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TARLIST : RANDY RHOADES

SECTION : FEATURES   2016. 5. 27. 18:45


헤비메탈의 대부격인 밴드로 잘 알려진 블랙사바스의 보컬인 오지 오스본이 밴드를 탈퇴한 뒤, 솔로 활동을 시작하기 위하여 밴드 멤버 모집을 하게 됩니다. 기타리스트 멤버 모집을 위한 오디션을 보고 있던 중, 헤비메탈과는 어울리지 않는 160CM 정도의 단신에 어렸을 적 앓았던 소아마비의 영향으로 다리까지 절며 여성적인 체구를 가진 사내가 나타나는데, 그의 외모에도 매력을 느꼈지만 연주를 들은 뒤에 오지 오스본은 고민의 여지도 없이 랜디로즈를 기타리스트로 채용하게 됩니다.



단 두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3년 이라는 활동 기간 동안만 이력으로 남긴 채 27살 이라는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여 전설로 남은 뮤지션인 그는 다임백 데럴, 폴 길버트, 잭 와일드, 버킷헤드 등의 기타리스트들 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또한 오지오스본의 대표 곡인 MR.CROWLEY, CRAZY TRAIN, I DON'T KNOW, OVER THE MOUNTAIN, FLYING HIGH AGAIN 등의 모든 곡들은 랜디 로즈가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기간에 발표된 정규 앨범의 곡들 입니다. 당시 오지 오스본의 드러머 였던 토미 앨드릿지는 '그는 드럼라인에 대한 아이디어 제시하면서 까지 작업을 했었으며 자신이 같이 작업해 본 뮤지션들 중 가장 특별했다'라고 극찬한 바도 있습니다.



이렇듯 당시 모든이들에게 추앙받던 실력을 가진 기타리스트 였지만, 투어중에도 리허설이 끝난 뒤에 그 지역의 전화번호부를 뒤져가며 클래식 기타리스트를 찾아가 레슨을 받았을 정도로 그는 출중한 노력파 였습니다. 그리고 오지 오스본의 데뷔 앨범인 [BLIZZARD OF OZ]의 4번째 트랙인 'DEE'는 랜디로즈가 어머니에게 바치는 어쿠스틱 기타솔로 형식의 헌정곡 인데, 노력하는 자세와 효심 등 여러 미덕들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가 사망 했을때 '신이 천사를 데려갔다' 라고 표현 하기도 했다네요.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연주 실력, 짧은 활동기간, 요절 등의 드라마틱한 요소를 모두 갖춘 그의 연주를 이제는 두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그를 추모하며 만든 라이브 앨범 한장과 유투브에 남아 있는 몇개의 동영상으로만 들을 수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뮤지션들의 사망 소식은 늘 슬프고 안타깝지만 그들의 연주와 음악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들이 육신과 함께 이 세상에 남기고 간 음악들이 있었기에 지금 세대에도 훌륭한 뮤지션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것이 아닐까요?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저의 숨이 멎는 순간에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는 영감이 되고 싶습니다. 죽음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 하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일 매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원동력 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오늘도 '나는 내일 죽을것이다' 라고 머릿속으로 되뇌이며 하루에 최선을 다할 것 입니다. 


 1981년 오지 오스본의 데뷔 앨범의 수록곡인 MR.CROWLEY 라이브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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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세영

EVENT : 바다의 날 21주년 기념

SECTION : FEATURES   2016. 5. 26. 23:06



매해 5월 31일은 '바다의 날'입니다. 올해로 21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바다의 날'은 통일신라 때 해군 총사령관을 맡고 있는 장보고(張保皐)가 청해진(淸海鎭)을 구축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청해진(淸海鎭)은 신라의 장보고(張保皐)가 지금의 전라남도 완도에 설치한 해군,무역 기지입니다. 그것이 설립되게 된 배경은 당시, 신라사회의 혼란과 모순 그리고 골품제도 하에서는 신분상승의 한계를 느낀 낮은 신분의 어린시절의 장보고는 자신의 꿈을 쫓기위해서 일찍이 당(唐)나라로 향합니다. 당(唐)나라으로 건너간 그는 서주(徐州)의 무령군(武寧軍)이라는 군대에 들어가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워 30세(819년)에 병사 약 1,000여 명을 거느리는 무령군소장(武寧軍小將)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신라에서 잡혀와 당(唐)나라의 노비가 된 동포들의 모습을 보고 분개하여, 자신의 꿈이였던 벼슬을 버리고 신라로 돌아와 중국 해적들의 인신매매 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해서 청해(淸海)에 군영(軍營)을 설치할 것을 흥덕왕에게 요청하였습니다. 다행히도 그것이 받아들여져, 대사(大使)로 임명된 장보고(張保皐)는 10,000 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청해진(淸海鎭)을 만들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곳을 거점으로 중국의 해적을 소탕하고, 중국과 일본사이의 무역의 패권까지 잡게됨으로써, 청해진(淸海鎭)은 군사 및 무역시설로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바다의 날'은 바다 관련 산업의 중요성과 의의를 높이고 국민의 해양사상을 고취하며, 관계 종사원들의 노고를 위로할 목적으로 제정한 날이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바다의 날'을 저희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어떻게 소개할까 많은 고민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래서, 몇가지 재미있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심볼의 모티브가 된 바다의 파도



