안 추출하면 안 좋은 맛이 올라왔는데, 요즘은 로스팅을 약하게 해도 풋내, 잡내도 안 나고요. 오래 추출하고 물을 많이 써도 부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아요. 라이트한 로스팅이 유행을 하는 것도 생두의 질이 올라가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단신 : 주문 시스템이 독특해요. 티엑스티를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수환 대표 : 저희 매장은 지하철역에서 10분에서 15분 정도 걸어오셔야 해요. 날씨가 좋은 날은 매장까지 걸어 들어오는 길이 특히 더 좋은데, 저는 그때부터가 저희 매장을 이용하는 사용자의 경험이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걸어들어오는 길 예쁜 풍경 보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오셨는데 뭔가 조금 더 특별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드리고 싶어서 주문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고요. 일반적으로 포스를 두고 면대 면으로 주문을 받게 되면 1인 시스템 상 현실적으로 제가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손님이 직접 메뉴를 적어 제출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혼자 운영하면서 주문도 받고 응대도 하고 커피 추출도 하고 결제도 하는 시스템인 거죠.
고단신 : 주문 시 볼펜이 아닌 연필을 사용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이수환 대표 : 동네 자체도 서울 한복판인데 아날로그적이잖아요. 인테리어, 익스테리어, 동네 분위기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인테리어도 금속 재질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어요. 나무와 유리로만 되어있거든요. 실리콘도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고요. 같은 취지로 볼펜보다는 연필을 선택했습니다. 연필은 제가 악보를 쓸 때 오랫동안 사용하던 브랜드의 같은 모델이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연필인데 마침 저희 매장 색과 같더라고요. ‘그래 이거다!’ 하고 얼른 선택했습니다. 상호나 캐치프레이즈를 각인해서 직접 제작해 별도로 판매도 하고 있고요.
고단신 : 진녹색을 메인 컬러로 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수환 대표 : 매장 인테리어 기획할 때 디자인 스튜디오에 요청드린 게 원래부터 여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익스테리어, 인테리어를 요청드렸어요. 고즈넉한 이 동네에 언밸런스하게 세련된 매장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낡아가는 맛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요. 창덕궁의 단청색, 소나무 잎의 녹색, 나뭇가지의 갈색 등 주변 풍경의 컬러들에 영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단신 : 1인 카페에 항상 차분하고 조용한 공간이 인상적인데 인테리어 시공 시에 의도했던 부분들인가요?
이수환 대표 : 전체적인 외관이나 소품, 커피, 응대 방식 등 모두 통일된 언어로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중요했죠. 선곡부터 연필, 티포트, 드리퍼, 서버 하나하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고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오롯이 제 취향으로만 채워진 공간이고, 거기에 손님이 오시면 손님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드시는 공간이 되길 바라요. 매장을 오픈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두 가지 중 하나는 취향이었어요. 두 번째는 선택과 집중. 메뉴 선택도 제가 할 수 있는 것, 제가 잘 하는 것, 제가 잘 아는 것만 선택해서 집중하고 있고요. 손님들이 오셨을 때도 음료 메뉴가 많아 혼란스러운 것보다는 ‘여기 블랙커피는 다섯 개야. 우유 들어간 건 두 개 있어. 그중에 골라. 그럼 내가 최대한 집중해서 다른 거 신경 쓰지 않고 만들어줄게.’ 하는 의미로요.
고단신 : 비 오는 날 오게 되면 우산이나 벽에 걸려있는 가방 같은 걸 봤을 때 하나의 인테리어 요소로서 잘 묻어난다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 부분도 의도하신 걸까요?
이수환 대표 : 가방은 원래 옛날부터 매고 다니던 가방이고요. 공간 자체가 제 취향으로 채워져 있으니까 제가 오랫동안 써온 가방하고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우산은 원래 검은색이었는데 단골손님이 매장 색과 같은 우산이 있다고 바꾸자고 하셔서 바꿨습니다. (웃음)
고단신 : 원두가 바뀔 때마다 메뉴지를 바꾸거나 해야하는데 번거롭진 않으세요?