신라 22대 지증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경주의 천마총의 천마도(天馬圖)




먼저,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다의 날' 심볼을 디자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넘실대는 파도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습니다. 파도를 신라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서 붓의 농담(濃淡)을 사용하며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고전적인 느낌의 표현을 원치 않아 현대적이고 미니멀하게 디자인하였습니다. 그 의도가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판매하고 있는 브랜드 중 바다와 연관성이 있는 나나미카(NANAMICA), 네이더스(NEITHERS), 마일럿(MAILLOT)을 이벤트 기간인 8일간 할인 판매할 예정입니다. 또한, '바다의 날' 행사 기간 동안 구매 시 원덕현 디렉터가 디자인 한 '심볼 스티커'를 함께 드릴 예정이며, 샵과 카페에서는 김세영 매니져가 선곡한 '바다의 날' 기념 음악 리스트가 재생될 예정입니다.






이 '바다의 날' 이벤트를 기획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는 기념일 또한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앞으로, 저희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공휴일이 아닌 기념일에 대한 또 다른 이벤트들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DETAILED INFORMATION 

이벤트 : 바다의 날 (MARINE DAY)


기간 : 2016년 5월 30일(월) ~ 6월 6일(월) *온,오프라인


행사 : 1. '바다의 날' 기간 상품 구매, 카페 이용 시 '심볼 스티커' 제공

         2. '바다'를 모티브로 한 패션브랜드 최대 50% 할인판매 

              나나미카(NANAMICA), 네이더스(NEITHERS), 마일럿(MAILLOT)  *자세한 사항 하단 참고

         3. '바다의 날' 뮤직리스트 공개 및 기간 내 슬로우스테디클럽에서 음악 재생


세일 : 나나미카(NANAMICA) : 16년 봄/여름 컬렉션 전 품목 30% 할인

         네이더스(NEITHERS) : 30% 할인 *108 포켓 티셔츠 제외 
         마일럿(MAILLOT) : 15년 컬렉션 전 품목 50% 할인

                                       16년 봄/여름 컬렉션 10~30% 할인



참고 : 두산백과
링크 : 바다의 날 (MARINE DAY) 이벤트 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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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원덕현



이 단편영화 '완벽한 도미 요리(The Perfect Fishplate)는 추격자, 황해를 이어 곡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나홍진 감독의 2005년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의 연출 의도는 '재능 없는 장인의 무한한 열정이 완벽을 향해 도전 그것은 곧 절대악몽'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저는 연출 의도가 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해석하였습니다. '절대악몽이라는 것은 재능이 없는 장인이 열정을 가지고 완벽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것은 불가능한 것 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을 추구하다가 오히려 요리의 본질을 망각해버린 건 아닐까?


어떤 이들은 자기 자신의 결과물에 '완벽한(Perfect)'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완벽'이라는 것을 감히 누가 표현할 수 있을까요? 완벽을 평가할 수 있는 매뉴얼 또한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누군가가 만들어낸 매뉴얼이 완벽할 수 없기때문에, 그것으로 이미 '완벽함'을 평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완벽'이라는 것이 정해진 틀의 완성이라면, 그것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일 텐데요. 그렇다면 완벽한 것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일까요? 


저는 저를 비롯해서 주변을 둘러싼 것들 중에 완벽하다고 느끼는 것이 다행히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들에 부족함이나 아쉬움들이 인간적인 만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결과물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완벽'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이전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고쳐나가는 것을 '개선'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이 결국 '완벽'이 될 거라는 생각은 감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중요한 것은 '본질'을 잊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요리사 본연의 역할은 허기진 손님을 위해서 제때 자신의 정성과 기술이 결합한 요리를 완성해서 선보이는 것이죠. 그 허기짐의 시간이 길어지고 손님이 그 요리를 먹을 수 없다면, 설령, 그 요리가 만든 이의 기준에서 '완벽'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그것은 완벽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멋진 태도입니다. 그런데,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주어진 현재 상황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서 제때에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물로부터 다시 문제점을 찾고 또 해결 가는 것을 지속적으로 했을 때, 비로소 '완벽'이라는 알 수 없는 것에 한 단계씩 다가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DETAILED INFORMATION 

제목 : 완벽한 도미 요리 (The Perfect Fishplate)
출시 : 2015

감독 : 나홍진
제작 : 구태진 
촬영 : 이성제 
편집 : 전유진 
녹음, 음악 : 강민수
미술 : 유지예


배우 : 배용근, 이재수, 이수영


WRITTEN BY 원덕현




"나의 그림의 의미는 다각적으로 모든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고, 혹은 의미 부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양 극 사이에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색 면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는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라트비아 출신입니다. 하지만 1913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결국 미국인 화가로써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45년이란 시간 동안 미술 분야에 있었는데, 리얼리즘(1924~1940), 초현실주의(1940~1946), 과도기(1946~1949), 고전주의(1949~1970) 넷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그만의 복잡한 심플함을 완성했던 걸까요? 


리얼리즘 시기였던 초창기의 마크 로스코(Mark Rothko)는 누드, 자화상, 인물이 있는 내부 정경, 도시와 자연경관 등을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1920년대 후반 작품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1933-1934년 작품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1940년 작품




추상화가를 보면 어떠한 사람들은 기초 그림 실력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꽉 채운 결과물이어야 공들 더 들인 것이고, 모던하거나 심플하면 시간을 덜 썼거나 혹은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죠. 하지만, 저의 생각은 무언가를 더해 그림을 꽉 차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비우는 것보다 더 쉽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떠한 결과물을 만드는 행위는 모두 어려운 일이고 가치 있지만 말이죠. 허나, 무엇을 덜어내면서 완성도를 높이느냐의 고민이 사실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1945년 작품



마크 로스코(Mark Rothko)는 초현실주의의 그림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의 스타일의 완성에 좀 더 다가가는 것 처럼 보입니다. 자세히 보면, 리얼리즘때부터도 추상화적인 요소가 느껴지는데, 이것은 스스로를 발견하는 시간과 과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저는 미술학을 배우고 공부한 사람이 아니기때문에, 지극히 그림만을 보고 느낀 사견에 불과합니다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깨닫는 것은 내 스스로를 점점 알아가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자신이 완성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표현 속의 복잡한 그의 심정이 느껴지시나요? 근래에 보면, 심플함은 단순함이라고만 통틀어 지칭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심플함이라는 커다란 부류 속에서도 깊이의 차이가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DETAILED INFORMATION 

이름 : 마크 로스코(Mark Rothko)

국적 : 미국 (USA)

삶 : 1903년 9월 25일 ~ 1970년 2월 25일



WRITTEN BY 원덕현

燒身供養 (소신공양)

SECTION : FEATURES   2016. 5. 15. 18:20

이 글은 종교적인 글이 아닌 한 사람의 삶에 대한 글이오니 선입견 없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베트남을 통치하였던 응오 딘 지엠은 그 자신을 포함한 지주들이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국민의 대부분이 믿고 있던 불교를 탄압하고 가톨릭교를 옹호하게 됩니다. 남베트남 정부의 불교 탄압 정책과 미국을 등에 업은 독재 정치에 항의하는 의미로, 틱꽝득(釋廣德) 승려는 1963년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소신공양을 하게 됩니다. 

틱꽝득(釋廣德) 승려의 소신공양 현장을 기록한 사진은 베트남 국내는 물론 뉴욕타임즈를 포함한 각국의 언론에도 보도 되었고, 화염에 휩싸이며 틱꽝득(釋廣德) 승려의 온몸이 작열하는 극악의 고통이 느껴지는 순간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와 평온한 얼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이를 포착한 베트남전 종군기자 말콤 브라운은 이 사진으로 퓰리쳐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틱꽝득(釋廣德) 승려는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인해 타계하였지만, 그의 시신이 화장이 되는 중에도 심장은 멀쩡하게 남아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심장은 그대로 였듯이 그의 정신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 전 인류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인류는 과학을 통해 문명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오며 세상을 변화 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행동, 연설, 음악 등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진정한 발전과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바꾸는 것이어야 말로 혁신이고, 혁신은 우리 스스로의 생각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DETAILED INFORMATION 