이수환 대표 : 지금은 레이아웃이 있어서 글자만 바꾸면 되니까 귀찮지는 않아요. 가끔 한 번씩 바꾸고 싶단 생각은 합니다만 제가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아서 섣불리 손대기 힘든 부분이거든요. 변화를 줘도 이전에 있던 것 안에서 변화를 주지, 크게 변화를 주진 못해요. 브랜딩 잘 된 곳들 다니다 보면 ‘이래서 디자이너를 고용하는구나’ 하고 생각해요. 그게 아쉬운 부분이라고 하면 아쉬운 부분인 것 같네요.
그런 부분 외적으로 종이가 버려지는 것이 요즘 가장 큰 고민입니다. 티엑스티는 현재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되어 있어서 일회용 컵밖에 사용을 못 하는데요. 나름 환경을 생각한다고 플라스틱 컵 사용을 지양하고 있습니다. 아이스 음료도 종이컵에 드리고, 빨대와 뚜껑도 원하시는 분만 드리거든요. 택배를 발송해도 종이테이프, 종이 완충제만 쓰고 있는데, 이 메뉴지가 버려지는 게 요즘 가장 큰 고민이에요. 인쇄 업체에는 최소 주문 수량이 있고, 특히 영문 버전은 거의 사용이 되질 않아서. 쓸데없이 버려지지 않는 다양한 방법을 고려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단신 : 티엑스티를 운영하며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수환 대표 : 원두의 향미 밸런스를 맞추려고 신경을 쓰지만 가장 신경쓰는 건 메뉴지 제일 위에 있는 품목과 제일 아래에 있는 품목입니다. 제일 아래에 있는 품목은 레어한 커피들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국내에서 만나기 힘든 커피들요. 지금 드시는 것도 경매로 낙찰한 커피에요. 그전엔 예멘 커피도 있었는데, 소규모 농장에서 농부 혼자 수확을 한 커피라 총 생산량이 25kg밖에 안됐거든요. 전량 저희가 수입해서 소개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 식으로 전 세계 통틀어 티엑스티 아니면 맛보기 힘든 커피를 소개하려고 하고 있고요. 반대로 제일 위에 있는 품목은 대중적인 메뉴라 제가 하고 싶은 커피와 대중들의 기호성 그 사이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하거든요. 제일 위에 있는 품목을 선택하는 게 사실 가장 어려워요. 전 밝고 가볍고 차처럼 마시기 좋은 커피를 선호하는데, 대중은 묵직하고 다크 한 쪽을 선호해서 그 사이 접점을 찾는 게 가장 힘들어요.
고단신 : 티엑스티를 혼자 운영하며 힘든 점이 있다면요?
이수환 대표 : 실제로 제가 쉴 수 있는 휴무일은 하루에요. 티엑스티는 일요일과 월요일이 휴무인데 월요일은 로스팅 하는 날이거든요. 일요일 단 하루만 쉬다 보니 일단 몸이 힘들어요. 실제로 병원 가느라 자주 문을 닫아요. 최근엔 허리 디스크 문제로 병원 다니고 있어요. 무릎에 물도 차고요. (웃음) 커피 자체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 즐겁게 하고 있는데 체력이 문제네요. 아픈 데가 너무 많아요. 어깨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웃음)
고단신 : 인스타그램 휴무 공지 올리실 때 포토샵 해서 올리시잖아요. 그 와중에?
이수환 대표 : 네.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병원 가기 전에 급하게 작업해 올립니다. (웃음)
고단신 : 티엑스티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이수환 대표 : 그때보다 더 좋은 모습,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저는 무던히 노력하고 있으니 그 노력을 알아달라기보다는 ‘티엑스티는 언제 와도 괜찮아.’ 정도? ‘거기 대단해, 끝내줘’보다는 ‘나쁘지 않아. 믿고 마실 수 있어. 언제 가도 실패하지 않아.’ 이 정도였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만큼 뒤에서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요.