이름 : 틱꽝득(釋廣德)
국적 : 베트남 공화국 (남베트남)
삶 : 1897년 ~ 1963년 6월 11일



WRITTEN BY 김세영

TYPOLOGY 1 : BERND AND HILLA BECHER

SECTION : FEATURES   2016. 5. 15. 16:31

ⓒ Praemium Erasmianum Foundation



이번에 소개해드릴 분들은 개념 예술가이자 포토그래퍼로 활동한 베른트 & 힐라 베허 부부(Bernd and Hilla Becher)입니다. 이 작가는 베허학파(Becher School)이라는 유형학적 사진(Typology)의 개념을 처음으로 확립시킨 사람들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유형학(類型學, Typology)은 분류학, 특히 고고학이나 고현학 등에 있고, 물질을 그 특징·특성에 따라 분류해, 분류 결과를 고찰하는 것 및 심리학이나 인간학의 입장에서는 똑같이 인간행동을 유형을 이용해, 그 개인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방법론입니다라고 되어있는데 이 문장만으로는 이해하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베른트 & 힐라 베허 부부(Bernd and Hilla Becher)는 모두 독일인으로 1958년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서 만나게 되었고, 1959년에 처음으로 협업을 하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됩니다. 그 이후, 삶의 방향까지 함께 하게 되면서 1961년에 결혼하게 됩니다. 그들은 모든 일과 삶을 함께 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재미난 부분은 촬영 등의 작품을 만드는 활동을 함께 하였지만 결과물이 1명의 작품으로 느껴질 만큼 흔들림 없이 일관성있게 완성되었다는 점입니다. 내부 사정은 정확히 잘 알 수 없지만, 팀으로써 흐트러지지 않고 끝까지 자신들의 표현하려는 작품을 꾸준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인정받고 최초의 유형학적 사진 개념을 확립했지만, 처음부터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베허 부부는 사라질 운명에 처한 오래된 공장과 산업 건축물들을 사진으로 기록했고, 1970년에 첫번째 사진집 <익명의 조각: 기술적 구조의 유형학(Anonymous Sculptures: A Typology of Technical Construction)>을 발간합니다. 그들은 이 작품집을 통해서 독일 유형학의 특징인 엄격성과 획일성, 규칙성, 통일성, 정형성을 통해 빠르게 사라져가는 산업적 유형들과 공업 발전이 낳은 파괴와 붕괴를 건조하게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나, 베허부부의 사진들은 작품이라기보다 계산적인 구조의 사진일뿐, 예술적 가치는 없다고 느낀 미술계에서는 외면받았는데요. 독일을 비롯해 유럽에서 인정받지 못한 그들은 오히려 미국작가인 솔 르윗(Sol LeWitt)과 칼 안드레(Carl Andre)에게 깊은 인상을 줍니다,



솔 르윗(Sol LeWitt)의 작품


칼 안드레(Carl Andre)의 작품


특히, 베른트 & 힐라 베허 부부 (Bernd and Hilla Becher)와 칼 안드레(Carl Andre)는 협업작을 만듭니다. 그런데, 사진이나 구조물이 아닌, 개념미술에 대한 생각을 함께 정리한 글을 그 결과물로 함께 내놓았습니다. 이후, 베허부부는 뉴욕 미술시장에서도 인연이 생기게 되어 주목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신의 주위에서 공감 받거나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좀 더 크게 봤을 때 어딘가에는 그것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격려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자신이 속해있는 환경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색깔을 가지기 보다 상황이나 시기에 따라 변하려고 혹은 그래야만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이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든든한 격려가 될 수 있고 말이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남편인 베른트 베허(Bernd Becher)는 교육자로써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76년에는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 교수로 초청된 그는 독일의 미술 대학에서는 최초의 사진 강좌를 개설했습니다. 사진학이 최초에 생긴것이 76년도라는 것도 놀랍지만, 사진학을 예술로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뒤셀도르프 회화 학파에 맞서 사진의 영역을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했다고합니다. 그런 쉽지 않은 현실적인 상황에서도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한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 토마스 슈트 루트(Thomas Struth) 등의 베허학파 (Becher School)의 1세대로 불리는 제자들을 지도했습니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의 작품



토마스 슈트 루트(Thomas Struth)의 작품



이러한 베허 부부의 삶을 통한 제가 느낀 교훈은 팀으로써 보여준 통일감 있는 결과물 과 흐트러지지 않는 방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교육자로써 제자를 양성함으로써 다양한 형태로 유형학(Typology)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뿌리는 변함없지만 좀 더 다양한 열매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TYPOLOGY 1편에 이어 TYPOLOGY 2편에서는 모두 인정해주지 않을때 베른트 & 힐라 베허 부부(Bernd and Hilla Becher)의 작품의 가치를 인정해준 솔 르윗(Sol LeWitt)과 칼 안드레(Carl Andre)의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글의 객관적인 사실은 위키피디아 및 두산백과사전을 참고하였습니다.






















DETAILED INFORMATION 

이름 : 베른트 & 힐라 베허 부부 (BERND & HILLA BECHER)
국적 : 독일 (GERMANY)
삶 : 1931년 8월 20일 - 2007년 6월 22일






WRITTEN BY 원덕현

JEFF WALL : PHOTOGRAPHS 1978–2004

SECTION : FEATURES   2016. 5. 8. 14:21
Jeff Wall _ The Destroyed Room (1978) _ Cinematographic photograph _ © The artist



'현대 생활의 화가'이라고 불리는 제프 월(Jeff Wall)은 1946년생으로 캐나다 밴쿠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도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 사진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을 연출하는 것 중에 재미있는 부분은 옥외광고에서 사용되는 라이트박스에 그의 사진을 인쇄하여 보여줍니다. 단순히 액자에 사진을 전시하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과 생동감 그리고 몰입감을 더해줍니다. 그가 전시로써 이 표현방식을 채택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가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현실과 비현실, 상과 하, 중심과 주변을 구별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사용하였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기존에 가지고 고정관념들을 허물려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서 또 중요한 포인트는 누구에게나 익숙할 수 있었던 것이었지만,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익숙하지만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The artist


© The artist


© The artist



특히, 그의 사진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 혹은 이색적인 부분은 그들의 작품은 사실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장면의 영화처럼 철저하게 연출된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사진을 연출된 것을 찍는 화보 같은 것이 보편적이지만, 그가 초창기에 활동한 당시에만 하더라도 사진기는 기록하는 기계에 불과했지만, 그는 처음으로 연출된 장면을 현실처럼 연출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장소를 먼저 섭외하고 배우들을 섭외하여 연출하여 마치 사실을 포착한 것처럼 결과물을 이끌어냅니다.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이 사진들이 연출되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자연스러운 장면을 연출합니다. 이러한 시도 역시 기존에 가지고 있는 관념을 허물려는 행동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기법의 연출로 완성한 사진들을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ic Photograph)로 분류하는데 그의 작품들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예술이 갖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우연함이 아름다움으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연의 사건이 제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제 작업물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진부한 의견은 ‘모든 것이 특정한 방식으로 계획되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진실은 오직 어떤 특정 요소만 계획하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든지 계획할 수 없는 우연의 요소는 어쩔 수 없이 들어오기 때문이죠. 예술작업의 생애란 바로 우연의 연속입니다."



A Sudden Gust of Wind (1993) | Photographic transparency | © The artist


Katsushika Hokusai | Ejiri in Suruga




Picture for Women (1979) | Cinematographic photograph | © The artist


Edouard Manet | Folies Bergère




게다가, 그는 고전의 미술작품을 오마주 하여 사진으로써 다시 한번 연출하기도 합니다. 그런 그의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하는 작품은 A Sudden Gust of Wind (1993)와 Picture for Women (1979)입니다. 작품 A Sudden Gust of Wind은 일본에도 시대의 우키요에 화가인 가츠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의 Ejiri in Suruga의 작품을 디지털 사진으로 표현하는데, 이 작품은 단 한 장의 사진이 아닌 100여 장의 촬영한 사진들을 합성하여 만든 작품으로 이 작품을 위해서 1년이란 시간을 소비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보다 10여 년 전에 먼저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Folies Bergère에 대한 오마주를 하기도 합니다.