매장을 운영하는 일은 무대에 오르는 일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관객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의 제 상황은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아픈지, 여자친구랑 싸웠는지, 술을 많이 마셨는지,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팀 멤버들과 사이가 좋은지 등등 아무것도 몰라요.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도 안되고요. 카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뒤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생두를 얼마나 고민해서 고르고, 로스팅을 얼마나 하고 추출 어떻게 신경 써서 하고 정수 필터는 뭘 쓰고 전혀 알 필요 없이 공간이랑 분위기, 커피에만 만족하시면 되는 거니까요. 그런 취지에서 ‘티엑스티 가면 괜찮아.’ 정도만 됐으면 좋겠어요. 100점은 아니어도 85점 정도. ‘그래 이 정도면 됐어.’ 하는 정도요. (웃음)
고단신 : 앞으로 카페 티엑스티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이수환 대표 : 일단 사업 확장보다는 지금 해왔던 것을 유지하며 좋은 커피를 선택하고 집중해서 손님들에게 내어드리고 싶고요. 아까 말씀드렸던 로스팅 사업 쪽으로 확장을 해보고 싶기는 해요. 시장 상황이 현재는 좋지 않아서 여러 가지 고민이 많고요. 현재 국내에 10군데 내외로 납품을 하고 있기는 해요. 저희가 에스프레소 블렌딩 원두는 하지 않아서 필터 커피용으로만 납품을 하고 있는데, 브루잉 커피의 저변을 넓혀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티엑스티의 싱글 오리진 원두를 믿고 구매해 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고단신 : 마지막으로 대표님 본인만의 꿈이 있다면?
이수환 대표 : 잘 먹고 잘 사는 것? 한량으로 돌아가는 것? (웃음)
고단신 : 인터뷰를 마치며 정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수환 대표 : 아까 꿈 얘기하며 한량 얘기를 잠깐 했는데 제가 끈기가 많이 없어요. 의지도 약하고요. 매장을 고를 때 이 지역을 고른 이유 중 하나도 주변 풍경이 삭막하지 않으니 손님이 안 와도 딴 생각 안 하고 집중할 수 있겠다, 멍 때리고 책이나 읽으면서 2-3년 버티면 알아주겠지 했어요. 실제로 처음 오픈했을 당시엔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세금 같은 경비도 2년 치를 준비하고 오픈했거든요. 다행인 건 다들 어떻게들 알고 가오픈 때부터 예상보다 많이들 찾아와주셔서 덕분에 지금까지 좋아하는 일 잘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나 요즘 코로나 때문에 다들 힘들어하시는데, 버티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꾸준히 찾아주셔서 덕분에 좋아하는 일 스트레스 안 받고 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PILOGUE
자신의 취미가 직업이 되는 순간, 취미와 삶이 일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행복한 일이지만 어쩌면 직업이 되는 순간 취미가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아마 이 부분이 취미가 직업이 되고 시간이 지났을 때 느끼는 어려움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세계는 생각하지 못했던 차이들이 생각보다 더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마추어일 때부터 가지고 있던 그 '순수한 사랑과 명확한 목표의식'이 프로의 세계에서도 지속된다면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은 어떻게든 극복하고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서든 무엇을 하든 순수하게 목표의식을 가지고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고독한 단벌신사는 콘텐츠 촬영을 빌미로 음식 혹은 제품의 무료 제공을 원하거나 금전적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느낀 점을 좀 더 자유롭게 쓰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저희는 홍보 파급력이 기대 이하이거나 없습니다. 귀찮게 찾아가서 요청하였으나 좋게 생각해주시고 승낙해주신 모든 업체분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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