Jeff Wall Milk (1984) | Cinematographic photograph | © The artist




The Crooked Path (1991) | Cinematographic photograph | © The artist



The Storyteller (1986) | Cinematographic photograph | © The artist






A ventriloquist at a birthday party in October 1947 (1990) | Cinematographic photograph | © The artist



Odradek, Táboritská 8, Prague, 18 July 1994 (1994) | Cinematographic photograph | © The artist






After 'Invisible Man' by Ralph Ellison, the Prologue (1999–2000) | Cinematographic photograph | © The artist





Insomnia (1994) | Cinematographic photograph | © The artist






Volunteer (1996) | Cinematographic photograph | © The artist





Cyclist (1996) | Cinematographic photograph | © The artist







Tattoos and Shadows (2000) | Cinematographic photograph | © The artist






Morning Cleaning, Mies van der Rohe Foundation, Barcelona (1999) | Cinematographic photograph | © The artist



Coastal Motifs (1989) | Documentary photograph | © The artist





Citizen (1996) | Cinematographic photograph | © The artist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결과물만을 보고, 그것의 본질까지도 파악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음을 JEFF WALL을 사진을 통해서, 그의 작업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결과는 항상 중요하지만, 과정이 없는 결과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를 가지고 포장하는 게 아닌, 과정이 꽉 찬 결과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DETAILED INFORMATION 

이름 : JEFF WALL
국적 : 캐나다 (CANADA)

사진출처 : The Artist
출처 : www.artsy.net/artist/jeff-wall

홈페이지 : www.jeffwalls.com

WRITTEN BY 원덕현

PINK FLOYD : THE WALL

SECTION : FEATURES   2016. 5. 5. 19:54


안녕하세요. 짧은 봄이 거의 끝나가고 금방이라도 무더위가 시작될 것 같은 2016년 5월의 첫째 주 어린이날입니다. 저번주 내내 저희 매장 앞에서는 철거 공사가 한창이었는데요, 무너져 내린 벽의 벽돌들을 '미화' 라고 적힌 수레에 실어 나르는 과정을 잠시 지켜 보았습니다. 미화는 명사로 '아름답게 꾸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하여 파괴를 하는것이 저는 매우 역설적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수단과 목적의 경계가 무의미해진 시대의 방향성과  견고함, 질서 정연함, 부동(浮動)의 특징을 지닌 벽돌의 본성은 어쩌면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허술함, 무질서, 부동(不動)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 앨범이 떠오르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수 있는 PINK FLOYD의 THE WALL (1979)입니다.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WISH YOU WERE HERE (1975), ANIMALS (1977)에 이은 콘셉트 앨범이자 록 오페라 형식이며, '소통과 단절'이라는 주제로 전개됩니다. 이 앨범에 등장하는 가상인물인 'PINK'는 PINK FLOYYD의 베이시스트인 로저 워터스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그는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고, 선생님에게 잘못된 교육을 받고 과잉보호를 하는 어머니에게 자라 자립심을 잃었으며 나중에는 아내에게 버림받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PINK'는 세상으로부터 정신적으로 단절되는 내면의 벽을 만들게 되고 이는 비유적으로 'THE WALL'로 칭하게 됩니다.



이 앨범에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트랙으로는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 , 'COMFORTABLY NUMB' , 'YOUNG LUST' 'HEY YOU' 등이 있습니다. 이후, 1982년에는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하였습니다. 앨범과 같은 흐름으로 전개되며 모든 사운드 트랙들도 앨범과 일치합니다. 처음엔 애니메이션과 라이브 공연을 합치는 것에 불과했으나, 감독 엘렌 파커의 제안으로 하나의 독립된 영화의 제작 방향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주인공 'PINK'를 로저 워터스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밥 겔도프가 맡게 되었고 처음에 그는 'THE WALL'의 스토리가 'XX 같다'라며 거절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영화 'THE WALL'에서 록 스타가 된 'PINK'가 고통으로 얼룩진 삶의 끝에 위기가 고조되며 결국엔 공연 도중 환각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내 의사가 와서 각성제를 주입한 뒤 다시 공연장에 데려가지만 그는 더 이상 예전에 그가 아닙니다. 마지막 2분간에 장엄하게 휘몰아치는 데이비드 길모어의 기타 솔로와 괴물처럼 변해가는 'PINK'의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이루는 괴랄한 분위기는 사춘기의 저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장면이기도 합니다.

어린이날처럼 희망차고 아름다운 날에 암울하고 어두운 내용을 주제로 한 포스팅한다는 게 아이러니컬 하지만, 2016년 5월 5일에 업로드된 저희 인스타그램의 SSC DOCU에 보시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어른이 먼저 되어야 어린이들이 좋은 모습으로 잘 자라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이지만, 더 멋진 어른이 되는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여러 어두운 면을 외면하거나, 또는 단순히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것들이 진정 우리가 더 멋진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부터라도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이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모범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ETAILED INFORMATION 

제목 : 더 월 (THE WALL)
국가 : 영국 (ENGLAND)

감독 : 앨런 파커 (ALAN PARKER)
개봉일 : 1982년 7월 14일

원작 :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로저 워터스 (ROGER WATERS)
원작 음반 발매일 : 1979년 11월 30일


WRITTEN BY 김세영


슬로우스테디클럽(SLOW STEADY CLUB, 이하 SSC)의 2016년 봄/여름 셀렉션에서 재미난 결과물 중에 하나는 오사카와 고지마를 베이스로 일본 전역에 데님을 공급하는 공장 베이스 브랜드 ORDINARY FITS(오디너리핏츠) 와의 협업물입니다. 그 결과물은 이미 공개하였지만 ORDINARY FITS(오디너리핏츠)의 원단부터 데님까지의 제조 과정 및 공장을 공개하려 합니다.

시작점인 부분부터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먼저 지리적으로 고지마(KOJIMA)는 오카야마(OKAYAMA)현 구라시키(KURASIKI)시에 위치한 7만2,000여 명이 살고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고지마는 데님 원단 생산 및 제조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아나간 후, 현재는 진 스트리트(JEANS STREET)라는 관광거리를 조성하였습니다.



도로의 페인팅을 셀비지 라인처럼 흰색과 빨간색으로 하였는데, 1차원적인 아이디어같아 참신하다는 생각까지는 안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가 진 스트리트(JEANS STREET)라는 것은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고지마(KOJIMA)는 이전부터 방직 및 섬유산업이 발달한 마을이었습니다. 국내와 비교하면 과거의 대구와 닮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구는 현재 섬유산업이 많이 사라져버렸지만 이곳은 원단 및 교복 제조 생산을 먼저했습니다. 그러던 초창기와 달리 미군부대를 통해서 들어온 미군복를 비롯해 데님의류 등으로 새로운 분야를 접하며 받아들이게 되었고,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서양문화를 폭 넓게 받아들임으로써 좀 더 데님원단 제조와 생산으로 집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1965년 고지마(KOJIMA)에서 처음 시작한 데님 브랜드는 빅존(BIG JOHN)이었습니다. 잠시 빅존(BIG JOHN)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처음에는 미국의 캔턴(CANTON)의 데님 팬츠를 제작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 원단이 몹시 딱딱하고 빳빳하며 두꺼워 여러 노하우가 축적되어있는 고지마(KOJIMA)의 공장에서만 제작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1967년, 미국의 콘 밀즈 데님 (CONE MIILS DENIM)에서 수입한 데님 원단으로 빅존(BIG JOHN)의 첫 모델인 M1002를 생산하게 됩니다. 


그 이후 고지마(KOJIMA) 마을의 데님 제조 및 원단 제작 기술들이 퍼져나가면서, 고지마(KOJIMA)는 이후 일본 데님의 메카(JAPAN DENIM MECCA)로 인정받고, 더 나아가 세계 최고 수준의 데님 제조 기술력을 보유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와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고지마(KOJIMA)의 데님 원단을 사용하고, 그곳에서 제조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한국인으로써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자동기계화가 가속화 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산업국가들이 아날로그식보다는 좀 더 편리한 자동화로 교체를 추구함으로써 이전의 기계를 등한시하며 헐값에 팔아버리죠. 물론, 좀 더 나은 생산성과 노동비 절감을 위함이였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그러한 기계들을 저렴한 가격에 사서 모으고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서 고르지 않은 방적사(UNEVEN YARN)로 데님을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켰고, 그것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재팬데님이라는 브랜딩에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는 옛것들을 보존보다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방향을 봤을 때,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물론, 우리나라가 전쟁을 겪고 난 후 폐허가 된 가운데 생존을 위한 사투와 나라를 다시 복원시켜야 한다는 마음과 정책등을 결합되어 많은 것을 얻고 또한 많은 부분들을 놓치고 오늘날까지 왔지만 말이죠.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봤을 때 우리는 장인정신이 있었던 민족이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그 마음의 불씨가 더 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번 저희가 ORDINARY FITS(오디너리핏츠)와 함께 만든 SSC DENIM TROUSERS는 고지마(KOJIMA)에서 생산되는 셀비지중에서도 최고급 원단을 의미하는 블루셀비지로 제작한 미니멀한 데님 팬츠입니다.


고지마(KOJIMA)의 데님산업는 한때 패스트패션으로 강세로 인해서 주춤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더 고급화에 취중 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상황에서는 많이 흔들렸을수도 있습니다만, 그러한 발전을 거듭하면서 지금은 오리지널 레드셀비지라인을 뛰어넘은 하이퀄리티에는 블루 셀비지라인을 넣기로 약속합니다. 실제로 이 팬츠의 원단을 처음 보았을 때 굉장히 빳빳하고 원단의 결이 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빳빳함은 실제로 입기에는 불편함이 느껴졌기 때문에, 원 워싱(ONE WASHED) 가공을 통하여 제품을 완성 및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ORDINARY FITS(오디너리핏츠)는 브랜딩 없이 제조 베이스의 브랜드로, 일본 내에서는 다른 브랜드 혹은 샵의 제품을 제조해주는 것으로 더 유명합니다. 그들은 원단을 직접 제조하고, 봉제할 수 있는 공장이 모두 밀집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퀄리티 대비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SSC DENIM TROUSERS는 기존 데님의 투박한 요소를 비워내고, 미니멀한 팬츠로 디자인하였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데님에서는 볼 수 없는 SSC(슬로우스테디클럽)만의 디자인과 ORDINARY FITS(오디너리핏츠)의 기술력이 결합하여 나온 뜻깊은 프로젝트입니다.

출시가 되기 6개월 전, 저희는 샘플을 제작하여 착용해보면서 디자인을 체크하고 또 어떻게 물이 빠지며 변이가 되는지 등을 체크하였습니다. 사용하면서 느낀 점은 허리는 크더라도 한 치수 크게 입는 것이 좀 더 여유로운 핏이 연출되는 것과 사용할수록 좀 더 편안하고 좀 더 부드러워지는 촉감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원단의 밀도가 많이 높기 때문에 사용감으로 해지거나 그러한 느낌과는 달랐습니다. 이 부분이 고지마(KOJIMA)의 블루셀비지 데님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남녀 모두 이 데님팬츠를 즐길수 있도록 26 사이즈부터 36 사이즈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원단과 혁신적인 디자인이 조합된 SSC DENIM TROUSERS의 만드는 과정과 이야기였습니다.




 DETAILED INFORMATION 

프로젝트 : 오디너리 핏츠 (ORDINARY FITS) X 슬로우스테디클럽 (SLOW STEADY CLUB)
국가 : 일본 (JAPAN) X 대한민국 (KOREA)

사진제공: IAMCOMPANY (아이엠컴퍼니)

*여러분의 내점을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편히 오셔서 시착부탁드립니다. 

판매처 : 슬로우 스테디 클럽 (SLOW STEADY CLUB)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5길 17 (팔판동 130-1) * 매장 앞 주차가능
운영시간 : 오후 12시 ~ 오후 8시
온라인스토어 : WWW.SLOWSTEADYCLUB.COM 
인스타그램 : @SLOWSTEADYCLUB

WRITTEN BY 원덕현

MICHAEL WOLF : TOKYO COMPRESSION

SECTION : FEATURES   2016. 4. 28. 18:45

대도시의 출근시간 지하철은 소위 ‘지옥철’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서로의 몸을 짓누르며 의도치 않은 낯선 자와의 불쾌한 접촉이 끊이질 않는 동안 개인의 물리적 공간은 붕괴됩니다. 일반적으로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이 순간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만한 상황이죠.

이 사진들은 독일인 사진가 Michael Wolf가 도쿄에서 기록한 결과물들입니다. 사람들의 표정, 창문의 프레임, 습기, 얼룩 그리고 빛과 그림자 등 사진을 구성하는 있는 그대로의 요소들의 조화가 매우 흥미로운 작업물입니다. Michael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기를 피할 방법이 없었기에 사진을 찍는 순간에는 사람들이 더 나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주장합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정말 슬플 것 같습니다. 창문에 찬 습기와 물방울들은 마치 현대인의 가쁜 호흡이 응결돼 생긴 현대사회의 식은땀 같아 보입니다. 그 땀과 얼룩에 범벅되어버린 그들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사실 저 스스로도 도시에 살고 있기에 도시에서의 삶을 이렇게 삭막하게만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분명히 현대사회의 이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포착했을 때도 이런 표정들이 나올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화나 보이고 지쳐 보였던 그 누군가가 모습이 나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안일한 두려움이 생기네요. 오늘도 우리의, 인간의 속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DETAILED INFORMATION 

이름 : MICHAEL WOLF 
국적 : 독일 (GERMANY)
홈페이지 : 
www.photomichaelwolf.com

WRITTEN BY 김동희